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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인형을 구슬로 만들어서 간편하게 휴대하려던 야망이 좌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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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방은 낙담한 표정으로 다탁에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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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꾼이 내온 고급차도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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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녀들의 희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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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자 류서란이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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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미있었잖아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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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의 두 번째 연장자 호혜문도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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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옳습니다. 비록 마무리가 아쉽기는 했지만, 충분히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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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고령자, 담청이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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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슬픈 결말, 나는 인정할 수 없다! 하늘도 무심하지! 어째서 우리의 노력이 보답 받을 수 없단 말이냐!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된다! 내가 천기를 읽어 해결책을 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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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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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남겨진 두 사람이 서둘러 뒤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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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호혜문은 눈 내리는 밤하늘을 고속 비행하는 담청의 뒷모습만을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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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눈 내리는 하늘, 사슴뿔, 고속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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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요소들이 서란의 옛 기억을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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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의 선봉대장인 붉은코 순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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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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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 붙는다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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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듣고 있던 호혜문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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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무슨 노래인가요? 처음 들어본 것 같네요. 유나라 민요인 모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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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중에 흥얼거리던 서란이 화들짝 놀라서 딴청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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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라뇨, 그냥 즉흥적으로 부른 겁니다. 우리 차나 마저 마시죠. 어차피 담청 님은 한동안 안 돌아오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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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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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차분히 앉아서 다 식은 차를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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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주전자가 절반쯤 남았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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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전파를 수신하고 돌아온 담청은 당연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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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겹게 춤추며 등장한 금영영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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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밀린 숙제, 이제는 안녕! 자유를 되찾은 금영영, 지금 여기에 입장! 춥고 목마른 본좌에게 따듯한 음료 한 잔을 진헌할 만고충신이 이 자리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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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쓱으쓱 어깨춤을 추며 다탁으로 다가온 금영영은 찻주전자를 그대로 들어서 마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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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정도 있던 찻물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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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다신 금영영이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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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었군. 하지만 괜찮다! 이 몸은 관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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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방금 전까지 올해분 숙제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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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문파를 벗어난 해방감을 만끽하며 실컷 노느라 차곡차곡 쌓아둔 탓에 굉장한 분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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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며칠 뒤가 기한이라서 요즘 엄청 바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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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흥이 잔뜩 오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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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다들 표정이 말이 아니군! 무슨 일이지? 이 몸에게 말해라, 단숨에 해결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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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호혜문은 금영영의 출신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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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작파는 법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수도문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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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져야 본전이니 함구할 이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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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선을 교환하던 두 사람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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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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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꾼이 따듯한 차를 새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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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두육비 거대인형에 대한 설명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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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경청하던 금영영이 시원스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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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건 조금 어렵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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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말투마저 정상으로 돌아온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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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떻게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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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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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친자식이라도 아픈가 오해할 절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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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영영의 견해는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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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들어보니까 꽤 큰 인형이라며? 애초에 인형처럼 복잡한 물건은 축소나 변형이 힘들어. 하물며 그렇게 큰 물건이면 거의 불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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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들고 있던 과자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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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삼 개월 시한부 선고를 들은 드라마 여주인공 같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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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절망에 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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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구질구질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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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방천화극은 잘만 변형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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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이 당황하지 않고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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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전부 금속으로 만들어진 법기니까 그렇지. 약간만 과장하면 구조적으로는 금속 주괴랑 다를 바가 없어. 단일한 소재로 만들었고, 조립하지 않은 한 덩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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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금영영의 장황한 설명을 요약하면, 너무 복잡하고 거대한 탓에 소형화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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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좌절감에 서란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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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무엇인가가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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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탁 위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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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지 낀 두 손으로 하관을 가린 류서란이 잠시 고민하다가 조용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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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작고 간단한 구조는 소형화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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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이 호언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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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내가 누구? 금작파의 유망주! 간단한 물건을 소형화하는 건 식은 차 마시기지! 오십 개든 백 개든 가져와 보라고! 전부 구슬로 바꿔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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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낌새를 눈치챈 호혜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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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떤 계책이 떠오른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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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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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크고 복잡한 물건이라서 안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처음부터 하나뿐이었습니다. 작고 간단한 물건으로 바꾸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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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약한 다수, 크고 강한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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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호혜문이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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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엄숙하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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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삼두육비 거대인형을 토막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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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감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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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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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어느새 밝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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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한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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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스물넷, 몸통 열둘, 팔 일흔둘. 총 수량은 백하고도 여덟. 소형화는 영영이 담당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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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개든 백 개든 가져오라고 허세를 부렸던 금영영이 당황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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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팔 개? 내가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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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호혜문이 환한 미소로 감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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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흔쾌히 자원해 줘서 정말 고마워. 