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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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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의 모습은 서란의 상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와 신선을 태운 두루미가 구름 위를 누비는 동양 판타지 장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퓨전 사이버펑크에 가까웠다.

판매점 점원이 밝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세 분 모두 안목이 뛰어나시네요. 요즘은 족자형 단말기가 유행이거든요. 호불호 없는 기기 형태와 뛰어난 성능, 게다가 휴대의 편리성까지 잡았죠. 그래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이들 구매하세요.”

담청이 족자형 단말기를 도로록 펴며 물었다.

“이것만 있으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얼굴을 보면서 얘기할 수 있다는 말이냐? 선계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구나.”

“아, 최근에 승천하셨나 봐요?”

“오늘 막 도착했다.”

점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족자형 단말기가 필요하실 거예요. 화상 통화 정도는 단말기의 수많은 기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 밖에도 서신 전달 기능, 좌표 고정 기능, 사진 및 영상 촬영 기능 등이 탑재되어 있죠.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천라지망 접속 기능이지만요.”

서란은 설마설마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천라지망이요?”

“예, 그렇습니다. 천라지망, 도원향이 직접 개발하고 유지 및 보수하는 전 선계적 법력 통신망이죠. 공인된 단말기만 있으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정보의 바다죠. 화면에 있는 그물 그림을 누르시면 되니까 한번 사용해 보세요.”

“아, 예...”

시키는 대로 그물 아이콘을 꾹 눌렀다.

21세기 지구인에게는 굉장히 친숙한 형태의 네모 상자가 서란을 반겨줬다.

검색창이었다.

점원이 검색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쭉한 상자를 누르시고 궁금한 걸 질문하시면 돼요. 글로 적든 음성으로 묻든 상관 없습니다.”

손끝으로 검색창을 콕 찔렀다.

필기 인식기가 작동했다.

서란은 손가락으로 글씨를 적었다.

‘고양이’

화면은 곧장 고양이 관련 정보로 가득찼다.

‘애완 고양이 요수 만드는 법’, ‘고양이 요수 약점’, ‘고양이 간식 사람이 모르고 먹으면’ 등등 다양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꼬리 두 개 달린 고양이 사진도 있었다.

점원이 소명의식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머, 정말 배우는 게 빠르세요. 역시 하계에서 승천하신 분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봐요. 아참, 혹시 관청에서 비승 증명서는 발급받으셨을까요? 저희 매장이 승천자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거든요.”

서란은 좀 어이가 없었다.

수험생 할인도 아니고 승천자 할인이라니.

이런 건 선계가 아니야, 라고 외쳐야 할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그때 등백월이 말했다.

“저희 조금만 더 둘러보고 올게요.”

“아, 그러시겠어요?”

“예, 그럼...”

등백월은 미소로 화답한 뒤 담청을 챙겼다.

담청은 잉어가 헤엄치는 다섯 시진(10시간)짜리 동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최면에라도 걸린 줄 알 정도였다.

판매점을 벗어난 서란이 말했다.

“이게 선계...?”

등백월이 물었다.

“어떨 줄 아셨는데요?”

“아니, 뭐... 여우 요수와 두루미 요수가 정답게 산천을 노니는, 그런 거...?”

“정말 고전적인 상상을 하셨군요. 선계는 넓으니까 잘 찾아보면 문명 발달의 흐름이 비껴간 지역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금 보시는 바와 같아요. 기술이란 결국 발전하는 거니까요.”

서란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 거리에는 단말기 판매점이 몰려 있었다.

하나같이 자기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광고판이 인상적이었다.

서란이 중얼거렸다.

“뭐 전부 자기들이 원조래...?”

“여기 있는 판매점은 대부분 원조가 맞습니다.”

“맞다고요?”

등백월이 대답했다.

“예, 원래는 모두 같은 회사였거든요. 가격 경쟁으로 선계의 단말기 시장 전체를 장악했다가 반독점법에 걸려서 회사가 수천 개로 쪼개졌어요.”

“아니, 그만한 덩치의 회사가요?”

“도원향의 최고 심판관이 직접 내린 판결인데 뭐 어쩌겠습니까? 회사 쪼개야지. 저번에 얘기해 드린 적 있었죠? 조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거대한 진선경 용족이 한 분 계신다고. 그 분이 최고 심판관이십니다. 물론 지선이시죠.”

서란이 담청을 언뜻 바라보며 말했다.

“용족이 판관이면 위증은 꿈도 못 꾸겠네요.”

용안에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힘이 있다.

선계로 비승하기 전에 담청이 알려줬었다.

문병 온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부탁했을 무렵의 일이었다.

등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처음부터 죄를 안 짓는 게 가장 좋죠.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조직적으로 위조 지폐를 생산하던 수도가문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됐을 것 같으세요?”

“다 죽었나요?”

“곱게 죽지도 못했죠. 아마 지금까지도 명계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을 겁니다. 명계 관리자께서도 도원향 소속의 지선이시거든요.”

서란과 담청, 등백월은 족자형 단말기를 구매한 뒤 다시금 관청으로 향했다.


일행은 승강기를 타고 52층 토지과에 도착했다.

