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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의 모습은 서란의 상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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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아홉 달린 여우와 신선을 태운 두루미가 구름 위를 누비는 동양 판타지 장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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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는 퓨전 사이버펑크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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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점 점원이 밝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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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 모두 안목이 뛰어나시네요. 요즘은 족자형 단말기가 유행이거든요. 호불호 없는 기기 형태와 뛰어난 성능, 게다가 휴대의 편리성까지 잡았죠. 그래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이들 구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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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족자형 단말기를 도로록 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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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있으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얼굴을 보면서 얘기할 수 있다는 말이냐? 선계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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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최근에 승천하셨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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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막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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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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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더더욱 족자형 단말기가 필요하실 거예요. 화상 통화 정도는 단말기의 수많은 기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 밖에도 서신 전달 기능, 좌표 고정 기능, 사진 및 영상 촬영 기능 등이 탑재되어 있죠.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천라지망 접속 기능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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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설마설마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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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라지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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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천라지망, 도원향이 직접 개발하고 유지 및 보수하는 전 선계적 법력 통신망이죠. 공인된 단말기만 있으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정보의 바다죠. 화면에 있는 그물 그림을 누르시면 되니까 한번 사용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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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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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대로 그물 아이콘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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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구인에게는 굉장히 친숙한 형태의 네모 상자가 서란을 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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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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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이 검색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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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쭉한 상자를 누르시고 궁금한 걸 질문하시면 돼요. 글로 적든 음성으로 묻든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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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검색창을 콕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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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 인식기가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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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손가락으로 글씨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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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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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곧장 고양이 관련 정보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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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 고양이 요수 만드는 법’, ‘고양이 요수 약점’, ‘고양이 간식 사람이 모르고 먹으면’ 등등 다양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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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두 개 달린 고양이 사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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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이 소명의식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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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정말 배우는 게 빠르세요. 역시 하계에서 승천하신 분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봐요. 아참, 혹시 관청에서 비승 증명서는 발급받으셨을까요? 저희 매장이 승천자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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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좀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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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할인도 아니고 승천자 할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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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선계가 아니야, 라고 외쳐야 할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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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등백월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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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조금만 더 둘러보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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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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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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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백월은 미소로 화답한 뒤 담청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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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잉어가 헤엄치는 다섯 시진(10시간)짜리 동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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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면 최면에라도 걸린 줄 알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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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점을 벗어난 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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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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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백월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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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줄 아셨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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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여우 요수와 두루미 요수가 정답게 산천을 노니는,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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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전적인 상상을 하셨군요. 선계는 넓으니까 잘 찾아보면 문명 발달의 흐름이 비껴간 지역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금 보시는 바와 같아요. 기술이란 결국 발전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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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주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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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에는 단말기 판매점이 몰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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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자기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광고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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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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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전부 자기들이 원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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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판매점은 대부분 원조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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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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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백월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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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원래는 모두 같은 회사였거든요. 가격 경쟁으로 선계의 단말기 시장 전체를 장악했다가 반독점법에 걸려서 회사가 수천 개로 쪼개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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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만한 덩치의 회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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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향의 최고 심판관이 직접 내린 판결인데 뭐 어쩌겠습니까? 회사 쪼개야지. 저번에 얘기해 드린 적 있었죠? 조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거대한 진선경 용족이 한 분 계신다고. 그 분이 최고 심판관이십니다. 물론 지선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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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담청을 언뜻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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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족이 판관이면 위증은 꿈도 못 꾸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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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안에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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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로 비승하기 전에 담청이 알려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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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 온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부탁했을 무렵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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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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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처음부터 죄를 안 짓는 게 가장 좋죠.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조직적으로 위조 지폐를 생산하던 수도가문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됐을 것 같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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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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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죽지도 못했죠. 아마 지금까지도 명계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을 겁니다. 명계 관리자께서도 도원향 소속의 지선이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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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담청, 등백월은 족자형 단말기를 구매한 뒤 다시금 관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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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승강기를 타고 52층 토지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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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지 점유 신고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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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민원인으로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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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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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좀 특이하네요. 