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47 lines
11 KiB
Markdown
247 lines
11 KiB
Markdown
|
|
등 진군은 오죽문으로 연행됐다.
|
|
|
|
공동 수뇌부는 등 진군의 처우를 결정하기 위해서 기나긴 논의를 시작했다.
|
|
|
|
그 동안 서란은 조수 장선화와 함께 등 진군이 빙의할 인형을 제작하고 있었다.
|
|
|
|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
|
|
|
등 진군은 자기 성별마저 잊어 버린 상태였다.
|
|
|
|
그나마 다행인 건 원영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
|
|
|
서란은 병아리 암수 감별과 유사한 방식으로 등 진군의 성별을 알아낼 수 있었다.
|
|
|
|
서란은 본격적인 설계에 앞서 점토를 주물렀다.
|
|
|
|
순식간에 등신대 점토 인형이 완성됐다.
|
|
|
|
이제부터 등 진군의 요구 사항에 맞춰서 외형을 다듬을 생각이었다.
|
|
|
|
서란이 점토 인형을 가리키며 물었다.
|
|
|
|
“등 진군, 본인의 원래 외모는 잊어 버리셨다고 했죠? 혹시 원하는 외형이 있으신가요? 최대한 반영해 드릴 테니까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
|
|
|
등 진군은 기다렸다는 듯 요구 사항을 쏟아냈다.
|
|
|
|
“예쁘기는 하지만 너무 비리비리해 보이는군요. 이것보다는 건강미가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신장도 평균보다는 좀 컸으면 싶고요. 혹시 어려울까요?”
|
|
|
|
“어려울 건 없죠. 선화야, 창고에서 점토 좀 더 가져다 줄래?”
|
|
|
|
조수 장선화가 잽싸게 점토 덩어리를 들고 왔다.
|
|
|
|
서란은 점토를 덧붙여서 인형의 크기를 키웠다.
|
|
|
|
겸사겸사 하체 비율을 늘려서 맵시를 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
전신 성형을 마친 서란이 다시 물었다.
|
|
|
|
“원하시던 모습이 이게 맞나요?”
|
|
|
|
“예, 맞아요. 마음에 쏙 드네요.”
|
|
|
|
“그러면 이 조형대로 제작하겠습니다.”
|
|
|
|
서란은 빠른 속도로 설계도를 그려 나갔다.
|
|
|
|
흡사 원본을 옆에 두고 베끼는 수준이었다.
|
|
|
|
설계도는 순식간에 완성됐다.
|
|
|
|
등 진군은 서란과 장선화의 인형 제작 과정을 넋 놓고 바라봤다.
|
|
|
|
소재 선정부터 시작해서 가공과 조형, 조립 등의 전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능수능란했다.
|
|
|
|
다종다양한 재료를 깎고 다듬는 소리가 인형 공방을 가득 채웠다.
|
|
|
|
등 진군은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
|
|
|
묵묵히 인형을 제작하던 서란이 말했다.
|
|
|
|
“등 진군, 혹시 지루하지는 않으십니까?”
|
|
|
|
“괜찮습니다.”
|
|
|
|
“아, 그러시군요.”
|
|
|
|
등 진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
|
|
|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서란의 인형 제작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으니까.
|
|
|
|
하지만 서란은 예의상 하는 말이겠거니 싶었다.
|
|
|
|
서란은 조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
|
|
|
등 진군이 지루해하는 것 같으니 어떻게든 해 보라는 뜻이었다.
|
|
|
|
장선화는 상급자의 시선에 담긴 복잡미묘한 의미를 당연하다는 듯이 알아차렸다.
|
|
|
|
장선화는 자연스럽게 손에 묻은 재료 부스러기를 털며 인형 제작대에서 물러났다.
|
|
|
|
그리고 약간 떨어진 휴식용 탁자로 갔다.
|
|
|
|
등 진군의 원영이 앉아 있는 장소였다.
|
|
|
|
장선화는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했다.