무주지 점유 신고를 위해서였다.

여기도 민원인으로 들끓었다.

서란이 물었다.

“그런데 좀 특이하네요. 아무리 무주지 점유라지만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라니.”

“선계가 워낙 넓어야지요. 빈 땅을 마냥 놀리는 것보다는 누구라도 차지해서 관리하는 게 백배는 낫습니다. 적어도 요괴는 퇴치할 테니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일행은 인고의 시간 끝에 무주지 점유 신고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참고로 오죽문-금작파 합병 문파의 정식 명칭은 ‘금죽문’으로 결정됐다.

오죽문은 문파명에 대나무만 들어가면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신경쓰지 않았다.

금작파 또한 이름에 황금이 들어가기만 하면 참새든 뱀이든 상관 없었다.

골-든 뱀부 멤버들은 토지과를 나와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77층의 비승 지원과였다.

다행히 여기는 좀 한산했다.

그때, 담청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비승하면서 몇 개월이나 무수면 비행을 했고, 선계에 도착해서는 관청 뺑뺑이를 돌고 있었다.

제아무리 용이라고 해도 슬슬 피곤할 만했다.

서란이 웃으며 말했다.

“담청 님, 졸리면 저한테 업히세요.”

“고맙구나...”

“뭘요.”

담청이 쿨쿨 자는 동안 차례가 돌아왔다.

창구로 다가간 서란은 자신과 담청 몫의 비승 지원금을 신청했다.

정착 보조금, 수선 격려금 등 혜택이 풍성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비승 증명서를 발급받고 단말기를 개통한 것이었다.

다른 층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서란이 물었다.

“그런데 우리야 등 수사가 있다지만, 다른 수도문파들은 막 비승하고 가뜩이나 경황없는 상황에서 이런 정보를 어디서 접하나요? 대부분 모르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신청률이 굉장히 저조하죠.”

“전형적인 모르면 못 받는 돈이었군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선골 검사장에 도착했다.

검사관은 서란과 등백월, 곤히 잠든 담청의 법력을 추출해 갔다.

검사 결과는 올해 안으로 통보해 준다고 했다.

서란이 물었다.

“이제 정말 다 끝난 거 맞죠?”

“아뇨, 아직 하나가 남았습니다.”

“아, 역시...”

일행은 또다시 승강기에 올라탔다.


어깨가 침으로 흥건했다.

담청은 업힌 상태에서도 정말 잘 잤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였다.

서란은 등백월을 기다리는 동안 벽보를 읽었다.

커다란 벽보는 관광지를 안내하고 있었다.

관광지는 무려 선계에 산재한 오행비경이었다.

여기에 적혀 있는 내용만 보면 이게 오행비경인지 국립 공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비경 의식 신청을 마친 등백월이 돌아왔다.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뭘 보고 계셨습니까? 아, 오행비경 관광 벽보였군요. 우연이네요, 제 비경 의식이 치러질 장소도 바로 이곳입니다.”

“시기가 언제인가요?”

“내년 이분기 정도면 순번이 돌아올 거라더군요.”

신청하고 반 년 정도만 기다리면 비경 의식을 치를 수 있다니, 서란이 여기가 선계라는 사실이 새삼 크게 와닿았다.

도원향이라는 국제 연맹이 비경을 관리하고 원영기 수사가 민원 접수를 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그야말로 별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서란이 물었다.

“일처리가 굉장히 능숙하시네요? 봉인된 기간이 짧지는 않았을텐데...”

“선계에는 큰 변화가 드물거든요. 도원향과 거기 소속된 지선 다섯 분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나머지 두 분은 세상사에 관심이 영 없으시기도 하고요.”

“흠...”

서란은 등백월을 바라봤다.

그녀는 보기보다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한때 준선경이라는 높은 경지까지 도달했던 수도자답지 않다는 뜻이었다.

여러모로 남을 부리기보다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는 쪽에 더 가깝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무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일행은 문파 식구들이 기다리는 군도로 복귀했다.

참고로 군도의 정식 명칭은 극광제도였다.

극광, 오로라가 빈번해서 그렇게들 부른다고 했다.

며칠 뒤, 선골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담청이 제 단말기를 펄럭이며 물었다.

“나한테도 선골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공백지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설명이 너무 길어서 잘 모르겠다.”

등백월이 말했다.

“공백지체의 가장 큰 특징은 예민한 기감입니다. 하긴, 담청 님은 한때 잉어였다고 하셨죠? 잉어처럼 수명이 짧은 생물이 무슨 수로 영수를 거쳐 용이 되었나 했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좋은 것이냐?”

“경지 상승 속도가 빠른 선골 중에 하나죠.”

기분이 좋아진 담청이 물었다.

“등백월, 그대는 어떤가?”

“음... 제 선골은 태혼지체라고 하는군요. 혼백의 격이 태생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불가사의한 위압감을 뿜어내기 때문에 요수술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하네요.”

“오오, 그렇구나. 서란, 네 선골은 무엇이냐?”

멍하니 결과지를 들여다보던 서란이 말했다.

“저, 타고난 선골이 없다는데요?”

금죽문 비승 0년, 연말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