아무리 무주지 점유라지만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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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가 워낙 넓어야지요. 빈 땅을 마냥 놀리는 것보다는 누구라도 차지해서 관리하는 게 백배는 낫습니다. 적어도 요괴는 퇴치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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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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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인고의 시간 끝에 무주지 점유 신고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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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오죽문-금작파 합병 문파의 정식 명칭은 ‘금죽문’으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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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문은 문파명에 대나무만 들어가면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신경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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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작파 또한 이름에 황금이 들어가기만 하면 참새든 뱀이든 상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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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뱀부 멤버들은 토지과를 나와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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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곳은 77층의 비승 지원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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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여기는 좀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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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담청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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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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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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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승하면서 몇 개월이나 무수면 비행을 했고, 선계에 도착해서는 관청 뺑뺑이를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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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용이라고 해도 슬슬 피곤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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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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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졸리면 저한테 업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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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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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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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쿨쿨 자는 동안 차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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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로 다가간 서란은 자신과 담청 몫의 비승 지원금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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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보조금, 수선 격려금 등 혜택이 풍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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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비승 증명서를 발급받고 단말기를 개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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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층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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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야 등 수사가 있다지만, 다른 수도문파들은 막 비승하고 가뜩이나 경황없는 상황에서 이런 정보를 어디서 접하나요? 대부분 모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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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그래서 신청률이 굉장히 저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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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모르면 못 받는 돈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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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다 보니 선골 검사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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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관은 서란과 등백월, 곤히 잠든 담청의 법력을 추출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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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결과는 올해 안으로 통보해 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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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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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다 끝난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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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직 하나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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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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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또다시 승강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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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가 침으로 흥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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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업힌 상태에서도 정말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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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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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등백월을 기다리는 동안 벽보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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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벽보는 관광지를 안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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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는 무려 선계에 산재한 오행비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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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적혀 있는 내용만 보면 이게 오행비경인지 국립 공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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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 의식 신청을 마친 등백월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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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뭘 보고 계셨습니까? 아, 오행비경 관광 벽보였군요. 우연이네요, 제 비경 의식이 치러질 장소도 바로 이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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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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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이분기 정도면 순번이 돌아올 거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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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하고 반 년 정도만 기다리면 비경 의식을 치를 수 있다니, 서란이 여기가 선계라는 사실이 새삼 크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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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향이라는 국제 연맹이 비경을 관리하고 원영기 수사가 민원 접수를 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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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별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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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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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처리가 굉장히 능숙하시네요? 봉인된 기간이 짧지는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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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에는 큰 변화가 드물거든요. 도원향과 거기 소속된 지선 다섯 분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나머지 두 분은 세상사에 관심이 영 없으시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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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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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등백월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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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보기보다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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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준선경이라는 높은 경지까지 도달했던 수도자답지 않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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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남을 부리기보다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는 쪽에 더 가깝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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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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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문파 식구들이 기다리는 군도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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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군도의 정식 명칭은 극광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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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광, 오로라가 빈번해서 그렇게들 부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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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선골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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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제 단말기를 펄럭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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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도 선골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공백지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설명이 너무 길어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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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백월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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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지체의 가장 큰 특징은 예민한 기감입니다. 하긴, 담청 님은 한때 잉어였다고 하셨죠? 잉어처럼 수명이 짧은 생물이 무슨 수로 영수를 거쳐 용이 되었나 했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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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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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 상승 속도가 빠른 선골 중에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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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아진 담청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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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백월, 그대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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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 선골은 태혼지체라고 하는군요. 혼백의 격이 태생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불가사의한 위압감을 뿜어내기 때문에 요수술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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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렇구나. 서란, 네 선골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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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결과지를 들여다보던 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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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타고난 선골이 없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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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죽문 비승 0년, 연말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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