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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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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등 진군은 선계 태생의 수도자였다.

그녀는 초월의 계단을 차곡차곡 밟아 나간 끝에 마침내 준선경이라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거기서 딱 한 발자국만 더 내디뎠다면 진정한 신선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등 진군은 난데없이 원통형 고대 유물의 내부에 갇혀 있었다.

우화 직전의 육신과 무한한 법력은 온데간데없고 원영 하나만 달랑 남은 상태였다.

등 진군은 형언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꼈다.

정황상 봉인을 당한 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모조리 의문투성이였다.

심지어 기억마저 온전치 않았다.

등 진군은 자기 자신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이름은 물론이고 혈족 관계나 출신 수도문파, 하다못해 나고 자란 고향도 마찬가지였다.

기억나는 건 성씨와 진군이라는 칭호, 수선과 관련된 지식들이 전부였다.

등 진군은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등선 의식을 준비하던 것까지는 확실해. 그렇다면 의식이 실패한 건가? 아니야, 좀 이상해. 진선경에 도달하지 못한 거랑 봉인이 무슨 상관이야. 차라리 죽어서 윤회의 굴레에 묶였으면 묶였지.

차라리 누군가에게 패배하여 육신과 법력을 잃고 봉인됐다는 쪽이 더 그럴 듯했다.

등 진군은 점차 원수의 존재를 확신하게 됐다.

모종의 수법으로 등 진군의 기억을 지워버린 것도 그 원수 녀석이 분명했다.

복수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였으리라.

온화한 등 진군도 화가 났다.

싸움의 원인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본인이 먼저 잘못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등 진군은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복수의 대상이 누군지조차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선계가 아무리 광활하다고 한들 준선경 수도자를 봉인할 정도의 강자는 많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은 넘쳐났다.

등 진군은 주변의 화영기를 끌어당겼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몰락한 등 진군에게는 금단은 물론이고 육체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우화등선의 목전까지 도달했던 초월자는 의지력만으로 기적을 일구어 냈다.

등 진군이 발휘한 인력은 고대 유물의 봉인 능력마저 상회할 정도였다.

남대륙을 휩쓴 이상현상의 진정한 원인은 고대 유물이 아닌 등 진군이었던 셈이다.

등 진군은 아주 조금씩 힘을 회복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봉인이 해제됐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등 진군은 즉시 뛰쳐 나왔다.

너무나 오랜 세월 갇혀 있었다.

어서 자신의 오갈 데 없는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해 주고 싶었다.

등 진군은 수수깡처럼 쓰러지는 약골들 사이로 법력을 끌어 올리는 두 소녀를 발견했다.

하나는 사영근의 원영기 수사였고, 나머지 하나는 여의주를 완성한 용이었다.

하계 수행자들 치고는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묵사발이 되도록 두들겨 맞기 전까지는.


서란과 담청은 우정의 힘으로 등 진군을 손쉽게 쓰러뜨렸다.

돌이켜 보면 구태여 협공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일대일로 정정당당하게 싸웠다고 해도 등 진군이 이겼을 것 같지는 않았다.

너덜너덜해진 등 진군이 중얼거렸다.

“요즘은 하계도 우습게 볼 게 아니네...”

담청이 버럭 화를 냈다.

“너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행패를 부리느냐!”

등 진군이 떠듬떠듬 대답했다.

“저요? 저는 등 진군이라고 하는데요...”

“진군? 그것이 네 이름이더냐?”

“아뇨, 진군이라는 건 일종의 경칭입니다. 그, 뭐냐... 신선을 높여 부르는...”

기절한 고고학자들을 줄 맞춰서 잘 눕혀 주고 돌아온 서란이 물었다.

“그 말은 당신이 신선이라는 뜻입니까?”

“진짜 신선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합니다.”

“아하, 그래서 준선경이군요?”

등 진군의 원영이 열심히 고개를 까딱거렸다.

“예, 맞습니다. 준선경에 도달하면 수명의 한계가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선계에서는 그냥 신선인 셈 치죠. 등선 의식을 통과한 신선은 진선경이라고 따로 부르고요.”

“그러면 의식을 마치고 진선경에 도달한 다음부터 시공간을 다루는 권능이 생기는 겁니까?”

“아,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둘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담청이 말했다.

“꽤나 협조적으로 구는구나?”

“반항적으로 굴면 죽거나 도로 봉인될 터이니 당연하죠.”

“흠...”

서란과 담청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Q.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A. 성씨 이외에는 기억이 안 납니다.

