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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선계 태생의 수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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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초월의 계단을 차곡차곡 밟아 나간 끝에 마침내 준선경이라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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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딱 한 발자국만 더 내디뎠다면 진정한 신선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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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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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을 때, 등 진군은 난데없이 원통형 고대 유물의 내부에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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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직전의 육신과 무한한 법력은 온데간데없고 원영 하나만 달랑 남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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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형언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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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상 봉인을 당한 건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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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 말고는 모조리 의문투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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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기억마저 온전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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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자기 자신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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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물론이고 혈족 관계나 출신 수도문파, 하다못해 나고 자란 고향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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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건 성씨와 진군이라는 칭호, 수선과 관련된 지식들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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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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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 의식을 준비하던 것까지는 확실해. 그렇다면 의식이 실패한 건가? 아니야, 좀 이상해. 진선경에 도달하지 못한 거랑 봉인이 무슨 상관이야. 차라리 죽어서 윤회의 굴레에 묶였으면 묶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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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누군가에게 패배하여 육신과 법력을 잃고 봉인됐다는 쪽이 더 그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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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점차 원수의 존재를 확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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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 수법으로 등 진군의 기억을 지워버린 것도 그 원수 녀석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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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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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등 진군도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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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원인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본인이 먼저 잘못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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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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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대상이 누군지조차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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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가 아무리 광활하다고 한들 준선경 수도자를 봉인할 정도의 강자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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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시간은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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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주변의 화영기를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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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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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등 진군에게는 금단은 물론이고 육체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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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화등선의 목전까지 도달했던 초월자는 의지력만으로 기적을 일구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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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이 발휘한 인력은 고대 유물의 봉인 능력마저 상회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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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륙을 휩쓴 이상현상의 진정한 원인은 고대 유물이 아닌 등 진군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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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아주 조금씩 힘을 회복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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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봉인이 해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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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칼날을 갈던 등 진군은 즉시 뛰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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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오랜 세월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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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자신의 오갈 데 없는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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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수수깡처럼 쓰러지는 약골들 사이로 법력을 끌어 올리는 두 소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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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사영근의 원영기 수사였고, 나머지 하나는 여의주를 완성한 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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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수행자들 치고는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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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사발이 되도록 두들겨 맞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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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담청은 우정의 힘으로 등 진군을 손쉽게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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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구태여 협공을 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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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 정정당당하게 싸웠다고 해도 등 진군이 이겼을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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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해진 등 진군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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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하계도 우습게 볼 게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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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버럭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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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행패를 부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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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이 떠듬떠듬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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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요? 저는 등 진군이라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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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군? 그것이 네 이름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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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진군이라는 건 일종의 경칭입니다. 그, 뭐냐... 신선을 높여 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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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한 고고학자들을 줄 맞춰서 잘 눕혀 주고 돌아온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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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당신이 신선이라는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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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신선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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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래서 준선경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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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의 원영이 열심히 고개를 까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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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맞습니다. 준선경에 도달하면 수명의 한계가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선계에서는 그냥 신선인 셈 치죠. 등선 의식을 통과한 신선은 진선경이라고 따로 부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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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의식을 마치고 진선경에 도달한 다음부터 시공간을 다루는 권능이 생기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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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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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담청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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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협조적으로 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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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적으로 굴면 죽거나 도로 봉인될 터이니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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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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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담청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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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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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성씨 이외에는 기억이 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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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디 출신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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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선계 태생입니다. 고향은 마찬가지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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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계 출신이 하계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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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모르겠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고대 유물 안에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최근까지는 여기가 하계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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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기가 하계라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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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봉인이 해제되는 순간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물고기가 난생처음 물 밖으로 나오면 딱 이런 기분이었을 겁니다. 천지영기가 이렇게나 희박한데 수행이나 제대로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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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질문은 우리가 합니다. 어쩌다 봉인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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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영문도 모른 채 갇혀 있었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장소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봉인이 풀렸죠. 이제 원래 경지를 되찾는 날도 머지않았을 겁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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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등 진군의 말허리를 뚝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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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좀 끼워 넣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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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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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서란. 어디까지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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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취조를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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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난동을 부린 이유는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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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갇혀 있었더니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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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지는 어느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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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는 원영기고, 아직 일영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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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으로 우리한테 덤빈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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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때 준선이었던 몸, 이 정도 전력차는 손쉽게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오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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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우리도 복수 대상에 포함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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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결코 앙심을 품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이번 일은 제가 잘못했죠.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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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어떤 식으로 보답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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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에 대한 정보나 수행 관련 지식은 어떠십니까? 마침 운무기를 앞두고 계시니 새로운 공법도 필요하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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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기는 또 뭔가요? 원영기 다음 단계는 화신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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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에서는 화신기라고 부르는 모양이군요? 선계에서는 원영기 다음 경지를 운무기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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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운무기 다음에는 몇 단계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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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기 이후의 경지는 태성기, 광홍기, 은한기, 준선경까지 네 단계가 있습니다. 은한기와 준선경을 같은 단계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간혹 있지만, 네 단계로 구분하는 방식이 정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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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러면 준선경 위로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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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경 말씀이십니까? 두 단계라는 얘기도 있고, 세 단계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여기부터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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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등 진군에게 꼼짝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 뒤, 담청과 몰래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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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식을 확장해서 등 진군이 엿듣지 못하도록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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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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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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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이 들려준 얘기요. 거짓말일까요? 사실 저런 건 마음만 먹으면 삼척동자도 당장 지어낼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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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고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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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눈에는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권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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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상하게도 등 진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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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준선경 어쩌고 했던 얘기가 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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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담청은 확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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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나는 잘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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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침묵하던 서란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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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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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조직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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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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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죽문 금작파 공동 수뇌부 직통 회선입니다. 성함과 함께 배정받은 식별 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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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류서란. 식별 번호,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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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서 란 수사님, 확인 되셨습니다. 용건에 해당하는 번호를 눌러주세요. 긴급 지원은 0번, 정보 조회는 1번, 단순 민원은 2번, 의제 제안은 3번, 심마 상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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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3번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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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연결음 이후, 의장이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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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수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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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님,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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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진군과 관련된 모든 일을 의장에게 미주알고주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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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은 묵묵히 서란의 말을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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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속히 수뇌부 회의를 소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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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가 끝나자 담청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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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됐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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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 회의에서 논의해 보고 등 진군의 처우가 결정되면 알려 주겠대요. 그때까지는 일단 저희가 감시하고 있으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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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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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영역을 도로 축소한 서란이 등 진군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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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우리와 함께 갑시다. 자세한 처우는 좀 더 지켜본 다음에 결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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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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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자세예요. 일단 등 진군이 임시로나마 사용할 인형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원영으로만 존재하면 불편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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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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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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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인계 최고의 실력자라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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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을 만들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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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의 원영은 활짝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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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마주 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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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서 인형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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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들 인형은 감시 겸 제거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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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진군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하면 그 즉시 추진기가 최대 출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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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준선경이든 뭐든 눈 깜짝할 사이에 천공 결계 바깥으로 사출 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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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우자의 우화등선’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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