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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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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이십여 년 전, 서대륙 최초의 국제 학회가 탄생했다.

천문학회와 고고학회는 물론이고, 연단술이나 연기술, 심지어 요수학회마저 존재했다.

안타깝게도 인형술 관련 학회는 없었다.

국제 학회가 등장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에는 오죽문과 금작파, 그리고 서란이 있었다.

정확히는 서란의 최연소 결단 의식 덕분이었다.

모든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금단의 크기는 비승 시 운송량을 결정한다.

그리고 서란은 여의주보다 큰 금단을 완성했다.

이론상으로는 거대문파 두 곳을 동시에 선계로 옮기는 것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평소부터 호감도 관리를 잘 해 왔던 금작파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문파 간 혼인을 통해서 오죽문과 피를 섞었다.

그리고 마침내 합병이라는 목표에 도달했다.

이후, 오죽문과 금작파의 공동 수뇌부는 문파비승에 위협이 될 만한 최악의 요소를 배제했다.

그건 대요괴 같은 말랑한 게 아니었다.

수도자의 가장 큰 적은 같은 수도자였다.

금작파는 뛰어난 외교력을 십분 발휘했다.

오죽문, 금작파, 해선문, 약목파를 중심으로 십여 곳의 중립 수도문파가 힘을 합쳤다.

동부 해안 동맹이 창설된 배경이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국제 학회도 설립됐다.


국제 천문학회에 인면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학회의 연락 담당자는 수신인을 확인했다.

특정 인물이 아닌 학회 자체에 보낸 소포였다.

안에는 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서가 들어 있었다.

천공 결계 안팎으로 존재하는 인력과 척력, 두 힘이 평형을 이루는 지점에 긴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이 계획서의 주요 골자였다.

이 과정에 도움을 줄 천문학자들을 초빙하기 위해 국제 천문학회에 소포를 보낸 것이었다.

천문학자들은 제각기 의견을 주고 받았다.

“천공 결계에 거대 구조물을 설치하겠다고?”

“뭐 하러 그런 짓을 하지?”

“여기 이유가 적혀 있어. 어디 보자... 천공 결계의 간섭을 배제한 정밀한 천체 관측, 광범위한 전심망 설치로 인한 통신 혁신, 초정밀 기상 예보 등의 수많은 기능을 탑재할 예정. 그렇다네?”

“목표가 지나치게 거창한 거 아냐?”

“구상 단계인데 뭐 어때?”

“어, 생각보다 꽤 본격적인데? 이미 수차례나 탐사용 발사체를 날려서 관측 자료를 수집했대. 자료를 분석하다가 천문학에 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해져서 우리를 초빙한 모양이야.”

“그 정도면 참가해 볼 만하지 않나?”

천문학자들은 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에 대해서 점차 호의적으로 변해 갔다.

구상 단계에서 장대한 포부만을 내세우는 것과 진행 과정에서 난관을 만나 도움을 요청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전자는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후자라면, 만약 실패하더라도 학자로서 값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 어떤 천문학자가 비판적인 의견을 냈다.

“천공 결계에 우주 구조물을 설치하겠다니,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공상일 뿐이야.”

“그래? 이 정도면 가능성 있는 거 아냐?”

“내가 천공 결계 연구만 백 년을 해서 아는데, 파도처럼 출렁이는 경계면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해. 계면의 불규칙적인 변화는 특정 위치에 작용하는 힘의 방향과 크기가 매 순간 요동친다는 뜻이야.”

“아, 그렇다면 혹시...?”

“맞아, 새로운 평형점을 찾기 위한 고도의 연산 과정이 실시간으로 반복되어야 한다는 뜻이지. 계산이 조금만 지체되면 우주 구조물은 결계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지상으로 내리꽂힐 거야.”

건설 계획서를 보던 천문학자가 말했다.

“막대한 연산 소요를 해결할 방법도 마련해 놓은 모양이야. 법뇌와 해석기관이라는 최첨단 기계 장치를 탑재한다는데? 인형술에 기반한 인공지능과 압도적인 성능의 계산기라면 천공 결계의 불규칙적인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을 거래.”

“성능이 어느 정도인데?”

“여기 있으니까 한 번 읽어 볼래?”

비판적인 천문학자는 법뇌와 해석기관의 성능표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철회했다.

“확실히 가능할 것 같아.”

“네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당연하지, 나는 학자야. 자신의 부족함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발전할 수도 없는 법이지.”

다른 천문학자가 물었다.

“그러면 너도 참가할 거야?”

“아니, 속단하기에는 이르지. 이 건설 계획서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아직도 두 개나 남았어.”

