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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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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태초의 대장장이가 벼려낸 47개의 무구이자, 기적과도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유물. 예로부터 이를 무구로 분류해야 할지 유물로 분류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럴 수밖에. 어느 것은 창칼의 형태요, 또 어느 것은 등불이나 외눈 안경, 그리고 시계와 같은 장신구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걸작이 ‘위험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했다. 걸작은 신비를 품고 있었으니.

걸작이 만들어지고 수천, 수만 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신비라는 개념은 정의됐다. 다름 아닌 대마법사 멀린에 의해서. 그녀의 말에 의하면 신비(神秘)란 아래와 같은 뜻을 품고 있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것.」

「상식의 바깥에 놓인 것.」

불은 타오르고 얼음은 차가우며, 그림자는 빛의 반대 방향으로 진다와 같은··· 너무나도 당연한 규칙. 그런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바로 신비다. 달리 말하자면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것들이란 뜻이다.

상식 바깥의 개념.

그런 개념이 깃든 무구.

그런 물건들이 위험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극단적인 예시지만,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걸작 ‘책갈피’가 소드 시커급의 무인을 죽인 사례도 있었으니 그 위험도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

걸작은 전력 차이를 무시한다.

상식을 깨고 전황을 뒤집는다.

그 무구에 깃든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걸작을 든 상대와의 전투는 몹시도 고단해지는 법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무인은 걸작을 쥔 상대, 특히나 잘 알려지지 않은 걸작을 가진 이와의 전투를 피하곤 했다.

이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걸작에 깃든 신비를 알아야 변수에 대비할 수 있는 법인데, 통상적으로 신비를 알아낼 방법은 ‘처맞아 본다’ 이외에는 달리 없었으니까. 그리고 걸작에 당한 이들은 대개 그 명을 달리했다.

4번 걸작 책갈피. 그 걸작에 깃든 신비를 알아차리기까지 총 68명의 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당연하게도, 자신이 그 68명이 되고 싶은 무인은 없다. 다른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가며 걸작의 신비를 파악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현명한 선택이니까.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아지랑이야.

세상에는 예외란 게 있는 법이다.

몇 번이고 처맞아보지 않더라도, 한번 식견 한 것만으로도 신비(神秘)를 꿰뚫어 보는 인물 역시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이 대마법사가 그렇다.

-저 걸작에 깃든 신비, 아지랑이야.

신비를 정의한 대마법사.

멀린은 나진에게 설명했다.

-시야와 감각을 혼동시켜. 하지만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나진 않아. 불을 직시하면 ‘시야’가 흔들려. 그리고 바닥의 불그림자를 밟으면 감각이 흔들리지.

보거나, 그림자를 밟거나 삼켜지거나.

-애석하게도 여기선 그림자를 피할 수 없네.

멀린이 혀를 찼다.

상대가 지하 수로에 숨어든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이 지하 수로는 저 걸작을 사용하기에 너무나도 유리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내가 전에 한 말 기억하지?

파우베를 향해 달리며 나진은 속으로 말했다.

기억하고 있다고. 그리고,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고. 나진이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뜸과 동시에 나진은 제 몸에 흐르는 흐름을 자각했다.

그것은 그날 이후로 제 몸에 깃든 별빛이다.

감춰져 있고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제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찬란히 빛나는 별빛이 나진의 몸에는 흐르고 있다.

-네 몸은 엑스칼리버의 검집이나 다름없어.

-엑스퍼트 때야 자각하기 어려웠겠지만······.

멀린이 웃었다.

-이젠 느껴지지?

심상의 편린을 깨우쳤다. 소드 시커의 초입에 발을 걸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진의 영혼과 육신은 분명히 성장했고, 성장은 제 안에 숨겨져 있던 것들을 자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는 느껴진다. 영혼에 깃든 빛이.

아직 자신이 다룰 수 없는 것. 너무나도 거대하고 세찬 별빛. 하지만 그것을 아주 조금, 한 줌이나마 움켜쥐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한 줌의 별빛을 온몸에 두를 수는 없다. 별빛을 쓸 수 있는 것은 한정된 범위.

그리고, 어디에 쓸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진의 눈동자에 별빛이 깃들었다.

백금으로 물든 눈동자가 등불에 타오르는 불길을 똑바로 응시했다. 드리운 불그림자에 집어삼켜진 순간 나진의 감각은 뒤흔들렸지만, 그 시야가 흔들리는 법은 없었다.

