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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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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용기를 냈다기보다는 뭘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날아올랐다.

하지만 정작 나무에서 떨어지려던 소년을 구한 건 옆에 있던 다른 소년이었다.

바람처럼 나무를 스쳐 지나간 식산대붕은 자연스럽게 유턴해서 개울가로 돌아왔다.

친구가 안 다친 건 다행이지만, 다소 허망한 결말이기도 했다.

식산대붕은 살짝 민망해졌다.

풀이 죽은 듯한 오목눈이의 몸짓.

일행 중에서 최연장자(올해 10살)인 소녀가 가장 먼저 식산대붕의 기분을 눈치챘다.

소녀는 얼른 막내(신장 3m)를 칭찬했다.

“친구를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다니! 대붕아, 정말 장하다!”

그러면서 소녀는 팔꿈치로 옆 사람을 찔렀다.

얼른 자기처럼 칭찬하라는 비언어적 신호.

옆구리를 찔린 사람도 눈치 빠르게 물개 박수를 치면서 칭찬을 시작했다.

“마, 맞아! 대붕아, 진짜 다시 봤어! 물론 원래도 좋게 보고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도 눈치 빠른 순서대로 칭찬 대열에 합류했다.

“대단해, 대붕아!”

“네가 최고야!”

“정말 멋져!”

학생들은 식산대붕을 둘러싼 채 연신 박수쳤다.

자아가 생긴 지 어언 5년, 한창 칭찬 받기 좋아할 나이였다.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식산대붕의 부리가 저절로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이후, 식산대붕은 멋진 비행으로 귀가했다.

보호자 삼인방은 다채로운 리액션을 선보였다.

덕분에 식산대붕은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비행 공포증 같은 건 이미 눈 녹듯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첫 비행에 성공한 다음 날부터 식산대붕은 저택의 고용인들 주위를 계속해서 맴돌았다.

바닥을 쓸거나 가구를 옮기는 하녀들 옆에서 연신 기웃거렸다는 뜻이다.

뭔가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하녀 중 한 명이 식산대붕에게 물었다.

“대붕아, 뭐 필요한 거 있니?”

식산대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없어요.”

누가 봐도 용건이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아니라는데 계속 캐묻기도 뭐했다.

딱히 일하는데 방해되는 것도 아니기에, 하녀들은 그냥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식산대붕이 간절히도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온종일 계속되던 여름맞이 대청소가 끝났다.

청소 도중에 너무 낡았거나 망가져서 못 쓰게 된 물건 역시 잔뜩 나왔다.

하녀들은 내다 버릴 쓰레기를 모조리 마대 자루에 담았다.

이제 버리고 올 사람만 정하면 됐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자원자 있어?”

“절대 없지.”

“깔끔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무조건 단판이다.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너 저번처럼 늦게 내면 안된다?”

“제가요? 언제요?”

가위바위보에서 지기 싫어 안간힘을 쓰는 하녀들 근처로 식산대붕이 유유히 등장했다.

“에헴!”

식산대붕의 헛기침, 효과는 그닥 시원치 않았다.

하녀들은 뭘 낼지 고민하느라 바빴다.

여기서 패배하기라도 했다간 꼼짝없이 쓰레기장까지 갔다 와야 되는 상황이었다.

기대하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식산대붕은 좀 더 노골적인 신호를 보냈다.

“음, 외출하고 싶은 기분이 드네...”

나는 무조건 보자기를 내겠다느니 하는 알량한 심리전을 주고 받던 하녀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하녀 한 명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대붕아, 외출하게?”

“네.”

“어디 가는데?”

식산대붕은 마대 자루를 힐끔거리며 대답했다.

“그냥 뭐... 들판 서쪽?”

참고로 들판 서쪽에는 쓰레기장이 있었다.

이쯤 되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대놓고 티를 팍팍 내는 수준이었으니까.

하녀 한 명이 밝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대붕아, 그러면 혹시 가는 길에 쓰레기 좀 버려줄 수 있니?”

“부탁하는 건가요?”

“응, 언니들이 이렇게 부탁할게.”

식산대붕의 부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렇게 부탁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식산대붕은 쓰레기로 가득 찬 마대 자루를 두 발로 움켜쥐고 비상했다.

하녀들은 한순간에 멀어진 식산대붕의 엉덩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내 식산대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녀들은 의견을 나눴다.

“심부름하려고 여태 우리 뒤를 쫓아다녔던 거야?”

“글쎄다...”

“자기 잘 난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거 아냐? 왜, 어렸을 때 글방에서 뭐 하나 배우면 아는 척하고 싶어서 하루 종일 입이 간질간질했잖아.”

“아무튼 돌아오면 무조건 고맙다고 하자.”

“그런 건 또 내가 전문이지.”

잠시 후, 식산대붕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하녀들은 잽싸게 달려 들어서 식산대붕의 전신을 마구마구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감사 인사와 칭찬을 연발했다.

