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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장 수여식 바로 다음 날, 신입 법관들은 호출을 받고 다시금 흑단궁에 모였다.
근무지 배정 문제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연수원부터 수료해야 할 테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다.
인사과 직원이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며 말했다.
“방금 나눠 드린 종이에 발령 받고 싶은 구역을 정자로 적어 주세요. 위에 있는 게 1순위 지망이고 나머지 하나가 2순위 지망입니다. 특정 구역을 콕 집어 고르셔도 되고, 광역 행정 구역을 선택하셔도 됩니다.”
법관 하나가 손을 들고 물었다.
“특정 구역에 지망이 과도하게 몰리면 어떻게 됩니까? 추첨을 통해서 정하나요?”
인사과 직원이 대답했다.
“그런 경우에는 부득이 성적순으로 자르겠습니다.”
“당연히 채용 시험 최종 성적 말씀하시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다른 법관들 몇몇도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1지망, 2지망을 전부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각 행정 구역별 정원은 어떻게 되나요?
정수기는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느냐?
마침내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다.
신입 법관들은 서로서로 시선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수험 공부에만 몰두했던 이들답게 임기응변에는 하나같이 젬병이었다.
선계 최고의 인재들이 선보이는 두뇌전이라기보다는 우왕좌왕하는 미아 집단의 행태에 더 가까웠다.
결국, 보다 못한 인사과 직원이 말했다.
“이번에 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임시 발령지입니다. 10년의 시보 기간이 끝나면 다시 한번 근무지를 변경할 테니까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실 필요는 없어요.”
법관 대다수는 안심한 채 서류를 작성했다.
하지만 고득점자들은 아니었다.
선계 중심지 발령이 아른거리는 선두권답게, 더욱 치열한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누가 몇 점을 맞았고, 몇 등을 했는가.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선백파흑진군이, 언제나처럼, 합격자들의 성적과 등수를 도원향 누리집에 공개한 덕분이었다.
고득점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건 역시나 수석 합격자, 류서란이었다.
결원이 한 자리뿐인 구역도 꽤 많았다.
그런 곳을 선택했다가 류서란과 겹치기라도 하면 1지망이 허무하게 날아가는 격이었다.
그런데 류서란은 좀처럼 원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꼭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사실, 기다리고 있는 게 맞았다.
물 실컷 마시고 돌아온 담청이 말했다.
“서란, 나 왔다.”
“물 마시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나요?”
“정수기가 구석에 꼭꼭 숨어 있었다.”
류서란과 담청은 고민하지 않고 원서를 작성했다.
1지망은 임6 구역, 2지망은 임계 구역이었다.
남들과 겹칠 염려가 전혀 없는 장소 중 하나였다.
인사과 직원이 서류를 수거하며 말했다.
“근무지 배정 결과는 오늘 중으로 연락이 갈 겁니다. 통지서에 기재된 일시까지 발령 받은 근무지로 등청하시면 됩니다. 하나 마나 한 소리겠지만, 무단으로 지각하거나 결근하시면 절대 안됩니다. 시보 기간에는 조금만 잘못해도 임용이 취소되니까요.”
법관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
“연수원 대체용 영상 강의는 언제부터 들으면 되나요?”
“마음 내킬 때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다만 10년 안에는 전부 수료하셔야 해요.”
“시보 기간 중에 대체 강의 수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휴직 기간은 어느 정도나 되나요?”
인사과 직원이 대답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없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강의는 강의고, 업무는 업무죠.”
대체 강의 수강과 업무를 병행하라는 뜻이었다.
역시나 업무량 많기로 유명한 최고재판소였다.
병아리 법관들은 선백파흑진군의 무자비한 용인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인사과 직원이 원서의 장수를 세며 말했다.
“여러분을 보좌할 수행원들은 처음 등청하시는 날, 근무지에서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구성 인원은 호법 셋, 보좌관 셋입니다. 가급적이면 상호 간에 우호적으로 지내십시오. 바꾸고 싶다고 막 바꿀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이후, 인사과 직원은 서류 뭉치를 챙겨 떠났다.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내원이 말했다.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아, 나가실 때 임시 출입증은 잊지 말고 반납해 주세요.”
모여 있던 법관들은 제각기 자리를 떠났다.
류서란과 담청 또한 마찬가지였다.
임시 출입증을 반납하고 흑단궁을 나서자, 정오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문득 배가 고파진 담청이 말했다.
“서란, 점심 식사는 어찌할 테냐?”
“기왕 밖으로 나온 김에 외식하고 들어가죠.”
“그러자꾸나. 그런데 뭘 먹을지가 고민이구나.”
류서란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저 사람들을 따라가죠.”
“흑단궁 관리들을?”
“예, 원래 관청 근처 맛집은 관리들이 잘 알죠.”
류서란과 담청은 관리들의 뒤를 쫓아갔다.
흑단궁 인근 번화가는 점심 먹으러 나온 관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류서란과 담청은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곧이어 흑단궁 관리들이 식사를 주문했다.
다들 갈비탕을 시켰다.
류서란은 자연스럽게 손을 들고 주문했다.
