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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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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문의 최연장자는 여무진이다.

그는 올해로 922세가 됐다.

덤으로 인계 최강자이기도 했다.

여무진의 일과는 굉장히 규칙적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명상과 공법 수행을 반복한다.

일 년에 단 하루, 죽순 캐는 날만 예외였다.

오늘이 마침 죽순을 캐는 날이었다.

여무진은 어김없이 죽림에 방문했다.

여름이라서 애들 물놀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맑고 활기찬 아이들의 웃음 소리.

여무진에게는 너무나 오래된 과거였다.

그는 죽순을 챙겨서 거처로 돌아갔다.

평소보다 약간 많은 양이었다.

여무진은 능숙한 솜씨로 죽순밥을 지었다.

그리고 삼등분으로 똑같이 나눴다.

여무진과 아내, 서란의 몫이었다.

오늘은 정기 교습이 있는 날이었다.

서란은 정확한 시간에 방문했다.

여무진과 서란은 익숙하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영안술을 사용해 보게.”

“예!”

서란이 영안술을 사용했다.

처음 결단기 수사가 됐던 순간과는 달랐다.

여무진에게서 느껴지던 위압감이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가 좁혀졌다.

서란의 영혼은 어느새 까마득한 곳까지 올랐다.

이제는 남은 계단이 몇 개 되지 않았다.

류서란의 성장 속도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천부적인 재능에 법보의 힘이 더해진 결과였다.

다음 경지를 넘볼 때가 된 것이다.

여무진이 말했다.

“오늘은 원영 의식에 대해서 알려 주겠네.”

서란이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사실 자세한 의식 준비 절차 같은 걸 외울 필요는 없네. 어차피 그런 건 문파에서 준비할 테니까. 자네가 신경쓸 건 단 하나, 천겁뿐이지.”

“천겁이요?”

“그래, 천겁. 바로 하늘이 내리는 시련이지.”

여무진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원영기란 영혼의 초월이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영혼이 한 꺼풀 허물을 벗는다.

그리고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응집된다.

보잘것없던 영혼은 이런 방식으로 다시 태어난다.

보다 격이 높은 존재로 도약한 것이다.

원영의 형태가 갓난아이와 흡사한 이유였다.

어찌보면 윤회를 비트는 행위와 같다.

그래서 하늘은 천겁이라는 시련을 내린다.

오로지 천겁을 견디고 자격을 증명한 수도자만이 원영기라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서란도 몇 년 뒤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설명을 마친 여무진이 책을 한 권 내밀었다.

“이건 원영 의식 전까지 반복해서 읽어 보게나.”

“알겠습니다.”

여무진은 보따리도 하나 건네줬다.

“이건 죽순밥, 집에 가서 친구랑 나눠 먹고.”

“뭐 이런 걸, 정말 감사합니다.”

서란은 책과 죽순밥을 가지고 떠났다.

여무진은 정성스럽게 상을 차렸다.

사랑하는 아내가 좋아하던, 그래서 어느새 여무진도 좋아하게 된 죽순밥이다.

그리고 아내의 위패 앞에 내려 놓았다.

여무진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


서란은 이아금과 죽순밥을 먹었다.

여무진의 요리는 훌륭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차도 한 잔 마셨다.

서란이 물었다.

“아금아, 내가 얘기했던 거 알아 봤어?”

“응.”

“다들 뭐래?”

서란은 자기 책이 인기 없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넓은 이아금에게 부탁했다.

인형술 서적이 인기 없는 이유를 조사해 달라고.

이아금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단 제일 많은 응답은 무관심이었어. 인형술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 관련 서적을 안 빌렸대.”

“음, 그렇군.”

납득할 수 있는 결과였다.

서대륙에서 인형술은 비주류 법술이니까.

중요한 건 두 번째로 많았던 응답이었다.

이아금이 말을 이었다.

“두 번째로 많았던 이유는 고정 관념이었어. 언니가 만든 도자기 인형을 보고 인형술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나 봐. 막연하게 어렵다는 인식 때문인지 인형술 관련 서적은 쳐다도 안 본다더라.”

“딱 한 장만 읽지, 진짜 쉽게 썼는데...”

세 번째 응답도 예상한 대로였다.

“세 번째로 자주 나온 대답은 흥미 부족이었어. 서고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서 몇 장 정도 읽어 봤는데, 그냥 재미가 없었대. 그래서 제자리에 다시 두고 나왔다더라.”

“초반만 지나면 재미있다고...”

서란은 고개를 떨궜다.

극심한 좌절감에 마음이 꺾일 것 같았다.

이게 현실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참고로 이달의 인기 도서는 바둑입문서였다.

“아아...”

서란의 마음이 까맣게 물들어 갔다.

인형술은 수선계 첨단 기술이잖아...

기술 서적이 바둑 서적한테 지는 게 말이 돼?

지구였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잠깐만, 생각해 보니까 좀 괘씸하네?

인형 덕분에 놀면서 인형술입문서를 안 읽어?

양심적으로 한 번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서란은 쓸쓸히 방으로 가다가 금영영과 만났다.

삼 개월 연속 다독왕은 책을 보며 걷고 있었다.

요즘은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서란이 도끼눈을 떴다.

