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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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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논지는 이거였다.

성욕인가 사랑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사실 이런 식의 고민은 누구라도 한 번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거였다.

허나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으로는 야한 망상 안 해요.”

내 말에 커피를 마시던 주희 선배가 흠칫 놀란다.

근처에 있던 사람 적은 카페.

우리는 잠시 들어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고.

나는 진리처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아셨어요? 좋아하는 사람 가지고는 야한 망상 안 한다고요.”

“……그런 거야?”

처음 들으시는지 당황한 주희 선배였으나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런 거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 가지고는 딸치지 않는다.

“그래서 성욕이랑 사랑을 착각하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셨어요? 그 사람 가지고 자기위로를 해본 적 있다? 그럼 감정을 다시 재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

바로 어깨가 축 처지는 주희 선배.

솔직히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긴 했으나. 어쨌든 이런 식으로 말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게 유도하는 거였다.

‘잠깐만.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숨겨져 있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 반응을 보면 주희 선배는 나를 가지고 자위를 해본 적 있다는 게 아닌가?

문득, 손을 열심히 움직이며 신음과 함께 내 이름을 부르는 주희 선배가 상상됐다.

짝!

‘미친놈!

바로 뺨을 후려치면서 정신을 차린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술집이 아니라 카페로 들어왔지 않은가.

주희 선배가 착각하는 걸 가지고 이용해서 '그럼 선배, 확인해 볼까요?' 하고 호텔로 데려갈 수도 있다.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선배에게 '감정은 원래 스스로가 정의하기 어려워요. 느끼는 게 중요해요.' 하고 스킨십하면서 흥분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술 마시면서 같이 고민해 볼까요?' 하고 술집으로 가서 서로 진탕 마신 다음 에라 모르겠다 암컷 타락시킬 수도 있다!

솔직히 매우 쉬워 보였다!

‘……확률도 높아 보이고.

이 여자, 침대에선 어떨까?

혼자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선을 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이 딱 그런 때였기에 또 한 번 마음을 다잡고 혼란스러워하는 주희 선배를 보면서 답했다.

“선배, 근데 그런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으응?!”

부끄럽다고 생각하셨는지 계속 커피만 마시던 선배가 어색하니 대꾸한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죠. 선배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아오셨으니까, 이런 걸 알 경황이 없어서 착각할 수도 있고요.”

“…….”

“부끄러운 거 아닙니다. 자기 성욕에 너무 솔직한 사람도 있는걸요.”

대표적으로 서예린.

서예린의 본성을 본 다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주희 선배의 이런 고민이 다소 가볍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부담 가지지 않고 이렇게 조언할 수 있는 거겠지.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방금 전 떠올렸던 수많은 망상들이 맴돌고 있었다.

주희 선배를 다소 강하게 밀어붙이면 호텔로 얼마든지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제 늦었네요.”

아직 많이 남은 커피를 그대로 원샷한 후, 선배에게 웃으며 말했다.

“기숙사로 돌아가죠.”

그 뒤, 우리는 같이 기숙사로 향했다.

가면서 따로 대화는 없었다.

가끔 선배가 내 눈치를 힐끔 살피시는 정도는 있었지만, 딱 거기서 끝이었다.

어느새 도착한 기숙사 앞.

저녁을 먹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진 않았다.

그냥 얼른 돌아가서 침대에 눕고 싶었다. 몸은 피곤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피로했고, 얼른 주희 선배랑 떨어지고 싶기도 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오늘 재밌었어요, 선배.”

내가 웃으면서 인사하자 나를 빤히 보시던 주희 선배가 한 걸음 다가오신다.

“하, 한 번만.”

이제는 주희 선배의 붉어진 얼굴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간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선배는 내게 부탁하셨다.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니?”

“…….”

“네 말대로 내가 착각한 건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선배의 부탁은 달콤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선배를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아뇨.”

거절했다.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누구인지, 나 역시 감정을 확실하게 정립하지 못했기에 선배를 이해하긴 했으나.

그래도 선은 그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처음이었다.

선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보는 건.

건달들 앞에서도 당당하시던 선배랑은 다르게, 지금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기에.

나는 얼른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느껴졌고, 기숙사 내부가 과할 정도로 고요했다.

주희 선배를 혼자 남겨두고 왔다는 게 죄책감이 들면서도.

막상 내가 한 행동이 옳았다는 확신이 드는 기묘한 상황.

얼른 돌아가서 게임을 하거나 너튜브를 보면서 기분을 환기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갔는데.

“왔어?”

침대에 누운 채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최이서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난다.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냐?”

기숙사로 옮긴 다음부터 너무 자주 오는 경향이 있다. 학교에 오면 내 방에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니까 편해서 오는 건 이해하는데.

이제는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오니까 당혹스러울 정도.

“1학년 애들 도와주다가 잠깐 쉬려고 온 거야. 휴게실 같은 곳에선 눕기 좀 그렇잖아.”

“아직도 1학년 애들을 도와줘?”

너무 자주 도와주는 게 아니냐고 말했으나 이서는 웃으면서 화제를 돌린다.

“주희 선배랑은 잘 놀다 왔어?”

알고 있었구나.

가볍게 대답하려 했으나, 막상 방금 전 주희 선배의 모습이 떠올라서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그런 내 모습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챈 최이서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리 와.”

양팔을 뻗으면서 나를 불렀다.

“그럴 기분 아닌데.”

방금 주희 선배랑 그런 일이 있었는데 곧장 다른 여자 품에 안긴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으나.

최이서는 반대로 나한테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나한테 매달리듯 꽉 안아준다.