-엑스칼리버는 걸작의 위에 존재해.

-별의 검은 모든 것의 위에 존재하는 개념인데, 어딜 걸작 따위가 엑스칼리버에 비벼?

엑스칼리버는 걸작의 상위개념이었으므로.

멀린은 히죽였고 나진은 질주했다.

감각이 진탕이 됐지만, 시야만큼은 멀쩡하다. 제 뜻과 반대로 몸이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이 제 두 눈동자에 보였으므로 수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쾅.

땅을 박차며 나진이 속도를 올렸다.

무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나진을 보며, 파우베가 눈을 부릅떴다. 걸작을 응시하고도 정면에서 달려오다니?

“이런 미친···!”

파우베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녀의 등 위로 떠오른 서클이 반짝이고, 주문을 토해냈다. 뼈 말뚝. 뼈 늪. 저 돌진을 막고 시간을 벌기 위한 주문들. 즉발된 주문들이 나진의 길을 가로막지만··· 나진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눈에 보인다.

보인다면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뼈 말뚝이 나진의 검기에 휩쓸려 가루가 됐다. 바닥과 벽 천장까지 뒤덮은 뼈늪 역시 마찬가지다. 검을 휘두르기 위해 나진은 멈춰 서는 법이 없었고, 휘두르는 동작과 걸음을 내딛는 동작은 구분되지 않았다.

파스스슥!

검을 휘두를 때마다 뼈들이 뭉텅이로 쓸려나간다. 단 1초도 나진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한 채, 파우베의 주문은 쓸려나갔다.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나진의 모습에 파우베는 섬뜩함마저 느꼈다.

뭐란 말인가.

대체, 뭐란 말인가.

파우베는 섬뜩함을 느꼈다.

걸작으로 감각과 시야를 뒤흔들어놨을 텐데, 마치 통하지 않는 것처럼 땅을 박차고 달리고 있다. 견제를 위해 날린 주문을 정면으로 박살 내며 무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뭐야···?

3 서클 이상의 주문을 읊을 시간을 벌기 위한 주문은, 단 1초의 시간도 벌어주지 못했다. 눈을 한번 깜빡였을 땐 이미 코앞까지 거리가 좁혀진 뒤다.

카아아아아아앙!

나진이 휘두른 검이 파우베의 장막을 박살 냈다. 장막이 박살 남과 동시에 거부의 장막이 척력을 발생시키나,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컥!”

멱살이 붙잡힌 채,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척력마저 이용해 내팽개친다. 본대에서 계속해서 멀어지며 궁지로 몰리고 있음을 파우베는 깨달았다.

‘이런 미친······.

그녀는 속으로 욕설을 뇌까렸다.

본래 거부의 장막은 이리 남발할 수 있는 주문이 결코 아니다. 보호 주문을 유지하는 데 서클을 소모하기에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요, 주문의 연산 능력 역시 소모되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마법사에게 있어 ‘보호 주문’은 만일을 대비할 보험일 뿐이다.

몇 겹으로 보호 주문을 두르고 다니는 건 연산 능력과 서클이 차고 넘치는 6환 이상의, 아크메이지나 돼야 가능한 일이니까. 그런데도 파우베가 거부의 장막을 몇 번이고 쓸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몸에 두른 유물의 덕분이다.

‘칠환의 흑마법사 케팔론이 숨겨둔 유물들.

이 지하수로에 숨겨진 케팔론의 공방에는, 그런 유물들이 차고 넘친다. 고작 며칠 동안의 탐사로 손에 넣은 유물만 해도 이 정도이지 않은가. 이만한 유물은 마탑주의 수제자나 되어야 차고 다닐 수 있는 것들이다.

며칠 만에 이만한 유물. 그렇기에 파우베는 이 공방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더 깊은 곳에는 더 대단한 유물들이 한가득 숨겨져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쫓는 추격자들을 요격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시간을 번다면 이곳에서 경지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시간을 벌고, 경지를 높이고 이 도시를 이탈한다.

그것이 본래 파우베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이 지금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달려드는 미친 칼잡이로 하여금.

‘질 리가 없을 텐데. 도대체, 왜?

파우베는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의 위험도는 세간에 사환(四環)이라 알려졌으므로, 잘 쳐줘 봐야 소드 시커급의 무인이 올 게 뻔했다.

