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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종이를 앞에 두고 고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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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로 비승하기 전에 끝마쳐야 할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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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가 아닌 작가 류서란으로서의 과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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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인형술사 소년과 인형 소녀’ 시리즈를 완결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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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형인형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어언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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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해안 동맹의 결성과 지저 세계의 문물 교류 정책 덕분에 서란의 소설은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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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 좀 홍보해 볼 요량으로 쓴 책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될 줄은 작가 본인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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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륙 각지에 분포된 인형인형 시리즈의 독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이 영원히 연재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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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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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언제까지고 인계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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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은 여유가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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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근을 조화시키고, 우화 의식도 치르고, 입구 막기를 시전 중인 독안룡도 치워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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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점차 바빠질 걸 고려하면 연재가 가능한 시간은 아무리 길어 봐야 5년 이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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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슬슬 결말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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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끝난다는 분위기도 풍겨 주고, 여태 쌓아둔 복선도 회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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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독자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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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집필 보조용 설정집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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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회수 복선, 회수가 완료된 복선, 앞으로 뿌려야 할 복선, 중간에 폐기된 설정, 구체화가 덜 된 사이드 스토리 등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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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도 실제 집필 못지 않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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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까지의 전개를 빠르게 훑어 본 서란은 다시금 시선을 종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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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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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생각해 둔 결말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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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되찾은 세계, 마침내 생명을 얻은 인형,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 소년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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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뭔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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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팔짱을 낀 채 심사숙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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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더 괜찮은 결말이 떠오를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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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고뇌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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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몸을 배배 꼬던 서란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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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원래 생각했던 대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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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형인형 시리즈의 결말은 ‘모험을 끝마친 두 사람은 알콩달콩 잘 살았답니다.’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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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고민하기 귀찮아서 대충 정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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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게 서란이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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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인형 시리즈의 스토리는 현재 클라이맥스 부분에 다다른 상태라고 봐도 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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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 구조를 고려했을 때, 이제부터는 갈등을 해소하고 마무리 짓는 내용이 나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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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연착륙 단계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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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반전을 추가했다가는 오히려 자충수로 작용할 확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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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속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뭔가 보여 드리겠다며 풀악셀을 밟으면 필히 사고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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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인형인형 시리즈는 25년 간 연재된 초장편 소설, 이쯤 되면 사고가 아니라 재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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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사람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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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25년 동안 자기 작품을 사랑해 준 독자들을 고문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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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기 때문에 장서각이 불타오르는 광경도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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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마친 서란은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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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어인족이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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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급적이면 선계에 데려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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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용궁에 머무르기 시작한 3년 전부터 동반 승천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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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오죽문에 보관해 둔 전대 용신의 연구 자료를 다시금 용궁으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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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승 전까지 연구를 마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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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호기로운 마음가짐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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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구는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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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의 두뇌가 간발의 차이로 연구 작업의 최소 사양을 달성하지 못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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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열 현상과 함께 극심한 두통이 동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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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녀처럼 따라다니던 등 진군이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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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사람을 부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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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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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국제 학회에 연락해서 연구 인력을 요청하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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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소매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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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장 국제 학회에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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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용궁은 아슬아슬하게 통화권 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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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학회 관계자가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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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국제 학회 사무처입니다. 전화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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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구나, 급한 볼일이 있어서 이렇게 연락을 했다. 어인족 동반 승천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 용궁으로 연구원들을 파견해 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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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용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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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학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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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의 존재는 대외비였지만, 동부 해안 동맹 소속 수도문파들에게는 어느 정도 공개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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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국제 학회도 담청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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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학회 관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담청의 요청은 대자연의 지엄한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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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사자는 딱히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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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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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용이라는 영물은 신이나 자연 현상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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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시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용을 직시하면 천벌 받는다.’라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7할을 넘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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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이가 많은 수도자일수록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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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국제 학회 관계자들 정도 나이대의 집단이라면 9할도 우습게 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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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학회 관계자들은 심각한 얼굴로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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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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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벌려 놓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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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있나요, 미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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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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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좀 불경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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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녀님께서는 납득하셨다고 해도 혹여 하늘이 진노하시지는 않을까 염려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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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용이란 본디 천벌의 대행자... 