|
|
|
|
“그러고 보니 등 진군께서는 선계 태생이라고 하셨었죠? 인계에 와 보시니까 어떠세요? 선계랑 많이 다르던가요?”
|
|
|
|
“아무래도 그렇지. 일단 천지영기가 너무 희박해. 세상이 좁아서 그런 건지, 뭔가 억압되는 기분도 들고...”
|
|
|
|
“생활상은 어떤가요?”
|
|
|
|
등 진군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
|
|
|
“일단 수선계와 범인의 사회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신기했어. 속세라고 부르던가? 낮은 농도의 천지영기가 범인들이 내뿜는 탁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싶네.”
|
|
|
|
“선계에서는 수도자와 범인이 함께 생활하나요?”
|
|
|
|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다들 그렇게 살지. 중심부에 수도문파나 수도가문이 위치하고, 그 주변을 수많은 고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게 일반적인 도시의 모습이야.”
|
|
|
|
장선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
|
|
|
“수도가문? 그건 수도문파랑 뭐가 다른 건가요?”
|
|
|
|
“그다지 다를 건 없어. 혈족 중심으로 운영되는 수도문파를 다르게 부르는 명칭일 뿐이지. 그냥 큰 규모의 집성촌이라고만 생각해도 무방해.”
|
|
|
|
“오...”
|
|
|
|
등 진군이 원영이 생긋 웃었다.
|
|
|
|
“왜, 신기해서 그러니?”
|
|
|
|
“아무래도 그렇죠.”
|
|
|
|
“나한테는 하계가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구나.”
|
|
|
|
장선화와 등 진군의 대화가 끝날 무렵, 인공 피부 이식을 마지막으로 인형이 완성됐다.
|
|
|
|
*****
|
|
|
|
등 진군이 막 만든 따끈따끈한 인형에 빙의하고 있을 무렵, 공동 수뇌부는 여전히 회의 중이었다.
|
|
|
|
고대 유물에서 튀어나온 초장기수의 처우 때문에 모두가 골머리를 앓았다.
|
|
|
|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
|
|
|
위험기피자들은 빠른 사형을 원했다.
|
|
|
|
“우리가 굳이 모험을 감수할 이유가 있을까요? 문파비승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등 진군인지 뭔지 하는 변수를 가만히 놔둘 이유가 있냐는 말입니다. 그냥 절차대로 처형시켜 버립시다.”
|
|
|
|
“맞습니다, 애초에 무고한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국제 학회 한가운데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키려던 위험 인물이라고요. 비록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국제법을 한두 개 어긴 게 아닙니다.”
|
|
|
|
“한때 준선경이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더 위험합니다. 언제 경지를 되찾아서 우리의 통제를 벗어날지 몰라요. 지금이 위험을 제거할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
|
|
|
위험기피자들의 논거는 간단명료했다.
|
|
|
|
오죽문과 금작파는 곧 선계로 비승한다.
|
|
|
|
그러니까 괜한 변수 만들지 말고 법대로 하자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
|
|
|
문파비승이야말로 수도문파의 최우선 목표니까.
|
|
|
|
시기가 엄중한 만큼 작은 위험이라도 피하자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
|
|
|
하지만 모두가 거기에 동조한 건 아니었다.
|
|
|
|
이 세상에는 확실한 안정보다 불확실한 대박을 훨씬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
|
|
|
위험선호자들이 곧장 회의장의 균형을 맞췄다.
|
|
|
|
“문파비승은 결승선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입니다. 선계에 도착했다고 수선 생활 끝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문파 구성원들을 건사하는 동시에 낯선 환경에도 적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등 진군의 협조가 있으면 훨씬 수월할 겁니다.”
|
|
|
|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선계의 정보가 반드시 필요해요. 비단 적응뿐만이 아니라 문파 전체의 앞날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화신기는 물론이고, 보다 높은 경지에 대해서 저희가 아는 게 뭐라도 있습니까?”
