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89 lines
11 KiB
Markdown
389 lines
11 KiB
Markdown
|
|
오죽문의 최연장자는 여무진이다.
|
|
|
|
그는 올해로 922세가 됐다.
|
|
|
|
덤으로 인계 최강자이기도 했다.
|
|
|
|
여무진의 일과는 굉장히 규칙적이다.
|
|
|
|
하루도 쉬지 않고 명상과 공법 수행을 반복한다.
|
|
|
|
일 년에 단 하루, 죽순 캐는 날만 예외였다.
|
|
|
|
오늘이 마침 죽순을 캐는 날이었다.
|
|
|
|
여무진은 어김없이 죽림에 방문했다.
|
|
|
|
여름이라서 애들 물놀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
|
|
|
맑고 활기찬 아이들의 웃음 소리.
|
|
|
|
여무진에게는 너무나 오래된 과거였다.
|
|
|
|
그는 죽순을 챙겨서 거처로 돌아갔다.
|
|
|
|
평소보다 약간 많은 양이었다.
|
|
|
|
여무진은 능숙한 솜씨로 죽순밥을 지었다.
|
|
|
|
그리고 삼등분으로 똑같이 나눴다.
|
|
|
|
여무진과 아내, 서란의 몫이었다.
|
|
|
|
오늘은 정기 교습이 있는 날이었다.
|
|
|
|
서란은 정확한 시간에 방문했다.
|
|
|
|
여무진과 서란은 익숙하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
|
|
|
“영안술을 사용해 보게.”
|
|
|
|
“예!”
|
|
|
|
서란이 영안술을 사용했다.
|
|
|
|
처음 결단기 수사가 됐던 순간과는 달랐다.
|
|
|
|
여무진에게서 느껴지던 위압감이 사라졌다.
|
|
|
|
이유는 간단했다.
|
|
|
|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가 좁혀졌다.
|
|
|
|
서란의 영혼은 어느새 까마득한 곳까지 올랐다.
|
|
|
|
이제는 남은 계단이 몇 개 되지 않았다.
|
|
|
|
류서란의 성장 속도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
|
|
|
천부적인 재능에 법보의 힘이 더해진 결과였다.
|
|
|
|
다음 경지를 넘볼 때가 된 것이다.
|
|
|
|
여무진이 말했다.
|
|
|
|
“오늘은 원영 의식에 대해서 알려 주겠네.”
|
|
|
|
서란이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
|
|
|
“사실 자세한 의식 준비 절차 같은 걸 외울 필요는 없네. 어차피 그런 건 문파에서 준비할 테니까. 자네가 신경쓸 건 단 하나, 천겁뿐이지.”
|
|
|
|
“천겁이요?”
|
|
|
|
“그래, 천겁. 바로 하늘이 내리는 시련이지.”
|
|
|
|
여무진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
|
|
|
원영기란 영혼의 초월이다.
|
|
|
|
이 경지에 도달하면 영혼이 한 꺼풀 허물을 벗는다.
|
|
|
|
그리고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응집된다.
|
|
|
|
보잘것없던 영혼은 이런 방식으로 다시 태어난다.
|
|
|
|
보다 격이 높은 존재로 도약한 것이다.
|
|
|
|
원영의 형태가 갓난아이와 흡사한 이유였다.
|
|
|
|
어찌보면 윤회를 비트는 행위와 같다.
|
|
|
|
그래서 하늘은 천겁이라는 시련을 내린다.
|
|
|
|
오로지 천겁을 견디고 자격을 증명한 수도자만이 원영기라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
|
|
|
서란도 몇 년 뒤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
|
|
|
설명을 마친 여무진이 책을 한 권 내밀었다.
|
|
|
|
“이건 원영 의식 전까지 반복해서 읽어 보게나.”
|
|
|
|
“알겠습니다.”
|
|
|
|
여무진은 보따리도 하나 건네줬다.
|
|
|
|
“이건 죽순밥, 집에 가서 친구랑 나눠 먹고.”
|
|
|
|
“뭐 이런 걸, 정말 감사합니다.”
|
|
|
|
서란은 책과 죽순밥을 가지고 떠났다.
|
|
|
|
여무진은 정성스럽게 상을 차렸다.
|
|
|
|
사랑하는 아내가 좋아하던, 그래서 어느새 여무진도 좋아하게 된 죽순밥이다.
|
|
|
|
그리고 아내의 위패 앞에 내려 놓았다.
|
|
|
|
여무진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
|
|
|
|
*****
|
|
|
|
서란은 이아금과 죽순밥을 먹었다.
|
|
|
|
여무진의 요리는 훌륭했다.
|
|
|
|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차도 한 잔 마셨다.
|
|
|
|
서란이 물었다.
|
|
|
|
“아금아, 내가 얘기했던 거 알아 봤어?”
|
|
|
|
“응.”
|
|
|
|
“다들 뭐래?”
