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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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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동대륙에서 원숭이 요괴들과 투닥거리고 있을 때, 서대륙은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서란이 환기구에 빠지자 수뇌부는 즉각적으로 ‘류서란 구하기’ 대작전을 실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단기 수사는 고작 높은 곳에서 실족한 정도로 다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웃긴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일이었다.

영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수도자가 자기 애완 나비를 환기구로 들여 보냈다.

발광 나비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환기구가 끝나는 지점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란은 없었다.

나비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수도자가 말했다.

“류 수사가 밑에 없는데요?”

“어억!”

구조 작업 총책임자가 뒷목을 잡았다.

재난 상황에 처한 요구조자가 할 일은 안전한 곳에서 얌전히 구조대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서로 엇갈리면 굉장히 피곤해진다.

가급적이면 제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릴 것, 참고로 미아 행동 원칙도 얼추 비슷했다.

“일단, 주변부터 둘러보죠. 어디 갔는지 찾게.”

총책임자의 요구 사항이 수도자를 거쳐서 지하에 있던 발광 나비에게 전해졌다.

나비 영수가 뿜어내는 빛이 더욱 찬란해졌다.

어두운 석실 안이 삽시간에 환해졌다.

공유된 시야로 석실을 살핀 나비 주인이 말했다.

“저기, 내부가 완벽하게 밀실인데요? 석실의 유일한 출입구는 오래전에 무너진 것처럼 보입니다.”

“예? 환기구는 분명 외길 아니었습니까?”

“그랬죠.”

“혹시 특별히 눈에 띄는 요소는 없습니까?”

잠깐 집중한 채 침묵하던 수도자가 말했다.

“바닥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군요.”

“한번 여기에 그려보세요.”

수도자는 나름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총책임자도, 구조 대원들도 처음 보는 문양이었다.

그때 옆에서 구경하던 고고학자가 말했다.

“그거, 고대 전송진 문양 같은데요?”

총책임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요구조자가 유적 구경하겠다면서 싸돌아다니는 미아 행동을 한 게 아니었다.

류서란은 환기구를 타고 추락한 뒤, 불행히도 바로 밑에 있던 전송진을 밟고 실종된 것이었다.

웃어 넘길 사소한 사건은 진짜 재난이 됐다.

수뇌부가 즉시 소집됐다.

그들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 논의했다.

“전송진을 통해 구조대를 보낼 수는 없을까요?”

“아쉽게도 반대편에서 망가졌다는군요.”

“대륙 전체를 대대적으로 수색할까요?”

“그랬다가 적대 문파들이 눈치채면 도리어 류 수사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규모는 좀 작더라도 은밀하게 찾죠.”

“현장에 있던 수도자들을 잘 단속해서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해야 겠군요.”

“대외적으로는 심마가 다시 도져서 칩거했다고 둘러댈까요? 당장 작년 겨울부터 외출을 거의 안 했던 것 같은데, 충분히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혹시라도 의심받지 않도록 아주 가까운 친지들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부탁하지요.”

“자,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류 수사는 이미 결단기 수사입니다. 충분히 위험을 벗어나고 우리 곁으로 돌아올 역량이 있다는 말이죠.”

대응책이 마련된 뒤, 모두가 평소처럼 행동했다.

공식적으로 류서란은 방안에 틀어박혔을 뿐이다.

고위계 수사 이외에도 비밀을 아는 이들은 류서란과 친분이 있던 호혜문, 담청, 금영영, 이아금뿐이었다.

당연히 약당 연단술사들마저 진실을 몰랐다.

그래서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또 시작이네.’하는 마음으로 류서란이 먹을 단약을 조제했다.

약 먹이기 담당 이아금은 오늘 치 단약을 가지고 서란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이불을 둘둘 두른 형체가 누워있었다.

위장용으로 가져다 놓은 죽부인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류서란처럼 보였다.

이아금이 죽부인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언니, 도대체 어디 간거야...”

가짜 류서란(죽부인)이 거부한 단약은 이번에도 이아금이 남김없이 먹었다.

위대한 쇼걸, 서란의 탈출 마술은 대성공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세기의 마술사, 류서란은 그 무렵 식당에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심지어 고명이 잔뜩 올려진 곱빼기였다.

음식값은 당연히 단원표가 지불했다.

맞은편에서 경청하던 단원표가 말했다.

“과연,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서란이 떠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름은 류서란, 나이는 이백사십 살.

농가 태생, 수선을 시작한 건 열 살 무렵.

스승은 마침 인근을 지나가던 수도자.

이후에는 스승님을 따라서 대수림에 은거.

스승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지금까지 폐관 수련.

어린 외모는 어릴 적 탕약을 잘못 먹은 탓.

참고로 전낭은 요괴 퇴치 도중에 분실.

대충 정리하면 이런 설정이었다.

진실과 거짓을 적절하게 버무렸다.

단원표는 서란의 거짓부렁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실, 의심해 봤자 검증할 방법도 없었다.

단원표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백 년이 넘도록 폐관 수련을 하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남들은 십 년도 힘들어서 못 견딜 텐데... 하긴, 그 정도로 비범한 의지력을 지니셨기에 산수의 신분으로도 결단기 수사가 되셨겠군요.”

산수란 수도문파에 속하지 않은, 야생 상태의 수도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수행을 지원해 줄 세력이 없어서 경지 상승이 굉장히 느린 편이었다.

서란이 알기로는 일영근자라고 해도 축기기까지 수십 년이 넘게 걸리는 험난한 길이었다.

호로록 면을 먹던 서란이 부연 설명을 했다.

“뭐, 나는 운이 좋았지. 스승님께서 이런저런 단약을 많이 가지고 계셨거든. 응, 정말로 운이 좋았어.”

