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431 lines
13 KiB
Markdown
431 lines
13 KiB
Markdown
|
||
서란이 결단에 실패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
||
|
||
천부적 재능, 용의 가르침, 거대문파 오죽문의 아낌없는 지원, 게다가 시기도 절묘했다.
|
||
|
||
그저 횡액만 만나지 않으면 된다.
|
||
|
||
그래서 오죽문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
||
|
||
오죽문에는 총 네 명의 원영기 수사가 있다.
|
||
|
||
그중에서 절반이 폐관 수련을 잠시 중단했다.
|
||
|
||
자연스레 문파 본산이 취약해지지만 감수했다.
|
||
|
||
결단기 수사도 대부분 합류했다.
|
||
|
||
의사 결정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것도 감수했다.
|
||
|
||
오죽문은 이번 의식에 사활을 걸었다.
|
||
|
||
약소한 수도문파 정도는 며칠 만에 지도상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는 전력이었다.
|
||
|
||
지저 세계에 존재하는 거대한 공동.
|
||
|
||
정교한 진법과 요소요소 박힌 대형 토기영석들 한가운데에 웅장한 단이 자리했다.
|
||
|
||
서란이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
||
|
||
타원형 진법의 양쪽 외곽에는 원영기 수사가 한 명씩 앉아 있었다.
|
||
|
||
결단기 수사 절반은 진법 근처를, 나머지 절반은 공동과 연결된 모든 토굴을 감시하고 있었다.
|
||
|
||
결단 의식이 끝나기 전까지 접근하는 모든 존재를 무차별적으로 제거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었다.
|
||
|
||
어느새 정해진 시간이 됐다.
|
||
|
||
진법이 빛을 내며 영석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
||
|
||
그리고 지저 세계의 모든 영기를 끌어당겼다.
|
||
|
||
영기가 거센 폭풍처럼 몰아치며 세상을 난도질했다.
|
||
|
||
순식간에 밀려든 영기에 공동이 가득 찼다.
|
||
|
||
비정상적으로 모인 영기는 이내 안개처럼 변했다.
|
||
|
||
마치 물속에 잠긴 듯 자욱했다.
|
||
|
||
소용녀의 위치는 진법과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
||
|
||
표면상으로는 서란에게 어떤 이상이 발생했을 때, 적절하게 조력하는 게 그녀가 할 일이었다.
|
||
|
||
하지만 실상은 그저 감사의 의미로 가까운 자리를 배정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
그래서 남들과 달리 긴장할 이유도 없었다.
|
||
|
||
직접 가르친 소용녀의 입장에서 볼 때, 서란에게는 갑작스러운 변수가 발생해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충분했다.
|
||
|
||
봄이 되었을 즘에는 이미 더 가르칠 게 없었다.
|
||
|
||
대요괴가 튀어나와도, 누가 진법을 망가뜨려도, 심지어 지진이 나도 결단은 성공할 것이다.
|
||
|
||
소용녀는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봤다.
|
||
|
||
지저 세계에서는 당연히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
||
|
||
천장이 둥근 반구형 공간은 꼭 어항처럼 보였다.
|
||
|
||
소용녀가 천 년 가까이 지냈던 거처가 떠오른다.
|
||
|
||
사방에 어둠만이 존재하는 적막한 지하.
|
||
|
||
생명이라고는 오로지 벌레뿐인 작은 동굴 호수.
|
||
|
||
긴 수직 통로 너머로 보이는 작은 빛.
|
||
|
||
어째서 그런 곳에서 천 년을 살았을까.
|
||
|
||
잉어는 백 년을 살고 영수가 되었다.
|
||
|
||
잉어 영수는 삼백 년을 살고 용이 되었다.
|
||
|
||
어린 용은 여의주를 만들며 비좁은 동굴에서 육백 년이라는 시간을 더 머물렀다.
|
||
|
||
당시에는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
||
|
||
승천을 갈망하던 용은 맹목적이었다.
|
||
|
||
오로지 여의주를 완성하는 일에 몰두했었다.
