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61 lines
11 KiB
Markdown
361 lines
11 KiB
Markdown
|
|
식산대붕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
|
|
|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용기를 냈다기보다는 뭘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날아올랐다.
|
|
|
|
하지만 정작 나무에서 떨어지려던 소년을 구한 건 옆에 있던 다른 소년이었다.
|
|
|
|
바람처럼 나무를 스쳐 지나간 식산대붕은 자연스럽게 유턴해서 개울가로 돌아왔다.
|
|
|
|
친구가 안 다친 건 다행이지만, 다소 허망한 결말이기도 했다.
|
|
|
|
식산대붕은 살짝 민망해졌다.
|
|
|
|
풀이 죽은 듯한 오목눈이의 몸짓.
|
|
|
|
일행 중에서 최연장자(올해 10살)인 소녀가 가장 먼저 식산대붕의 기분을 눈치챘다.
|
|
|
|
소녀는 얼른 막내(신장 3m)를 칭찬했다.
|
|
|
|
“친구를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다니! 대붕아, 정말 장하다!”
|
|
|
|
그러면서 소녀는 팔꿈치로 옆 사람을 찔렀다.
|
|
|
|
얼른 자기처럼 칭찬하라는 비언어적 신호.
|
|
|
|
옆구리를 찔린 사람도 눈치 빠르게 물개 박수를 치면서 칭찬을 시작했다.
|
|
|
|
“마, 맞아! 대붕아, 진짜 다시 봤어! 물론 원래도 좋게 보고 있었지만!”
|
|
|
|
다른 아이들도 눈치 빠른 순서대로 칭찬 대열에 합류했다.
|
|
|
|
“대단해, 대붕아!”
|
|
|
|
“네가 최고야!”
|
|
|
|
“정말 멋져!”
|
|
|
|
학생들은 식산대붕을 둘러싼 채 연신 박수쳤다.
|
|
|
|
자아가 생긴 지 어언 5년, 한창 칭찬 받기 좋아할 나이였다.
|
|
|
|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식산대붕의 부리가 저절로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
|
|
|
이후, 식산대붕은 멋진 비행으로 귀가했다.
|
|
|
|
보호자 삼인방은 다채로운 리액션을 선보였다.
|
|
|
|
덕분에 식산대붕은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
|
|
|
비행 공포증 같은 건 이미 눈 녹듯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
|
|
|
*****
|
|
|
|
첫 비행에 성공한 다음 날부터 식산대붕은 저택의 고용인들 주위를 계속해서 맴돌았다.
|
|
|
|
바닥을 쓸거나 가구를 옮기는 하녀들 옆에서 연신 기웃거렸다는 뜻이다.
|
|
|
|
뭔가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
|
|
|
하녀 중 한 명이 식산대붕에게 물었다.
|
|
|
|
“대붕아, 뭐 필요한 거 있니?”
|
|
|
|
식산대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
“없어요.”
|
|
|
|
누가 봐도 용건이 있는 얼굴이었다.
|
|
|
|
하지만 본인이 아니라는데 계속 캐묻기도 뭐했다.
|
|
|
|
딱히 일하는데 방해되는 것도 아니기에, 하녀들은 그냥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
그리고 식산대붕이 간절히도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
|
|
|
온종일 계속되던 여름맞이 대청소가 끝났다.
|
|
|
|
청소 도중에 너무 낡았거나 망가져서 못 쓰게 된 물건 역시 잔뜩 나왔다.
|
|
|
|
하녀들은 내다 버릴 쓰레기를 모조리 마대 자루에 담았다.
|
|
|
|
이제 버리고 올 사람만 정하면 됐다.
|
|
|
|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자원자 있어?”
|
|
|
|
“절대 없지.”
|
|
|
|
“깔끔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
|
|
|
“무조건 단판이다.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
|
|
|
“너 저번처럼 늦게 내면 안된다?”
|
|
|
|
“제가요? 언제요?”
|
|
|
|
가위바위보에서 지기 싫어 안간힘을 쓰는 하녀들 근처로 식산대붕이 유유히 등장했다.
|
|
|
|
“에헴!”
|
|
|
|
식산대붕의 헛기침, 효과는 그닥 시원치 않았다.
|
|
|
|
하녀들은 뭘 낼지 고민하느라 바빴다.
|
|
|
|
여기서 패배하기라도 했다간 꼼짝없이 쓰레기장까지 갔다 와야 되는 상황이었다.
|
|
|
|
기대하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식산대붕은 좀 더 노골적인 신호를 보냈다.
|
|
|
|
“음, 외출하고 싶은 기분이 드네...”
