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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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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배우는 기초 인형술’은 연기기 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문 강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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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강사 본인도 수선 경력이 오십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축기기 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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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기는커녕 축기기만 돼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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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41세(본인 주장)가 된 결단기 수사가 관심을 가질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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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강의실 안에 있는 수강생 전원이 만학도(25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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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좌석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서란의 주위에 앉은 연기기 수사들이 전전긍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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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입실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면학 분위기가 운석 한 방에 초토화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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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두려움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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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결단기 수사가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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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앉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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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짧은 배움을 조롱하려는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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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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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실망스러운 강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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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가르치는 방법을 모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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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거리 수준도 알 만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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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서란이 혹평을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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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강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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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강의 개설 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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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태본곡을 떠나는 자신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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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극심한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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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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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잘나가는 유명 강사는 아니지만, 그에게도 나름대로 소명의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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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과 공손한 말씨를 유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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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유익한 지식을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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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에 오른 자, 반드시 수업을 끝마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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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공포를 딛고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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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수강생 여러분. ‘즐겁게 배우는 기초 인형술’의 강사, 수다 인형입니다. 오늘 함께 배울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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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강의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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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인형은 정말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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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간단한 농담과 적절한 질문을 건네면서 경직된 강의실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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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 하나 때문에 굳어있던 다른 수강생들도 점차 수업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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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에 가깝게 느껴지던 시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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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인형은 극심한 피로에 쓰러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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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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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 인물, 류서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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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흠...’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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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작은 소리였지만, 수다 인형의 귀에는 폭풍우 속 우뢰 소리처럼 크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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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완전히 탈진한 채 퇴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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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이라니, 어떤 의미를 가진 ‘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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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강의가 형편없었다는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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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강사로서 해내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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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에 빠진 강사에게 사무원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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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인형 님, 이것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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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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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선배님이 적으신 강의 평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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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인형이 황급히 평가 설문지를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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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유익해요.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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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남긴 담백한 후기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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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강사가 남긴 짧은 문구와 높은 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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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후배를 격려하는 듯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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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인형은 가슴 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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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해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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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강의가 수강생들에게 닿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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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틀리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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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강사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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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인형은 밤새 다음 수업 준비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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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느낀 벅찬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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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강의 실력은 날로 일취월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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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서란이 쓴 격려의 메시지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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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서란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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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전생에서 배달 리뷰에 모조리 만점을 주던 버릇으로 대충 적어 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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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모르고 먹으면 전부 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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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 여름, 서란은 오직 공부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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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밤에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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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까지 줄여가면서 인형술을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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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목말라하던 서란은 동대륙에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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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서란을 보고 의문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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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연유로 인형술에 저리도 목을 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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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심지어 서란 본인조차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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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서란을 인형술사로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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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메카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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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온존된 열혈남아의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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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아니면 영혼에 내재된 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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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어떻든 서란은 전혀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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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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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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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진짜로 궁금해한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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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선배님, 결단기 강의는 도대체 언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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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금단 류서란의 강좌 개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예비 수강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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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서 점심을 먹던 중, 산수 하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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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선배님, 아직도 인형술 공부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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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식사를 하던 친구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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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제도 수업 일곱 개나 들으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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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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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석한 산수들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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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년 동안 한결 같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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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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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이란,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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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제발 강의 좀 개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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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축기기에서 늙어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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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가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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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울한 분위기가 흐르던 와중, 누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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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이 다 떨어지면 강의를 개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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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반박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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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 한, 십 년 정도 지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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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적인 견해를 제시한 산수가 다시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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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면 충분히 기다릴 만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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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기기 수사 관점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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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벌어둔 영석도 무한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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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년짜리 수명을 믿고 열심히 버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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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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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선배님, 대수림 탐험대에 투자해서 영석을 몇 배로 불리셨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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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몇 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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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아홉 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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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한 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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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분산 투자. 일부 탐험대가 성공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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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한 희망의 불씨가 흔적도 없이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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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거짓말 좀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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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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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 탐험대, 그거 전부 사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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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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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 년은 진짜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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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들은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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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이번 분기에는 강좌를 개설하셨을까, 접수대 앞에서 얼마나 서성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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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서란이 강좌를 개설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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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영석을 지불한다고 해도 강사 본인이 안 하겠다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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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 공부가 질리면 복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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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둔 영석이 떨어지면 복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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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개설 일주년 기념으로 복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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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무 이유나 가져다 붙인 희망 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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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무 간절해서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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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기기 산수들은 자기 혼자 기대하고, 뒤이어 좌절하기를 연신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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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산수가 결연하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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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더는 못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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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으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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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가서 강좌 개설을 요청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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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친구들이 산수를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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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잠깐만 진정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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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결단기 선배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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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진짜 큰일 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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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수는 완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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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거 놔 봐. 나는 꼭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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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를 친구들을 뿌리치고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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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같은 선배님께 직접 찾아간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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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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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는 전 사무 보조, 단원표에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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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수사, 제발 우리 얘기 좀 전해 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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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세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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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그나마 안면이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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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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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한 부탁에 못 이긴 단원표는 서란에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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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좌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론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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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얘기를 듣던 서란이 시원스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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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가을에는 한 번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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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강좌 개설은 그렇게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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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표가 대리 제출한 신청서도 곧장 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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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강의 개설 공지가 게시판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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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배움의 거리 전역에 빠르게 전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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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금단 결단기 강의, 가을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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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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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발표 맞아? 저번처럼 헛소문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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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처 게시판에 공지 사항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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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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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내 앞에서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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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접수처는 마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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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이 너무 많아서 강의가 둘로 쪼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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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흔쾌히 동의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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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기다려 온 가을 강좌 첫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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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몇 배나 많아진 사람 앞에 서란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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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첫 문장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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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은 초월, 그리고 초월이란 곧 보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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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기가 반 년이나 됐지만, 실력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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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가을, 결단기 여럿을 새로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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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수강생들 역시 훌륭한 성취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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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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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종강 공지만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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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좌는 개설되지 않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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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분기 강의, 미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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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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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들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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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좌를 기다리던 이들이 비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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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에서 고문받는 희생자가 지를 법한 절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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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란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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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서란은 동대륙에 내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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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기 강의, 두 분기 공부, 다시 한 분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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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시간이 일 년하고도 반이나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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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진을 밟고 실종된 이후, 거의 이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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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외유가 지나치게 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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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부 ‘한 분기만 더...’를 반복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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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학구열에 취해서 정신을 못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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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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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에서 서대륙까지는 편도로 년 단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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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돌아가면 재방문은 거의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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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끊임없이 갈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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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이 너무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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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파 식구들이 걱정하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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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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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돌아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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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겨울 결단기 강좌는 없을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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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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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미련을 못 버리고 마지막까지 미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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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배움의 거리에 더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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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소식만 전할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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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 대신 편지 좀 배달해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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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편지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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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에도 영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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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유레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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