“그러셨군요.”

솔직히 말해서 서란은 약간 초조한 상태였다.

서대륙 오죽문 소속이라고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는 탓에 부득이하게 산수 신분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니 산수 주제에 경지가 결단기라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황급히 대화 주제를 바꿨다.

“나는 그렇다 치고, 자네도 참 대단하군. 산수가 축기에 성공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일 텐데.”

이영근 보유자, 단원표는 축기기 수사였다.

듣기로는 축기에 성공한 나이가 마흔일곱이었다.

서란이 아는 이영근자의 평균적인 축기기 도달 연령은 문파의 지원을 받았을 경우, 서른 살이었다.

문파의 후원도 없는 산수 치곤 놀라운 성취였다.

칭찬을 들은 단원표가 멋쩍게 겸양했다.

“아휴, 아닙니다. 축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니, 과장도 심하십니다. 마흔일곱이면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닌 걸요. 다른 이영근자들은 이르게는 서른 후반 정도에 축기를 성공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서란의 수선에 대한 상식이 전면 부정됐다.

아무리 이영근이라지만 산수가 서른 후반에 축기?

변변한 수도문파도 없는 주제에?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데?

굉장히 의아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서대륙과는 너무나 다른 동대륙의 수도자 상식.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결정적인 원인이 있을 거다.

나홀로 수선처럼 원시적인 수행 방법으로도 서대륙 산수들보다 빠르게 경지를 올린 비결이 궁금했다.

대륙 간 산업 스파이, 류서란은 기회를 엿봤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단원표가 깜빡했다는 듯이 질문했다.

“아참, 류 선배님께서도 다시 대수림으로 가십니까? 오랜 폐관 수련을 마치고 세상에 나오셨으니, 이 기회에 다른 산수들과도 교류를 좀 나누셔야지요. 생각이 있으시다면 저와 함께 가시죠.”

서란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음? 대수림으로 가자고? 원숭이 요괴라도 잡을 생각이더냐?”

그 말을 들은 단원표가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제가 여쭌 건 심층부가 아닙니다. 표층부에 있는 태본곡 얘기입니다. 애시당초 제 수행으로 대수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간 결코 살아서 나오지 못하죠.”

서란은 대수림이 심층부, 표층부로 구분된다는 사실도 방금 알았다.

“태본곡?”

서란이 중얼거리자 단원표가 알아서 알려줬다.

“예, 태본곡이요. 산수와 오행인면목의 중립 도시, 대수림의 요괴들을 가두는 최후의 보루. 혹시 한 번도 못 들어보셨습니까?”

서란이 뻔뻔하게 아는 척을 했다.

“아, 태본곡! 물론 들어 봤지, 당연히 들어 봤고말고. 대수림 표층부에는 태본곡이 있다, 기본 상식이지 않은가! 폐관 수련을 이백 년이나 했더니 잠시 깜빡했을 뿐이네!”

“역시, 그러셨군요! 태본곡처럼 잘 알려진 수행 명소를 모르다니, 말이 안되죠!”

“맞아, 상식이지!”

“가시죠, 제가 앞장 서겠습니다!”

둘은 하하호호 웃으며 대수림으로 들어갔다.

서란은 요괴를 퇴치하다가 비행 법기가 망가졌다는 핑계를 대며 단원표의 법기를 얻어 탔다.

며칠 정도 날아가자 울창한 대수림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잡은 거대한 골짜기가 보였다.

거목의 뿌리처럼 생긴 골짜기라고 해서 태본곡.

오행인면목이라는 영목 종족의 영토였다.

당연히 수도문파 같은 외부 세력은 한 발자국도 들어올 수 없는 절대 불가침 권역이었다.

다만 산수들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풍부한 영기에도 불구하고 수도문파가 차지하지 못한, 젖과 꿀이 흐르는 기회의 땅이었다.

태본곡의 존재가 동대륙 수선계에 알려지자, 산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작금에 와서는 오행인면목과 산수가 공존하는 독특한 생태계가 완성됐다.

태본곡 한쪽 거리에 잔뜩 모여서 바글거리는 산수들을 보고 서란이 물었다.

“저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서란이 가리킨 곳을 본 단원표가 말했다.

“아, 저기는 배움의 거리입니다. 경지 상승을 위해서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필요하다면 영석을 지불해서 가르침을 청하기도 하죠. 대부분은 열심히 경지를 올려서 보다 좋은 조건으로 거대문파에 입문하길 희망합니다.”

서란은 신림동 고시촌을 떠올리며 대강 반응했다.

“배움에 힘쓰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

단원표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저도 한때는 저 배움의 거리에서 수선에 열중했습니다. 하필 영석이 바닥나는 바람에 그만... 영석 좀 벌면 다시 공부를 할 생각이죠. 류 선배님께서는 특별히 관심있는 법술이 있으신지요? 영석만 지불하면 안 가르쳐주는 것이 없습니다.”

서란은 큰 기대 없이 말했다.

“글쎄, 인형술에는 관심이 좀 있는데... 워낙에 비주류 법술이어야 말이지.”

비주류 법술의 서러움.

어느새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됐다.

서란에게 인형술이란 한없이 고독한 법술이었다.

그런데 단원표가 믿기지 않는 말을 했다.

“예? 인형술은 주류 법술, 상식이지 않습니까? 저 거리에서 법술을 가르치는 강사의 절반 이상은 인형술사입니다. 영문을 모르겠군요. 혹시 이백 년 전에는 인형술이 비주류 법술이기라도 했었나요?”

경악한 서란이 외쳤다.

“뭐라고!”

갑작스럽게 당도한 인형술사의 천국.

서란은 동대륙이 급격하게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