|
||
|
||
좁고 어두운 동굴에 웅크리고도 불편하지 않았다.
|
||
|
||
하지만 여의주를 잃어버리고 잡념이 늘었다.
|
||
|
||
언어로 구성되지 않은 의문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
||
|
||
난생처음 겪어보는 지독한 혼란이었다.
|
||
|
||
그때마다 소용녀는 내면의 외침을 외면했었다.
|
||
|
||
하지만 애써 억눌렀던 의구심은 곧 되살아났다.
|
||
|
||
여의주를 뒤쫓다가 서란을 만난 뒤였다.
|
||
|
||
작은 선행을 위해서 용이 될 기회를 포기하겠냐는 소용녀의 물음에 서란은 이렇게 되물었다.
|
||
|
||
‘용녀님은 어째서 수행을 시작하셨나요?’
|
||
|
||
그때 소용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
||
|
||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이후에는 승천을 위해서.
|
||
|
||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같은 대답이었다.
|
||
|
||
승천에 대한 갈망도 결국 용의 본능이다.
|
||
|
||
소용녀는 무엇 하나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
||
|
||
그저 본능에 따라서 짐승처럼 내달렸을 뿐이다.
|
||
|
||
반면, 영생을 마다하냐는 물음에 서란은 답했다.
|
||
|
||
존귀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수행을 시작했다고.
|
||
|
||
서란이 말하는 존귀함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
|
||
|
||
하지만 영생을 마다할 정도로 확고한 무언가다.
|
||
|
||
세상에 죽고 싶어하는 생명은 없다.
|
||
|
||
장생은 모든 생명체가 갈망하는 본능이다.
|
||
|
||
서란은 본능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선택했다.
|
||
|
||
소용녀가 눈을 감고 무작정 내달릴 때, 서란은 눈을 뜨고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
||
|
||
결단 의식은 어느새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
||
|
||
소용돌이치는 정토법력이 서란에게 몰려들었다.
|
||
|
||
맹렬한 흐름 속에서 소용녀는 홀로 고민했다.
|
||
|
||
나는 어째서 승천을 바랐는가.
|
||
|
||
그저 용으로 태어난 숙명이었는가.
|
||
|
||
아니면 스스로도 모르던 바람의 발현이었는가.
|
||
|
||
나는 어째서 고독한 동굴에서 살았나.
|
||
|
||
드넓은 천공을 날아도 여전히 고독했기 때문인가.
|
||
|
||
그래서 차라리 비좁은 동굴을 선택했던 것인가.
|
||
|
||
서란과 함께 하늘을 나는 것은 어째서 즐거웠나.
|
||
|
||
단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에 불과했던가.
|
||
|
||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날았기 때문인가.
|
||
|
||
언제부터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게 되었던가.
|
||
|
||
언제부터 땅을 내려다보며 걷게 되었는가.
|
||
|
||
언제부터 사람의 온기에 익숙해졌는가.
|
||
|
||
소용녀는 오랜 고민에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
||
|
||
어느새 결단 의식이 끝나 버린 탓이었다.
|
||
|
||
마침내 서란은 결단에 성공했다.
|
||
|
||
여의주보다 커다란 금단이었다.
|
||
|
||
*****
|
||
|
||
오죽문은 축제로 떠들썩했다.
|
||
|
||
서란은 스무 살에 결단기에 도달했다.
|
||
|
||
심지어 여의주보다 큰 금단을 형성했다.
|
||
|
||
고금을 통틀어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
||
|
||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
|
||
|
||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
||
|
||
그건 수도자도 마찬가지였다.
|
||
|
||
오죽문의 비승은 이제 정해진 일이다.
|
||
|
||
쌓아둔 물자는 바닥났지만 상관없었다.
|
||
|
||
밝은 미래를 꿈꾸며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
||
|
||
연회장에 홀로 앉아 있던 소용녀에게 어떤 결단기 수사가 다가왔다.