일리 있는 고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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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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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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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냥 공덕을 쌓는 셈 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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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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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투표할 필요도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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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어영부영 끝났고, 국제 학회는 대규모 연구 인력을 용궁으로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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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그 날부터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연구 총책임자에게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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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늘은 성과가 좀 있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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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합니다, 용녀님. 아직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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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알겠다. 조만간 또 방문하도록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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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가 저녁 먹고 한 번 더 오겠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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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와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니까 정말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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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떠난 뒤, 연구원들은 더없이 간절한 심정으로 전대 용신의 연구 자료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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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용신은 상상 이상의 기록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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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기록물을 타인에게 보여주길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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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반에서 독자를 향한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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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용신의 글쓰기 방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고문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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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용신은 수천 년을 넘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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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아온 세월만큼 방대한 지식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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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를 읽는 능력까지 고려하면 인계의 그 누구도 전대 용신의 지식량을 따라갈 수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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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축적된 지식량과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글쓰기 방식이 결합되자 지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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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용신의 글에는 원인과 결과만 있을 뿐, 과정이라는 게 존재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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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전개가 거의 층수 단위로 건물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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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용신이 폴짝 뛰어서 2층으로 올라가면 연구원들은 계단을 한 칸 한 칸 조립하면서 따라가는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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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계단 한 칸, 즉 논리 전개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적절한 지식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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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처럼 쌓인 전대 용신의 장서들을 하나하나 조사해야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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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건 연구원들의 전공 분야와 출신 성분이 굉장히 다채롭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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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개국에서 집결한 온갖 학문의 달인들은 전대 용신의 무자비한 연구 자료를 차근차근 해석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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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승리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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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해석이 완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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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기의 해 이후로 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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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인형 시리즈의 완결 편을 집필하던 서란은 부름을 받고 전대 용신의 수집품 창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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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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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도 담청은 향로 법보를 끌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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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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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그 향로는 왜 들고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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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향로 법보야말로 전대 용신이 완성한 동반 승천 법술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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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잠깐만요... 그 연구가 성공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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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내심 전대 용신의 연구가 실패했으리라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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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여의주를 완성한 용이라 할지라도 한 종족 전체를 데리고 비승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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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반량이 산술적으로 증가할 때, 비승을 주도하는 자의 부담은 지수적으로 폭증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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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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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성공했고말고, 지금 당장 보여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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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전대 용신의 수집품 창고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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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조금씩 정리한 덕분인지 내부를 돌아다니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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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산호로 만든 작은 제단 앞에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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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제단의 홈을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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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 법보가 원래 놓여 있던 곳이 여기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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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기서 가져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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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홈에 향로의 다리를 찰칵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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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단전에서 여의주를 꺼내 법문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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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 법보는 밀려 들어오는 혼원법력을 흡수하며 덜그럭덜그럭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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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동반 승천의 법술이 발동하며 둔중한 파동이 용궁 전체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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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곧바로 이변을 감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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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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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용신의 수집품 창고는 정리정돈을 열심히 했음에도 답답한 느낌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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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를 하도 많이 모아 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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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들판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개방감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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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금방 원인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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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법보에 담긴 신선의 힘을 이용해서 공간을 확장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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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맞췄다, 지금은 이 방만 크게 만들었지만 사전 준비가 갖춰지면 용궁의 내부 공간 전체를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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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족 전체를 용궁에 태운 채로 비승할 작정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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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마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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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뿐만이 아니다. 용궁의 외부를 축소시키고 시간의 흐름을 왜곡시켜서 내부의 어인족을 동면 상태로 만드는 기능도 있었다. 아마도 비승 도중에 가해질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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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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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에 담긴 신선의 권능마저 활용하는 법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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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 승천의 법술은 어인족을 향한 전대 용신의 애정이 빚어낸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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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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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전대 용신은 왜 사라진 거죠? 동반 승천의 법술도 이미 완성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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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구나. 연구 자료의 마지막 부분은 전대 용신과 함께 사라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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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대 용신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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