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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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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만 해도 기숙사로 돌아가는 건 좀 미뤄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예린이랑 최이서가 싫은 건 아니고, 오히려 내가 둘을 보고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유아린과 오윤지가 서로 웃으면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보게 되자.

‘그냥 돌아가고 싶네.

서예린이고 최이서고 모르겠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만큼 둘 사이의 분위기는 삭막했다.

앞에서 소고기가 구워지고 있는데도 이런 분위기라니.

옆자리에 앉은 작은형의 무릎을 한 번 주먹으로 때리자 형도 뻘쭘해하며 슬쩍 내 귀에 속삭인다.

“이럴 생각으로 자리를 마련한 건 아닌데…….”

“형은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해서 문제라니까? 엄마를 너무 닮았어.”

둘이 모이면 하하 호호하면서 정말 사업 얘기만 할 줄 알았는가.

이미 우리 쪽 전말을 다 알고 있는 작은형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니 머리가 지끈거리듯 아파왔다.

“설마 일부러 이런 건 아니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으나, 작은형은 거의 울상이 되어서는 결백을 주장해 왔다.

“진짜 아니라고.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짓을 하냐고. 아니, 내가 아는 윤지는 공과 사 구분이 철저한 애였단 말이야.”

“그건…….”

나도 동의한다.

윤지는 원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칼같은 성격이었지만.

지난번 카페에서 이야기했을 때, 그녀 역시 사람다운 면모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지금의 나에게는 저러한 행동이 오히려 당연하게만 보였다.

“그리고 윤지가 일단 우리 쪽 사장이란 말이야. 나나 은별이가 앞으로 나서긴 좀 그래서.”

“하아.”

어쨌든 은별 형수가 있는 덕분에 대놓고 싸우거나 하진 않았다.

분위기가 험악하긴 했으나, 작은형수가 어떻게든 흐름을 이끄는 중이었다.

“그래서. 저희는 인터넷 방송인을 키우거든요. 이게 그냥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

멍하니 이야기를 듣던 유아린은 팔짱을 끼며 등받이에 기댄다.

이제 고기를 다 먹은 모양이었는지.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저는 그런 거 관심이 조금도 없어서요.”

“으음.”

“제가 뭐 재능이 있다고 말씀하셔도 딱히 그런 느낌도 안 들고. 애초에 남들 눈치 보면서 사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인터넷 방송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은 유아린.

그녀의 반응이 시원찮은 탓에 작은형수와 작은형이 좀 당황했으나.

“인터넷 방송의 장점은.”

무뚝뚝하니 사무적인 표정을 지은 오윤지가 입을 열었다.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키고 시작할 수 있죠.”

“…….”

“대학생이시니 강의 이후에 따로 2, 3시간만 투자하시는 겁니다. 그러다 정말 안 될 것 같다 싶으시면 접으면 되고요.”

“그거면 된다고요?”

“부업이라고 생각하시고 시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흐음, 부업이라. 근데 그게 돈이 돼요?”

나도 인터넷 방송 쪽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보니 좀 궁금하긴 했다.

그거 누가 돈을 쏴줘야 버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한테 돈을 쏴주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어깨를 으쓱거리며 유아린이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췄는데, 오히려 오윤지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테블릿pc를 꺼내 들어서 프로필을 보여준다.

거기엔 애니 캐릭터도 있었고, 그냥 실물 사진도 있었는데 아마 회사 소속 방송인인 모양이었다.

“소속 크리에이터들입니다. 평균 수입 등을 제가 따로 결산해서 정리해 뒀죠. 연차가 오래된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 시작한 신생도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새로 시작했다는 사람의 월평균 수익을 가리킨 오윤지.

“……홀리?”

그걸 본 유아린의 입이 떡 벌어지더니 이게 진짜냐고 오윤지와 테블릿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저희가 성심성의껏 지원해 드릴 겁니다. 베테랑 방송인 분들이랑 합방도 넣어 드릴 거고, 따로 편집자나 매니저들도 구해드릴 거예요.”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돈 많이 번다는 건 알겠네요.”

그럼에도 유아린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 딱히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 돈을 진짜 벌 수 있으면 하는 게 맞긴 한데…….”

애매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숨을 내쉰다.

“일단 생각 좀 해보고요.”

유아린이 여전히 보수적인 반응을 보였고, 상황이 진전되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세요. 대학 다니는 스무 살 학생이 이 정도 수익을 벌기 쉽지 않아요.”

