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py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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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식은땀을 흘렸다.
‘즐겁게 배우는 기초 인형술’은 연기기 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문 강좌였다.
그래서 강사 본인도 수선 경력이 오십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축기기 수사였다.
결단기는커녕 축기기만 돼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올해로 241세(본인 주장)가 된 결단기 수사가 관심을 가질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강의실 안에 있는 수강생 전원이 만학도(25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정 좌석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서란의 주위에 앉은 연기기 수사들이 전전긍긍했다.
서란의 입실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면학 분위기가 운석 한 방에 초토화된 셈이었다.
강사는 두려움에 떨었다.
왜 결단기 수사가 여기 있어.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앉아 있을까.
혹시 내 짧은 배움을 조롱하려는 생각인가.
강사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다.
‘굉장히 실망스러운 강의였습니다.’
‘사람 가르치는 방법을 모르십니까?’
‘배움의 거리 수준도 알 만하군요’
상상 속 서란이 혹평을 쏟아부었다.
추락하는 강의 평가.
반복되는 강의 개설 반려.
끝내 태본곡을 떠나는 자신의 뒷모습.
강사는 극심한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았다.
비록 잘나가는 유명 강사는 아니지만, 그에게도 나름대로 소명의식이 있었다.
웃는 얼굴과 공손한 말씨를 유지해라.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유익한 지식을 전해라.
강단에 오른 자, 반드시 수업을 끝마쳐라.
강사는 공포를 딛고 나아갔다.
“안녕하십니까, 수강생 여러분. ‘즐겁게 배우는 기초 인형술’의 강사, 수다 인형입니다. 오늘 함께 배울 내용은...”
그렇게 강의는 시작됐다.
수다 인형은 정말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중간중간 간단한 농담과 적절한 질문을 건네면서 경직된 강의실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만학도 하나 때문에 굳어있던 다른 수강생들도 점차 수업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영겁에 가깝게 느껴지던 시간이 끝났다.
수다 인형은 극심한 피로에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요주의 인물, 류서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흠...’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정말 작은 소리였지만, 수다 인형의 귀에는 폭풍우 속 우뢰 소리처럼 크게 울렸다.
강사는 완전히 탈진한 채 퇴실했다.
‘흠...’이라니, 어떤 의미를 가진 ‘흠...’이지?
내 강의가 형편없었다는 소리인가?
결국 나는 강사로서 해내지 못했나?
실의에 빠진 강사에게 사무원이 달려왔다.
“수다 인형 님,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뭐죠?”
“류 선배님이 적으신 강의 평가예요!”
수다 인형이 황급히 평가 설문지를 들여다 봤다.
‘강의가 유익해요. 5/5’
서란이 남긴 담백한 후기가 적혀 있었다.
유명 강사가 남긴 짧은 문구와 높은 점수.
마치 후배를 격려하는 듯 느껴졌다.
수다 인형은 가슴 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랬구나, 해냈던 거야...
내 강의가 수강생들에게 닿았구나...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틀리지 않았어...
계속해서 강사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수다 인형은 밤새 다음 수업 준비에 힘썼다.
오늘 느낀 벅찬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의 강의 실력은 날로 일취월장했다.
모든 게 서란이 쓴 격려의 메시지 덕분이었다.
당연히 서란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서란은 전생에서 배달 리뷰에 모조리 만점을 주던 버릇으로 대충 적어 놓은 것이었다.
원래 모르고 먹으면 전부 약이었다.
봄이 지나 여름, 서란은 오직 공부에 몰두했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밤에도 계속.
잠까지 줄여가면서 인형술을 탐구했다.
배움을 목말라하던 서란은 동대륙에서 피어났다.
사람들은 서란을 보고 의문을 가졌다.
무슨 연유로 인형술에 저리도 목을 매는가.
그 누구도, 심지어 서란 본인조차 모를 일이었다.
무엇이 서란을 인형술사로 만들었는가.
변신 메카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
다시 태어나도 온존된 열혈남아의 본능?
그것도 아니면 영혼에 내재된 천성?
이유가 어떻든 서란은 전혀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웠으니까.
그래서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정작 진짜로 궁금해한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류 선배님, 결단기 강의는 도대체 언제 해?”
신성 금단 류서란의 강좌 개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예비 수강생들이었다.
모여서 점심을 먹던 중, 산수 하나가 물었다.
“류 선배님, 아직도 인형술 공부하시나?”
같이 식사를 하던 친구가 대답했다.
“응, 어제도 수업 일곱 개나 들으시더라.”
“와...”
합석한 산수들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반 년 동안 한결 같으시네...”
“그만 좀 들어요...”
“인형술이란, 도대체 뭘까...”
“제발, 제발 강의 좀 개설해 주세요...”
“이러다가 축기기에서 늙어 죽겠어...”
“이제 곧 가을이라고...”
침울한 분위기가 흐르던 와중, 누군가 말했다.
“영석이 다 떨어지면 강의를 개설하지 않을까?”
바로 반박이 날아왔다.
“도대체 언제? 한, 십 년 정도 지난 뒤에?”
희망적인 견해를 제시한 산수가 다시 반박했다.
“십 년이면 충분히 기다릴 만 하지 않나?”