|
||
|
||
“용녀님, 한 잔 받으시지요. 지금까지 류 수사를 가르쳐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
||
|
||
소용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내밀었다.
|
||
|
||
수사는 공손히 잔을 채워주고는 물러났다.
|
||
|
||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소용녀를 찾아왔다.
|
||
|
||
눈물 어린, 혹은 들뜬 감사 인사.
|
||
|
||
오죽문은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약조.
|
||
|
||
언제라도 재방문을 기다리겠다는 극진한 요청.
|
||
|
||
소용녀는 문뜩 바람을 쐬고 싶어졌다.
|
||
|
||
그래서 연회장을 빠져나와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
||
|
||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풀밭이었다.
|
||
|
||
여름이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
||
|
||
그때 누가 소용녀를 불렀다.
|
||
|
||
“용녀님!”
|
||
|
||
고개를 돌리자 목소리의 주인이 보였다.
|
||
|
||
“축제의 주인공이 연회장을 비운 건가?”
|
||
|
||
실실 웃던 서란이 대답했다.
|
||
|
||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죠.”
|
||
|
||
그러더니 품속에서 여의주를 꺼냈다.
|
||
|
||
서란의 법력은 이미 깨끗하게 제거되어 있었다.
|
||
|
||
정화된 여의주는 예전처럼 투명했다.
|
||
|
||
“여기 있어요.”
|
||
|
||
소용녀는 여의주를 건네받았다.
|
||
|
||
그리고 혼원법력을 여의주에 밀어넣었다.
|
||
|
||
이번에는 여의주도 거부하지 않았다.
|
||
|
||
저절로 떠올라 회전하던 여의주가 소용녀의 아랫배로 녹아들었다.
|
||
|
||
곧이어 고요하던 밤하늘이 요동쳤다.
|
||
|
||
하늘에서 시작된 회오리가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
||
|
||
바람에 담긴 막대한 영기가 소용녀를 감쌌다.
|
||
|
||
그리고 만물을 끌어당기는 대지의 속박이 사라졌다.
|
||
|
||
오로지 하늘에게 스스로를 증명한 이들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이었다.
|
||
|
||
여의주를 지닌 용이 날아올랐다.
|
||
|
||
대지를 밟고 선 사람과 하늘을 나는 용.
|
||
|
||
잠시 동안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
||
|
||
소용녀가 말했다.
|
||
|
||
“정말 대단하구나. 내가 가르쳤지만 놀라워. 여의주를 이토록 완벽하게 정화하다니.”
|
||
|
||
“마음에 드시나요?”
|
||
|
||
서란의 물음에 소용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
“물론 한번 잃어버렸던 탓에 수십 년 정도는 더 수행해야겠지만... 육백 년을 인내한 것에 비하면 쉽지. 정말 고맙구나.”
|
||
|
||
인사를 하면서도 소용녀는 다른 생각을 했다.
|
||
|
||
수행을 하는 이유.
|
||
|
||
어째서 승천을 바라는가.
|
||
|
||
나의 진정한 바람은 무엇인가.
|
||
|
||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많았다.
|
||
|
||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이 없었다.
|
||
|
||
애당초 임시로 맺어진 사제 관계였다.
|
||
|
||
언젠가는 이렇게 헤어질 운명이었다.
|
||
|
||
그럼에도 나는 어째서 망설이는가.
|
||
|
||
무엇이 두려워서 마주 잡은 손을 놓지 못하는가.
|
||
|
||
가슴에 피어난 이 바람은 어떤 의미인가.
|
||
|
||
소용녀는 이번에도 애써 번민을 털어냈다.
|
||
|
||
그리고 내키지 않는 인사를 건넸다.
|
||
|
||
“그러면 이제 작별이구나. 너라면 분명히 신선이, 네가 바라던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게다.”
|
||
|
||
소용녀는 점점 높이 떠올랐다.
|
||
|
||
고개를 들자 어두운 밤하늘이 보였다.
|
||
|
||
예전처럼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
||
|
||
그때 서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
“용녀님!”