오윤지 역시 이 이상 밀어붙이는 건 역효과라고 생각했는지, 여운 정도만 남기고 물러선다.

‘의외네.

나는 유아린이라면 당연히 수락할 줄 알았다.

서예린이 배우가 되는 거랑 비슷한 흐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래도 두 사람 다 이런 부분에 재능이 출중해 보였으니 말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그때, 끼어든 작은형수.

“쇼츠를 하나 찍어보는 거예요. 거기서 나오는 반응을 보고, 아린 씨가 결정하는 거죠.”

“쇼츠요?”

“짧은 동영상이에요. 저도 딱 삘이 오거든요? 아린 씨가 분명 먹힌다는 거? 시청자들 반응 보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좀 얻으시면 어떨까 싶네요.”

확실히 방송인은 방송인이구나.

이런저런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어떻게든 유아린에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침 근처에 저희가 따로 빌려둔 스튜디오 있거든요? 거기로 가시죠.”


“허.”

카메라 앞에 선 유아린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인다.

“예린이는 어떻게 촬영했다냐.”

세삼 문득, 서예린이 대단하게 보인 모양이다.

‘막상 좀…….

나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유아린이 인터넷 방송에 재능이 있어 보였는데, 정작 카메라 앞에 선 그녀를 보니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는지 관계자 세 명은 화면 빨 잘 받는다면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야, 근데 뭐 찍어야 하냐.”

혼자 멀뚱히 서 있는 유아린이 나를 부르며 물어온다.

“몰라. 아까 들어보니까 무슨 애교 이런 거 하면 되지 않을까?”

“웩, 뭔 애교야.”

“아까 전화할 때는 잘했잖아. 소고기 사달라고.”

당시에는 기분이 더러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또 좀 귀여웠다는 느낌도 든다.

“그때는 좀 과했으니까 살짝 절제하면서 해보면 되지 않겠냐?”

나름대로 좋은 조언을 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유아린은 오히려 똥 씹은 표정으로 나를 쓰레기 보듯 쳐다본다.

“그건 너니까 했던 거고.”

“…….”

“하여간 이 새끼는 눈치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가 딴 놈들한테 그런 말을 하겠니?”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한심하다고 투덜거리고는 있지만 괜히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면 본인이 얘기하고도 부끄러운 모양.

“자아, 아린 씨. 준비되셨어요?”

“간단한 촬영이라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형이 카메라를 잡고, 작은형수가 조명을 비춘다.

너무 밝아서 눈이 찌푸려졌기에 나는 냉큼 거기서 벗어났다.

“아, 눈……. 마스크나 하나 주세요. 얼굴 보이기 싫어서.”

“그럼요.”

얼굴 가리는 건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는지 바로 건네진 검은 마스크.

엉거주춤 선 채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는 유아린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오윤지가 옆으로 다가온다.

“뒤에서 좀 찍어줄 수 있어?”

“뒤에서?”

“응, 쇼츠니까 최대한 가까이서 찍어야 돼.”

“그러면 정면 앵글에서 내가 나오잖아.”

“그건 편집하면 돼.”

요즘 편집은 참 대단하다.

지난번에 나도 영상 편집하긴 했는데 거기까진 힘들던데.

“뭐, 그래.”

어차피 도와줘야 일찍 집에 갈 테니까, 핸드폰을 들고 유아린 뒤로 가서 촬영을 시작했다.

‘쇼츠니까 좀 가까이서 찍어야 한다고 했지.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후, 핸드폰을 통해 유아린을 보고 있자니.

“뭘 해야 하는 거야.”

여전히 길을 잃은 듯 갈팡질팡 거리고 있다.

“애교 같은 거 그냥 해도 괜찮아요. 이런 식으로.”

작은형수가 역시 인터넷 방송인이라 그런지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보여줬다.

고양이 시늉을 내면서 몸을 이리저리 가볍게 흔드는데 꽤나 수요가 있을 법하긴 했다.

“으음.”

하지만 썩 내키지 않았는지 유아린은 잠시 침음성을 흘리더니.

“그냥 잘하는 거 할게요.”

몸을 낮추고, 손을 땅바닥에 짚더니.

‘잠깐 설마…….

“후웁!”

그대로 윈드밀을 돌기 시작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너무 가까이 있었다는 거겠지.