“오...”

비판적인 천문학자는 열변을 토했다.

“첫 번째 문제는 소재야. 이 구상대로 우주 구조물이 천공 결계를 관통한다면 막대한 인력과 척력이 건축물의 상하부를 잡아당길 거야. 그런 장력을 장기간 버틸 수 있을 만한 소재는 극히 드물 뿐더러 제작 난이도 자체도 높아. 건설에 필요한 만큼 수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또?”

“법력 소모 문제도 있겠네. 변경된 평형점을 계산해 냈다고 해도 그 위치까지 구조물이 이동하는 건 별개의 문제야. 지속적인 법력 소모를 감당할 수는 없을 거야. 제아무리 효율적인 추진 기관을 설치한다고 해도 한계가 뚜렷해.”

건설 계획서를 읽던 천문학자가 또 말했다.

“소재는 지저 세계의 광부와 금작파 연기술사를 고용해서 해결할 예정이래. 돈이 많은가 봐. 아, 지속적인 법력 소모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있다. 진법 설계를 응용한 지상 시설을 통해서 원격으로 충전한다네.”

“나도 좀 봐도 될까?”

“그럼, 여기 있어.”

비판적인 천문학자는 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서를 꼼꼼하게 읽었다.

그리고 참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진정한 학자의 자세였다.

국제 천문학회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 학회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서란은 국제 천문학회에만 소포를 보내지 않았다.

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으면 스팸 메일을 뿌렸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떡밥을 본 잉어 떼처럼 오죽문 본산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수선 동아리 회원들은 제각기 흩어져서 학자들과 협업했다.

담청은 용안의 권능으로 천체 관측에 조력했다.

서란과 장선화는 천문학자들의 자문을 받으며 법뇌 2호와 해석기관 2호 설계에 매진했다.

호혜문과 이아금은 바빠서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금영영은 연기술사들의 보조로 활동했다.

금작파 소속 이외에도 십여 개의 중립 수도문파 출신의 법기 전문가들의 모임이었다.

당연히 대부분은 금영영을 몰랐다.

처음 부서에 합류한 금영영은 쭈뼛거리기 바빴다.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점차 집단에 녹아들었다.

나중에는 의견 개진도 했다.

“다른 방식으로 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요?”

“뭐, 3형 접합 방식이라거나...”

중립 문파 소속의 연기술사가 감탄했다.

“오, 확실히 그 방법이 훨씬 괜찮아 보이네요. 고마워요, 금 수사.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별거 아닌데요, 뭘... 그리고 저는 연기술 지식이 부족하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도와야죠.”

“그렇지 않아요. 지식은 쌓을 수 있지만 유연한 발상이라는 건 쉽게 얻을 수 없거든요. 금 수사는 분명 훌륭한 법기 전문가가 될 거예요.”

금영영은 적당히 둘러대며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름 모를 연기술사가 해 줬던 짧은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소한 인정이었지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주 구조물 발사 준비가 끝났다.

황금색 표면을 자랑하는 거대한 대나무 줄기가 발사장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었다.

가볍고 튼튼한 비부식성 신소재로 제작된 서대륙 1호 인공위성, 금죽화였다.

서란이 큰 소리로 외쳤다.

“10, 9, 8, 7...!”

학자들도 다 함께 숫자를 셌다.

“6, 5, 4, 3...!”

이내 기다리던 순간이 됐다.

“2, 1! 금죽화, 발사!”

눈부신 섬광과 함께 황금색 대나무가 발사됐다.

빠르게 고도를 높인 인공위성 금죽화는 예정된 지점에서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발사체 상단이 천공 결계를 통과했다.

한순간에 반전된 힘의 방향.

막대한 장력이 금죽화를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하지만 신소재는 거뜬히 견뎌냈다.

금죽화에 내장된 관측 기관들이 일제히 작동했다.

해일처럼 밀려들어 오는 관측 자료를 네오 법뇌와 네오 해석기관이 순식간에 분석해 냈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천공 결계 분석용으로 제작된 덕분이었다.

짧은 연산 과정이 끝나고, 인력과 척력이 평형을 이루는 위치가 발견됐다.

금죽화의 동체 마디마디에 달린 무수한 추진기가 저마다의 방향과 세기로 가동됐다.

정밀한 수직 이동과 수평 이동을 반복한 끝에 금죽화의 무게 중심이 평형점과 일치했다.

잠시 후, 금죽화의 양쪽 끝마디가 갈라졌다.

갈라진 원통 내부에서 거대한 나팔꽃이 피어났다.

황금색 꽃잎 하나하나가 법력 송수신기 겸 고배율 관측기 역할을 했다.