Q. 어디 출신이십니까?

A. 선계 태생입니다. 고향은 마찬가지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Q. 선계 출신이 하계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A. 모르겠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고대 유물 안에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최근까지는 여기가 하계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Q. 여기가 하계라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A. 봉인이 해제되는 순간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물고기가 난생처음 물 밖으로 나오면 딱 이런 기분이었을 겁니다. 천지영기가 이렇게나 희박한데 수행이나 제대로 됩니까?

Q. 질문은 우리가 합니다. 어쩌다 봉인된 겁니까?

A.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영문도 모른 채 갇혀 있었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장소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봉인이 풀렸죠. 이제 원래 경지를 되찾는 날도 머지않았을 겁니다, 후후.

담청이 등 진군의 말허리를 뚝 끊었다.

“사담 좀 끼워 넣지 말거라!”

“아, 예...”

“음, 서란. 어디까지 했었지?”

서란이 취조를 이어 나갔다.

“갑자기 난동을 부린 이유는 뭡니까?”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더니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지는 어느 정도죠?”

“경지는 원영기고, 아직 일영근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우리한테 덤빈 겁니까?”

“그래도 한때 준선이었던 몸, 이 정도 전력차는 손쉽게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오판이었죠.”

“이제부터 우리도 복수 대상에 포함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결코 앙심을 품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이번 일은 제가 잘못했죠.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식으로 보답할 거죠?”

“선계에 대한 정보나 수행 관련 지식은 어떠십니까? 마침 운무기를 앞두고 계시니 새로운 공법도 필요하실 텐데...”

“운무기는 또 뭔가요? 원영기 다음 단계는 화신기잖아요?”

“하계에서는 화신기라고 부르는 모양이군요? 선계에서는 원영기 다음 경지를 운무기라고 부릅니다.”

“그래요? 운무기 다음에는 몇 단계나 있나요?”

“운무기 이후의 경지는 태성기, 광홍기, 은한기, 준선경까지 네 단계가 있습니다. 은한기와 준선경을 같은 단계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간혹 있지만, 네 단계로 구분하는 방식이 정설입니다.”

“오, 그러면 준선경 위로는 어떤가요?”

“진선경 말씀이십니까? 두 단계라는 얘기도 있고, 세 단계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여기부터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서란은 등 진군에게 꼼짝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 뒤, 담청과 몰래 얘기를 나눴다.

물론, 의식을 확장해서 등 진군이 엿듣지 못하도록 대비했다.

“담청 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말이냐?”

“등 진군이 들려준 얘기요. 거짓말일까요? 사실 저런 건 마음만 먹으면 삼척동자도 당장 지어낼 수 있잖아요.”

담청은 고민에 잠겼다.

용의 눈에는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권능이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등 진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어쩌면 준선경 어쩌고 했던 얘기가 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담청은 확답하지 못했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구나...”

한동안 침묵하던 서란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생각해 보니까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조직은 따로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오죽문 금작파 공동 수뇌부 직통 회선입니다. 성함과 함께 배정받은 식별 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이름, 류서란. 식별 번호, 000.”

“류 서 란 수사님, 확인 되셨습니다. 용건에 해당하는 번호를 눌러주세요. 긴급 지원은 0번, 정보 조회는 1번, 단순 민원은 2번, 의제 제안은 3번, 심마 상담은...”

서란은 3번을 꾹 눌렀다.

짧은 연결음 이후, 의장이 전화를 받았다.

“류 수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의장님, 실은...”

서란은 진군과 관련된 모든 일을 의장에게 미주알고주알 설명했다.

의장은 묵묵히 서란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조속히 수뇌부 회의를 소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통화가 끝나자 담청이 물었다.

“어떻게 됐느냐?”

“수뇌부 회의에서 논의해 보고 등 진군의 처우가 결정되면 알려 주겠대요. 그때까지는 일단 저희가 감시하고 있으면 될 것 같아요.”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의식 영역을 도로 축소한 서란이 등 진군에게 말했다.

“일단 우리와 함께 갑시다. 자세한 처우는 좀 더 지켜본 다음에 결정하겠습니다.”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바람직한 자세예요. 일단 등 진군이 임시로나마 사용할 인형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원영으로만 존재하면 불편할 테니까요.”

등 진군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인형술사셨습니까?”

“그럼요, 인계 최고의 실력자라고 자부합니다.”

“제 몸을 만들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등 진군의 원영은 활짝 미소 지었다.

서란도 마주 웃어 주었다.

예뻐서 인형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었다.

새로 만들 인형은 감시 겸 제거 수단이었다.

등 진군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하면 그 즉시 추진기가 최대 출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러면 준선경이든 뭐든 눈 깜짝할 사이에 천공 결계 바깥으로 사출 시킬 수 있었다.

일명 ‘우자의 우화등선’ 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