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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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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뭔가 대단한 계획을 한 건 아니었다.

내부로 잠입하는 데 있어, 놈들이 가장 원할 것과 내가 가지고 있는 패를 생각했을 때.

대기업 회장 아들이라는 걸 이용해서 접근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니까.

내 신분을 증명하는 건 쉬웠고, 기본금이라며 몇 푼 준 다음, 나중에 더 투자하겠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곳의 주요 멤버로 들어찰 수 있었다.

레인보우라는 이름의 이곳은 건달들이 운영하는 회사로, 개인방송인들을 착취하는 곳이었다.

여러모로 입에 담기 힘든 내용들이 많았지만, 그건 전부 넘어가고.

주축이자 사장인 황사장과 그 밑에 똘마니들에게 나는.

대기업 회장 아들 .

돈만 많은 버려진 철부지.

뒤틀린 방향으로 인터넷 방송인을 좋아하는 또라이.

이런 식으로 이미지를 메이킹하며 돈을 이용해 레인보우 소속 개인방송인들과 1:1로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중 포포도 있었고 말이다.

이제 계획은 최종장으로 가고 있었다.

회사를 더욱 큰 곳으로 옮기기 위해, 이사 가는 날.

그때를 맞춰서 방송인들을 풀어주고, 이것들을 전부 잡아넣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나한테 인사하는 유아린과 오윤지를 빤히 쳐다보면서 나는 뒷목의 서늘함을 느낀다.

오윤지가 움직이기 전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며칠 걸리지도 않았으니까.

“얘, 얘들이 신입이란 말이죠?”

말이 더듬어진다.

연기에 딱히 소질 있는 편은 아닌데, 갑자기 목숨 걸고 연기 호흡을 맞춰야 하는 판이 왔으니 긴장되었다.

내 질문에 애들을 데려온 한오석이 냉큼 대답한다.

“맞습니다! 아직 계약은 안 했는데. 곧 할 겁니다. 그쵸, 여러분?”

눈웃음치면서 은근슬쩍 압박을 주는 한오석.

두 사람의 성격상 저런 거에 밀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럼요.”

“당연하죠.”

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대학생처럼 끄덕인다.

“크흐음, 황사장님? 저 둘은 계약하고 10번으로 좀 데려와 주세요.”

내 말에 황사장은 깜짝 놀라며 걱정한다.

“바로요? 애들이 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지만…….”

황사장은 투자자인 내 눈치를 자주 보긴 했으나, 그렇다고 소신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들한테 너무 가혹한 현실을 일깨워주면 반발이 심하지 않겠냐는 의미겠으나.

“어차피 이제 곧 이사 가면 애들 따로 시내 나오지도 못하잖아요.”

“…….”

“쓰읍, 황사장님?”

만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처럼 억지를 부리며 짜증 한 번 내주자 황사장이 바로 꼬리 내리며 고개를 숙인다.

“넵, 바로 10번방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아, 그래요. 제가 막 어려운 거 시키진 않을 거니까요. 저도 신입인 거 아는데.”

그리 말한 다음, 나는 두 사람을 지나쳐 5층에 있는 10번방으로 향했다.

인터넷 방송인이 쓰는 방으로 총 10개가 있었는데.

여기 방송인이 5명밖에 없다 보니 남은 다섯 개는 공실.

그래서 10번은 내가 개인적으로 인터넷 방송인들을 만날 때 쓰곤 했다.

30분 후.

따로 들여놓은 소파에 앉아서 초조함에 다리를 떨며 기다리고 있자니.

똑똑.

노크와 함께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좋은 시간 보내십쇼!”

한오석이 냉큼 문을 닫으며 떠나가고.

나는 무사하구나 싶어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안도했다.

“어휴, 다행이다.”

“다행? 다행? 다해에에엥?!”

방금까지 나한테 깍듯하게 인사하던 오윤지가 쿵쿵 발걸음 소리를 내면서 달려든다.

“너 지금 장난해? 이게 장난 같아? 저것들 진짜 조폭이야!”

“알아! 알아! 아니, 나도 모르게 그냥 하게 됐는데 어떡하냐고!”

“너, 이 씨! 지금 이게 얼마나 위험한데!”

바로 주먹을 들고 나를 내려치는 오윤지. 씩씩거리는 숨결에서는 나와 마찬가지로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저쪽도 내가 큰일 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모양.

“다 때렸으면 옆으로 나와 봐. 나도 때리게.”

오윤지를 옆으로 밀친 유아린.

그대로 다시 나한테 주먹질을 하려고 했으나 다급하게 외친다.

“자, 잠깐만! 근데 너는 왜 여기 있어? 유아린은 이번 일이랑 크게 관련 없잖아!”

그 뒤, 우리는 서로의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 자체는 크게 길지도 않았으나 솔직히 불쾌하긴 했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렇게 너희끼리 안으로 잠입을 해.”

연고도 없는 유아린은 물론이고, 아무리 오윤지라고 해도 상대는 사람을 가둬놓고 노예처럼 부리는 건달들이다.

둘이서 순진한 여대생인 척하고 들어왔어도 위험한 건 위험했다.

“네가 할 말이야?”

“내가 너보다 싸움 잘하는데?”

바로 들어온 반박.

솔직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납득은 되지 않았는데.

정작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대기업 회장 아들은 목숨도 살 수 있어? 너무 무모하잖아!”

“너 진짜 이러다가 크게 다쳤으면 어쩌려고 했냐? 뭐 싸움도 못 하는 애가.”

바글바글 시끄럽게 울려오는 잔소리.

“야, 야! 여기 방음 별로 안 좋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걱정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복도를 달리는 발걸음 소리와 한오석의 외침.

