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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향은 생각보다 고루한 집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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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 다섯 명의 아득한 나이를 고려하면 정말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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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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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필요가 없다면 굳이 바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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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년이 경과하든, 100만 년이 경과하든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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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 반 년 된 제도도 손보는 게 도원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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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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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향 총타 흑단궁이 그 대표적인 예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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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이 아무리 많이 접수되어도, 다들 석탄궁이라고 놀리는, 기괴한 외형 만큼은 결코 변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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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지선 중 누구 취향인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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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거지같이 생긴 건물만 제외하면, 도원향은 썩 괜찮은 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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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토벌과 치안 유지, 빈곤 퇴치에도 언제나 앞장 서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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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짓 한 번으로 지형을 바꾸는 강자들이 즐비함에도 선계가 멀쩡히 돌아가는 건 반쯤 도원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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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도원향 직할령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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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서나 문화 시설 같은 게 집중되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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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담청이 매일매일 출근하는 임6 구역 중심지 또한 그런 직할령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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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직할령은 한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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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든 범인이든, 도원향 직할령에 거주할 수 있는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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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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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부류는 그냥 앉아서 뭉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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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기회를 잡기 위해 살인적인 물가를 감내하며 직할령에 남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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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인생 역전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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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와 자원이 모이는 곳에는 기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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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따라준다면 한 방에 신세 고치고 해피한 직할령 라이프를 보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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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오대랑과 그의 조수가 여기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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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부류는 수도문파 혹은 수도가문이 다스리는 자치령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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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다소 포기해야 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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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죽문과 피풍사문에 거주하는 범인 대다수가 이런 부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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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에게도 인생 역전의 기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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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근 보유자를 낳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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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출산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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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부류는 개척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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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집 하나 장만하는데 수천 년씩 걸리는 도원향 직할령은 물론이고, 부자유를 감내해야만 하는 자치령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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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냥 자기들끼리 정착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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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정착지는 얼마 못 가서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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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부는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도원향의 기준을 만족할 때까지 성장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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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착지를 흔히들 자유 도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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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순회 재판을 위해 방문한 곳도 그런 자유 도시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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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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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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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한 명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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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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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네요. 이 정도 규모면 그냥 자기들끼리 재판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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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습니다. 자유 도시의 권한은 1심 재판까지거든요. 그마저도 중범죄는 곧장 도원향 관할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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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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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자유 도시가 아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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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권 자체는 꽤나 폭넓게 인정됩니다. 사법권만 유독 엄격히 통제해서 그렇지. 선백파흑진군께서 이런 부분에는 굉장히 완고하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유 도시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사법권의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에 도원향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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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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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수행원단과 함께 자유 도시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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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별의별 종족이 다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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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종족의 용광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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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 도중, 누군가 서란 일행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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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으로 보아하니 관리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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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검문소까지 나와 있는 건 다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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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가 굉장히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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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순회 판사로 오신 류 법관님이시지요? 정말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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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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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많이 밀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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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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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밀려 있으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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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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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법원으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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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는 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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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겠습니까?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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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판관 류서란의 데뷔 재판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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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겠지만 ‘개작두를 대령하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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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런 건 순회 판사의 재량 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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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 판사의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건 경범죄나 사소한 민사 분쟁 정도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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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이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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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억울합니다! 배가 고파서 빵을 훔쳤는데 이 형량이라니요! 고작 빵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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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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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딱 하나의 빵만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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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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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빵을 훔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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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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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관, 증거물을 제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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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관들이 낑낑거리며 증거물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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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성 다섯 명이 나란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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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훔칠 생각을 했다는 게 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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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지엄한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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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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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아님)이 끌려나가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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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상소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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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 장 발장은 이미 한 번 상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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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도시 자체 재판소의 1심 판결에 불복한 결과, 상급 법원인 순회 재판소까지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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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순회 재판의 판결에 대해서는 상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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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건은 층간 소음 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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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윗집이 아랫집을 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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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집 거주자가 박쥐였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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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거주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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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매일 밤 천장 갉작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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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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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매일 밤 갉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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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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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는 왜 밤마다 그러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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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야행성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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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째서 주행성 종족용 공동 주택에 거주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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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집 거주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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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예산 문제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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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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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부정 수급을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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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지엄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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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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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또한 질질 끌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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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에 집이 없어졌지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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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부정 수급과 위증 때문에 투옥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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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재판은 탈세 관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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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피고인이 용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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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안의 권능은 무용지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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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당당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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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가 아닙니다. 절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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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관, 피고인의 천라지망 검색 기록을 제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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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순회 판사님, 제가 탈세 혐의에 대해서 자백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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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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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많은 사건이 서란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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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불이행, 토지 소유권 분쟁, 점유 시효 문제, 영업 정지 처분 취소소송, 부작위위법확인소송, 가처분 신청 등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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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점심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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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 일행은 법원 구내식당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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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점심은 찜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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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채소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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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일행을 안내했던 관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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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법관님, 혹시 오후 재판도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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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보니까 할 일이 태산이더라고요. 빨리빨리 해치워 버리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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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시겠어요? 그러면 혹시 저녁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가 따로 준비해 드려도 될까요? 물론, 류 법관님만 괜찮으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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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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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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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아, 못 드시는 음식은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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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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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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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하 직원에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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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식 시간에 맞춰서 만찬 차려 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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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법관님 오후 재판도 하신대요? 정말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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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야. 저번에 온 순회 판사는 격일로, 그것도 오전 재판만 깔짝거리다가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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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직원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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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때문에 재판이 엄청 밀렸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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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혹시라도 불편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모셔. 숙소도 더 꼼꼼히 청소하고, 혹여나 관광이 하고 싶으실 수도 있으니까 안내인도 준비해 두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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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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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껏 준비한 숙소가 쓰이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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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할 사람이 없는 환경과 밀린 재판이 많다는 명분이 상승 효과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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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저녁 만찬을 먹고도 숙소에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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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가 풀린 13000근짜리 마차가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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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 재판, 24시간 영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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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무인도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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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는 곳은 진창 한복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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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인이 입고 있는 백의는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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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른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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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성숙한 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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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마에 달린 청자색 사슴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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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룡의 여인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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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비속불박진군, 선계에 단 일곱만 존재하는 지선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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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되기 전 이름은 주양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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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도 주양 진군이라 불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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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막 깨어난 주양 진군은 도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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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후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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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낯익은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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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양 진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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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에 닿았던 의복과 신체, 그 어떤 곳에도 더러움은 묻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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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색 용안이 어딘가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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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바다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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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족이 바글거리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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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에도 불이 켜진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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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주양 진군이 찾던 존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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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색 뿔과 용안을 지닌 반인반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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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방금 전 맡은 낯익은 냄새의 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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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양 진군은 강한 흥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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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을 들고 그저 한 걸음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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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주양 진군은 서란의 앞에 당도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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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당황한 서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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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냐? 구은랍의 사생아라도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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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비속불박진군 주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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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방랑하는 반인반룡 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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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어떤 것으로도 묶을 수 없고 얽지 못하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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