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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이십여 년 전, 서대륙 최초의 국제 학회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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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회와 고고학회는 물론이고, 연단술이나 연기술, 심지어 요수학회마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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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인형술 관련 학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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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학회가 등장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에는 오죽문과 금작파, 그리고 서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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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서란의 최연소 결단 의식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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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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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크기는 비승 시 운송량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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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란은 여의주보다 큰 금단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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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상으로는 거대문파 두 곳을 동시에 선계로 옮기는 것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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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부터 호감도 관리를 잘 해 왔던 금작파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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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파 간 혼인을 통해서 오죽문과 피를 섞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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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합병이라는 목표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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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오죽문과 금작파의 공동 수뇌부는 문파비승에 위협이 될 만한 최악의 요소를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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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대요괴 같은 말랑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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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가장 큰 적은 같은 수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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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작파는 뛰어난 외교력을 십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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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문, 금작파, 해선문, 약목파를 중심으로 십여 곳의 중립 수도문파가 힘을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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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해안 동맹이 창설된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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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겸사겸사 국제 학회도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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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천문학회에 인면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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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의 연락 담당자는 수신인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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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물이 아닌 학회 자체에 보낸 소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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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는 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서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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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결계 안팎으로 존재하는 인력과 척력, 두 힘이 평형을 이루는 지점에 긴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이 계획서의 주요 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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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 도움을 줄 천문학자들을 초빙하기 위해 국제 천문학회에 소포를 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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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들은 제각기 의견을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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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결계에 거대 구조물을 설치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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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러 그런 짓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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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유가 적혀 있어. 어디 보자... 천공 결계의 간섭을 배제한 정밀한 천체 관측, 광범위한 전심망 설치로 인한 통신 혁신, 초정밀 기상 예보 등의 수많은 기능을 탑재할 예정. 그렇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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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지나치게 거창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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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단계인데 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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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생각보다 꽤 본격적인데? 이미 수차례나 탐사용 발사체를 날려서 관측 자료를 수집했대. 자료를 분석하다가 천문학에 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해져서 우리를 초빙한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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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참가해 볼 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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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들은 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에 대해서 점차 호의적으로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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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단계에서 장대한 포부만을 내세우는 것과 진행 과정에서 난관을 만나 도움을 요청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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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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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자라면, 만약 실패하더라도 학자로서 값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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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떤 천문학자가 비판적인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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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결계에 우주 구조물을 설치하겠다니,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공상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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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정도면 가능성 있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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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공 결계 연구만 백 년을 해서 아는데, 파도처럼 출렁이는 경계면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해. 계면의 불규칙적인 변화는 특정 위치에 작용하는 힘의 방향과 크기가 매 순간 요동친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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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다면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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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새로운 평형점을 찾기 위한 고도의 연산 과정이 실시간으로 반복되어야 한다는 뜻이지. 계산이 조금만 지체되면 우주 구조물은 결계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지상으로 내리꽂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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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계획서를 보던 천문학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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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연산 소요를 해결할 방법도 마련해 놓은 모양이야. 법뇌와 해석기관이라는 최첨단 기계 장치를 탑재한다는데? 인형술에 기반한 인공지능과 압도적인 성능의 계산기라면 천공 결계의 불규칙적인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을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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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이 어느 정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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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으니까 한 번 읽어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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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천문학자는 법뇌와 해석기관의 성능표를 유심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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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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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가능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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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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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나는 학자야. 자신의 부족함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발전할 수도 없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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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천문학자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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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너도 참가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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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속단하기에는 이르지. 이 건설 계획서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아직도 두 개나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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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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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천문학자는 열변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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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문제는 소재야. 이 구상대로 우주 구조물이 천공 결계를 관통한다면 막대한 인력과 척력이 건축물의 상하부를 잡아당길 거야. 그런 장력을 장기간 버틸 수 있을 만한 소재는 극히 드물 뿐더러 제작 난이도 자체도 높아. 건설에 필요한 만큼 수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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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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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력 소모 문제도 있겠네. 변경된 평형점을 계산해 냈다고 해도 그 위치까지 구조물이 이동하는 건 별개의 문제야. 지속적인 법력 소모를 감당할 수는 없을 거야. 제아무리 효율적인 추진 기관을 설치한다고 해도 한계가 뚜렷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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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계획서를 읽던 천문학자가 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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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지저 세계의 광부와 금작파 연기술사를 고용해서 해결할 예정이래. 돈이 많은가 봐. 아, 지속적인 법력 소모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있다. 진법 설계를 응용한 지상 시설을 통해서 원격으로 충전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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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좀 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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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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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천문학자는 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서를 꼼꼼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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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참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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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학자의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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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천문학회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 학회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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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국제 천문학회에만 소포를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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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으면 스팸 메일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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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떡밥을 본 잉어 떼처럼 오죽문 본산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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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 동아리 회원들은 제각기 흩어져서 학자들과 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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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용안의 권능으로 천체 관측에 조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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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장선화는 천문학자들의 자문을 받으며 법뇌 2호와 해석기관 2호 설계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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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과 이아금은 바빠서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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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연기술사들의 보조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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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작파 소속 이외에도 십여 개의 중립 수도문파 출신의 법기 전문가들의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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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대부분은 금영영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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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부서에 합류한 금영영은 쭈뼛거리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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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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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점차 집단에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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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의견 개진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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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식으로 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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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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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3형 접합 방식이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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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문파 소속의 연기술사가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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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확실히 그 방법이 훨씬 괜찮아 보이네요. 고마워요, 금 수사.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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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닌데요, 뭘... 그리고 저는 연기술 지식이 부족하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도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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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요. 지식은 쌓을 수 있지만 유연한 발상이라는 건 쉽게 얻을 수 없거든요. 