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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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감사드려요, 금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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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눈사람이 된 담청이 복귀하면서 예술가 삼인방이 다시 모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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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구슬 변환 담당 금영영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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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추가된 예술가 사천왕은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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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두육비 거대인형은 빠르게 인수분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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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심사 당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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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목에 구슬 목걸이를 걸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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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을 잠 못 이루게 한 구슬은 전부 백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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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가 너무 길어서 몇 겹으로 겹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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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차림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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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담당자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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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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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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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힘찬 기합과 함께 수인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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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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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를 구성하던 구슬들이 일제히 발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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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법력을 머금은 구슬이 저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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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벌떼처럼 사방으로 발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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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던 구슬은 이내 저마다 정해진 형상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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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제자리에서 높이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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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발판처럼 생긴 부속품이 서란을 받치고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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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에서 변형된 기괴한 벽돌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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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서로 끼우고 돌리느라 난리법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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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힘없는 조립 과정이 끝나고 인형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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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는 일순간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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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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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완성된 삼두육비 거대인형이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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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저희의 걸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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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내부에 탑승한 서란의 증폭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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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는 초현실적인 조형미에도 불구하고 금방 정신을 가다듬고 제 할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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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한 조립 과정과 동작을 위해서 어떤 논리 구조를 탑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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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수동 조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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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도대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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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단계의 인형술사는 인형을 직접 조종하지요! 한마디로 이건 입문 수준, 그야말로 기초적인 인형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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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는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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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인형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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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담당자가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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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인형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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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금강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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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에 찬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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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는 터덜터덜 사무실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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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게 세상을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오죽문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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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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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차마 내키지 않는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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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야차는, 인형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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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겨울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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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변신합체 삼두육비 거대인형 금강야차는 예술가 사천왕의 손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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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고, 서란은 스물한 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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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죽문에 이런 얘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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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수사님은 참 좋은 분이지만, 심미안이 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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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봄바람을 즐기며 잠자던 서란이 갑자기 인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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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꿈속에 두 인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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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물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다소 애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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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과 귀신 한 명이 그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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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젓가락 같은 팔다리를 가진 두꺼운 책이 울분에 차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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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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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이라서 둘로 분열되어 있던 소녀 서란과 소년 서란이 동시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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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원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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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책이 더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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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한 너희 년놈들이 나를 먼지투성이 금고에 처박아 둬서 너무나 원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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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표지에 ‘학습인형연구’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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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화된 연구서가 연신 분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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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서란과 소년 서란은 매타작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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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젓가락에 두들겨 맞던 서란즈를 살려준 건 어떤 인상 좋은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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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너무 그러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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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서가 얌전해지자 노인이 서란즈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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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네들에게 정말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네. 아무도 찾지 않는 인형술사가 제자를 두 명이나 얻었으니 말이야. 나는 참 행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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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이마에 ‘인형애호가’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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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을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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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본 적 없는 연구서 저자의 상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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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꿈속이라서 그런지 논리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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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근자였던 그는 죽는 순간까지 청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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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찬가지로 꿈속이라서 논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던 서란즈는 깜빡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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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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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동시에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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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깰 때까지 연구서와 인형애호가는 서란즈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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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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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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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갈아 가면서 병 주고 약 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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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인 당근과 채찍, 혹은 좋은 경찰 나쁜 경찰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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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굉장히 효과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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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서란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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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니까, 역시 수동 조작을 인형술이라고 우기는 건 조금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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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머리가 봉합된 서란이 제정신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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