|
|
|
|
“당초에 등 진군을 위험 요소로만 바라볼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와 그쪽 사이에 뭐 대단한 원한이라도 있나요? 비승에 끼워주는 대가로 정보를 요구하면 되죠, 선계에 도착한 다음에는 서로 갈 길 가면 되는 거고.”
|
|
|
|
위험선호자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었다.
|
|
|
|
인계의 수도자들에게 선계는 미지의 땅이었다.
|
|
|
|
까마득한 고대의 문헌과 천체 관측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는 건 극히 피상적인 부분뿐이었다.
|
|
|
|
선계에 관한 지식은 종류 불문, 다소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입수할 가치가 있었다.
|
|
|
|
위험기피자와 위험선호자,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
|
|
|
“막말로, 내일 당장이라도 등 진군이 원래 경지를 회복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
|
|
|
“류 수사님의 보고서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까, 모종의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놓으셨다고.”
|
|
|
|
“그런데 등 진군이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보장은 있나요?”
|
|
|
|
“설령 모조리 거짓 정보였다고 할지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낫습니다.”
|
|
|
|
“난동을 부리다가 류 수사님과 용녀님께 제압된 일을 가지고 앙심을 품지는 않았을까요?”
|
|
|
|
“그리 졸렬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
|
|
|
토론 시간은 거듭 연장됐다.
|
|
|
|
다른 업무를 모조리 제쳐두고 진행된 마라톤 회의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
|
|
|
최종 투표 결과, 정보를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자는 쪽이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
|
|
|
얼마 뒤, 약식으로나마 조약이 체결됐다.
|
|
|
|
오죽문과 금작파는 등 진군의 죄를 사면하고 비승할 때 끼워 줄 것을 약속했다.
|
|
|
|
등 진군 역시 신의 성실의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맹세했다.
|
|
|
|
서란의 저택에 식객이 한 명 더 늘어났다.
|
|
|
|
*****
|
|
|
|
선계 출신 무명 강사, 등 진군의 수선 교실.
|
|
|
|
영문도 모르고 불려 온 담청이 물었다.
|
|
|
|
“나도 이 수업 들어야 하는 것이냐?”
|
|
|
|
강의 자료를 정리하던 등 진군이 말했다.
|
|
|
|
“경지 안 올리실 건가요?”
|
|
|
|
“경지? 내가?”
|
|
|
|
“예, 평생 태성기로 사실 건 아니잖아요.”
|
|
|
|
담청의 싱글 코어 두뇌가 웅웅거리며 돌아갔다.
|
|
|
|
운무기, 태성기, 광홍기, 은한기, 준선경.
|
|
|
|
선계의 수선 경지 체계를 왜 용한테 가져다 붙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
담청은 고민을 그만두고 해답을 구했다.
|
|
|
|
“태성기는 수도자들의 경지가 아니더냐.”
|
|
|
|
“용도 수도자입니다. 저위계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고위계부터는 일반적인 수도자와 체계를 공유합니다. 혹시 모르셨습니까?”
|
|
|
|
“뭐라고!?”
|
|
|
|
용이 수도자?
|
|
|
|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
|
|
|
담청의 뿔이 오랜만에 번쩍였다.
|
|
|
|
수강생 하나가 고장난 고양이처럼 움찔거리든 말든 등 진군은 신경 쓰지 않았다.
|
|
|
|
“자, 그러면 예정대로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세세한 내용으로 들어가기 앞서 큰 줄기부터 잡아 봅시다. 연기기부터 축기기, 결단기, 원영기까지를 선계에서는 흔히 저위계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운무기, 하계식으로 표현하면 화신기부터는 고위계 수사로 분류하죠. 물론 이러한 구분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
|
|
|
등 진군은 선계의 수선 체계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
|
|
|
중간중간 질문이나 농담을 통해서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
너무나 능숙한 수업 진행에 서란은 내심 놀랐다.
|
|
|
|
서란과 담청은 선계의 지식을 쏙쏙 흡수했다.
|
|
|
|
등 진군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하계에 적응했다.
|
|
|
|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수영기의 해가 도래했다.
|
|
|
|
비경의식, 화신기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