|
||
|
||
그리고 날아오르던 소용녀를 누가 붙잡았다.
|
||
|
||
시선을 내려보니 이번에도 서란이 범인이었다.
|
||
|
||
무슨 생각인지 소용녀의 발목에 매달려 있었다.
|
||
|
||
갈색눈과 담청색 용안이 서로를 응시했다.
|
||
|
||
“오죽문에서 함께 지내요, 용녀님!”
|
||
|
||
용녀님.
|
||
|
||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다.
|
||
|
||
방문패를 발급할 때 대충 지었다.
|
||
|
||
처음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
||
|
||
홀로 완전한 용에게 이름 같은 건 불필요하다.
|
||
|
||
누군가 자신을 지칭한다는 건 소용녀에게는 너무나 낯선 일이었다.
|
||
|
||
하지만 이제는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간다.
|
||
|
||
잠시 침묵하던 소용녀가 물었다.
|
||
|
||
“함께 지내자고?”
|
||
|
||
“예, 어차피 수십 년 더 수행할 거 그냥 여기서 해요! 이렇게 헤어지기는 너무 아쉽잖아요!”
|
||
|
||
정말 솔직한 발언이었다.
|
||
|
||
서란도 알고 있는 모양인지 얼굴이 빨갰다.
|
||
|
||
하지만 여전히 손은 놓지 않았다.
|
||
|
||
소용녀는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
||
|
||
그저 담청색 용안으로 서란을 응시했다.
|
||
|
||
용안에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힘이 있다.
|
||
|
||
긴 침묵에 서란이 안절부절 마음을 졸일 때, 소용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
||
|
||
처음 들어보는 맑은 웃음이었다.
|
||
|
||
웃음을 멈춘 소용녀가 제안했다.
|
||
|
||
“좋다, 그러면 나에게 이름을 지어다오.”
|
||
|
||
서란이 당황한 얼굴로 질문했다.
|
||
|
||
“이렇게 갑자기요?”
|
||
|
||
“그래, 열을 셀 때까지다. 하나, 둘, 셋...”
|
||
|
||
남은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
||
|
||
“어, 어...”
|
||
|
||
뇌기능이 반쯤 정지한 서란이 말을 더듬었다.
|
||
|
||
긴장감에 시야는 급격하게 좁아졌다.
|
||
|
||
오직 소용녀의 담청색 눈동자만 보였다.
|
||
|
||
숫자 아홉에 서란이 외쳤다.
|
||
|
||
“다, 당첨! 아니, 담청!”
|
||
|
||
그리고 아차 싶었다.
|
||
|
||
너무 급해서 생각나는대로 말해 버렸다.
|
||
|
||
이건 도저히 용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다.
|
||
|
||
소용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고민했다.
|
||
|
||
“흠, 담청이라...”
|
||
|
||
그러더니 발을 홱 털었다.
|
||
|
||
발목을 놓친 서란이 풀밭에 떨어졌다.
|
||
|
||
올려다보는 사람과 내려다보는 용.
|
||
|
||
몸에 두른 바람을 흩어낸 소용녀가 하강했다.
|
||
|
||
두 다리로 선 소용녀가 서란을 내려다봤다.
|
||
|
||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이름이구나.”
|
||
|
||
말을 마친 소용녀는 연회장을 향해서 걸었다.
|
||
|
||
이제는 두발로 걷는 것도 꽤나 익숙해졌다.
|
||
|
||
서란도 황급히 일어나 쫓아왔다.
|
||
|
||
소용녀.
|
||
|
||
아니, 담청은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
||
|
||
다행히도 알아갈 시간은 많다.
|
||
|
||
예전에 여의주를 잃어버렸을 때, 담청은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
||
|
||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
||
|
||
오히려 자신을 꺼내준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
||
|
||
물난리를 만난 잉어는 연못을 나와 용이 되었다.
|
||
|
||
그리고 여의주를 잃어버린 용도 동굴을 나왔다.
|
||
|
||
끝내 무엇이 될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
||
|
||
하지만 적어도 담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