금 수사는 분명 훌륭한 법기 전문가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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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적당히 둘러대며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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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름 모를 연기술사가 해 줬던 짧은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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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인정이었지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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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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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구조물 발사 준비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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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표면을 자랑하는 거대한 대나무 줄기가 발사장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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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튼튼한 비부식성 신소재로 제작된 서대륙 1호 인공위성, 금죽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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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큰 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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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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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도 다 함께 숫자를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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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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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기다리던 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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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금죽화,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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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섬광과 함께 황금색 대나무가 발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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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고도를 높인 인공위성 금죽화는 예정된 지점에서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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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발사체 상단이 천공 결계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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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반전된 힘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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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장력이 금죽화를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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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소재는 거뜬히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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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죽화에 내장된 관측 기관들이 일제히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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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처럼 밀려들어 오는 관측 자료를 네오 법뇌와 네오 해석기관이 순식간에 분석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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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단계에서부터 천공 결계 분석용으로 제작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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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연산 과정이 끝나고, 인력과 척력이 평형을 이루는 위치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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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죽화의 동체 마디마디에 달린 무수한 추진기가 저마다의 방향과 세기로 가동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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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한 수직 이동과 수평 이동을 반복한 끝에 금죽화의 무게 중심이 평형점과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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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금죽화의 양쪽 끝마디가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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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원통 내부에서 거대한 나팔꽃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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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꽃잎 하나하나가 법력 송수신기 겸 고배율 관측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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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개화한 금죽화는 천공 결계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에도 문제없이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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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점이 변경될 때마다 즉시 추진기가 작동하며 무게 중심을 이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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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해상에 떠 있는 부표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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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반이 큰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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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죽화가 무사히 천공 결계에 고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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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란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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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구조물은 천공 결계에 닻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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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기능 점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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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소매에서 뭔가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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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령, 혹은 벽돌 비슷하게 생긴 물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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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휴대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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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상대의 전화번호와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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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신호음이 끝나고 전화가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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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건너편에서 담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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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 들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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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잘 들립니다. 담청 님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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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 들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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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계 최초의 전화 통화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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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환호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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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 동아리 회원들도 서로서로 얼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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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서란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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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다가 이렇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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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수선 동아리를 창설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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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이의 심마를 극복하는 게 목적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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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슬쩍 금영영의 표정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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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층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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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금영영이 행복하다면 서란도 OK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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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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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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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열 살에 일영근자로 판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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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금씨 가문 적통 중에서 일영근자가 등장한 대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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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만인의 관심이 금영영에게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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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마냥 달갑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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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과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입꼬리와 눈꼬리는 어김없이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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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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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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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금영영은 돌연 공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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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작파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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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사랑은 인간 금영영이 아니라 일영근자 금영영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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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근자 금영영이라는 광채는 너무나 밝은 나머지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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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인간 금영영을 바라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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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녀의 부모조차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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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이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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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친선 대회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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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금영영은 서란이라는 소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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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처음 본 소녀에게 말을 걸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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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거절에 대한 불안과 미숙함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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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봐 달라는 절박한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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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서란과 금영영은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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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그때부터 서란의 곁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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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자란 금작파보다 낯선 오죽문에서의 삶이 편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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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그만 둔 이유는 스스로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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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이 어쩌고 했지만 본심은 아니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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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동을 해도 칭찬 받았기에 느낀 허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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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근자가 아니라도 사랑해 줄지에 관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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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그저 타고난 성품이 그랬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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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제 와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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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부적 공방에서 12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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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심마에 걸리기는 했지만, 고된 노동 환경이 그 이유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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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문파의 일영근자가 아닌 인간 금영영의 발가벗겨진 자아를 목격한 게 심마의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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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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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의 내면에는 두 가지 자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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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일영근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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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전혀 성장하지 못한 열 살의 울보 여자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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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에 빠진 금영영은 거인으로 하여금 작은 울보를 뭉개 버리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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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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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절박한 사람은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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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울보를 구한 건 서란과 담청의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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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덕분에 금영영의 심마는 점차 호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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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제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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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식탁을 쪼갠 이유, 난데없이 수선 동아리를 만든 이유, 항상 자신의 곁을 맴돌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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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한 친구들의 마음씀씀이, 오롯이 인간 금영영으로서 받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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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들이 모여 작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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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은 짓누르려던 손바닥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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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의 소녀도 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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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아는 비로소 서로를 마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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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심마를 극복한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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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휴대전화로 서란에게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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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신호음이 끝나고,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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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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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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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 빨리 내 방으로 좀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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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다닥 달려온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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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무슨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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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운 금영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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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좀 꺼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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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황당해 하던 서란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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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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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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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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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금방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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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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