“고마워 대붕아!”

“덕분에 대청소가 한결 수월해졌어!”

“너 진짜 빠르더라!”

“완전 전광석화!”

식산대붕은 정말로 즐거워했다.


서란은 휴대전화를 꺼내 이아금의 번호를 눌렀다.

짧은 연결음이 끝나고 전화가 연결됐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모양인지 시끌시끌했다.

서란은 살짝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아금아, 지금 어디야?”

“아, 언니! 나 지금 친구 딸 혼인식! 방금 막 끝났으니까 금방 갈게! 먼저 먹고 있어!”

“응, 알았어.”

서란이 전화를 끊자, 금영영이 물었다.

“어디래?”

“친구 딸 혼인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나 봐. 금방 온다고 먼저 먹고 있으라네.”

“그래?”

금영영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젓가락을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오향장육, 한 입.

돼지고기가 텅 빈 위장을 든든하게 채워 줬다.

다들 요리를 몇 점씩 집어 먹었을 무렵, 이아금이 도착했다.

“죄송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호혜문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딱 맞춰서 왔어.”

“오랜만이에요, 혜문 언니.”

“오랜만은, 몇 번 통화했잖니.”

이아금은 빈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에이, 그래도 직접 얼굴 보는 거랑은 다르죠. 용녀님도 안녕하세요?”

생선 가시와 씨름하던 담청이 고개를 들었다.

“아, 반갑구나. 나야 뭐 항상 잘 지내지.”

인삿말이 원탁 위를 몇 차례 왕래했다.

수선 동아리 회원들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먹었다.

대화의 주제는 이리저리 바뀌었다.

그러다 문득 장선화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서란과 호혜문이 동시에 장선화를 바라봤다.

공교롭게도 장선화가 두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으로 동일했다.

그래서 매번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는 했다.

장선화는 보다 명확한 호칭을 사용했다.

“아, 호혜문 선생님이요.”

서란은 다시 오리고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호혜문은 옛 제자에게 물었다.

“뭐가 궁금하니?”

“걔는 아직도 선생님 쫓아다녀요?”

여기서 ‘걔’는 상사병에 걸린 호혜문의 제자였다.

청년과 장선화는 나이 차이가 적었다.

그래서 둘 다 같은 시기에 글방을 다녔다.

호혜문은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은 안 그래. 얼마 전에 잘 타일렀거든.”

금영영이 물었다.

“누가 쫓아다녀? 무슨 얘기야?”

서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떠올릴 수 있었다.

호혜문의 청혼자에 대한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금영영은 현장에 없었다.

그 무렵이면 한창 부적 공방에서 비인간적인 잔업에 시달리고 있었을 테니까.

서란은 짧게 요약해서 알려줬다.

서른 살 이상 어린 옛 제자의 청혼, 호혜문 곤란.

가만히 얘기를 듣던 금영영은 고개를 꼬았다.

그리고는 물었다.

“혜문은 어때요? 상대가 마음에 들어요?”

좌중의 시선이 호혜문에게 집중됐다.

호혜문은 담담하게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편이죠. 몇 년이나 가르쳤던 학생이니까요.”

금영영이 말했다.

“그러면 청혼을 받아들여도 되는 거 아니에요?”

“예? 얘기가 왜 그렇게 되나요?”

“아니, 좋아한다면서요.”

호혜문은 질색을 하며 대답했다.

“제자로서 좋아하는 거랑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게 같나요? 그런 대상으로 바라본 적도 없어요. 애초에 상대는 선화보다도 나이가 어립니다.”

담청을 위해서 생선 가시를 바르던 장선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란과 이아금도 호혜문의 견해에 동의했다.

아무리 그래도 서른 살 연하는 좀 그랬다.

하지만 범인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 금영영의 의견은 좀 달랐다.

“고작 서른 살 차이잖아. 안될 거 있나?”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식사 자리.

장선화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잘 발라 놓은 생선 가시만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담청은 생선살 먹느라 방금 오고 간 대화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호혜문과 이아금은 말문이 막힌 듯 했다.

결국 서란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영영, 서른 살 차이는 좀...”

“그게 왜? 설령 나이 차이가 백 살이 넘어도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그만 아니야? 어차피 축기기 수사가 되면 늙지도 않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백 살 차이 나는 상대랑 혼인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있었다.

“왜 없어, 너도 저번에 뵌 적 있잖아.”

“내가? 누군데?”

“내 22대조 조상님.”

서란은 ‘그래서 그게 도대체 누군데?’라는 물음을 던지려다가 멈칫했다.

금영영의 조상, 그 중에서 아직까지 생존한 사람.

마침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서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금교월 님?”

“응, 그 분.”

“아...”

서란은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말실수가 될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서란은 떠듬떠듬 말했다.

“시, 식겠다. 마저 먹자.”

두 번 다시는 금영영 앞에서 이런 화제를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