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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맞닿을 거리에서 시선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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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살이 붙잡힌 채 나진은 디에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샛노랗게 번들거리는 눈동자. 아르베니아 공작가에선 금안(金眼)이라 부르기도, 금화안(金貨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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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동자에 비친 제 모습을 나진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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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핏발이 서 있는 눈동자와, 눈가에는 얕은 그늘이 깔려있다. 지하도시에서 살아갈 적 자주 보았던 제 얼굴을 마주하게 된 나진은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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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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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붙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주고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나진은 한동안 침묵했다. 카프만과의 조우 이후 줄곧 저런 얼굴로 다녔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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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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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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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런 귀신 같은 몰골로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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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차라리 더 나은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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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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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 찢어 죽일 표정으로 다니더라. 모험가들이 네가 가까이 가기만 해도 거리를 벌리는 게, 뭐 때문이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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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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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남은 버릇이었다. 지하도시에서 사냥개로 살아갈 때 몸에 밴 버릇. 확실히, 옛날부터 제 실수나 방심으로 목숨줄이 흔들릴 때마다 나진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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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확실히 도움이 됐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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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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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부릅뜨고, 몸에 힘을 잔뜩 넣고 다니는 나진을 볼 때마다 이반은 혀를 차곤 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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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 살 놈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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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니면 탈 난다. 힘 빼. 쓰읍, 힘 안 빼? 이놈 이거 힘주는 거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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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이반은 나진의 목에 팔을 걸고선, 머리를 툭툭 치곤 했더랬다.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를 두들기며 힘 안 빼면 죽여버린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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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와라. 술이나 한잔 걸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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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인데요,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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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 낮술이 원래 맛있는 거야. 그리고 나 같이 유능하고 냉철한 보스는 주기적으로 술에 좀 꼴아서 술주정 좀 하고 다녀야 인간미가 있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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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렇게 안 해도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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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읍. 잔말 말고 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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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진이 어쩔 수 없이 힘을 빼면, 이반은 어깨동무를 한 채 나진을 주점으로 끌고 가곤 했다. 아직 어려 술을 못 마시는 나진을 옆에 앉혀두곤,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나진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리기도 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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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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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이반을 두려워하면서도, 싫어하진 않았었다. 그 시간들을 떠올린 나진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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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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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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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어깨에 힘을 줄 때마다, 어깨를 내리치며 긴장을 풀어주던 이반은 더 이상 없었다. 지하도시를 나온 소년은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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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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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길게, 아주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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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해야 할 상황은 맞다. 훈련을 게을리해선 안 될 상황 역시 맞았다. 언제 어디에서 습격자가 올지 모르며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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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경계심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사실 역시, 나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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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다고 소드 시커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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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내뱉으며 나진은 어깨와 눈에서 힘을 뺐다. 긴장이 풀리자 피곤함이 몰려왔고, 어깨가 뻐근했다.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근육을 풀며 나진은 문득 디에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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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제 손바닥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는데, 열린 창문에서 쌀쌀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더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진은 입을 열어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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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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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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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멱살을 잡아당기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시선이 흔들리는 디에타를 바라보며 나진은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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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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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에서 그러기로 약속했잖아요? 앞으로 친구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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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죠. 그렇다면, 디에타가 제 유일한 친구가 되는 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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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그러니까 하나뿐인. 그 말에 디에타가 눈을 빛내는 가운데 나진은 말을 계속했다. 친구란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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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고민 좀 들어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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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죠. 여기 와서 앉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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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구가 들어오지 않아 삭막한 상단의 건물. 그 건물의 구석에 나진과 디에타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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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민이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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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앞서, 몇 가지 말하자면··· 듣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배경이 좀 복잡한 사람이라. 그래도 괜찮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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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위험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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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급에게 암살당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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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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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짧게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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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데요. 무슨 죄라도 저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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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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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반역가의 사생아예요? 