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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사실 고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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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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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으로 목선과를 얻을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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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문파가 그렇게까지 큰 잘못을 저질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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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전에 쓴 보고서를 다시 읽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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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노한 채 휘갈겨 쓴 비판 항목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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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 탓에 대부분 휘발되었던 분노 게이지가 다시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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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 보니, 뱅크런 이후의 구제 금융 코스 정도면 충분히 자비로운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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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사다리 차기와 고혈 빨기에 시달리는 동대륙 산수들을 위해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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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도둑이 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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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범선 타륜에 머리를 박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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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경마로 전 재산을 날렸다... 경마로 전 재산을 날렸다... 전 재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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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것은 파산 직전의 도박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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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모든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발밑이 무너져 내린 듯 아득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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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서란은 완벽하게 배역에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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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핼쑥한 얼굴로 범선에서 뛰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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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은행 앞에 비행 법기를 정박시키시면 곤란합니다. 범선은 지정된 장소에...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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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 좀 옮겨 주십사 요구하려던 은행 직원은 서란의 핏기 없는 얼굴에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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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직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허둥지둥 은행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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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 최고의 유명 인사 류서란이 보인 이상 행동에 주변 산수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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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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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강좌 수강료를 납입하는 시기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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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평소보다 은행 방문객이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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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가장 짧은 줄 뒤에 가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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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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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동공, 수시로 주변을 살피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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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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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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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신경 쇠약 증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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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 바로 앞에 있던 산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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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급한 일이 있으신 모양인데 제 앞으로 가시지요.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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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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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비켜준 자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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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사람한테 바짝 붙어 박치기라도 할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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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들은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차례차례 자기 순서를 서란에게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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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서란은 창구 직원과 대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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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떤 용무로 본점을 방문해 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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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직원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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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타당한 상식과 사고 능력을 두루 갖춘 창구 직원은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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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분명히 대형 사건의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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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직원은 하필 자기가 일하는 시간에 이런 일을 터트린 하늘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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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떠듬떠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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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 내 영석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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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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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직원은 지금 당장 도망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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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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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애써 밝은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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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인출을 희망하시는군요? 이 문서에 인출하시려는 영석 개수를 적어서 예금자 증명용 옥패와 함께 제출해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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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문서 따위는 쳐다 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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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 전부 인출... 어, 어서 돌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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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직원은 간절한 심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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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예금을 말씀하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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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당최 틀리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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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제 적금이요! 빨리 전량 인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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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금, 전량 인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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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다급한 외침이 은행 내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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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한 발음 덕분에 모두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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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방문객들은 일제히 웅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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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직원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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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수사님, 아니 아니... 고객님께서 가입하신 초장기 적금 상품은 중도 해지 시 남은 약정 기간에 따라 추가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괜찮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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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해지 수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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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십대문파의 안전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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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인 중도 해지 수수료를 남은 약정 기간에 따라서 비례적으로 감소시키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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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반 년만에 적금을 해지하는 경우, 서란이 부담해야 할 수수료는 예금 총액의 3할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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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흔쾌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기에, 십대문파는 마지막 남은 의심마저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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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문파는 지극히 합리적인 논의 끝에 서란의 영석으로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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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믿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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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변심 때문에 적금을 깨고 전 재산의 삼분의 일을 땅바닥에 버리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게 십대문파 수뇌부의 종합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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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식인은 상성상 광인을 이길 수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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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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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문파는 서란 덕분에 값진 교훈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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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수업료를 지불할 일만 남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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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외침이 뱅크런 작전의 대미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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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 수수료 3할 2푼 당장 낼게요! 그러니까 제 영석 전부 돌려 주세요! 