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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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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Ranger).

그들에 대해 나진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레인저는 기사보다 더럽고 어두운 일을 수행한다는 것 정도의 기초적인 지식. 그들이 암행, 요인 암살, 함정술, 매복에 탁월하단 정보가 전부였다.

「레인저는 까다롭다.」

그리고 조금 더 덧붙이자면.

「그렇지. 까다롭지. 뭐라 말하긴 힘든데 레인저들은 까다로워. 그 왜, 유명한 격언 하나 있잖아?」

「모든 싸움이 경지로 구분되진 않는다.」

「그게 대부분의 상황에선 개소린데, 레인저들을 상대할 때는 개소리가 아니더라고.」

이반과 오펜에게서 들었던 정보.

「그놈들은 사냥꾼이야.」

레인저는 사냥꾼이다.

「사냥꾼이 짐승을 상대할 때 정면에서 상대하냐? 멧돼지하고 눈을 마주치고 정면에서 검을 휘두르는 건 그냥 또라이 새끼지, 사냥꾼이 아니야.」

「사냥꾼은 철저하게 ‘사냥’을 한다.」

「대상의 습성, 특징, 움직임, 경로, 버릇, 아주 사소한 약점까지 꿰차고선······.」

이반이 손가락으로 나진의 관자놀이를 겨눴다.

「탕.」

쇠뇌를 갈기는 시늉을 하며 이반이 씩 웃었다.

「마지막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거지.」

철컥.

뒤에서 들려오는 장전 소리에 나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쇠뇌에 화살을 걸고 있는 카프만이 있었다. 쇠뇌가 자신에게 겨누어져 있진 않지만, 나진은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왜 그러지?”

“···쇠뇌가 독특해서요.”

나진은 괜스레 말을 돌렸다.

“그렇게 큰 쇠뇌는 처음 봅니다.”

“그렇겠지. 원래는 성벽에나 달아두는 거니까.”

카프만이 손에 든 것은 대형 쇠뇌.

성벽에 고정시켜 사용하는 요격용 발리스타와 비슷한 크기였지만, 카프만은 별 무겁지도 않다는 듯 쇠뇌를 어깨에 걸친채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 근력으론 안 될 것 같은데.

저만한 크기의 쇠뇌를 지지대에 고정도 하지 않은 채, 두 손으로 움켜쥐고 화살을 쏘는 장면이 나진의 머릿속엔 잘 그려지지 않았다. 반동 때문에 뒤로 밀려나거나 자빠질 것 같았으니까.

‘평범한 인간은 불가능한 일.

그런 일을 태연하게 행하는 것이 초인이고, 소드 시커는 초인에 근접한 이들이다. 그들과 동급으로 취급받는 무인이라면 하기야, 어려울 것도 없으리라.

나진과 카프만은 말없이 수로를 걸었다. 우선 지하 수로의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었으므로.

쏴아아······.

수로에 물 흐르는 소리는 들렸지만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둘 모두 기척을 지우는 데는 도가 튼 까닭이다. 나진은 앞장서 걷고 있기에, 뒤에서 제 걸음걸이를 유심히 지켜보는 카프만의 시선을 알아차리진 못했다.

“암부였나?”

나진을 유심히 지켜보던 카프만은 짧게 물었다. 대뜸 찌르고 들어오는 질문에 나진이 걸음을 멈춰 섰다.

“계속 걷지. 걸으면서 이야기해도 되는 일이니.”

“······.”

“혹 암부 소속이었냐고 물었다. 교단의 암부와 비슷한 걸음걸이를 하고 있길래. 비슷··· 아니군. 그놈들보다 더 나은데?”

카프만은 심드렁히 중얼거렸다.

“사연이 제법 많아 보이던데.”

“그건 갑자기 왜···.”

“신원은 불명. 기록은 하나도 없음. 나이도 이름도 심지어 경지까지 불분명하지. 캄브리아 재단의 우두머리쯤 되는 귀족이 보증을 서줬기에 망정이지···.”

중얼거리던 카프만이 피식 웃었다.

