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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작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뱅크런이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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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런(Bank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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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은행과 관련이 많아 보이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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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유래부터가 예금자들이 은행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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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요괴 삼안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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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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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을 맡아주는 기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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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귀한 걸 왜 남한테 맡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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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 너는 토끼굴 안에 건과일이 잔뜩 쌓여 있으면 불안해서 외출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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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로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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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삼안묘, 나한테 건과일을 전부 맡겨. 내가 안전하게 지켜줄게. 대신에 보관료로 매달 건과일 한 개씩만 줘. 어때, 맡기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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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확실히 제 토끼굴보다는 류 수사님 호주머니가 훨씬 안전하겠군요. 도둑이 들어서 전부 훔쳐가는 것보다는 보관료를 지불하는 게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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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설명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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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좀 달라. 나한테 건과일을 맡기면, 그 대가로 매달 건과일 하나를 너한테 줄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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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수사님이 보관료를 받는 게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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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내가 기발한 사업을 하나 하려고 그래. 배가 너무 고픈 토끼들한테 건과일 하나를 빌려주는 거야. 대신 다음 달에 건과일 두 개를 받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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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고민하던 삼안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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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매달 대가를 주는 건 밑천을 제공했기 때문인가요? 그러니까, 건과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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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이해했어. 너는 나한테 건과일을 빌려주고, 나는 다른 토끼들한테 건과일을 빌려주는 거야. 정말 확실한 사업 아냐? 누가 감히 나한테서 건과일을 떼어먹고 도망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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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당장 건과일을 맡기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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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은행이 돈을 버는 방식이야. 사람들이 예금한 돈을 대출해 주고 이자를 받는 거지. 물론 더 큰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금자들에게도 이자를 좀 나눠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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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인간들은 참 기발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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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는 반쯤 먹은 건과일 그릇을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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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은행에 뭘 좀 맡겨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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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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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류 수사님. 이해가 안되는 게 좀 있는데요. 은행이 저한테 사기를 치면 어쩌죠?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내는 것보다 그냥 제 돈을 가지고 도망치는 게 더 쉽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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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신용의 중요성이지. 은행은 신용이 없으면 반드시 망하거든. 사람들이 은행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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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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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설명하면 한도 끝도 없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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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한 줄로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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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신용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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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잃은 은행이 망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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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 산수 백 명이 영석을 각각 백 개씩 은행에 예치했다고 가정하면 영석의 총량은 일만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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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행은 결코 영석 일만 개를 고스란히 금고 안에 보관해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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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해야 오천 개에서 삼천 개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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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업은 자선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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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치된 영석의 상당량은 대출 명목으로 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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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발생한 대출 이자, 즉 수익에서 예금 이자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가 은행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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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예금자들이 영석을 찾아갈 걸 대비해서 금고에 남겨 놓는 비율을 지급준비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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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영석의 5할을 남겨 놓을 수도 있고, 3할 혹은 1할만을 남겨 놓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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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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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행이 신용을 잃으면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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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든 예금자가 한꺼번에 은행으로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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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맡겨둔 영석을 전부 인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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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내줘야 하는 영석 총량은 일만 개, 하지만 금고 안에는 당장 오천 개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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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은행은 파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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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원 한 명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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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품귀 현상 같군요. 돌림병이 만연한 상황에서 어떤 약초가 특효약이라는 낭설이 퍼지면 난리가 나지 않습니까. 종종 살인도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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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조사단원도 찬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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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비슷한 면이 있네요. 평소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는데 너도나도 찾으니 재고가 순식간에 소진되곤 하죠. 다들 공포로 제정신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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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중패도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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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겠군요. 예금 대량 인출 사태라고 했나요? 성공만 하면 십대문파의 재정 상태를 한순간에 악화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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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회의를 경청하던 삼안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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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십대문파가 꼬리를 자르면 어쩌죠? 영석 안 돌려주고 은행업 접어 버리면 그만이잖아요. 힘없는 산수들이 뭘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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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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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문파는 절대로 그럴 수 없어. 걔네들이 은행업을 정착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 동안 못해도 수십 번을 말아먹었을 걸? 애초에 십대문파가 동대륙을 장악할 수 있는 것도 은행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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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간 동대륙을 정탐한 조사단도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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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 은행, 대수림 탐험대 계약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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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문파는 자신들이 구축한 복잡한 체계를 통해서 동대륙 수행 자원을 독과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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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소리겠지만 정교한 기계는 톱니바퀴 하나만 빠져도 바로 고장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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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파산이란, 곧 지배력의 상실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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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란도 진짜로 파산시킬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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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보기 싫은 십대문파는 확실히 죽겠지만, 죄 없는 산수들 인생까지 송두리째 박살나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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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근 하나 얻자고 동대륙 전체를 불지옥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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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십대문파를 파산 직전까지 몰아붙인 다음에 구제 금융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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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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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십대문파의 창고를 탈탈 털어서 선과와 기타 등등을 가지고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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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서란이 떠올린 완벽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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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중패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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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예금자들에게 은행에 대한 불신을 심어줄 생각이십니까? 