|
|
|
|
서란은 자기 책이 인기 없는 이유가 궁금했다.
|
|
|
|
그래서 인간관계가 넓은 이아금에게 부탁했다.
|
|
|
|
인형술 서적이 인기 없는 이유를 조사해 달라고.
|
|
|
|
이아금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
|
|
“일단 제일 많은 응답은 무관심이었어. 인형술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 관련 서적을 안 빌렸대.”
|
|
|
|
“음, 그렇군.”
|
|
|
|
납득할 수 있는 결과였다.
|
|
|
|
서대륙에서 인형술은 비주류 법술이니까.
|
|
|
|
중요한 건 두 번째로 많았던 응답이었다.
|
|
|
|
이아금이 말을 이었다.
|
|
|
|
“두 번째로 많았던 이유는 고정 관념이었어. 언니가 만든 도자기 인형을 보고 인형술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나 봐. 막연하게 어렵다는 인식 때문인지 인형술 관련 서적은 쳐다도 안 본다더라.”
|
|
|
|
“딱 한 장만 읽지, 진짜 쉽게 썼는데...”
|
|
|
|
세 번째 응답도 예상한 대로였다.
|
|
|
|
“세 번째로 자주 나온 대답은 흥미 부족이었어. 서고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서 몇 장 정도 읽어 봤는데, 그냥 재미가 없었대. 그래서 제자리에 다시 두고 나왔다더라.”
|
|
|
|
“초반만 지나면 재미있다고...”
|
|
|
|
서란은 고개를 떨궜다.
|
|
|
|
극심한 좌절감에 마음이 꺾일 것 같았다.
|
|
|
|
이게 현실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
|
|
|
참고로 이달의 인기 도서는 바둑입문서였다.
|
|
|
|
“아아...”
|
|
|
|
서란의 마음이 까맣게 물들어 갔다.
|
|
|
|
인형술은 수선계 첨단 기술이잖아...
|
|
|
|
기술 서적이 바둑 서적한테 지는 게 말이 돼?
|
|
|
|
지구였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
|
|
|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
|
|
|
잠깐만, 생각해 보니까 좀 괘씸하네?
|
|
|
|
인형 덕분에 놀면서 인형술입문서를 안 읽어?
|
|
|
|
양심적으로 한 번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
|
|
|
서란은 쓸쓸히 방으로 가다가 금영영과 만났다.
|
|
|
|
삼 개월 연속 다독왕은 책을 보며 걷고 있었다.
|
|
|
|
요즘은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
|
|
|
서란이 도끼눈을 떴다.
|
|
|
|
그러고 보니 내 책 아무도 안 빌렸었지.
|
|
|
|
아니, 그러면 얘는 한 달에 책을 백 권씩 읽으면서 내가 쓴 입문서는 한 번도 안 읽었다는 거야?
|
|
|
|
저번에는 분명 인형술 좋아한다더니!
|
|
|
|
서란이 복도를 지나던 금영영에게 물었다.
|
|
|
|
“영영, 무슨 책 읽어?”
|
|
|
|
“요리 입문서 읽는 중이야.”
|
|
|
|
“인형술은 안 읽어? 전에 해 보니까 재미있다며.”
|
|
|
|
“응, 안 읽어.”
|
|
|
|
서란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
|
|
|
“왜왜왜, 왜?”
|
|
|
|
“다른 게 더 재미있으니까.”
|
|
|
|
“그러면 다른 거 다 보면 인형술도 볼 거야?”
|
|
|
|
금영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
|
|
|
“그래도 안 읽어. 애초에 누가 요즘 그런 거 읽어, 소설 읽느라 바쁜데.”
|
|
|
|
“소설?”
|
|
|
|
“몰랐어? 요즘은 소설이 유행이잖아.”
|
|
|
|
그새 기술서에서 소설로 유행이 변했다.
|
|
|
|
이제는 남을 가르칠 정도의 전문성이 없는 사람도 책을 쓰고 작가가 될 수 있었다.
|
|
|
|
상상력과 이야기로 승부하면 되니까.
|
|
|
|
서란이 의아해서 물었다.
|
|
|
|
“너는 지금 요리 입문서 읽고 있잖아.”
|
|
|
|
“요즘 요리사가 주인공인 소설을 보고 있거든.”
|
|
|
|
말을 마친 금영영은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렸다.
|
|
|
|
“아, 그랬구나.”
|
|
|
|
서란도 의문이 해결됐다.
|
|
|
|
어쩐지 안 어울리는 요리 책을 보고 있더라니.
|
|
|
|
갑자기 신부 수업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
|
|
|
그냥 요리사 주인공을 보고 흥미가 생긴 거였어?
|
|
|
|
고개를 끄덕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
|
|
|
어라, 그렇다면 혹시 나도?
|
|
|
|
서란은 소설가가 되기로 했다.
|
|
|
|
*****
|
|
|
|
서란은 스스로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위대한 예술가라고 굳게 믿었다.