“아니었다면 제법 고생 좀 했을 거야. 이거 경험담이다. 나도 신분을 숨기고 들어왔다가 고생 좀 했거든.”

결국 이렇게 다 까발려졌고.

너도 알아보잖냐. 내가 누구인지. 그렇게 말하며 카프만은 길게, 아주 길게 숨을 내뱉었다.

“대답을 바라고 던지는 말은 아니니, 대답하려고 머리 굴릴 필요 없다. 그냥 꼰대 아저씨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라.”

“그렇습니까.”

“그런 거지. 네가 내 나이 돼봐라. 말이 많아져. 굳이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는데 괜히 잡담을 나누고 있더라고.”

지하 수로는 끝없이 아래로 펼쳐져 있었고.

“적적해서 그런가, 괜히 사람이 감수성이 풍부해져서 그런가··· 어떨 때는 의뢰 대상이랑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까?”

수로의 깊은 곳까진 아직 거리가 제법 남아 있었기에, 카프만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것은 소통을 바라는 대화라기보단 차라리 혼잣말에 가까운 것이었다.

“궁금해지거든. 아, 이놈은 어떻게 살아왔나. 이놈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이 지경까지 왔나. 그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는 거지.”

철컥, 하고.

카프만이 나진에게 쇠뇌를 겨누었다.

“이렇게 쇠뇌를 겨누고 말야.”

“악취미네요.”

“악취미지. 그래도 뒤지기 전에 남길 말이 있으면 들어줘야 할 거 아니냐? 아무리 거지 같이 살았어도 사람이라면 유언 정도는 남길 수 있는 거니까.”

카프만은 나진의 손을 보았다.

장난스레 쇠뇌를 겨누었음에도, 허리춤에 얹어진 나진의 손은 검을 반쯤 뽑아 들고 있었다. 여기서 쇠뇌를 당긴다면? 곧장 대응하리라.

‘반응은 빠르군.

카프만은 웃음을 흘리며 쇠뇌를 내렸다.

“물론 흑마법사는 예외이니 걱정마라.”

“흑마법사는 왜 예외입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 내가 말했잖아. 사람이라면 유언 정도는 남길 수 있는 거라고.”

나진은 눈을 깜빡였고 카프만은 답했다.

“흑마법사들은 사람이 아니야. 그건 짐승 새끼들이지. 은혜도 모르는 개좆같은 짐승 새끼들.”

씹어뱉듯이 카프만은 말했다.

독이 느껴지는 목소리였고, 깊은 원한이 묻어나오는 중얼거림이었다. 흑마법사와 얽혀서 좋지 못한 일을 당했던 모양이지. 나진은 그리 생각했다.

“슬슬 보이는군.”

“저 철창이 입구 같군요.”

“앞장서라. 뒤는 내가 맡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덧 지하수로의 최심부에 도달했다. 비틀어 열려있는 철창을 지나쳐 걸으면서 나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더럽게 넓군.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지하수로라 그런가, 그 크기가 끔찍하게도 넓다. 어디 그뿐이던가. 이 지하수로는 과거 이 도시가 칠환의 흑마법사 ‘케팔론’에게 점거당했을 때 만들어진 곳이다.

처음부터 이 지하수로는 흑마법 연구시설과 재단을 숨기고, 케팔론과 그 제자들이 몸을 숨기고 농성하기 위해 설계됐단 뜻이다.

그렇기에 지하수로의 구조는 거미줄이나 개미굴을 연상케 하는 미로와도 같았다. 이런 미로에서 흑마법사를 어느 세월에 찾는단 말인가. 흐르는 물길과 습한 공기가 흔적을 지워버리기에 평소에 쓰던 추적술 역시, 이 공간에선 쓸모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나진은 그리 고민했지만, 그 고민이 길게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굳이 흔적을 찾을 필요가 없었기에.

지익··· 지이익···.

물 흐르는 소리 너머로 발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나진이 바라봤다. 그곳에는 경비병이 있었다. 복장은 도시의 경비병의 것이나, 그 살갗은 푸르게 터 있었고 안색은 창백하기 짝이 없다.

