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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동대륙에서 원숭이 요괴들과 투닥거리고 있을 때, 서대륙은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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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환기구에 빠지자 수뇌부는 즉각적으로 ‘류서란 구하기’ 대작전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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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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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기 수사는 고작 높은 곳에서 실족한 정도로 다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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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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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수도자가 자기 애완 나비를 환기구로 들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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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광 나비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환기구가 끝나는 지점까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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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자리에 서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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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수도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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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수사가 밑에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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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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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작업 총책임자가 뒷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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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에 처한 요구조자가 할 일은 안전한 곳에서 얌전히 구조대를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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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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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서로 엇갈리면 굉장히 피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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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이면 제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릴 것, 참고로 미아 행동 원칙도 얼추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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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주변부터 둘러보죠. 어디 갔는지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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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책임자의 요구 사항이 수도자를 거쳐서 지하에 있던 발광 나비에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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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영수가 뿜어내는 빛이 더욱 찬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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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석실 안이 삽시간에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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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된 시야로 석실을 살핀 나비 주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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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내부가 완벽하게 밀실인데요? 석실의 유일한 출입구는 오래전에 무너진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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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환기구는 분명 외길 아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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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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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특별히 눈에 띄는 요소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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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집중한 채 침묵하던 수도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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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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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여기에 그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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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는 나름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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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책임자도, 구조 대원들도 처음 보는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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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옆에서 구경하던 고고학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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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고대 전송진 문양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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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책임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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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조자가 유적 구경하겠다면서 싸돌아다니는 미아 행동을 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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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서란은 환기구를 타고 추락한 뒤, 불행히도 바로 밑에 있던 전송진을 밟고 실종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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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 넘길 사소한 사건은 진짜 재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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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가 즉시 소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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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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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진을 통해 구조대를 보낼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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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반대편에서 망가졌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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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전체를 대대적으로 수색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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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가 적대 문파들이 눈치채면 도리어 류 수사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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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규모는 좀 작더라도 은밀하게 찾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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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있던 수도자들을 잘 단속해서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해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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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로는 심마가 다시 도져서 칩거했다고 둘러댈까요? 당장 작년 겨울부터 외출을 거의 안 했던 것 같은데, 충분히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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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혹시라도 의심받지 않도록 아주 가까운 친지들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부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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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류 수사는 이미 결단기 수사입니다. 충분히 위험을 벗어나고 우리 곁으로 돌아올 역량이 있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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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책이 마련된 뒤, 모두가 평소처럼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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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류서란은 방안에 틀어박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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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계 수사 이외에도 비밀을 아는 이들은 류서란과 친분이 있던 호혜문, 담청, 금영영, 이아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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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약당 연단술사들마저 진실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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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또 시작이네.’하는 마음으로 류서란이 먹을 단약을 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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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이기 담당 이아금은 오늘 치 단약을 가지고 서란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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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에 이불을 둘둘 두른 형체가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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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용으로 가져다 놓은 죽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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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류서란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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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이 죽부인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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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도대체 어디 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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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류서란(죽부인)이 거부한 단약은 이번에도 이아금이 남김없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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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쇼걸, 서란의 탈출 마술은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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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세기의 마술사, 류서란은 그 무렵 식당에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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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고명이 잔뜩 올려진 곱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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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값은 당연히 단원표가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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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에서 경청하던 단원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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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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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떠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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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류서란, 나이는 이백사십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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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태생, 수선을 시작한 건 열 살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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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마침 인근을 지나가던 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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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스승님을 따라서 대수림에 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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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지금까지 폐관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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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외모는 어릴 적 탕약을 잘못 먹은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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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전낭은 요괴 퇴치 도중에 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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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정리하면 이런 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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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을 적절하게 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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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표는 서란의 거짓부렁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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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의심해 봤자 검증할 방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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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표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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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년이 넘도록 폐관 수련을 하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남들은 십 년도 힘들어서 못 견딜 텐데... 