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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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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종이를 앞에 두고 고민에 잠겼다.

선계로 비승하기 전에 끝마쳐야 할 일이 있었다.

수도자가 아닌 작가 류서란으로서의 과업이었다.

그건 바로 ‘인형술사 소년과 인형 소녀’ 시리즈를 완결내는 것이었다.

처음 인형인형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어언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동부 해안 동맹의 결성과 지저 세계의 문물 교류 정책 덕분에 서란의 소설은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인형술 좀 홍보해 볼 요량으로 쓴 책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될 줄은 작가 본인도 몰랐었다.

서대륙 각지에 분포된 인형인형 시리즈의 독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이 영원히 연재되길 바랐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서란이 언제까지고 인계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아직은 여유가 꽤 있었다.

오영근을 조화시키고, 우화 의식도 치르고, 입구 막기를 시전 중인 독안룡도 치워야 했으니까.

하지만 점차 바빠질 걸 고려하면 연재가 가능한 시간은 아무리 길어 봐야 5년 이내였다.

이제부터 슬슬 결말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곧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끝난다는 분위기도 풍겨 주고, 여태 쌓아둔 복선도 회수해야 했다.

그래야 독자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테니까.

서란은 집필 보조용 설정집을 펼쳤다.

그리고 미회수 복선, 회수가 완료된 복선, 앞으로 뿌려야 할 복선, 중간에 폐기된 설정, 구체화가 덜 된 사이드 스토리 등을 점검했다.

이런 과정도 실제 집필 못지 않게 중요했다.

결말까지의 전개를 빠르게 훑어 본 서란은 다시금 시선을 종이로 옮겼다.

“흠...”

미리 생각해 둔 결말은 다음과 같았다.

평화를 되찾은 세계, 마침내 생명을 얻은 인형,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 소년과 소녀.

뭔가, 뭔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서란은 팔짱을 낀 채 심사숙고했다.

훨씬 더 괜찮은 결말이 떠오를 것 같기도 했다.

창작자의 고뇌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자리에서 몸을 배배 꼬던 서란이 눈을 떴다.

“역시, 원래 생각했던 대로 가자.”

결국 인형인형 시리즈의 결말은 ‘모험을 끝마친 두 사람은 알콩달콩 잘 살았답니다.’로 결정됐다.

더 고민하기 귀찮아서 대충 정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게 서란이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인형인형 시리즈의 스토리는 현재 클라이맥스 부분에 다다른 상태라고 봐도 무방했다.

기승전결 구조를 고려했을 때, 이제부터는 갈등을 해소하고 마무리 짓는 내용이 나와야만 했다.

한마디로 연착륙 단계라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반전을 추가했다가는 오히려 자충수로 작용할 확률이 높았다.

안 그래도 속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뭔가 보여 드리겠다며 풀악셀을 밟으면 필히 사고가 난다.

심지어 인형인형 시리즈는 25년 간 연재된 초장편 소설, 이쯤 되면 사고가 아니라 재난이었다.

예술이란 사람을 위한 것.

서란은 25년 동안 자기 작품을 사랑해 준 독자들을 고문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 때문에 장서각이 불타오르는 광경도 보고 싶지 않았다.

고민을 마친 서란은 붓을 들었다.


담청은 어인족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선계에 데려가고 싶었다.

막 용궁에 머무르기 시작한 3년 전부터 동반 승천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다.

담청은 오죽문에 보관해 둔 전대 용신의 연구 자료를 다시금 용궁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비승 전까지 연구를 마치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호기로운 마음가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연구는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담청의 두뇌가 간발의 차이로 연구 작업의 최소 사양을 달성하지 못한 탓이었다.

발열 현상과 함께 극심한 두통이 동반됐다.

그때, 시녀처럼 따라다니던 등 진군이 제안했다.

“차라리 사람을 부리시지요.”

“사람을?”

“예, 국제 학회에 연락해서 연구 인력을 요청하면 되지 않을까요?”

담청은 소매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곧장 국제 학회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용궁은 아슬아슬하게 통화권 내였다.

국제 학회 관계자가 전화를 받았다.

“예, 국제 학회 사무처입니다. 전화 받았습니다.”

“반갑구나, 급한 볼일이 있어서 이렇게 연락을 했다. 어인족 동반 승천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 용궁으로 연구원들을 파견해 줄 수 있겠느냐?”

“요, 용궁이요?”

국제 학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담청의 존재는 대외비였지만, 동부 해안 동맹 소속 수도문파들에게는 어느 정도 공개된 상황이었다.

당연히 국제 학회도 담청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국제 학회 관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담청의 요청은 대자연의 지엄한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당사자는 딱히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예로부터 용이라는 영물은 신이나 자연 현상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최근 실시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용을 직시하면 천벌 받는다.’라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7할을 넘을 정도였다.

특히 나이가 많은 수도자일수록 더 그랬다.

그러니 국제 학회 관계자들 정도 나이대의 집단이라면 9할도 우습게 달성할 수 있었다.

국제 학회 관계자들은 심각한 얼굴로 논의했다.

“파견, 해야겠죠?”

“하지만 벌려 놓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어쩔 수 있나요, 미뤄야죠.”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건 어떨까요?”