“힘들어?”

그 뒤에 뭔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나를 위로해 주듯 부드러이 물어오는 최이서에게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조금?”

“어떤 게 힘들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 만큼 못 해준다는 거?”

결국 나란 사람은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하는 것도 단순히 내 이기심일 수 있다는 거?”

모두를 품고 가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안해. 조금만 더 고민해도 괜찮을까?”

“어쩜 이렇게 나쁜 말을 착한 척하면서 잘할까, 우리 우진이는.”

웃으면서 장난치듯 말하는 최이서.

미안하다 말했으나 최이서는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안은 팔에 힘을 더 꽉 주는 걸로 대신했다.

최이서랑 얘기를 할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감이 있었다.

나의 이기적인 부분이나, 우유부단한 부분, 욕망에 솔직한 부분 같은 걸 가감 없이 말해준다.

그러면서도 말투나, 감정, 행동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게.

그런 나라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기분이었다.

서예린과는 다른 느낌으로 나를 긍정해 주는 그녀.

그럴 수 있다고.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최이서를 나도 조심스럽게 안아준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있었을까.

나는 손을 내려서 최이서의 양쪽 허벅지를 잡아 그대로 들고 침대로 향했다.

풀썩!

그대로 눕히자 당황한 최이서.

“자, 잠깐! 난 그럴 생각 없었는데?!”

“이서야, 그거 알아?”

주희 선배 때문에 복잡하다.

이런 일을 하는 게 도의적으로 잘못된 건 알고 있다.

감정적으로 나는 여전히 어지러웠으나.

“사랑이랑 성욕은 다른 거야.”

성욕은 솔직하다.

어쩌겠는가.

사랑이랑 성욕은 비슷한 색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걸.

가슴에 얼굴을 묻자, 최이서가 내 머리카락을 잡고 확 뒤로 젖힌다.

“나 갈아입을 옷도 없고, 이제 가야 되거든? 그니까 참자?”

“빨리 끝낼게.”

“할 생각 없다고!”

“그럼 들게 만들어야겠네.”

최이서도 흥분하게 만들면 그만이지 않냐고 말하자, 결국 녀석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키스부터 해.”

머리카락을 놓아준 최이서.

나는 그대로 침대를 손으로 짚고, 누워 있는 최이서의 위에서 입을 맞췄다.

농밀한 키스를 주고받는다.

이제는 최이서도 꽤나 혀를 잘 얽혀왔는데.

내가 그녀를 음란하게 물들였다는 기분이 들어서 더욱 흥분되었다.

그렇게 다소 길었던 키스를 끝내고.

최이서를 내려다보자.

퍼억!

그대로 나를 옆으로 밀면서 벌떡 일어난다.

“후, 후아! 충전 완료! 나 이제 가볼게 우진아?”

“개소리하지 마! 나 진짜 빨딱 섰다고!”

“할 시간 없다니까? 너 한 번 하면 엄청 오래 하잖아.”

“그럼 세우지 말았어야지!”

“우진아…….”

울상이 된 최이서가 짐짓 서글프게 내게 물었다.

“나는 키스만으로도 마음이 꽉 찼는데, 너는 아냐?”

“아닌데.”

“…….”

“마음이랑 꼬추는 다르잖아.”

“하여간.”

바로 연기를 집어치운 최이서가 가려고 자기 핸드폰을 챙겨 든다.

이미 연락이 몇 번 왔는지 간단하게 답장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날카로이 따지고 든다.

“너도 지금 흥분했잖아.”

“으, 응?”

답장하던 최이서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가쁜 숨, 헝클어진 머리, 살짝 흐르는 땀,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계속 오므려서 젖은 걸 감추려는 것까지.

딱 봐도 흥분 상태인 최이서.

“그냥 오늘 몸 안 좋아서 못 간다고 하자.”

“나도 정말 그러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니까. 우진 씨는 야동이나 보세요. 보니까 용량이 더 느셨던데.”

그걸 벌써 확인했구나.

야동이 있다는 것에 심술이 났는지 최이서는 답장을 끝내고 바로 밖으로 나간다.

“야, 진짜 큰일 났다고! 이거 보라고!”

얼른 바지를 벗으며 내가 얼마나 큰일났는지 확인시켜 주려 했으나.

“미, 미친놈아!”

팬티를 벗기 직전의 나를 보고 깜짝 놀란 최이서가 도망치듯 방 밖으로 나갔다.

“…….”

결국 반나체 상태로 서 있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탁 치자.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방금까지 나를 보면서 슬퍼하시던 선배의 시선이 떠오르자, 주섬주섬 팬티와 바지를 입는다.

‘맥주 사둔 게 있었나.

분명 지난번에 오대상 형이랑 맥주 마셨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하필 이럴 때는 꼭 냉장고에 맥주도 없더라.

공허한 마음으로 혹시 몰라 냉장고를 확인하자 안에 있는 캔맥주 여섯 개.

그리고 와인 한 병.

“음?”

분명 다 마셨던 걸로 기억했기에 뭔가 싶었는데, 맥주랑 와인에 각기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 ( ¯ㅁ¯ )

적당히 마셔!

  • 이건 나랑 마실 거! ​٩( °ꇴ °)۶

“아.”

글씨체가 딱 최이서였다.

마시라고 사둔 맥주와 본인이랑 나중에 같이 마시자고 사둔 와인.

그걸 보자니 가슴이 괜히 먹먹해지는 게.

“아, 진짜.”

최이서를 보내면 안 됐다고 다시금 멍청했던 스스로를 질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