|
|
|
|
그리고 역사적인 천재 다 빈치가 지닌 무수한 재능 중에는 문학의 재능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
서란도 질 수 없었다.
|
|
|
|
문학 또한 예술.
|
|
|
|
인형술입문서는 인기가 없다.
|
|
|
|
하지만 그건 기술서라서 그럴 뿐이다.
|
|
|
|
위대한 예술가 류서란이 쓴 소설이라면 다르다.
|
|
|
|
불타올라라, 나의 예술혼.
|
|
|
|
서란은 장편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
|
|
|
소설 구성의 요소는 세 가지.
|
|
|
|
바로 인물, 배경, 사건이었다.
|
|
|
|
서란은 당장 인물부터 만들었다.
|
|
|
|
독자들이 자연스레 인형술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인형술사를 주인공으로 정했다.
|
|
|
|
덤으로 인형 동료도 하나 급조해 냈다.
|
|
|
|
배경은 몰입감을 위해서 현실을 참고했다.
|
|
|
|
동대륙과 서대륙을 적당히 섞은 세상.
|
|
|
|
동서 대륙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은 게 도움이 많이 됐다.
|
|
|
|
사건은 여행 도중에 마주치는 여정들이다.
|
|
|
|
마음을 가진 인형을 완성하기 위해서 인형술사 주인공은 자기 인형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
|
|
|
큰 줄기만 유지한 채, 짧은 에피소드를 다닥다닥 붙일 생각이었다.
|
|
|
|
장르는 모험물.
|
|
|
|
주제는 권선징악 바탕에 SF적 철학을 살짝 첨가.
|
|
|
|
체온이 없는 인형보다 냉혹한 인간, 갑작스럽게 생긴 자아에 혼란스러워 하는 인형 소녀, 이외에도 존재와 정의에 대한 고뇌를 겉핥기로 다룬다.
|
|
|
|
서란은 완성된 원고를 보며 직감했다.
|
|
|
|
“에이, 텄다 텄어.”
|
|
|
|
도저히 뜰 것 같지 않은 소설이었다.
|
|
|
|
인형술사 소년과 인형 소녀의 운명적인 만남.
|
|
|
|
무난하게 흐르는 기승전결 구조.
|
|
|
|
뻔한 클리셰와 사골처럼 우려먹은 주제 의식.
|
|
|
|
지루한 고전 소설 냄새가 났다.
|
|
|
|
문학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
|
|
|
그래, 어떻게 사람이 전부 잘 하겠어.
|
|
|
|
하나쯤 못 하는 건 인간미지, 인간미.
|
|
|
|
서란은 글을 쓴 반 년이 아까워서 책을 출판했다.
|
|
|
|
제목은 ‘인형술사 소년과 인형 소녀’였다.
|
|
|
|
이 장편 소설이 성공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
|
|
|
그리고 서란은 대문호가 됐다.
|
|
|
|
*****
|
|
|
|
서란의 장편 소설은 신기록을 경신했다.
|
|
|
|
대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증쇄하고, 또 증쇄하고, 또또 증쇄했다.
|
|
|
|
끝내 인쇄기가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 버렸다.
|
|
|
|
이 달의 인기 도서, 이 달의 추천 도서, 이 달의 인기 신간, 이 달의 추천 신간을 모조리 휩쓸었다.
|
|
|
|
인형술입문서 대여 순위는 여전히 꼴찌, 결국 순위표의 천장과 바닥을 동시에 차지한 셈이었다.
|
|
|
|
놀라운 업적이었다.
|
|
|
|
장서각의 도서 출판 담당자가 서란을 찾아왔다.
|
|
|
|
“류 작가님, 다음 편은 언제쯤 완성될까요?”
|
|
|
|
서란이 당황해서 물었다.
|
|
|
|
“다음 편이요? 벌써요?”
|
|
|
|
“혹시 오래 걸릴까요?”
|
|
|
|
“최소한 반 년은 걸릴 텐데요...”
|
|
|
|
담당자가 말했다.
|
|
|
|
“이런, 곤란하네요. 사람들이 기다릴 텐데...”
|
|
|
|
서란은 이해가 안 됐다.
|
|
|
|
이게 이렇게까지 유행할 소설인가?
|
|
|
|
아닌 것 같은데...
|
|
|
|
혹시 내 감성이 남들이랑 많이 다른가?
|
|
|
|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담당자가 말했다.
|
|
|
|
“그러면 이야기 길이를 짧게 잘라서 출판하죠. 나중에 여러 개를 한꺼번에 묶으면 될 것 같군요.”
|
|
|
|
“아니, 솔직히 자신이 없는데요...”
|
|
|
|
담당자가 의욕을 불어넣어 줬다.
|
|
|
|
“지금 인형술입문서의 대여도 폭주하고 있습니다.”
|
|
|
|
“까짓거 한번 해보죠!”
|
|
|
|
동기 부여, 완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