“그건 좀 불경하지 않나요?”

“용녀님께서는 납득하셨다고 해도 혹여 하늘이 진노하시지는 않을까 염려되네요.”

“하긴, 용이란 본디 천벌의 대행자... 일리 있는 고견이십니다.”

“차라리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긍정적으로요?”

“예, 그냥 공덕을 쌓는 셈 치는 거죠.”

“오호라...”

굳이 투표할 필요도 없을 듯했다.

회의는 어영부영 끝났고, 국제 학회는 대규모 연구 인력을 용궁으로 파견했다.

담청은 그 날부터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연구 총책임자에게 방문했다.

“혹시 오늘은 성과가 좀 있었느냐?”

“정말 죄송합니다, 용녀님. 아직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구나, 알겠다. 조만간 또 방문하도록 하마.”

이따가 저녁 먹고 한 번 더 오겠다는 소리였다.

클라이언트와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니까 정말 죽을 맛이었다.

담청이 떠난 뒤, 연구원들은 더없이 간절한 심정으로 전대 용신의 연구 자료를 분석했다.

전대 용신은 상상 이상의 기록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기록물을 타인에게 보여주길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글 전반에서 독자를 향한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전대 용신의 글쓰기 방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고문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전대 용신은 수천 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리고 살아온 세월만큼 방대한 지식을 쌓았다.

천기를 읽는 능력까지 고려하면 인계의 그 누구도 전대 용신의 지식량을 따라갈 수 없을 터였다.

수천 년 축적된 지식량과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글쓰기 방식이 결합되자 지옥이 펼쳐졌다.

전대 용신의 글에는 원인과 결과만 있을 뿐, 과정이라는 게 존재하지를 않았다.

논리 전개가 거의 층수 단위로 건물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전대 용신이 폴짝 뛰어서 2층으로 올라가면 연구원들은 계단을 한 칸 한 칸 조립하면서 따라가는 격이었다.

그런데 계단 한 칸, 즉 논리 전개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적절한 지식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전대 용신의 장서들을 하나하나 조사해야만 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연구원들의 전공 분야와 출신 성분이 굉장히 다채롭다는 점이었다.

십여 개국에서 집결한 온갖 학문의 달인들은 전대 용신의 무자비한 연구 자료를 차근차근 해석해 나갔다.

인간 승리가 따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해석이 완료됐다.

수영기의 해 이후로 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인형인형 시리즈의 완결 편을 집필하던 서란은 부름을 받고 전대 용신의 수집품 창고로 향했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희한하게도 담청은 향로 법보를 끌어안고 있었다.

서란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담청 님, 그 향로는 왜 들고 오셨나요?”

“이 향로 법보야말로 전대 용신이 완성한 동반 승천 법술의 비밀이다.”

“아니, 잠깐만요... 그 연구가 성공했다고요?”

서란은 내심 전대 용신의 연구가 실패했으리라 믿고 있었다.

제아무리 여의주를 완성한 용이라 할지라도 한 종족 전체를 데리고 비승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운반량이 산술적으로 증가할 때, 비승을 주도하는 자의 부담은 지수적으로 폭증하기 때문이었다.

담청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성공했고말고, 지금 당장 보여 주마!”

세 사람은 전대 용신의 수집품 창고로 들어갔다.

몇 년 동안 조금씩 정리한 덕분인지 내부를 돌아다니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담청은 산호로 만든 작은 제단 앞에 멈춰섰다.

서란은 제단의 홈을 바라보며 물었다.

“향로 법보가 원래 놓여 있던 곳이 여기였나요?”

“그래, 여기서 가져왔었지.”

담청은 홈에 향로의 다리를 찰칵 끼웠다.

그리고 하단전에서 여의주를 꺼내 법문을 외웠다.

향로 법보는 밀려 들어오는 혼원법력을 흡수하며 덜그럭덜그럭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동반 승천의 법술이 발동하며 둔중한 파동이 용궁 전체를 뒤흔들었다.

서란은 곧바로 이변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

전대 용신의 수집품 창고는 정리정돈을 열심히 했음에도 답답한 느낌이 강했다.

잡동사니를 하도 많이 모아 둔 탓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들판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개방감마저 들었다.

서란은 금방 원인을 깨달았다.

“설마 법보에 담긴 신선의 힘을 이용해서 공간을 확장한 건가요?”

“바로 맞췄다, 지금은 이 방만 크게 만들었지만 사전 준비가 갖춰지면 용궁의 내부 공간 전체를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지.”

“어인족 전체를 용궁에 태운 채로 비승할 작정이었군요.”

담청은 마저 설명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용궁의 외부를 축소시키고 시간의 흐름을 왜곡시켜서 내부의 어인족을 동면 상태로 만드는 기능도 있었다. 아마도 비승 도중에 가해질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서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법보에 담긴 신선의 권능마저 활용하는 법술.

동반 승천의 법술은 어인족을 향한 전대 용신의 애정이 빚어낸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전대 용신은 왜 사라진 거죠? 동반 승천의 법술도 이미 완성됐잖아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구나. 연구 자료의 마지막 부분은 전대 용신과 함께 사라졌거든.”

결국 전대 용신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