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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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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작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뱅크런이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

뱅크런(Bank run).

딱 봐도 은행과 관련이 많아 보이는 단어였다.

애초에 유래부터가 예금자들이 은행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토끼요괴 삼안묘가 물었다.

“은행이 뭐죠?”

“영석을 맡아주는 기관이야.”

“그런 귀한 걸 왜 남한테 맡깁니까?”

“삼안묘 너는 토끼굴 안에 건과일이 잔뜩 쌓여 있으면 불안해서 외출할 수 있겠어?”

“아, 바로 이해했습니다.”

“그치?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삼안묘, 나한테 건과일을 전부 맡겨. 내가 안전하게 지켜줄게. 대신에 보관료로 매달 건과일 한 개씩만 줘. 어때, 맡기고 싶어?”

“오, 확실히 제 토끼굴보다는 류 수사님 호주머니가 훨씬 안전하겠군요. 도둑이 들어서 전부 훔쳐가는 것보다는 보관료를 지불하는 게 낫죠.”

서란이 설명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좀 달라. 나한테 건과일을 맡기면, 그 대가로 매달 건과일 하나를 너한테 줄게. 어때?”

“류 수사님이 보관료를 받는 게 아니라요?”

“맞아, 내가 기발한 사업을 하나 하려고 그래. 배가 너무 고픈 토끼들한테 건과일 하나를 빌려주는 거야. 대신 다음 달에 건과일 두 개를 받는 거지.”

잠깐 고민하던 삼안묘가 물었다.

“저한테 매달 대가를 주는 건 밑천을 제공했기 때문인가요? 그러니까, 건과일이요.”

“제대로 이해했어. 너는 나한테 건과일을 빌려주고, 나는 다른 토끼들한테 건과일을 빌려주는 거야. 정말 확실한 사업 아냐? 누가 감히 나한테서 건과일을 떼어먹고 도망칠 수 있겠어?”

“와, 당장 건과일을 맡기고 싶어지네요!”

“이게 바로 은행이 돈을 버는 방식이야. 사람들이 예금한 돈을 대출해 주고 이자를 받는 거지. 물론 더 큰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금자들에게도 이자를 좀 나눠주고.”

“그렇군요, 인간들은 참 기발하네요.”

삼안묘는 반쯤 먹은 건과일 그릇을 내려다봤다.

자기도 은행에 뭘 좀 맡겨 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저기, 류 수사님. 이해가 안되는 게 좀 있는데요. 은행이 저한테 사기를 치면 어쩌죠?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내는 것보다 그냥 제 돈을 가지고 도망치는 게 더 쉽잖아요.”

“그게 바로 신용의 중요성이지. 은행은 신용이 없으면 반드시 망하거든. 사람들이 은행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이야.”

뱅크런.

복잡하게 설명하면 한도 끝도 없이 어렵다.

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한 줄로도 끝난다.

은행이 신용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신뢰를 잃은 은행이 망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동대륙 산수 백 명이 영석을 각각 백 개씩 은행에 예치했다고 가정하면 영석의 총량은 일만 개다.

하지만 은행은 결코 영석 일만 개를 고스란히 금고 안에 보관해 두지 않는다.

기껏해야 오천 개에서 삼천 개 정도일 것이다.

은행업은 자선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치된 영석의 상당량은 대출 명목으로 빌려준다.

그렇게 발생한 대출 이자, 즉 수익에서 예금 이자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가 은행의 몫이다.

이때, 예금자들이 영석을 찾아갈 걸 대비해서 금고에 남겨 놓는 비율을 지급준비율이라고 한다.

전체 영석의 5할을 남겨 놓을 수도 있고, 3할 혹은 1할만을 남겨 놓을 수도 있다.

당연히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은행이 신용을 잃으면 문제가 된다.

일단, 모든 예금자가 한꺼번에 은행으로 몰려든다.

그리고 맡겨둔 영석을 전부 인출하려고 한다.

은행이 내줘야 하는 영석 총량은 일만 개, 하지만 금고 안에는 당장 오천 개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은행은 파산한다.


조사단원 한 명이 말했다.

“꼭 품귀 현상 같군요. 돌림병이 만연한 상황에서 어떤 약초가 특효약이라는 낭설이 퍼지면 난리가 나지 않습니까. 종종 살인도 나고.”

다른 조사단원도 찬동했다.

“확실히 비슷한 면이 있네요. 평소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는데 너도나도 찾으니 재고가 순식간에 소진되곤 하죠. 다들 공포로 제정신이 아니니까요.”

금중패도 거들었다.

“결국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겠군요. 예금 대량 인출 사태라고 했나요? 성공만 하면 십대문파의 재정 상태를 한순간에 악화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만히 회의를 경청하던 삼안묘가 물었다.

“근데 십대문파가 꼬리를 자르면 어쩌죠? 영석 안 돌려주고 은행업 접어 버리면 그만이잖아요. 힘없는 산수들이 뭘 할 수 있죠?”

서란이 웃으며 말했다.

“십대문파는 절대로 그럴 수 없어. 걔네들이 은행업을 정착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 동안 못해도 수십 번을 말아먹었을 걸? 애초에 십대문파가 동대륙을 장악할 수 있는 것도 은행 덕분이야.”