|
|
|
|
나는 무조건 보자기를 내겠다느니 하는 알량한 심리전을 주고 받던 하녀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
|
|
|
하녀 한 명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
|
|
|
“대붕아, 외출하게?”
|
|
|
|
“네.”
|
|
|
|
“어디 가는데?”
|
|
|
|
식산대붕은 마대 자루를 힐끔거리며 대답했다.
|
|
|
|
“그냥 뭐... 들판 서쪽?”
|
|
|
|
참고로 들판 서쪽에는 쓰레기장이 있었다.
|
|
|
|
이쯤 되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
|
|
|
대놓고 티를 팍팍 내는 수준이었으니까.
|
|
|
|
하녀 한 명이 밝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
|
|
|
“대붕아, 그러면 혹시 가는 길에 쓰레기 좀 버려줄 수 있니?”
|
|
|
|
“부탁하는 건가요?”
|
|
|
|
“응, 언니들이 이렇게 부탁할게.”
|
|
|
|
식산대붕의 부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
|
|
|
“그렇게 부탁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
|
|
|
식산대붕은 쓰레기로 가득 찬 마대 자루를 두 발로 움켜쥐고 비상했다.
|
|
|
|
하녀들은 한순간에 멀어진 식산대붕의 엉덩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
|
|
|
이내 식산대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
하녀들은 의견을 나눴다.
|
|
|
|
“심부름하려고 여태 우리 뒤를 쫓아다녔던 거야?”
|
|
|
|
“글쎄다...”
|
|
|
|
“자기 잘 난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거 아냐? 왜, 어렸을 때 글방에서 뭐 하나 배우면 아는 척하고 싶어서 하루 종일 입이 간질간질했잖아.”
|
|
|
|
“아무튼 돌아오면 무조건 고맙다고 하자.”
|
|
|
|
“그런 건 또 내가 전문이지.”
|
|
|
|
잠시 후, 식산대붕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
|
|
|
하녀들은 잽싸게 달려 들어서 식산대붕의 전신을 마구마구 쓰다듬었다.
|
|
|
|
그러면서 감사 인사와 칭찬을 연발했다.
|
|
|
|
“고마워 대붕아!”
|
|
|
|
“덕분에 대청소가 한결 수월해졌어!”
|
|
|
|
“너 진짜 빠르더라!”
|
|
|
|
“완전 전광석화!”
|
|
|
|
식산대붕은 정말로 즐거워했다.
|
|
|
|
*****
|
|
|
|
서란은 휴대전화를 꺼내 이아금의 번호를 눌렀다.
|
|
|
|
짧은 연결음이 끝나고 전화가 연결됐다.
|
|
|
|
주변에 사람이 많은 모양인지 시끌시끌했다.
|
|
|
|
서란은 살짝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
|
|
|
“아금아, 지금 어디야?”
|
|
|
|
“아, 언니! 나 지금 친구 딸 혼인식! 방금 막 끝났으니까 금방 갈게! 먼저 먹고 있어!”
|
|
|
|
“응, 알았어.”
|
|
|
|
서란이 전화를 끊자, 금영영이 물었다.
|
|
|
|
“어디래?”
|
|
|
|
“친구 딸 혼인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나 봐. 금방 온다고 먼저 먹고 있으라네.”
|
|
|
|
“그래?”
|
|
|
|
금영영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젓가락을 들었다.
|
|
|
|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오향장육, 한 입.
|
|
|
|
돼지고기가 텅 빈 위장을 든든하게 채워 줬다.
|
|
|
|
다들 요리를 몇 점씩 집어 먹었을 무렵, 이아금이 도착했다.
|
|
|
|
“죄송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
|
|
|
호혜문이 웃으며 말했다.
|
|
|
|
“아니야, 딱 맞춰서 왔어.”
|
|
|
|
“오랜만이에요, 혜문 언니.”
|
|
|
|
“오랜만은, 몇 번 통화했잖니.”
|
|
|
|
이아금은 빈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
|
|
|
“에이, 그래도 직접 얼굴 보는 거랑은 다르죠. 용녀님도 안녕하세요?”
|
|
|
|
생선 가시와 씨름하던 담청이 고개를 들었다.
|
|
|
|
“아, 반갑구나. 나야 뭐 항상 잘 지내지.”
|
|
|
|
인삿말이 원탁 위를 몇 차례 왕래했다.
|
|
|
|
수선 동아리 회원들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먹었다.
|
|
|
|
대화의 주제는 이리저리 바뀌었다.
|
|
|
|
그러다 문득 장선화가 입을 열었다.