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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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직원은 머리가 하얗게 세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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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끝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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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뭐가 어떻게 끝난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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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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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석 인출에 은행 직원이 총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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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할이 넘는 해지 수수료를 지불한 상태에서도 서란의 영석은 천문학적인 수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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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너무 많아서 불가피하게 개수가 아닌 부피로 측정해야만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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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사태에 산수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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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을 가득 실은 수레가 은행 앞에 정박한 서란의 범선으로 줄지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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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레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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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산더미 같은 영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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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방문객은 다들 비슷한 의문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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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 수수료가 3할이 넘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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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서란과 십대문파, 요즘 사이 좋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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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정말 수상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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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다분히 의심스럽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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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서란이 보인 행동에도 헛점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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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숙고하면 의도를 눈치채는 건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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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 산수들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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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히려 서란의 계획은 대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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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은 산수들은 남들보다 먼저 영석을 인출하기 위해 창구로 앞다퉈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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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뭔가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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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쓸데없는 고민 따위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야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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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이들은 일단 줄부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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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문파에 중대한 변고가 생겼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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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류서란이 개수작을 부린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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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수들 입장에서는 알 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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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서둘러서 영석만 인출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손해를 볼 가능성은 전무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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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내부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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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을 싣고 밖으로 나가는 수레 행렬, 창구로 몰리는 인파, 소란을 듣고 추가로 모여든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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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달의 주범인 서란은 만선의 범선을 이끌고 유유히 대수림 방향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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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던 회수팀에게 영석으로 가득 찬 범선을 인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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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화물칸이 텅 빈 다른 범선으로 갈아타고 다음 은행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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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동대륙의 모든 은행이 업무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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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직전의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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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는 예금자들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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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십대문파의 수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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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 전역이 불타오르기 직전, 십대문파의 수뇌부는 제각기 편지 한 통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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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보낸 구제 금융 제안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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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보물 목록도 별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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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처한 문파를 살리고 싶다면 목록에 적힌 보물을 내놓으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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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문파는 끝내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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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룡문 결단기 수사 유진광은 이런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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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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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십대문파가 산수 한 명에게 굴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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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문파 본산에서 이런 굴욕을 당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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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눈동자의 올빼미 인형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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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준비된 천년오행목의 숫자가 제 요구보다 부족한 겁니까?! 단순 착오라고요?! 미치셨습니까?! 설마 그런 얕은 수작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문파 살릴 마음이 없으신 모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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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거만하던 수뇌부 인사 하나가 비굴한 낯빛으로 올빼미 인형에게 굽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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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수사님, 그런 게 아니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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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빨리 빼돌린 보물이나 가져 오세요! 제가 예전에 똑똑히 기록해 놨습니다! 쌍룡문 창고에 천년오행목이 몇 개나 있는지! 어차피 뒤져보면 다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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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을 찬 올빼미가 신호를 보내자 다른 올빼미들이 우르르 보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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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벽과 바닥, 천장을 거칠게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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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 보물이 우수수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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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하나라도 덜 빼앗겨 보겠다고 어떻게든 발악한 흔적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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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징수는 그야말로 무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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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넘게 동대륙을 수탈하며 쌓아올린 쌍룡문의 부가 실시간으로 눈 녹듯 사라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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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강제 다이어트 과정을 마치자, 창고 안에 남은 보물은 평소의 절반이 채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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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초장거리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올빼미들은 가져온 대형 범선의 화물칸을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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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쌍룡문 은행에서 인출한 산더미 같은 영석이 고스란히 땅바닥에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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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군단은 텅 빈 화물칸에 쌍룡문 창고에서 턴 보물더미를 차곡차곡 싣고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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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속에서도 유진광은 여전히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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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문파는 어째서 한 사람에게 굴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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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겁을 집어 먹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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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을 포기하고, 위험을 피하며 계속 도망친 끝에 이런 막다른 길까지 몰렸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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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싸울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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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나 대수림 장악력을 내줄 용기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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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손실만을 피하다 보니 이 지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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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승을 꿈꾸는 이가 순진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 건 도대체 언제부터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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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부턴가 십대문파는 도전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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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현 상황에만 안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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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류서란에게는 야성이, 각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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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십대문파가 진 것도 당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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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이 맹수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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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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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모든 강의를 이런 문구로 시작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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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은 곧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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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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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광은 다시 한 번 심사숙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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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문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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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간 영기 편중이 해소된 요즘, 마음이 맞는 산수들끼리 문파를 창설하는 일도 잦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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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에서 살았을 때부터 느꼈지만, 부귀영화보다는 수행이 더 성미에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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