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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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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향은 생각보다 고루한 집단이 아니다.

지선 다섯 명의 아득한 나이를 고려하면 정말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바꿀 필요가 없다면 굳이 바꾸지 않는다.

10만 년이 경과하든, 100만 년이 경과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 반 년 된 제도도 손보는 게 도원향이었다.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도원향 총타 흑단궁이 그 대표적인 예시였다.

민원이 아무리 많이 접수되어도, 다들 석탄궁이라고 놀리는, 기괴한 외형 만큼은 결코 변하질 않았다.

다섯 지선 중 누구 취향인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도 거지같이 생긴 건물만 제외하면, 도원향은 썩 괜찮은 조직이었다.

요괴 토벌과 치안 유지, 빈곤 퇴치에도 언제나 앞장 서고 있었으니까.

손짓 한 번으로 지형을 바꾸는 강자들이 즐비함에도 선계가 멀쩡히 돌아가는 건 반쯤 도원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도원향 직할령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관공서나 문화 시설 같은 게 집중되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안전했다.

서란과 담청이 매일매일 출근하는 임6 구역 중심지 또한 그런 직할령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직할령은 한정되어 있었다.

수도자든 범인이든, 도원향 직할령에 거주할 수 있는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첫 번째 부류는 그냥 앉아서 뭉갰다.

이들은 기회를 잡기 위해 살인적인 물가를 감내하며 직할령에 남기를 선택했다.

바로 인생 역전의 기회였다.

인구와 자원이 모이는 곳에는 기회도 많다.

행운이 따라준다면 한 방에 신세 고치고 해피한 직할령 라이프를 보낼 수도 있었다.

해결사 오대랑과 그의 조수가 여기에 해당했다.

두 번째 부류는 수도문파 혹은 수도가문이 다스리는 자치령으로 이주했다.

자유를 다소 포기해야 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금죽문과 피풍사문에 거주하는 범인 대다수가 이런 부류였다.

물론, 이들에게도 인생 역전의 기회는 있었다.

영근 보유자를 낳는 것이었다.

그래서 출산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세 번째 부류는 개척자들이었다.

이들은 집 하나 장만하는데 수천 년씩 걸리는 도원향 직할령은 물론이고, 부자유를 감내해야만 하는 자치령도 싫었다.

그래서 그냥 자기들끼리 정착지를 만들었다.

대부분의 정착지는 얼마 못 가서 망했다.

하지만 일부는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도원향의 기준을 만족할 때까지 성장하곤 했다.

그런 정착지를 흔히들 자유 도시라고 불렀다.

서란이 순회 재판을 위해 방문한 곳도 그런 자유 도시 중 하나였다.


서란은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와, 뭐야?”

보좌관 한 명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네요. 이 정도 규모면 그냥 자기들끼리 재판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어쩔 수 없습니다. 자유 도시의 권한은 1심 재판까지거든요. 그마저도 중범죄는 곧장 도원향 관할이고요.”

서란이 물었다.

“그러면 자유 도시가 아니지 않나요?”

“자치권 자체는 꽤나 폭넓게 인정됩니다. 사법권만 유독 엄격히 통제해서 그렇지. 선백파흑진군께서 이런 부분에는 굉장히 완고하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유 도시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사법권의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에 도원향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서란은 수행원단과 함께 자유 도시로 들어갔다.

도시에는 별의별 종족이 다 모여 있었다.

그야말로 종족의 용광로였다.

검문 도중, 누군가 서란 일행에게 다가왔다.

옷차림으로 보아하니 관리인 듯했다.

도시 검문소까지 나와 있는 건 다소 신기했다.

관리가 굉장히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순회 판사로 오신 류 법관님이시지요? 정말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진실.

재판이 많이 밀려 있었다.

암, 그렇고 말고.

일이 밀려 있으면 안 되지.

서란이 말했다.

“일단 법원으로 갈까요?”

관리는 반색했다.

“그러시겠습니까?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명판관 류서란의 데뷔 재판이 시작됐다.


당연하겠지만 ‘개작두를 대령하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건 순회 판사의 재량 밖이었다.

순회 판사의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건 경범죄나 사소한 민사 분쟁 정도가 전부였다.

좀도둑이 항변했다.

“정말 억울합니다! 배가 고파서 빵을 훔쳤는데 이 형량이라니요! 고작 빵 하나였습니다!”

진실.

그는 딱 하나의 빵만을 훔쳤다.

서란이 물었다.

“어떤 빵을 훔쳤습니까?”

“어, 그게...”

“치안관, 증거물을 제출하세요.”

치안관들이 낑낑거리며 증거물을 가져왔다.

성인 남성 다섯 명이 나란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빵이었다.

저걸 훔칠 생각을 했다는 게 더 대단했다.

서란이 지엄한 판결을 내렸다.

“투옥!”

좀도둑(아님)이 끌려나가며 외쳤다.

“또 상소할 거야!”