살아있는 병사는 아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가 움직인다.

시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마법. 제국에선 금기로 여겨지는 마법이며, 금기를 당연하게도 어기는 이들은 하나밖에 없다. 흑마법사. 아니나 다를까 시체의 너머에 로브를 눌러쓴 흑마법사가 둘 보였다.

캉, 하고 나진이 검을 뽑아 든 순간이다.

흑마법사들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하수로를 타고 흐르던 물길이 부글거리더니, 물속에서 시체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했다.

저들에게 숨거나 도망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저들은 이 지하수로의 주인이 자신들이라는 양, 쳐들어오는 이들을 요격하기를 선택했다.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 그 의도야 둘째 치고··· 시체 무리를 바라보는 나진과 카프만의 뇌리엔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이 쉬워졌군.

적어도 찾아 헤매는 수고는 덜었으니까.

나진이 경험해 본 마법이라곤, 지하도시의 연금술사인 약쟁이 하칸이 쓰던 피를 매개로 한 마법뿐이다. 그마저도 굳이 따지자면 연금술의 계통이었기에 마법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것이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제대로 된 마법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진은 움직이는 시체들의 너머를 보았다. 사령술로 되살려낸 시체는 어디까지나 전위일 뿐이다. 저 뒤에서 마법을 준비하는 흑마법사들이 있었다.

검은 마나가 출렁인다.

출렁이는 마나가 허공에서 뭉쳐졌다.

마나가 뭉쳐지며 나타나는 것은 두 개의 고리다. 마법사들이 서클, 혹은 환(環)이라 부르는 것들. 고리에 새겨진 기이한 문자들이 반짝인 순간이다. 나진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쐐에에엑!

공기를 가르며 쏘아진 것은 뼈로 이루어진 말뚝이다. 인간의 척추뼈를 닮은 말뚝이 콱, 하고 방금까지 나진이 서 있던 위치에 틀어박혔다.

-전형적인 사령학파네.

나진의 귓가에 목소리가 울렸다.

-시체를 부리고, 시체들의 신체를 공양해 마법을 쓰는 아주 전형적인 네크로맨서야.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나진이 자세를 잡았다. 마법이 어떤 식으로 쏘아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기를 울리는 마나의 흐름이 눈에 보이긴 했다.

-기본적인 공격 수단은 뼈 말뚝. 저기 뼈 뽑아대는 거 보이지? 네 앞길을 가로막은 건 전위인 동시에 저놈들이 부리는 흑마법의 매개야.

나진의 검에 검기가 맺혔다.

-다음에 올 마법은, 아하.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낮추었다.

등 뒤로 검을 당긴 채 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뼈 늪이네. 뛰어.

나진이 땅을 박찬 순간 거의 동시에 바닥에서 뼈 말뚝이 솟구쳤다. 검사의 접근을 차단하는 주문. 지형을 함정으로 뒤바꿔 발을 묶고, 먼 거리에서 요격하는 아주 정석적인 전법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면 대응하긴 어렵지 않다.

땅을 박참과 동시에 나진이 지하수로의 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소드 시커에 근접한 육체 능력과 타고난 균형 감각은 벽을 타고 달림에도 땅을 박차는 것과 거의 속도 차이가 없게 만든다.

파바바바바바박!

뒤늦게 뼈 말뚝이 수로의 벽에도 튀어 오르지만, 역시나 늦다. 말뚝이 솟구쳤을 때 나진은 이미 시체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있었다. 흑마법사가 급히 지팡이를 휘둘렀다.

시체들이 부풀어 오름과 동시에, 투확.

시체가 폭발하며 그 뼛조각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사령학파의 흑마법사들은 그 매개로 삼을 시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까다로워진다. 이만한 숫자의 시체가 있다면 전사 하나쯤을 갈아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시체를 터뜨리며 흑마법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천장에 검을 박아 넣은 채 거꾸로 매달려있는 나진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어느새?