완전히 개화한 금죽화는 천공 결계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에도 문제없이 대응했다.

평형점이 변경될 때마다 즉시 추진기가 작동하며 무게 중심을 이동시켰다.

마치 해상에 떠 있는 부표처럼 느껴졌다.

관측반이 큰소리로 외쳤다.

“금죽화가 무사히 천공 결계에 고정됐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란을 향했다.

우주 구조물은 천공 결계에 닻을 내렸다.

남은 건 기능 점검뿐이었다.

서란은 소매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령, 혹은 벽돌 비슷하게 생긴 물체였다.

바로 휴대전화였다.

서란은 상대의 전화번호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짧은 신호음이 끝나고 전화가 연결됐다.

휴대전화 건너편에서 담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란, 들리느냐?”

“저는 잘 들립니다. 담청 님은 어떠세요?”

“나도 잘 들리는구나.”

인계 최초의 전화 통화가 끝났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환호성이 울렸다.

수선 동아리 회원들도 서로서로 얼싸안았다.

그러다 서란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뭘 하다가 이렇게 됐지?

난데없이 수선 동아리를 창설한 이유는?

영영이의 심마를 극복하는 게 목적 아니었나?

서란은 슬쩍 금영영의 표정을 살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층 밝아 보였다.

아무튼, 금영영이 행복하다면 서란도 OK였다.

여름이었다.


금영영은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열 살에 일영근자로 판명됐다.

정말 오랜만에 금씨 가문 적통 중에서 일영근자가 등장한 대사건이었다.

자연스레 만인의 관심이 금영영에게 집중됐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마냥 달갑기만 했다.

금영영과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입꼬리와 눈꼬리는 어김없이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열다섯의 금영영은 돌연 공허함을 느꼈다.

금작파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인간 금영영이 아니라 일영근자 금영영을 향해 있었다.

일영근자 금영영이라는 광채는 너무나 밝은 나머지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 누구도 인간 금영영을 바라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부모조차 마찬가지였다.

금영영이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친선 대회에 참가했다.

거기서 금영영은 서란이라는 소녀를 만났다.

어째서 처음 본 소녀에게 말을 걸었던가.

그것도 거절에 대한 불안과 미숙함을 안고서.

자신을 봐 달라는 절박한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서란과 금영영은 친구가 됐다.

금영영은 그때부터 서란의 곁에 머물렀다.

태어나고 자란 금작파보다 낯선 오죽문에서의 삶이 편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수행을 그만 둔 이유는 스스로도 모른다.

효율성이 어쩌고 했지만 본심은 아니었을 터였다.

어떤 행동을 해도 칭찬 받았기에 느낀 허무함?

일영근자가 아니라도 사랑해 줄지에 관한 실험?

혹은 그저 타고난 성품이 그랬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제 와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금영영은 부적 공방에서 12년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심마에 걸리기는 했지만, 고된 노동 환경이 그 이유는 아니었다.

거대문파의 일영근자가 아닌 인간 금영영의 발가벗겨진 자아를 목격한 게 심마의 원인이었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금영영의 내면에는 두 가지 자아가 있었다.

하나는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일영근 거인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전혀 성장하지 못한 열 살의 울보 여자아이였다.

심마에 빠진 금영영은 거인으로 하여금 작은 울보를 뭉개 버리도록 했다.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원래 절박한 사람은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었다.

열 살 울보를 구한 건 서란과 담청의 노력이었다.

두 사람 덕분에 금영영의 심마는 점차 호전됐다.

그리고 그제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멀쩡한 식탁을 쪼갠 이유, 난데없이 수선 동아리를 만든 이유, 항상 자신의 곁을 맴돌던 이유.

자신을 위한 친구들의 마음씀씀이, 오롯이 인간 금영영으로서 받은 인정.

많은 것들이 모여 작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거인은 짓누르려던 손바닥을 거뒀다.

열 살의 소녀도 울음을 멈췄다.

두 자아는 비로소 서로를 마주 봤다.

오랜 심마를 극복한 순간이기도 했다.

금영영은 휴대전화로 서란에게 연락했다.

짧은 신호음이 끝나고, 서란이 물었다.

“영영, 왜 그래?”

금영영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란, 빨리 내 방으로 좀 와봐!”

호다닥 달려온 서란이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침대에 누운 금영영이 말했다.

“불 좀 꺼줭.”

잠시 황당해 하던 서란은 피식 웃었다.

“소등하겠습니다.”

“서란, 잘 자.”

“응, 너도.”

금영영은 금방 잠들었다.

악몽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