|
|
|
|
“선생님, 저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
|
|
|
서란과 호혜문이 동시에 장선화를 바라봤다.
|
|
|
|
공교롭게도 장선화가 두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으로 동일했다.
|
|
|
|
그래서 매번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는 했다.
|
|
|
|
장선화는 보다 명확한 호칭을 사용했다.
|
|
|
|
“아, 호혜문 선생님이요.”
|
|
|
|
서란은 다시 오리고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
|
|
|
호혜문은 옛 제자에게 물었다.
|
|
|
|
“뭐가 궁금하니?”
|
|
|
|
“걔는 아직도 선생님 쫓아다녀요?”
|
|
|
|
여기서 ‘걔’는 상사병에 걸린 호혜문의 제자였다.
|
|
|
|
청년과 장선화는 나이 차이가 적었다.
|
|
|
|
그래서 둘 다 같은 시기에 글방을 다녔다.
|
|
|
|
호혜문은 쓴웃음을 지었다.
|
|
|
|
“요즘은 안 그래. 얼마 전에 잘 타일렀거든.”
|
|
|
|
금영영이 물었다.
|
|
|
|
“누가 쫓아다녀? 무슨 얘기야?”
|
|
|
|
서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떠올릴 수 있었다.
|
|
|
|
호혜문의 청혼자에 대한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금영영은 현장에 없었다.
|
|
|
|
그 무렵이면 한창 부적 공방에서 비인간적인 잔업에 시달리고 있었을 테니까.
|
|
|
|
서란은 짧게 요약해서 알려줬다.
|
|
|
|
서른 살 이상 어린 옛 제자의 청혼, 호혜문 곤란.
|
|
|
|
가만히 얘기를 듣던 금영영은 고개를 꼬았다.
|
|
|
|
그리고는 물었다.
|
|
|
|
“혜문은 어때요? 상대가 마음에 들어요?”
|
|
|
|
좌중의 시선이 호혜문에게 집중됐다.
|
|
|
|
호혜문은 담담하게 말했다.
|
|
|
|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편이죠. 몇 년이나 가르쳤던 학생이니까요.”
|
|
|
|
금영영이 말했다.
|
|
|
|
“그러면 청혼을 받아들여도 되는 거 아니에요?”
|
|
|
|
“예? 얘기가 왜 그렇게 되나요?”
|
|
|
|
“아니, 좋아한다면서요.”
|
|
|
|
호혜문은 질색을 하며 대답했다.
|
|
|
|
“제자로서 좋아하는 거랑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게 같나요? 그런 대상으로 바라본 적도 없어요. 애초에 상대는 선화보다도 나이가 어립니다.”
|
|
|
|
담청을 위해서 생선 가시를 바르던 장선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
서란과 이아금도 호혜문의 견해에 동의했다.
|
|
|
|
아무리 그래도 서른 살 연하는 좀 그랬다.
|
|
|
|
하지만 범인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 금영영의 의견은 좀 달랐다.
|
|
|
|
“고작 서른 살 차이잖아. 안될 거 있나?”
|
|
|
|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식사 자리.
|
|
|
|
장선화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잘 발라 놓은 생선 가시만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
|
|
|
담청은 생선살 먹느라 방금 오고 간 대화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
|
|
|
호혜문과 이아금은 말문이 막힌 듯 했다.
|
|
|
|
결국 서란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
|
|
|
“영영, 서른 살 차이는 좀...”
|
|
|
|
“그게 왜? 설령 나이 차이가 백 살이 넘어도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그만 아니야? 어차피 축기기 수사가 되면 늙지도 않는데.”
|
|
|
|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백 살 차이 나는 상대랑 혼인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
|
|
|
있었다.
|
|
|
|
“왜 없어, 너도 저번에 뵌 적 있잖아.”
|
|
|
|
“내가? 누군데?”
|
|
|
|
“내 22대조 조상님.”
|
|
|
|
서란은 ‘그래서 그게 도대체 누군데?’라는 물음을 던지려다가 멈칫했다.
|
|
|
|
금영영의 조상, 그 중에서 아직까지 생존한 사람.
|
|
|
|
마침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
|
|
|
서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
|
|
|
“혹시, 금교월 님?”
|
|
|
|
“응, 그 분.”
|
|
|
|
“아...”
|
|
|
|
서란은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
|
|
|
무슨 말을 해도 말실수가 될 것 같았다.
|
|
|
|
어떻게 해서라도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
|
|
|
서란은 떠듬떠듬 말했다.
|
|
|
|
“시, 식겠다. 마저 먹자.”
|
|
|
|
두 번 다시는 금영영 앞에서 이런 화제를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