하긴, 그 정도로 비범한 의지력을 지니셨기에 산수의 신분으로도 결단기 수사가 되셨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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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란 수도문파에 속하지 않은, 야생 상태의 수도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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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지원해 줄 세력이 없어서 경지 상승이 굉장히 느린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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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알기로는 일영근자라고 해도 축기기까지 수십 년이 넘게 걸리는 험난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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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록 면을 먹던 서란이 부연 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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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는 운이 좋았지. 스승님께서 이런저런 단약을 많이 가지고 계셨거든. 응, 정말로 운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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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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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서란은 약간 초조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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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륙 오죽문 소속이라고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는 탓에 부득이하게 산수 신분이라고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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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니 산수 주제에 경지가 결단기라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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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황급히 대화 주제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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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다 치고, 자네도 참 대단하군. 산수가 축기에 성공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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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보유자, 단원표는 축기기 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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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로는 축기에 성공한 나이가 마흔일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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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아는 이영근자의 평균적인 축기기 도달 연령은 문파의 지원을 받았을 경우, 서른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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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파의 후원도 없는 산수 치곤 놀라운 성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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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들은 단원표가 멋쩍게 겸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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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아닙니다. 축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니, 과장도 심하십니다. 마흔일곱이면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닌 걸요. 다른 이영근자들은 이르게는 서른 후반 정도에 축기를 성공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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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수선에 대한 상식이 전면 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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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이영근이라지만 산수가 서른 후반에 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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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한 수도문파도 없는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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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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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의아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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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륙과는 너무나 다른 동대륙의 수도자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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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결정적인 원인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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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수선처럼 원시적인 수행 방법으로도 서대륙 산수들보다 빠르게 경지를 올린 비결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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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간 산업 스파이, 류서란은 기회를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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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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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단원표가 깜빡했다는 듯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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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류 선배님께서도 다시 대수림으로 가십니까? 오랜 폐관 수련을 마치고 세상에 나오셨으니, 이 기회에 다른 산수들과도 교류를 좀 나누셔야지요. 생각이 있으시다면 저와 함께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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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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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대수림으로 가자고? 원숭이 요괴라도 잡을 생각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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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단원표가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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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뇨, 제가 여쭌 건 심층부가 아닙니다. 표층부에 있는 태본곡 얘기입니다. 애시당초 제 수행으로 대수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간 결코 살아서 나오지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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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대수림이 심층부, 표층부로 구분된다는 사실도 방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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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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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중얼거리자 단원표가 알아서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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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태본곡이요. 산수와 오행인면목의 중립 도시, 대수림의 요괴들을 가두는 최후의 보루. 혹시 한 번도 못 들어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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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뻔뻔하게 아는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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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태본곡! 물론 들어 봤지, 당연히 들어 봤고말고. 대수림 표층부에는 태본곡이 있다, 기본 상식이지 않은가! 폐관 수련을 이백 년이나 했더니 잠시 깜빡했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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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러셨군요! 태본곡처럼 잘 알려진 수행 명소를 모르다니, 말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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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상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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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죠, 제가 앞장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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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하하호호 웃으며 대수림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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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요괴를 퇴치하다가 비행 법기가 망가졌다는 핑계를 대며 단원표의 법기를 얻어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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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정도 날아가자 울창한 대수림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잡은 거대한 골짜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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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의 뿌리처럼 생긴 골짜기라고 해서 태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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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이라는 영목 종족의 영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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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수도문파 같은 외부 세력은 한 발자국도 들어올 수 없는 절대 불가침 권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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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산수들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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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영기에도 불구하고 수도문파가 차지하지 못한, 젖과 꿀이 흐르는 기회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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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본곡의 존재가 동대륙 수선계에 알려지자, 산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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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에 와서는 오행인면목과 산수가 공존하는 독특한 생태계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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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본곡 한쪽 거리에 잔뜩 모여서 바글거리는 산수들을 보고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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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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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가리킨 곳을 본 단원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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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기는 배움의 거리입니다. 경지 상승을 위해서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필요하다면 영석을 지불해서 가르침을 청하기도 하죠. 대부분은 열심히 경지를 올려서 보다 좋은 조건으로 거대문파에 입문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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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신림동 고시촌을 떠올리며 대강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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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힘쓰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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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표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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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때는 저 배움의 거리에서 수선에 열중했습니다. 하필 영석이 바닥나는 바람에 그만... 영석 좀 벌면 다시 공부를 할 생각이죠. 류 선배님께서는 특별히 관심있는 법술이 있으신지요? 영석만 지불하면 안 가르쳐주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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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큰 기대 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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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인형술에는 관심이 좀 있는데... 워낙에 비주류 법술이어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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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법술의 서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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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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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에게 인형술이란 한없이 고독한 법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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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원표가 믿기지 않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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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인형술은 주류 법술, 상식이지 않습니까? 저 거리에서 법술을 가르치는 강사의 절반 이상은 인형술사입니다. 영문을 모르겠군요. 혹시 이백 년 전에는 인형술이 비주류 법술이기라도 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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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한 서란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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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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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당도한 인형술사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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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동대륙이 급격하게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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