나는 다급하게 둘을 잡아당겨 내 무릎에 앉힌 다음 허리를 감싼다.

“……!”

“무, 무슨?!”

덜컹!

문이 열리고.

내가 양쪽에 두 여자를 끼고 있는 걸 본 한오석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다.

“아, 버, 벌써? 역시 수완이 좋으십니다! 즐기시는 것도 모르고! 나가 보겠습니다!”

쾅!

문이 닫히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는 몸에 힘을 푼다.

“이거면 두 시간 정도는 벌었네.”

내가 관계를 즐긴다고 생각했으니 두 시간 정도는 오지 않을 거다.

둘 다 게슴츠레하게 나를 노려보면서 양쪽에서 뺨을 잡아당기긴 했으나.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남은 두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계획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유아린과 오윤지가 계약하긴 했으나.

바로 잡아둘 수는 없으니 일단 놓아주고 내일 바로 들어오기로 합의를 본 뒤.

나는 하루 일정처럼 익숙하게 인터넷 방송인들의 방을 둘러본다.

고작 다섯밖에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저 다섯만으로도 회사를 먹여 살리고 있으니.

이들이 신입 방송인을 잡으려고 왜 혈안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쨌든.

포포가 있는 1번방으로 가자, 이미 방송을 끝냈는지 잠시 쉬고 있는 그녀.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손짓했다.

“10번방으로.”

“네.”

이제 포포는 익숙하게 내 뒤를 따라서 10번방으로 온다.

처음에는 애를 좀 먹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나름 친해진 사이였다.

“일단 이거 좀 마셔.”

바로 소화제를 건네자 포포는 살짝 웃으면서 내게 감사를 표했다.

애가 소화제도 제대로 못 먹고, 음식들 먹고 있는 거 보면 반대로 내 배가 더부룩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포포가 천천히 소화제를 마시는 동안, 나는 방에 있는 컴퓨터로 영상 하나를 틀었다.

하앙!

야동이었다.

스피커를 통해서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

누군가 본다면 뜬금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우리는 익숙하다.

내가 10번방으로 방송인을 데려가는 건,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라는 인식을 심어줬기에.

저 신음이 문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는 이 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할 수 있었다.

감히 투자자님께서 섹x를 하는데 문 열고 들어올 놈이 어디 있겠는가.

“또 새로운 애들이 들어온다고 들었어요.”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존댓말을 하는 포포.

처음에는 가현대 축제에서 만났던 기억 탓에 나랑 거리를 두려고 했었으나.

내가 대나무숲 관리자이며, 그녀를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호의적으로 변했다.

“오늘 그거 때문에 부른 거야. 우리 탈출하는 거 있잖아.”

원래는 이사 날에 맞춰서 탈출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윤지와 유아린이 합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내일로 앞당겨질 것 같아.”

“……!”

다른 여러 이유가 있긴 했으나, 두 사람이 이곳에 며칠이나 더 있는 걸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내일, 두 사람이 들어오면서 탈출할 거야. 내가 이미 내부 자료들 다 모아뒀으니까, 경찰이랑 오면 끝이야.”

“흐으극!”

눈물을 흘리는 포포.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으니, 감정적이 된 모양.

“드, 드디어! 드디어어!”

몸을 웅크린 채로 눈물을 쏟아내는 포포의 등을 어루만져준다.

이제 곧 탈출할 수 있으며, 계약 관련해서도 윤지랑 작은형 쪽에서 이미 법적으로 준비를 마쳐둔 상황.

“네 역할이 중요해. 다른 방송인들이 다치거나 인질로 잡히지 않게 네가 잘 인솔해야 돼.”

“알았어요.”

끄덕이는 포포.

그러다 문득, 나를 빤히 보던 포포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주세요?”

“음?”

“그렇잖아요. 그냥 경찰에 신고해도 충분히 도의적인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말에 잠시 입이 다물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축제 때, 나한테 거절당하고 쓸쓸하게 떠나갔을 네가.

도대체 어떤 험한 꼴을 당했을지 생각하다 보면 도와줄 수밖에 없다고.

그런 말이 입에 담겼으나.

“자,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문밖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

신음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들어오겠단 말에 잠시 당황했는데.

포포는 냉큼 나한테 달려들어 내 위에 걸터앉고는 옷을 풀어 헤쳤다.

방송 컨셉으로 브래지어를 못 차게 했던 탓에, 말캉거리는 가슴이 눈앞에 펼쳐졌고.

포포가 다급하게 내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에 얹었다.

덜컹!

그리고 안으로 들어온 한오석.

그는 자신이 듣던 신음이 야동에서 나오던 거라는 걸 깨닫곤 잠시 당황했으나.

“분위기 망치게, 씨.”

내가 혀를 차며 짜증 내자 야동도 일종의 백색 소음 역할로 틀어놓은 걸 깨닫고는 바로 고개를 숙인다.

“죄,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경찰 쪽 연줄이 있는데, 내일 저희 조사 들어온다는 얘기가 들어왔습니다!”

“뭐?!”

그게 걸렸다고?

아니, 애초에 경찰에 연줄이 있었어?

‘하, 이것들 선 많이 넘네.

하긴, 그러니까 시내에서 대놓고 사람 감금하고 했겠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오늘 왔던 년들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바로 짐 빼고, 애들 빼돌리려고 합니다!”

나는 포포를 옆에 내린 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갑시다. 나도 아는 곳에 연락 좀 돌릴게요.”

일이 갑자기 급해졌다고 윤지 쪽에 연락을 넣으려 했으나.

“잠깐.”

한오석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오는 황사장.

“연락은 좀 미뤄둡시다.”

그는 무언가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내 핸드폰을 낚아챈다.

“뭔가…… 묘하단 말이지, 투자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