흑마법사의 동체시력으론 나진의 움직임을 쫓을 수 없고, 그가 주문을 발현할 때 나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는 것처럼.

-끝났네.

지금 나진의 귓가에 울리는 것은 멀린의 목소리. 그 눈으로 보는 것은 마나의 흐름이다.

마법이 언제 쏘아질지 안다.

그리고, 그 마법의 형태를 멀린이 속삭여준다.

그건 달리 말하자면 상대가 휘두르는 검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궤적’을 그리며 ‘어느 순간’에 다가올지 모두 알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알고 있다면 대응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흑마법사에게 질 일이 없다는 거.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나진이 무릎을 굽혔다.

‘이런 뜻이었군요?

-수준 낮은 마법사에게 ‘몰라서’ 당할 일은 없다고 했잖아. 뭐··· 내 도움이 없어도 됐을 것 같지만.

그리곤 쾅.

나진이 천장을 박찼다. 흑마법사를 향해 사선으로 쏘아지는 나진은 마치 한 발의 화살과도 같다. 흑마법사가 지팡이를 휘둘러 뼈 말뚝을 쏘아보고, 시체들을 끌어들여 보지만······.

나진이 공중에서 검을 휘두르며 몸을 비틀었다.

검기에 맺힌 검에 닿은 순간 뼈 말뚝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회전하는 검이 스친 순간, 길을 가로막은 시체들은 모조리 갈라졌다. 돌벽은 물론이고 강철조차 베어가르는 검기를 시체 따위가 막아설 수 있을 리가 없다.

스걱!

한순간에 트인 시야.

나진이 흑마법사의 코앞에 발을 디딘 순간, 흑마법사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검사에게 접근을 허용한 순간부터 마법사에겐 불리한 전장이 된다. 그리고 불리함을 뒤엎을 수단이 흑마법사에겐 없었다.

나진의 검이 흑마법사의 손목을 갈랐다. 지팡이를 쥔 손목을 날려버리며 나진이 손을 뻗었다.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손가락, 지팡이, 혹은 입이라고 멀린이 말했다.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 음절과 회로에 구애받으니까. 그거 다 막아버리면 마법 못 쓸걸?

손과 지팡이는 날려버렸다.

남은 것은 입. 나진이 흑마법사의 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 입을 닥치게 만든 다음, 나진은 흑마법사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한순간에 제압된 흑마법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든 말든 나진은 옆쪽을 흘겨봤다. 이쪽을 반기던 흑마법사는 둘이었다. 하나는 나진이 제압했고, 남은 하나는 어떻게 됐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컥, 커흑···.”

벽에 처박혀있는 흑마법사.

그 복부에는 거대한 화살 한 발이 박혀있었다. 복부를 관통하고 벽에 깊게 박힌 화살. 그 화살에 꿰뚫려 있는 흑마법사는 마치 박제된 곤충 같아 보였다.

화살이 쏘아졌을 궤적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노라면,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시체들이 가득했다. 마치 몸이 터져버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화살에 꿰뚫린 흔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단 한 발의 화살로 만들어냈다기엔 섬뜩한 풍경.

화살이 날아온 궤적의 끝에는 무표정한 카프만이 서 있었다. 그가 화살 한 발을 더 장전하며 걸음을 옮긴 순간이다.

또각.

지하수로에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오른쪽으로 꺾인 길에서 소리는 들려왔다. 길이 꺾여있기에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벽에 비춘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빛이 있다는 것.

등불이라도 손에 들고 있는지 그림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제압해 둔 흑마법사를 던져버리며 나진이 그림자를 향해 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이다.

휙.

꺾인 길에서 팔이 뻗어 나왔다.

몸을 감춘 채 그림자의 주인은 팔만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 팔에는 등불이 들려 있었다. 푸른색으로 타오르는 등불.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일렁이는 불꽃이 나진의 망막에 맺혔다.

타오르는 불꽃. 일렁이는 등불. 그리고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 지하수로의 벽에 드리운 그림자는 불꽃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불의 그림자가 수로를 뒤덮었다.

그리곤 화악.

불그림자가 나진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