아님 반역도의 직계 후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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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모가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교단의 눈 밖에 날만한 일을 좀 한 것 같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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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이 적이란 뜻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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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나진의 이야기를 듣던 디에타가 턱을 매만지며 흐음, 하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뜬 디에타가 나진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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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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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디에타가 그렇다 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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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진이 제 첫 번째 친구 되는 셈인데, 첫 번째로 사귄 친구와 거리를 두고 싶진 않네요. 쉽지 않긴 하지만 감수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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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하고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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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해 봐요. 무슨 상황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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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디에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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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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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디에타가 아군이란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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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그녀가 여전히 아군이란 확신은 없었다. 그만큼 긴밀한 관계를 쌓기엔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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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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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들, 디에타란 사람을 알아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친구라고. 그 말을 나진은 믿고 싶었다. 저게 기만이나 거짓이 아닌 진심이라고 믿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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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건 어쩌면 도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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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 아트만이란 곳을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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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나진은 타인의 앞에서 제 출신지를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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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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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엑스칼리버’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한 채 디에타에게 제 상황을 털어놓았다. 엑스칼리버와 관련된 것마저 이야기 했다간 디에타가 감수해야 할 위험은, 고작 소드 시커급에 그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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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동안 나진은 이야기를 이어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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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말없이 나진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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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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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끝마친 나진은 디에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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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이야기를 듣기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표정으로 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나진이 그녀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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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치 않은 배경을 가졌다고 예상은 했는데, 제 상상 이상으로 배경이 복잡하긴 하네요. 이건 상상도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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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조금 놀랐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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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하도시 출신이었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맞긴 하네요. 묘하게 세상과 동 떨어진 느낌이 드는 것도, 제대로 된 신원 정보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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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린 디에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 스스로 무언갈 납득했다는 모양새였다. 해묵은 궁금증이 해소됐다는 양, 디에타는 숫제 시원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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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으로선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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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전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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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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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뭔가 다른 반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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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거나, 거리를 벌리거나, 지하도시 출신이란 사실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그런 흔한 반응들. 하다못해 자신에게 보낸 시선이 달라질 거라고 나진은 예상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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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이야기를 듣기 전과 같은 시선으로 나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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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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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짓궂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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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뭐, 당신을 두려워하거나 지하도시 출신이라고 경멸할 거라고 생각이라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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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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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답 없는 거 보니까 맞는 거 같네. 절 그렇게 봤으면 좀 실망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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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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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이 뭐 어때서요? 배경이 복잡한 건 또 어떻고요. 당신 과거가 어쨌든 간, 당신이 날 구해줬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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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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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으니까, 약속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하겠죠. 알아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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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입가를 가리곤 쿡쿡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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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다고 말하고, 손해 득실을 따지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에 뛰어드는 사람. 당신 그런 사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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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주제에, 하고 디에타는 나진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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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다른 사람에겐 그런 걸 조금도 기대하지 않죠. 내가 이렇게 행동하니까, 남들도 이렇게 대해줄 거라는 기대를 안 해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행한다는 점에서 대단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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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디에타가 나진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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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친구에겐 기대해도 되잖아요? 한명 정도는 당신에게도 ‘당연하지 않은 반응을 당연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당신이 해온 일이 얼마나 신기하고 당황스러운지 당신도 알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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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분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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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나진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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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죠? 당황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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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예.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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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날 얼마나 놀랐는데요. 뭐, 그런 거예요. 당신이 들려준 이야기는 확실히 놀랍긴 한데, 그게 당신에게서 거리를 벌릴 이유는 안 되네요. 당신을 혐오할 이유로는 더더욱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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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침묵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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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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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잖아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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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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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좀 감동스러워요? 제가 막 소중하고 그래요? 농담이에요. 