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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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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오죽문으로 연행됐다.

공동 수뇌부는 등 진군의 처우를 결정하기 위해서 기나긴 논의를 시작했다.

그 동안 서란은 조수 장선화와 함께 등 진군이 빙의할 인형을 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등 진군은 자기 성별마저 잊어 버린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원영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서란은 병아리 암수 감별과 유사한 방식으로 등 진군의 성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서란은 본격적인 설계에 앞서 점토를 주물렀다.

순식간에 등신대 점토 인형이 완성됐다.

이제부터 등 진군의 요구 사항에 맞춰서 외형을 다듬을 생각이었다.

서란이 점토 인형을 가리키며 물었다.

“등 진군, 본인의 원래 외모는 잊어 버리셨다고 했죠? 혹시 원하는 외형이 있으신가요? 최대한 반영해 드릴 테니까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등 진군은 기다렸다는 듯 요구 사항을 쏟아냈다.

“예쁘기는 하지만 너무 비리비리해 보이는군요. 이것보다는 건강미가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신장도 평균보다는 좀 컸으면 싶고요. 혹시 어려울까요?”

“어려울 건 없죠. 선화야, 창고에서 점토 좀 더 가져다 줄래?”

조수 장선화가 잽싸게 점토 덩어리를 들고 왔다.

서란은 점토를 덧붙여서 인형의 크기를 키웠다.

겸사겸사 하체 비율을 늘려서 맵시를 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신 성형을 마친 서란이 다시 물었다.

“원하시던 모습이 이게 맞나요?”

“예, 맞아요. 마음에 쏙 드네요.”

“그러면 이 조형대로 제작하겠습니다.”

서란은 빠른 속도로 설계도를 그려 나갔다.

흡사 원본을 옆에 두고 베끼는 수준이었다.

설계도는 순식간에 완성됐다.

등 진군은 서란과 장선화의 인형 제작 과정을 넋 놓고 바라봤다.

소재 선정부터 시작해서 가공과 조형, 조립 등의 전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능수능란했다.

다종다양한 재료를 깎고 다듬는 소리가 인형 공방을 가득 채웠다.

등 진군은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묵묵히 인형을 제작하던 서란이 말했다.

“등 진군, 혹시 지루하지는 않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등 진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서란의 인형 제작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으니까.

하지만 서란은 예의상 하는 말이겠거니 싶었다.

서란은 조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등 진군이 지루해하는 것 같으니 어떻게든 해 보라는 뜻이었다.

장선화는 상급자의 시선에 담긴 복잡미묘한 의미를 당연하다는 듯이 알아차렸다.

장선화는 자연스럽게 손에 묻은 재료 부스러기를 털며 인형 제작대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약간 떨어진 휴식용 탁자로 갔다.

등 진군의 원영이 앉아 있는 장소였다.

장선화는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했다.

“그러고 보니 등 진군께서는 선계 태생이라고 하셨었죠? 인계에 와 보시니까 어떠세요? 선계랑 많이 다르던가요?”

“아무래도 그렇지. 일단 천지영기가 너무 희박해. 세상이 좁아서 그런 건지, 뭔가 억압되는 기분도 들고...”

“생활상은 어떤가요?”

등 진군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일단 수선계와 범인의 사회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신기했어. 속세라고 부르던가? 낮은 농도의 천지영기가 범인들이 내뿜는 탁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싶네.”

“선계에서는 수도자와 범인이 함께 생활하나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다들 그렇게 살지. 중심부에 수도문파나 수도가문이 위치하고, 그 주변을 수많은 고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게 일반적인 도시의 모습이야.”

장선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수도가문? 그건 수도문파랑 뭐가 다른 건가요?”

“그다지 다를 건 없어. 혈족 중심으로 운영되는 수도문파를 다르게 부르는 명칭일 뿐이지. 그냥 큰 규모의 집성촌이라고만 생각해도 무방해.”

“오...”

등 진군이 원영이 생긋 웃었다.

“왜, 신기해서 그러니?”

“아무래도 그렇죠.”

“나한테는 하계가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구나.”

장선화와 등 진군의 대화가 끝날 무렵, 인공 피부 이식을 마지막으로 인형이 완성됐다.


등 진군이 막 만든 따끈따끈한 인형에 빙의하고 있을 무렵, 공동 수뇌부는 여전히 회의 중이었다.

고대 유물에서 튀어나온 초장기수의 처우 때문에 모두가 골머리를 앓았다.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위험기피자들은 빠른 사형을 원했다.