축기기 수사 관점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서란이 벌어둔 영석도 무한한 게 아니었다.
250년짜리 수명을 믿고 열심히 버티면 된다.
하지만 서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류 선배님, 대수림 탐험대에 투자해서 영석을 몇 배로 불리셨다던데?”
“며, 몇 배나?”
“대충 아홉 배 정도?”
“투자 한 번에?”
“아니, 분산 투자. 일부 탐험대가 성공했대.”
미약한 희망의 불씨가 흔적도 없이 꺼져버렸다.
“아, 거짓말 좀 하지 마!”
“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고?”
“대수림 탐험대, 그거 전부 사기 아니었어?”
“진짜 재주도 좋다...”
“구십 년은 진짜 아니잖아요...”
산수들은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혹시나 이번 분기에는 강좌를 개설하셨을까, 접수대 앞에서 얼마나 서성였던가.
간절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서란이 강좌를 개설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많은 영석을 지불한다고 해도 강사 본인이 안 하겠다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인형술 공부가 질리면 복귀하지 않을까?
벌어둔 영석이 떨어지면 복귀하지 않을까?
강의 개설 일주년 기념으로 복귀하지 않을까?
사실 아무 이유나 가져다 붙인 희망 사항이었다.
하지만 너무 간절해서 어쩔 수 없었다.
축기기 산수들은 자기 혼자 기대하고, 뒤이어 좌절하기를 연신 반복했다.
식사를 마친 산수가 결연하게 선언했다.
“나, 이제 더는 못 참아.”
“못 참으면 어쩌려고?”
“당장 가서 강좌 개설을 요청할 거야.”
주변 친구들이 산수를 만류했다.
“아니, 잠깐만 진정해 봐.”
“상대는 결단기 선배님이야.”
“그러다가 진짜 큰일 날지도 몰라.”
하지만 산수는 완고했다.
“아니, 이거 놔 봐. 나는 꼭 해야겠어.”
산수를 친구들을 뿌리치고 내달렸다.
하늘 같은 선배님께 직접 찾아간 건 아니었다.
그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니까.
산수는 전 사무 보조, 단원표에게 갔다.
“단 수사, 제발 우리 얘기 좀 전해 주시게...”
“왜 이러세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자네가 그나마 안면이 있지 않나.”
“아니, 거참...”
절절한 부탁에 못 이긴 단원표는 서란에게 갔다.
그리고 강좌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론을 전했다.
가만히 얘기를 듣던 서란이 시원스레 말했다.
“그러면 가을에는 한 번 할까?”
가을 강좌 개설은 그렇게 확정됐다.
단원표가 대리 제출한 신청서도 곧장 수리됐다.
마침내 강의 개설 공지가 게시판에 걸렸다.
소식은 배움의 거리 전역에 빠르게 전파됐다.
“신성 금단 결단기 강의, 가을로 확정!”
“뭐라고!”
“공식 발표 맞아? 저번처럼 헛소문 아니야?”
“접수처 게시판에 공지 사항 걸렸다!”
“정말이네!”
“전부 내 앞에서 비켜!”
이번에도 접수처는 마비됐다.
수강생이 너무 많아서 강의가 둘로 쪼개졌다.
서란이 흔쾌히 동의한 덕분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려 온 가을 강좌 첫 날.
작년보다 몇 배나 많아진 사람 앞에 서란이 섰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첫 문장을 말했다.
“수선은 초월, 그리고 초월이란 곧 보충입니다.”
공백기가 반 년이나 됐지만, 실력은 여전했다.
그 해 가을, 결단기 여럿을 새로 배출했다.
나머지 수강생들 역시 훌륭한 성취를 이뤘다.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물론, 종강 공지만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겨울 강좌는 개설되지 않을 예정입니다.’
다음 분기 강의, 미개설.
“크아악!”
산수들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겨울 강좌를 기다리던 이들이 비탄했다.
명계에서 고문받는 희생자가 지를 법한 절규였다.
하지만 서란도 어쩔 수 없었다.
작년 여름, 서란은 동대륙에 내던져졌다.
세 분기 강의, 두 분기 공부, 다시 한 분기 강의.
벌써 시간이 일 년하고도 반이나 지났다.
전송진을 밟고 실종된 이후, 거의 이 년.
서란의 외유가 지나치게 길어지고 있었다.
이게 전부 ‘한 분기만 더...’를 반복한 탓이었다.
달콤한 학구열에 취해서 정신을 못차렸다.
물론, 이것도 어쩔 수 없었다.
동대륙에서 서대륙까지는 편도로 년 단위였다.
일단 돌아가면 재방문은 거의 불가능했다.
서란은 끊임없이 갈등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이 너무 아까워...
하지만 문파 식구들이 걱정하고 있을 텐데...
이 일을 어쩌지...
결국 돌아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서 겨울 결단기 강좌는 없을 예정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거다.
서란은 미련을 못 버리고 마지막까지 미적거렸다.
아, 배움의 거리에 더 머무르고 싶다.
어떻게 소식만 전할 방법이 없을까?
누가 나 대신 편지 좀 배달해주면 좋겠네.
응, 편지 배달?
그리고 이번에도 영감이 떠올랐다.
정말 유레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