뻐어어억!

시야가 돌아간다.

어느새 몸이 붕 떠올라, 천장과 잠깐 가까워졌으나 그대로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대로 쓰러지자, 영문도 모른 채로 윈드밀을 돌고 있는 유아린과 눈이 마주쳤다.

“시, 이발.”


대박 쇼츠가 나왔다고 좋아하는 작은형 부부를 노려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괜찮아?”

턱에 연고를 발라주는 오윤지.

“미안…….”

드물게도 솔직하게 사과하는 유아린.

“됐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어쨌든 좋은 그림이 나왔다니까 나쁘지 않은 결과인 거겠지.

아까 내가 봤어도 영상이 웃기긴 했다. 갑자기 뒤에 있는 애가 날아가 버린 거니까.

“나름 인기도 있을 것 같은데? 이걸로 유명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유아린도 보기에 재밌었다는 건 인정하는지 얼떨떨하니 끄덕인다.

정말 슬슬 마음이 넘어가고 있는 게 딱 보이는 유아린.

“계약서도 제가 따로 보내드릴게요. 한 번 읽어보세요.”

테블릿으로 유아린한테 계약서 사본까지 보내주면서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저희 쪽만큼 방송인 우대해 주는 곳도 많이 없어요. 아린 씨, 그 나이에 이 정도 수입 벌 기회 정말 흔치 않고, 아린 씨는 재능도 있어요.”

오.

나는 첫 시작부터 삐그덕거려서 오윤지랑 유아린이 기 싸움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오윤지는 진지하게 유아린을 영입하려고 애쓰고 있고, 유아린도 그런 오윤지를 보면서 점차 흔들리고 있었다.

‘역시 오윤지네.

그래도 공과 사의 구분은 철저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턱을 어루만지고 있는데.

“잠깐.”

핸드폰으로 계약서를 읽던 유아린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오윤지를 휙 노려본다.

“제한이 몇 개 있네요?”

“인터넷 방송인도 나름 유명인이니까요.”

뭐가 문제냐는 듯 대꾸하는 오윤지.

“연애도 불가능인데요?”

“네, 그렇죠?”

그렇구나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안 합니다.”

유아린은 깔끔하게 인터넷 방송인으로서의 길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거 때문에 그렇게 영입하려고 한 건 아니죠? 내가 우진이랑 이렇고 저렇고 한 사이인 거 아니까 그런 건 아니죠?”

“야, 아린아! 아무리 그래도 윤지가-!”

설마 그런 것 때문에 오윤지가 유아린 영입을 발 벗고 나섰겠냐고 대꾸하려 했으나.

“…….”

정작 오윤지의 입이 꾹 다물어지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허, 이거 사인했으면 너 만날 때마다 합법적으로 갈굼 당했던 거 아니야? 엿 같네 그냥.”

“내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야.”

이제 속내도 들켰겠다.

그냥 배 째라는 식으로 나가려는지 오윤지도 어깨를 피며 싸늘하게 쳐다본다.

“진짜로 우리 나이에 벌 수 없는 돈을 벌 수도 있고, 부업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맞아. 소소하게 연애 몇 년 못 하는 건 그런 이득에 비해서 큰 문제는 아니잖아?”

“싫은데? ‘전’ 여친 씨. 그쪽도 알겠지만 우진이가 슈퍼 다이아 수저라서 인터넷 방송에서 얼굴도 모르는 애들한테 애교 부리는 것보다 얘한테 잘 보이는 게 훨씬 이득이야.”

“……나 돈 없는데.”

내가 멋쩍게 속삭이자 유아린이 눈치를 주면서 입술을 꽉 깨물고 작게 으름장을 놓는다.

“닥쳐, 이런 거라도 말해야 이유라도 대지. 그나마 몇 없는 장점인데.”

몇 없는 장점이라니…….

“후, 딱 거기까지지.”

그걸 들은 오윤지는 무언가 비아냥거리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치, 우진이가 회장 막내아들인 거. 딱 거기까지 아는 수준이겠지.”

“뭐……?”

이건 좀 긁혔는지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오윤지한테 성큼 다가가는 유아린.

둘은 진짜 주먹다짐할 수도 있는지라 다급하게 말리려 드는데.

우웅! 우웅! 우웅!

걸려 온 전화에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슬쩍 확인했고.

  • 주대장 -

이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주희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