그리고 그녀는 소드 시커급의 무인에겐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걸작에, 숱한 유물에, 자신을 따르는 흑마법사와 시체 무리까지. 이만한 전력과 변수를 쥐고 있으면 소드 시커쯤이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카아아아아아앙!

또다시 거부 장막이 벗겨진다.

“끄윽!”

또다시, 내던져진다.

정신을 차려보면 몸에 두르고 있던 유물들은 거의 다 박살 나 있다. 거부 장막의 대가를 감당하고 박살 난 유물들이 한가득하다.

남은 횟수는 고작 해봐야 네 번.

그리고, 그 횟수마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파우베는 이를 악물고 주문을 읊었다. 견제는 쓸모가 없다. 차라리 장막이 깨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한 방을 먹인다. 파우베의 서클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3서클 마법, 핏빛 광선.

시체들에서 뽑아낸 피가 아직 남아있다.

휘몰아치는 피가 번쩍이고 나진을 향해 사출됐다. 사출된 핏빛 광선이 지하수로를 붉게 물들였다. 3서클 주문 중에서도 발군의 위력을 지닌 주문답게, 그 파괴력은 견제를 위한 주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치이이이이이이익!

경로상의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

핏빛 광선에 스친 지하수로의 표면이 들끓고 김이 피어오르며, 광선에 닿은 수로의 벽면은 녹아내렸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을 입힐 주문.

카프만은 마법이 각인된 단검으로 파훼했지만, 나진에겐 파훼할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파우베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은 나진의 신체 능력과 반응속도, 그리고 그 동체시력이다. 파우베의 지팡이가 핏빛으로 빛나는 순간 나진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에 핏빛 광선은 지팡이 끝에서 쏘아지는 것.

사출 경로를 예측하고.

한발 앞서 몸을 움직인다.

빛이 번뜩이는 순간 나진이 자세를 낮춘 채 땅을 박찼다. 나진의 머리 위로 광선과 함께 후끈한 열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파우베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지팡이를 움직여 광선의 궤도를 수정했다.

허나, 의미가 없는 일이다.

나진의 눈동자는 파우베의 지팡이 끝에 고정돼 있다. 지팡이의 움직임으로 핏빛 광선의 궤적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땅을 박차고 벽을 타고 달리며 나진은 또다시 거리를 좁혔다.

그리곤 카아아아아앙!

거부의 장막이 하나 더 벗겨진다.

남은 장막은 이제 세 번에 불과하다. 파우베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직감했다. 이대로 가다간 패배하고 만다고.

‘미친놈이다.

변수를 쥔 건 분명 이쪽일 텐데, 오히려 저쪽에서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본대와는 이미 한참 떨어졌고 저쪽에서 자신을 도와주러 올 수도 없다. 마법의 제물로 쓸 시체들과의 거리도 멀어져 더는 핏빛 광선을 쏠 수도 없다. 이쪽에서 가진 이점이 차례로 사라지고 있다.

다가온다. 죽음이.

미친 칼잡이가 온다. 자기 목을 베고자.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던 그녀가 발견한 것은 케팔론의 숨겨진 공방으로 향하는 통로다. 지금 이 통로를 사용했다간 흔적이 남고 결국 시설이 발각되고 말 테지만··· 지금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녀가 도망치며 벽을 지팡이로 내리쳤다.

검은 마나가 벽을 휘감고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덜컥,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파우베가 통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녀가 통과하자마자 닫히려는 문을 향해 나진이 몸을 던졌다.

그리곤 쿠웅.

공방으로 향하는 문이 굳게 닫혔다.

어두컴컴하고, 습하고, 기분 나쁜 장소.

공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나진은 감각이 곤두섬을 느꼈다. 이 공간에 퍼져있는 기운 자체가 흉흉했으니.

-흑마법사의 공방이 다 이래.

-이게 그 케팔론인가 뭔가 하는 놈이 숨겨둔 공방인 것 같네.

멀린의 말을 흘려들으며 나진이 파우베를 추격했다. 불 하나 없이 어둡지만, 나진의 눈에는 도망치는 파우베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탁.

땅을 박찬 나진이 도망치는 파우베의 등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슬슬 거부 장막이 만들어내는 척력에도 익숙해져, 나진은 집어던지는 게 아닌 파우베의 등을 걷어찼다.

“끄윽!”

비명을 지르며 파우베가 땅을 나뒹굴었다. 무언가에 부딪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파삭 소리를 내며 유물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 남았어.