“여기 갈비탕 두 개 주세요.”
“계산 먼저 해 드릴게요.”
“네.”
류서란은 단말기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담청은 식당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얼마 없던 빈자리마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두 여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양쪽 다 어디서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담청의 시선이 입구 쪽을 향했다.
“빈자리가 하나도 없네... 어쩌지?”
“다른 데 가야 하나?”
“아쉽다. 여기 정말 유명한 집인데...”
담청의 두뇌가 맹렬히 작동했다.
배가 고파서 성능이 대폭 감소했지만, 가까스로 두 여인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면접장 앞에서 마주친 울보1, 울보2였다.
때마침 돌아온 류서란이 물었다.
“담청 님, 왜 그러세요?”
“서란, 혹시 두 명쯤 동석해도 괜찮겠느냐?”
“저는 딱히 상관없어요.”
담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울보1(가칭)이 말했다.
“합석시켜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울보2(마찬가지로 가칭)도 말했다.
“맞아요, 여기 갈비탕 정말 먹고 싶었거든요.”
류서란이 사회인의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에이, 뭘요. 같은 법관끼리.”
담청이 대뜸 물었다.
“면접장에서는 어찌하여 울었던 것이냐?”
류서란의 팔꿈치가 담청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존댓말 모드로 전환된 담청이 재차 질문했다.
“면접장에서는 어떤 연유로 눈물을 흘리셨나요?”
울보1과 울보2가 서로를 마주 봤다.
둘 다 어색한 표정이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불쾌하다기보다는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울보1이 대표로 대답했다.
“음, 그게... 면접을 완전히 망친 줄 알았거든요. 문을 열고 나오는데 꼼짝없이 백 년을 더 공부하게 생겼다 싶었죠. 그런 생각을 하니까 저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담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시 공부 백 년 연장이라, 정말로 끔찍하군요. 저 또한 절실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렇고 말고요.”
잠깐의 정적.
때마침 주문한 갈비탕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게 굉장히 맛있어 보였다.
울보2는 호들갑을 떨어서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담청의 질문이 훨씬 빨랐다.
“옆에 계신 분은 무슨 까닭으로 낙루하셨나요?”
울보2는 떠듬떠듬 대답했다.
“아니, 그게... 저도 비슷한 이유로...”
“그러셨군요.”
“아, 예...”
또다시 어색한 침묵.
호기심을 충족한 담청은 갈비탕을 음미했다.
류서란은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그, 그래도 결국 두 분 다 합격하셨잖아요!”
울보1과 울보2도 연이어 호응했다.
“마, 맞아요! 지나고 보면 전부 추억이죠!”
“게다가 그 일을 계기로 친구도 생겼는걸요!”
류서란은 잽싸게 대화의 캐치볼을 이어 나갔다.
“두 분은 원래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었나요?”
울보1이 대답했다.
“예, 면접장에서 처음 본 사이에요. 울면서 서로 위로해 주다가 친해졌죠. 나이대도 비슷하고 대화도 잘 통하더라고요.”
“그래요?”
“네, 둘 다 3000살 정도예요.”
서란은 울보1과 울보2를 자세히 관찰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용족이 반인반룡의 연령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인반룡 또한 용족의 연령을 구분하지 못했다.
서란은 그냥 갈비탕이나 먹기로 했다.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났다.
괜히 맛집이 아니었다.
류서란-담청 듀오와 헤어진 울보1-울보2 듀오는 소화도 시킬 겸 인근 공원을 거닐기로 했다.
울보1이 말했다.
“아까 그 두 사람, 완전 애기더라.”
“1100살이랑 680살이면 애기 맞지.”
“난 그 나이 때 뭐 했더라?”
울보2가 말했다.
“하긴 뭘 해. 여의주 껴안고 수행했겠지.”
“듣고 보니 그러네. 근데 요즘 애들 되게 빠르다.”
“그니까, 심지어 둘 다 하계 출신이잖아.”
울보1이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같은 문파 소속이랬었지? 이름이 뭐였더라, 금죽문이었나?”
“아, 그런 이름이었지. 아무튼 저렇게 운 좋은 수도문파는 삼천세계를 통틀어도 얼마 안될 거야.”
“맞아.”
두 울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열심히 공원을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열두 바퀴 정도 돌았을 때, 울보2가 말했다.
“그런데 좀 불안하네.”
“뭐가?”
“금죽문 말이야. 왠지 곧 망할 것 같아.”
울보2가 물었다.
“망해? 갑자기 왜?”
“비승한 지 얼마 안 된 수도문파들은 어쩔 수 없이 승천자한테 의존하잖아.”
“그치, 하계에 있을 때부터 그랬을 테니까.”
울보1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죽문이라는 수도문파도 저 둘만 사라지면 바로 망하는 거 아니야?”
“저 둘은 괜찮지 않나? 양쪽 다 법관이잖아. 어떤 미친 수도자가 법관을 해쳐?”
“누가 죽인대?”
울보2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설마?”
그 무렵, 류서란과 담청의 단말기에 이적 제안서가 바닷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