“우리가 굳이 모험을 감수할 이유가 있을까요? 문파비승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등 진군인지 뭔지 하는 변수를 가만히 놔둘 이유가 있냐는 말입니다. 그냥 절차대로 처형시켜 버립시다.”

“맞습니다, 애초에 무고한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국제 학회 한가운데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키려던 위험 인물이라고요. 비록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국제법을 한두 개 어긴 게 아닙니다.”

“한때 준선경이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더 위험합니다. 언제 경지를 되찾아서 우리의 통제를 벗어날지 몰라요. 지금이 위험을 제거할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위험기피자들의 논거는 간단명료했다.

오죽문과 금작파는 곧 선계로 비승한다.

그러니까 괜한 변수 만들지 말고 법대로 하자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문파비승이야말로 수도문파의 최우선 목표니까.

시기가 엄중한 만큼 작은 위험이라도 피하자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거기에 동조한 건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확실한 안정보다 불확실한 대박을 훨씬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위험선호자들이 곧장 회의장의 균형을 맞췄다.

“문파비승은 결승선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입니다. 선계에 도착했다고 수선 생활 끝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문파 구성원들을 건사하는 동시에 낯선 환경에도 적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등 진군의 협조가 있으면 훨씬 수월할 겁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선계의 정보가 반드시 필요해요. 비단 적응뿐만이 아니라 문파 전체의 앞날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화신기는 물론이고, 보다 높은 경지에 대해서 저희가 아는 게 뭐라도 있습니까?”

“당초에 등 진군을 위험 요소로만 바라볼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와 그쪽 사이에 뭐 대단한 원한이라도 있나요? 비승에 끼워주는 대가로 정보를 요구하면 되죠, 선계에 도착한 다음에는 서로 갈 길 가면 되는 거고.”

위험선호자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었다.

인계의 수도자들에게 선계는 미지의 땅이었다.

까마득한 고대의 문헌과 천체 관측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는 건 극히 피상적인 부분뿐이었다.

선계에 관한 지식은 종류 불문, 다소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입수할 가치가 있었다.

위험기피자와 위험선호자,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막말로, 내일 당장이라도 등 진군이 원래 경지를 회복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류 수사님의 보고서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까, 모종의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놓으셨다고.”

“그런데 등 진군이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보장은 있나요?”

“설령 모조리 거짓 정보였다고 할지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낫습니다.”

“난동을 부리다가 류 수사님과 용녀님께 제압된 일을 가지고 앙심을 품지는 않았을까요?”

“그리 졸렬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토론 시간은 거듭 연장됐다.

다른 업무를 모조리 제쳐두고 진행된 마라톤 회의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최종 투표 결과, 정보를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자는 쪽이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얼마 뒤, 약식으로나마 조약이 체결됐다.

오죽문과 금작파는 등 진군의 죄를 사면하고 비승할 때 끼워 줄 것을 약속했다.

등 진군 역시 신의 성실의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맹세했다.

서란의 저택에 식객이 한 명 더 늘어났다.


선계 출신 무명 강사, 등 진군의 수선 교실.

영문도 모르고 불려 온 담청이 물었다.

“나도 이 수업 들어야 하는 것이냐?”

강의 자료를 정리하던 등 진군이 말했다.

“경지 안 올리실 건가요?”

“경지? 내가?”

“예, 평생 태성기로 사실 건 아니잖아요.”

담청의 싱글 코어 두뇌가 웅웅거리며 돌아갔다.

운무기, 태성기, 광홍기, 은한기, 준선경.

선계의 수선 경지 체계를 왜 용한테 가져다 붙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담청은 고민을 그만두고 해답을 구했다.

“태성기는 수도자들의 경지가 아니더냐.”

“용도 수도자입니다. 저위계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고위계부터는 일반적인 수도자와 체계를 공유합니다. 혹시 모르셨습니까?”

“뭐라고!?”

용이 수도자?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담청의 뿔이 오랜만에 번쩍였다.

수강생 하나가 고장난 고양이처럼 움찔거리든 말든 등 진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 그러면 예정대로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세세한 내용으로 들어가기 앞서 큰 줄기부터 잡아 봅시다. 연기기부터 축기기, 결단기, 원영기까지를 선계에서는 흔히 저위계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운무기, 하계식으로 표현하면 화신기부터는 고위계 수사로 분류하죠. 물론 이러한 구분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등 진군은 선계의 수선 체계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중간중간 질문이나 농담을 통해서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나 능숙한 수업 진행에 서란은 내심 놀랐다.

서란과 담청은 선계의 지식을 쏙쏙 흡수했다.

등 진군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하계에 적응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수영기의 해가 도래했다.

비경의식, 화신기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