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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누구예요?”
옆에서 끼어든 규아의 질문에 주희 선배도 내 쪽을 힐끔 쳐다보신다.
“뭐가.”
“에이, 무슨 질문인지 아시잖아요. 누굴 선택하실 거냐는 말이죠.”
“…….”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물어올 줄은 몰랐다.
“알 거 없어.”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규아를 무시했고, 주희 선배도 거기까진 자신이 끼어들 부분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그냥 넘기신다.
“어떻게 도와줄까.”
“그냥…… 그냥 제가 애들이랑 하나씩 얘기할게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오지 못하게만 해주세요.”
각오를 다진 내 답에 주희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툭.
등을 두들겨주신다.
“힘든 거 알아.”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주희 선배의 인자한 미소와 위로.
“그래도 그게 맞다. 옳은 선택을 한 네가 자랑스럽고. 너를 좋아했다는 게 후회가 되지 않게 해줘서 고마워.”
“선배…….”
“MT 끝나고.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네 여친이랑 같이 술이나 마시자.”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을 뿐 따로 답하진 않았다.
과연 누군가를 고를 수 있을까.
나는 아마,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따로 시간을 내겠다고는 했지만.
사실 MT에서 따로 시간을 가지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르르 몰려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몰래 빠져나오는 것도 힘들었고.
애초에 주변에 사람들을 모으는 습성을 가진 애들이라서 하나만 비어도 금방 눈에 띄었다.
‘곤란하네.’
그렇게 뭐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로 그냥 시간이 흘러갔다.
족구 대회가 끝나고.
따로 아무것도 안 한 내가 저녁이나 준비하기로 했다.
어차피 진두지휘는 주희 선배가 하는 거였고 난 그냥 잡일이나 하는 거였지만.
‘축제 생각나네.’
축제 때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보니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지만, 막상 떠올리면 시간이 꽤 지나긴 했다.
그때랑 서로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고 말이다.
“뭐해?”
MT에서는 고기 구워 먹는 게 국룰이니, 바비큐 그릴에 불을 지피고 있는 내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
최이서였다.
“애들이랑 쉬고 있던 거 아니야?”
아까 교수님들한테 시달렸다고 들었는데 왜 여기 나와 있나 싶었다.
“저녁 준비 도와줘야지. 1학년들한테만 시키면 오래 걸릴 거 아니야.”
“주희 선배가 있어서 괜찮은데.”
“선배한테만 맡길 수는 없잖아.”
그리 말하면서도 내 곁에서 따로 떨어지진 않는다.
멋쩍게 불을 붙이고 있는 내게 다시 말을 거는 최이서.
“고기 구우려고?”
“응, 아까 족구 대회도 빠졌으니까 이런 거라도 해야지.”
“제육?”
“그건 아니고. 그냥 고기만 굽는 거지.”
“축제 때 생각나네.”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
지펴진 불을 보면서 잠시 멍하니 있던 최이서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묻는다.
“설명 안 할 거야?”
“……주희 선배?”
“응.”
빤히 나를 쳐다보는 그녀.
이런 건 당황하면 더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최대한 담백하게 설명한다.
“고백을 받았고, 거절했어. 정말 그게 끝이야.”
“응, 그건 알아. 근데 네가 먼저 와서 말해주길 바랐어.”
“……실수했네.”
당장에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툴툴대던 유아린과는 다르다.
각자 성격이 다르니, 대응 방법도 달라야 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미안해.”
솔직하게 사과하자 빤히 나를 쳐다보던 최이서는 슬쩍 손을 그릴 위에 둔다.
열이 올라온 걸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 틈에 나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그릴이 밖에 있어야 했기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금방이라도 누가 올 수 있다.
대화를 나누기엔 부적합한 장소였으나.
“얘들아, 테이블 세팅부터 하자.”
애들을 이끄는 주희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주희 선배는 일부러 애들이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테이블 세팅을 먼저 하게 만들었고.
선배와 눈을 맞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니 심호흡했다.
각오는 했으나.
막상 말이 내뱉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해야 함을 알았기에.
“이서야.”
타닥타닥.
타오르는 숯불에 맞춰서 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만하자.”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말을 내뱉는 스스로도 가슴이 무거웠으나, 그럼에도 해야 하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한마디.
뭔가 원망이라도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 대 얻어맞아도 가만히 맞아줄 생각도 있었다.
허나, 그녀는 크게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대답도 따로 없었다.
놀라서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이런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무덤덤하니 뜸을 들이는 최이서.