뭘 그렇게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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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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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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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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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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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디에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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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거, 확실히 좋군요. 털어놓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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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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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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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일격에 얻어맞아 뇌 정지 상태에 돌입한 디에타가 어버버, 하는 사이 나진은 몸에서 힘을 뺐다. 지하도시에서 탈출하고 난 뒤론 언제나 몸에 힘을 주고 있던 나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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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에게 선별 받았단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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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과 오펜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단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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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실들이 나진이 힘을 빼지 못하게 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표정이 자연스러워졌고 목소리와 말투 역시 조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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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다 보니까 괜히 뒷골이 땡기는군요. 습격을 당하느니 그냥 이쪽에서 쳐들어가 버릴까요?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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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저기, 나진. 성휘교단에는 등대지기라고 마스터급의 강자가 있는 거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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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입니다. 지금 쳐들어가 봐야 제 목이 예쁘게 잘려서 효수될 텐데, 저 그렇게 멍청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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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나진의 모습에 디에타는 눈을 깜빡였다. 농담? 농담이라고? 나진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걸 디에타는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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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워진 말투. 풀어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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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딱딱하고 무표정하게 답하던 나진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으니까. 그러나 오히려 나진의 본래 성격과 말투는 이쪽에 가까웠다. 지하도시에서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다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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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기사에게 어울리는 말투와 행동이 아니라 생각하여 교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조금 달라진 나진의 모습에 당황하기를 잠시, 디에타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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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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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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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대책을 세워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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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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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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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생각해 둔 부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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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캄브리아 내에서 당신이 암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인데··· 이건 정리한 다음에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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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시 휴가를 나온 거니까요. 카멜롯에 있는 동안은 편히 쉬다 돌아가자구요.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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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나진은 카멜롯의 거리를 걸었다. 디에타는 상단과 관련하여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저녁에 다시 보자고 이야기했으니··· 저녁 시간대까지 시간을 때울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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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단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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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낯설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의 복장도 캄브리아와는 전혀 달랐고, 늘어선 가게들 역시 처음 보는 곳들뿐이다. 제국의 수도답게 어디를 보아도 반짝거리는 건 덤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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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신기한 건 저것들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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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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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아있는 마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멀리에 세워져 있음에도, 제국의 어디에서나 시야에 들어오는 마탑의 존재감은 과연 놀라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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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마탑들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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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그보다 더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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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을 둘러싼 다섯 개의 탑을 나진은 흘겨봤다. 제국을 지탱하는 다섯 기둥을 상징하며, 제국의 기둥에게 주어진 탑. 저 기둥 중 하나에 소드 마스터 게르드가 거하고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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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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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제일각(帝國第一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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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첫 번째 기둥인 동시에, 황제의 검이라 불리는 노인. 소드 시커부터는 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성기의 육체를 유지할 수 있음에도, 노인의 몸으로 움직이는 특이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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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물이고, 어떤 검을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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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호기심이 들었지만 나진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다 보니 소드 마스터 둘과 마주치게 됐지만, 본래 소드 마스터란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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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호기심으로 남겨둔 채 나진은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샌가 나진은 대장간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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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볼 게 산더미처럼 많은 곳에서 어떻게 귀신같이 대장간을 찾아내? 여기까지 와서 대장간을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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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의 앓는 소리가 귀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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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찾게 된 걸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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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부터 검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고, 소리에 이끌려 오게 된 것뿐이었다. 그렇게 대장간에 진열된 검을 나진이 바라보고 있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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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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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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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보니, 대장간의 앞에 앉아있는 어느 소녀가 나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녀는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고, 경갑을 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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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경갑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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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잘 알고 있는 문양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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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검과, 검을 가리는 방패의 문양. 아탕가의 기사를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저 소녀를 본 적이 있었다. 악마 기사 베른하이겐과 전투를 마친 후, 아탕가의 기사들과 조우했을 때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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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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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대장간의 문에 달린 방울이 소리를 냈고, 열린 문의 너머로 기사 하나가 걸어 나왔다. 대장간에서 나온 기사와 나진이 시선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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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자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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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 아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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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악마기사 토벌전에서 조우했던 기사가 나진을 알아보곤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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