그러고 보니 내 책 아무도 안 빌렸었지.

아니, 그러면 얘는 한 달에 책을 백 권씩 읽으면서 내가 쓴 입문서는 한 번도 안 읽었다는 거야?

저번에는 분명 인형술 좋아한다더니!

서란이 복도를 지나던 금영영에게 물었다.

“영영, 무슨 책 읽어?”

“요리 입문서 읽는 중이야.”

“인형술은 안 읽어? 전에 해 보니까 재미있다며.”

“응, 안 읽어.”

서란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왜왜왜, 왜?”

“다른 게 더 재미있으니까.”

“그러면 다른 거 다 보면 인형술도 볼 거야?”

금영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안 읽어. 애초에 누가 요즘 그런 거 읽어, 소설 읽느라 바쁜데.”

“소설?”

“몰랐어? 요즘은 소설이 유행이잖아.”

그새 기술서에서 소설로 유행이 변했다.

이제는 남을 가르칠 정도의 전문성이 없는 사람도 책을 쓰고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상상력과 이야기로 승부하면 되니까.

서란이 의아해서 물었다.

“너는 지금 요리 입문서 읽고 있잖아.”

“요즘 요리사가 주인공인 소설을 보고 있거든.”

말을 마친 금영영은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렸다.

“아, 그랬구나.”

서란도 의문이 해결됐다.

어쩐지 안 어울리는 요리 책을 보고 있더라니.

갑자기 신부 수업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그냥 요리사 주인공을 보고 흥미가 생긴 거였어?

고개를 끄덕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라, 그렇다면 혹시 나도?

서란은 소설가가 되기로 했다.


서란은 스스로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위대한 예술가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역사적인 천재 다 빈치가 지닌 무수한 재능 중에는 문학의 재능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란도 질 수 없었다.

문학 또한 예술.

인형술입문서는 인기가 없다.

하지만 그건 기술서라서 그럴 뿐이다.

위대한 예술가 류서란이 쓴 소설이라면 다르다.

불타올라라, 나의 예술혼.

서란은 장편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소설 구성의 요소는 세 가지.

바로 인물, 배경, 사건이었다.

서란은 당장 인물부터 만들었다.

독자들이 자연스레 인형술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인형술사를 주인공으로 정했다.

덤으로 인형 동료도 하나 급조해 냈다.

배경은 몰입감을 위해서 현실을 참고했다.

동대륙과 서대륙을 적당히 섞은 세상.

동서 대륙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은 게 도움이 많이 됐다.

사건은 여행 도중에 마주치는 여정들이다.

마음을 가진 인형을 완성하기 위해서 인형술사 주인공은 자기 인형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큰 줄기만 유지한 채, 짧은 에피소드를 다닥다닥 붙일 생각이었다.

장르는 모험물.

주제는 권선징악 바탕에 SF적 철학을 살짝 첨가.

체온이 없는 인형보다 냉혹한 인간, 갑작스럽게 생긴 자아에 혼란스러워 하는 인형 소녀, 이외에도 존재와 정의에 대한 고뇌를 겉핥기로 다룬다.

서란은 완성된 원고를 보며 직감했다.

“에이, 텄다 텄어.”

도저히 뜰 것 같지 않은 소설이었다.

인형술사 소년과 인형 소녀의 운명적인 만남.

무난하게 흐르는 기승전결 구조.

뻔한 클리셰와 사골처럼 우려먹은 주제 의식.

지루한 고전 소설 냄새가 났다.

문학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그래, 어떻게 사람이 전부 잘 하겠어.

하나쯤 못 하는 건 인간미지, 인간미.

서란은 글을 쓴 반 년이 아까워서 책을 출판했다.

제목은 ‘인형술사 소년과 인형 소녀’였다.

이 장편 소설이 성공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리고 서란은 대문호가 됐다.


서란의 장편 소설은 신기록을 경신했다.

대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증쇄하고, 또 증쇄하고, 또또 증쇄했다.

끝내 인쇄기가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 버렸다.

이 달의 인기 도서, 이 달의 추천 도서, 이 달의 인기 신간, 이 달의 추천 신간을 모조리 휩쓸었다.

인형술입문서 대여 순위는 여전히 꼴찌, 결국 순위표의 천장과 바닥을 동시에 차지한 셈이었다.

놀라운 업적이었다.

장서각의 도서 출판 담당자가 서란을 찾아왔다.

“류 작가님, 다음 편은 언제쯤 완성될까요?”

서란이 당황해서 물었다.

“다음 편이요? 벌써요?”

“혹시 오래 걸릴까요?”

“최소한 반 년은 걸릴 텐데요...”

담당자가 말했다.

“이런, 곤란하네요. 사람들이 기다릴 텐데...”

서란은 이해가 안 됐다.

이게 이렇게까지 유행할 소설인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내 감성이 남들이랑 많이 다른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담당자가 말했다.

“그러면 이야기 길이를 짧게 잘라서 출판하죠. 나중에 여러 개를 한꺼번에 묶으면 될 것 같군요.”

“아니, 솔직히 자신이 없는데요...”

담당자가 의욕을 불어넣어 줬다.

“지금 인형술입문서의 대여도 폭주하고 있습니다.”

“까짓거 한번 해보죠!”

동기 부여,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