무슨 대답이 나올까.
두근거리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자니.
“지금의 너는.”
차분하게.
평소의 최이서랑 조금도 다르지 않게.
그녀는 속마음을 고백한다.
“내가 사랑했던 김우진일까?”
그 한마디만으로.
목에 무언가 커다란 돌덩이가 박힌 기분이 들었다.
호흡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답답함. 혀가 무거워 움직이지 않는다.
“최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
“감정이 식어가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이 드는 걸 보면?”
“그런 거겠지.”
그럴 수밖에.
여러 여자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였다.
당연히 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별을 고했음에도, 정작 가슴이 아파지는 건 나였다.
최이서를 실망시켰다는 게.
사실 무엇보다 크게 아파왔다.
“그런 걸 거야.”
그럼에도 나는 긍정해 주었다.
결국 나는 최이서가 원하는 답을 줄 수 없으니까. 차라리 잘 됐다 생각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최이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더라.”
가만히 들어줄 생각이었다.
원망 섞인 불평불만도 당연히 온전히 나의 것이니까.
그런데.
왜 저렇게 기분 좋다는 듯 웃고 있는 걸까.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고백한대. 자기한테는 너밖에 없다고, 마치 세뇌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겠어 되묻자, 최이서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정반대네?”
“…….”
“너는 단 한 번도 나한테. 아니, 우리한테 사랑한다고 한 적이 없잖아.”
하지만 하고 말을 이어간다.
“그래서 고민해 봤어. 정작 몸을 섞는 건 또 망설이지 않아. 참을성 자체가 없지.”
“크흠.”
아프게 찔러오는 진실.
“왜 그런 걸까?”
욕망에 충실한 이기적인 김우진이니까. 그런 대답 밖에 해줄 말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런 거야.”
툭.
최이서의 손가락이 내 가슴에 닿는다.
돌고 돌아서 겨우 정답을 찾았다며, 최이서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말로 고백하면, 결국 끝이니까.”
“…….”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표현은 딱 하나였어. 말로 하는 순간 모든 건 명확해지지만, 행동의 진위는 여러모로 달라질 수 있으니까.”
“…….”
“사랑과 욕정은 다르다.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사랑에는 욕정도 포괄되어 있어.”
그러니까.
“이게 네가 욕망에 충실하게 행동했던 이유야. 그것이 네가 우리에게 사랑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유명한 문구였으나.
“사랑을, 욕정으로 포장하고 있었던 거야.”
반대로.
말로 해서 명확해지는 순간 끝나기에 행동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었다.
그게 우리의 관계였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고백하면 끝나는.
그런 사이.
“이야기를 돌려볼까?”
최이서의 시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피하지 않았다.
“그만하자고?”
올곧은 그녀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도망치고만 싶어졌다.
“그렇게 나한테,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었으면서?”
“아, 니…… 그게.”
“흐흫, 우진아 그거 알아?”
도망치고 싶은 이유는 하나였다.
“얼굴 엄청 빨개. 부끄러워?”
“……!”
그래, 부끄러웠으니 도망치고 싶었다.
다급하게 얼굴을 팔로 감싼다.
화끈거리는 게 앞에 있는 숯불 때문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니까 반대로 성욕에 미친 척하고 표현해 왔던 거잖아.”
한 걸음 다가온 최이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그게 뭐? 결국 나는 누구 하나 못 정했어. 그냥 이기적인 놈일 뿐이야. 이런 나한테도 질렸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
진심이 담긴 고백이었음에도.
최이서는 다시 내게 다가와서는 손을 잡고 확 잡아당긴다.
“이기적이라서, 배려도 참 이기적으로 하는구나.”
“…….”
“미안하지만 나는 다 이겼는데 질 생각 없어.”
말문이 막혔다.
분명 내 마음을 다 고백했고.
더 이상은 힘들다고 말했으며.
이제 그만 끝내자고 말했음에도.
왜 최이서를 향한 마음이 더 커져가는 걸까.
“솔직히 처음엔 걱정됐어. 결국 네가 이 상황에 만족하면서 유지하려고 드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
최이서의 눈동자엔 어느새, 안도감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사랑한 김우진이 아니야.”
당황하고 있는 내 앞에서 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린다.
내 가슴에 손을 두고, 기대어 온 그녀가 짤막하게 입을 맞췄고.
쪽.
“그만하자고 해줘서 고마워, 우진아.”
당황해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나를 향해 웃으며 고백했다.
“내가 사랑하는 김우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