악의적인 선동? 아니면 은행 강도? 저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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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생각해 뒀죠.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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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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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옥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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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쌍룡문 은행의 예금자 증명용 옥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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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패를 알아본 금중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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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예금을 인출하시려고요? 얼마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기별이나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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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 혼자 예금을 인출한다고 사람들이 은행을 불신하지는 않죠. 하지만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진 큰손이 천문학적인 영석을 인출하면 어떨까요? 저는 항상 계획이 있다,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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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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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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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계는 충분한 인지도와 영향력, 영석을 모으는 것! 다행히도 대수림에는 세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장소가 한군데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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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중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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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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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사납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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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혹시가 맞습니다! 배움의 거리에서 인지도와 영향력, 영석은 한 몸이나 다름 없는 법! 즉, 일단 유명해지면 장땡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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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강사 신성금단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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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본곡은 올여름도 매미 소리로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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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땅에서 나와 온종일 맴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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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거리에도 비슷한 생물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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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축기기 수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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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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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면 폐관수련 오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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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심층부 밖으로 나올 시기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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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에는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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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어, 신성금단님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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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직도 서란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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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따지면 벌써 십 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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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그 시간이면 매미도 두 번은 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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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태본곡에서 5년 정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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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도 강의는 1년 정도만 했고, 나머지 4년은 인형술 공부와 미목 대회 참가로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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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업적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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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수많은 축기기 수사들이 신성금단의 복귀를 기다리며 접수처에서 서성이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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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란은 전송진 타고 귀가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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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대륙 산수들 입장에서는 심층부에서 폐관수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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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언젠가는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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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넘게 우화하지 못한 매미들은 오늘도 쓸쓸히 공지 게시판 앞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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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독하다 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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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폐관수련을 십 년 동안 할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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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소문으로는 어릴 때 스승님을 만난 이후로 계속 대수림에서 살았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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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솔직히 아동학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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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네. 수행을 꼭 심층부에서 해야 돼? 굳이? 요괴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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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 근본주의자들은 꼭 그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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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런 사람이 남아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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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쉬엄쉬엄하지... 누가 쫓아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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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수행만 하면 무슨 재미냐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 제발! 강의도 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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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실 일리는 있어. 그 정도로 안 미치면 산수가 어떻게 240살에 금단에 성공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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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살은 대수림 밖으로 나온 나이잖아. 결단기에 도달한 건 훨씬 이전 아니야? 누구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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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 걸? 개인사 얘기는 거의 안 했다더라. 뭐 같이 어울리던 사람이 있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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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금은 몇 살이지? 아직 260살은 안 넘었겠지? 그런데 이거 진짜 나이는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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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잘 모르지 않을까? 나도 솔직히 서른 넘은 다음부터는 자꾸 헷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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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기억하기 싫은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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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을 나누던 도중, 접수처 직원이 다급하게 뛰어와 공지 게시판에 뭘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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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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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산수 최초로 원영기에 도달한 신성금단, 폐관수련을 마치고 올가을부터 강좌 개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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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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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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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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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기기 수사들은 경악해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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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조각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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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앞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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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화한 매미 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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