십 년 간 동대륙을 정탐한 조사단도 동의했다.

경매장, 은행, 대수림 탐험대 계약 등등.

십대문파는 자신들이 구축한 복잡한 체계를 통해서 동대륙 수행 자원을 독과점하고 있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정교한 기계는 톱니바퀴 하나만 빠져도 바로 고장난다.

은행의 파산이란, 곧 지배력의 상실과도 같았다.

물론 서란도 진짜로 파산시킬 생각은 없었다.

꼴 보기 싫은 십대문파는 확실히 죽겠지만, 죄 없는 산수들 인생까지 송두리째 박살나는 게 문제였다.

영근 하나 얻자고 동대륙 전체를 불지옥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란은 십대문파를 파산 직전까지 몰아붙인 다음에 구제 금융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남은 건 십대문파의 창고를 탈탈 털어서 선과와 기타 등등을 가지고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이게 바로 서란이 떠올린 완벽한 계획이었다.

금중패가 물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예금자들에게 은행에 대한 불신을 심어줄 생각이십니까? 악의적인 선동? 아니면 은행 강도? 저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군요.”

“당연히 생각해 뒀죠. 짠!”

서란이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손바닥만 한 옥패였다.

정확히는 쌍룡문 은행의 예금자 증명용 옥패였다.

옥패를 알아본 금중패가 말했다.

“직접 예금을 인출하시려고요? 얼마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기별이나 갈까요?”

“물론 저 혼자 예금을 인출한다고 사람들이 은행을 불신하지는 않죠. 하지만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진 큰손이 천문학적인 영석을 인출하면 어떨까요? 저는 항상 계획이 있다, 이 말입니다.”

“오, 과연!”

조사단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서란이 말했다.

“첫 번째 단계는 충분한 인지도와 영향력, 영석을 모으는 것! 다행히도 대수림에는 세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장소가 한군데 존재합니다!”

금중패가 말했다.

“아니, 혹시!”

서란이 사납게 웃었다.

“그 혹시가 맞습니다! 배움의 거리에서 인지도와 영향력, 영석은 한 몸이나 다름 없는 법! 즉, 일단 유명해지면 장땡인 겁니다!”

일타강사 신성금단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태본곡은 올여름도 매미 소리로 시끄러웠다.

몇 년만에 땅에서 나와 온종일 맴맴 울었다.

배움의 거리에도 비슷한 생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축기기 수사들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십 년이면 폐관수련 오래 했다.”

“슬슬 심층부 밖으로 나올 시기긴 해.”

“이번 가을에는 혹시?”

“나는 믿어, 신성금단님 믿어.”

그들은 아직도 서란을 기다리고 있었다.

햇수로 따지면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참고로 그 시간이면 매미도 두 번은 우화했다.

서란은 태본곡에서 5년 정도 활동했다.

그나마도 강의는 1년 정도만 했고, 나머지 4년은 인형술 공부와 미목 대회 참가로 바빴다.

하지만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업적을 이루었다.

아직도 수많은 축기기 수사들이 신성금단의 복귀를 기다리며 접수처에서 서성이는 이유였다.

물론 서란은 전송진 타고 귀가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동대륙 산수들 입장에서는 심층부에서 폐관수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 없었다.

십 년 넘게 우화하지 못한 매미들은 오늘도 쓸쓸히 공지 게시판 앞을 맴돌았다.

“와, 진짜 독하다 독해.”

“어떻게 폐관수련을 십 년 동안 할 수가 있지?”

“들리는 소문으로는 어릴 때 스승님을 만난 이후로 계속 대수림에서 살았다던데?”

“그거 솔직히 아동학대 아니냐?”

“아니,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네. 수행을 꼭 심층부에서 해야 돼? 굳이? 요괴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수선 근본주의자들은 꼭 그러더라.”

“아직도 그런 사람이 남아 있었구나...”

“좀 쉬엄쉬엄하지... 누가 쫓아오냐고...”

“죽어라 수행만 하면 무슨 재미냐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 제발! 강의도 좀 하고!”

“근데 사실 일리는 있어. 그 정도로 안 미치면 산수가 어떻게 240살에 금단에 성공했겠어?”

“240살은 대수림 밖으로 나온 나이잖아. 결단기에 도달한 건 훨씬 이전 아니야? 누구 아는 사람?”

“아무도 모를 걸? 개인사 얘기는 거의 안 했다더라. 뭐 같이 어울리던 사람이 있었어야지.”

“그러면 지금은 몇 살이지? 아직 260살은 안 넘었겠지? 그런데 이거 진짜 나이는 맞아?”

“본인도 잘 모르지 않을까? 나도 솔직히 서른 넘은 다음부터는 자꾸 헷갈려.”

“그건 기억하기 싫은 거 아냐?”

잡담을 나누던 도중, 접수처 직원이 다급하게 뛰어와 공지 게시판에 뭘 붙였다.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속보! 산수 최초로 원영기에 도달한 신성금단, 폐관수련을 마치고 올가을부터 강좌 개설 예정!”

“뭐라고!”

“원영기!”

“가을!”

축기기 수사들은 경악해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조각난 외침.

게시판 앞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됐다.

마치 우화한 매미 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