선계 장 발장은 이미 한 번 상소를 했다.

자유 도시 자체 재판소의 1심 판결에 불복한 결과, 상급 법원인 순회 재판소까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순회 재판의 판결에 대해서는 상소할 수 없었다.

다음 사건은 층간 소음 분쟁이었다.

특이하게도 윗집이 아랫집을 제소했다.

아랫집 거주자가 박쥐였던 탓이다.

윗집 거주자가 말했다.

“판사님, 매일 밤 천장 갉작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습니다!”

진실.

진짜 매일 밤 갉작거린다.

서란이 물었다.

“피고는 왜 밤마다 그러는 겁니까?”

“제가 야행성이라서...”

“그렇다면 어째서 주행성 종족용 공동 주택에 거주하는 겁니까?”

아랫집 거주자가 말했다.

“어, 예산 문제 때문에?”

거짓.

보조금 부정 수급을 위해서였다.

또다시 지엄한 판결.

“퇴거!”

박쥐 또한 질질 끌려나갔다.

하루 아침에 집이 없어졌지만 괜찮다.

보조금 부정 수급과 위증 때문에 투옥될 테니까.

다음 재판은 탈세 관련이었다.

불행히도 피고인이 용족이었다.

용안의 권능은 무용지물이 됐다.

피고인은 당당하게 말했다.

“탈세가 아닙니다. 절세입니다.”

“치안관, 피고인의 천라지망 검색 기록을 제출해 주세요.”

“존경하는 순회 판사님, 제가 탈세 혐의에 대해서 자백해도 되겠습니까?”

판결, 압류!

이후에도 많은 사건이 서란을 기다리고 있었다.

채무 불이행, 토지 소유권 분쟁, 점유 시효 문제, 영업 정지 처분 취소소송, 부작위위법확인소송, 가처분 신청 등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다가 점심 시간이 됐다.

서란 일행은 법원 구내식당으로 이동했다.

오늘의 점심은 찜 요리였다.

처음 보는 채소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아까 일행을 안내했던 관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류 법관님, 혹시 오후 재판도 하시나요?”

“아까 보니까 할 일이 태산이더라고요. 빨리빨리 해치워 버리죠 뭐.”

“아, 그러시겠어요? 그러면 혹시 저녁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가 따로 준비해 드려도 될까요? 물론, 류 법관님만 괜찮으시다면 말입니다.”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알겠습니다! 아, 못 드시는 음식은 없으신가요?”

“다 잘 먹어요.”

관리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물러났다.

그리고 부하 직원에게 명령했다.

“석식 시간에 맞춰서 만찬 차려 놔라.”

“류 법관님 오후 재판도 하신대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게 말이야. 저번에 온 순회 판사는 격일로, 그것도 오전 재판만 깔짝거리다가 갔는데.”

부하 직원이 말했다.

“그것 때문에 재판이 엄청 밀렸었잖아요.”

“아무튼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혹시라도 불편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모셔. 숙소도 더 꼼꼼히 청소하고, 혹여나 관광이 하고 싶으실 수도 있으니까 안내인도 준비해 두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알지?”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기껏 준비한 숙소가 쓰이는 일은 없었다.

간섭할 사람이 없는 환경과 밀린 재판이 많다는 명분이 상승 효과를 발휘했다.

서란은 저녁 만찬을 먹고도 숙소에 가지 않았다.

고삐가 풀린 13000근짜리 마차가 내달렸다.

순회 재판, 24시간 영업 중.


한 여인이 무인도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누워 있는 곳은 진창 한복판이었다.

하지만 여인이 입고 있는 백의는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고른 호흡.

아름답고 성숙한 외형.

그리고 이마에 달린 청자색 사슴뿔.

반인반룡의 여인이 눈을 떴다.

그녀는 비속불박진군, 선계에 단 일곱만 존재하는 지선 중 하나였다.

신선이 되기 전 이름은 주양강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주양 진군이라 불리곤 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주양 진군은 도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후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저 멀리서 낯익은 냄새가 났다.

주양 진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면에 닿았던 의복과 신체, 그 어떤 곳에도 더러움은 묻어 있지 않았다.

청자색 용안이 어딘가를 응시했다.

새까만 바다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섬.

다양한 종족이 바글거리는 도시.

늦은 시간에도 불이 켜진 법원.

거기에 주양 진군이 찾던 존재가 있었다.

자주색 뿔과 용안을 지닌 반인반룡.

그녀가 방금 전 맡은 낯익은 냄새의 근원이었다.

주양 진군은 강한 흥미를 느꼈다.

오른발을 들고 그저 한 걸음 내딛었다.

직후, 주양 진군은 서란의 앞에 당도해 있었다.

그리고는 당황한 서란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구은랍의 사생아라도 되느냐?”

그녀는 비속불박진군 주양강.

언제나 방랑하는 반인반룡 지선.

그리고 그 어떤 것으로도 묶을 수 없고 얽지 못하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