유물의 수를 세고 있던 멀린이 말했다.

나진은 검을 쥔 채 파우베를 향해 다가갔다. 승기는 이미 기울었고, 걸작의 지속시간도 끝나 감각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슬슬 지겨운 추격전을 끝낼 시간이리라 나진은 판단했다.

“크흑, 크큭······.”

그리고, 그 순간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파우베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실성한 것인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넌 날 따라 들어오면 안 됐어.”

허세 역시 아니다.

파우베가 웃음을 흘리며 지팡이를 내려찍었다. 그 순간 그녀의 등 뒤로 고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사환(四環)을 파우베가 모두 드러냈다.

고리가 내뿜는 빛과 함께 주변이 밝아졌다.

그리하여 드러난 풍경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생체실험의 흔적. 흑마법의 매개로 사용할 만한 소재들이 지척에 깔려 있었다.

“마법사의 공방에 발을 디디면, 곱게는 못 뒤진단 이야기도 못 들었나 봐?”

마법사의 공방. 그들의 터전이자, 숱한 술식이 준비된 곳. 하물며 이곳은 칠환의 흑마법사였던 ‘케팔론’이 만든 공방이다.

“다 끝났어, 미친 칼잡아.”

파우베가 히죽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마나와 함께, 공방에 깔린 매개들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네 개의 고리가 거칠게 회전하며 곧장 주문을 짜 올린다.

매개와 유물의 보조를 받아 회전하는 서클에서 불똥이 튀어 올랐다. 온다. 4서클 이상의 위력을 가진 거대한 주문이.

하지만 정작 회전하는 서클의 앞에서 나진은 무표정할 뿐이었다. 공방에 들어오면 불리하단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 불리함을 감안하고서도, 이길 수 있기에 곧장 파우베를 추격해 달려온 것이다.

키이이이이이이잉!

마나가 요동치는 소음이 메아리쳤다.

그러나 그 소음에 나진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진이 귀 기울이는 것은 제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다.

-엑스칼리버를 뽑긴 좀 그래.

-이 정도 시설로는 엑스칼리버의 빛을 가릴 수 없으니까. 고위 악마의 권능쯤은 돼야 잠깐이나마 빛을 가릴 수 있겠지.

하지만, 하고 멀린은 웃었다.

-네 검기를 가리기엔 충분하네.

나진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눈을 감은 나진이 검을 높게 들었다. 심상의 편린을 붙잡고, 그 심상을 거닐며 나진이 깨달은 것은 자신의 심상이 조금 기이하다는 것이었다.

심상의 중심을 이루는 풍경.

검기로 나타나는 강렬한 기억.

보통 하나여야 할 그것이, 나진의 심상에는 두 개가 존재했으니까. 하나는 낮은 곳에 걸린 순백색의 별이며, 남은 하나는 높은 곳에 걸린 백금색의 별이다.

‘언제나 내가 불러왔던 것은.

순백색의 별. 순백의 검기다.

남은 하나는 남들 앞에서 꺼내선 안 됐으며, 기사로서 행동할 때는 순백색의 별이 더 적합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행하는 것은.

흑마법사를 베어 가르는 것이며, 사특하고 사이한 것을 베는 일이다. 그런 일에 더 적합한 것은 순백의 검기가 아님을 나진은 안다.

지금 떠올리는 것은 가장 높게 뜬 별.

그간 불러낼 기회가 없었던 백금색의 검기다.

나진의 내면에 있던 멀린은 보았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별이 세차게 빛나더니 어딘가로 빨려 들어감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멀린은 눈을 감았다. 별이 빨려 들어간 곳은 나진이 손에 쥔 한 자루의 검이다.

검기의 형태가 변한다.

검기의 성질이 변한다.

백금색으로 타오르는 검기는 마치 별과도 같다. 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별을 동경한 소년이 그려낸 검기는 아름답고도 처연하다.

“······!”

흑마법사의 공방을 채우는 처연한 별빛.

백금색의 검기를 마주한 순간 파우베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검에 대해 무지한 자라 한들 백금의 검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역사상 오직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된 검기.

아서왕이 다루던 검기가 저곳에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고, 또한 명료하다. 백금의 검기 앞에서 파우베는 깨닫는다.

사냥꾼과 사냥감이 뒤바뀌었음을.

처음부터 자신은 사냥감에 불과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