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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 후작가를 떠나기 전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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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마르 후작의 이름 아래 작은 연회가 열렸다. 외부의 귀족들을 끌어들인 연회는 아니고, 후작의 사람들로 채워진 조촐한 연회였다. 다만 연회의 규모까지 조촐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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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을 가득 채운 음식과 화려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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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기 위해 마련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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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연주자들이 바이올린을 켜고 피아노를 두들기며 연주를 시작했다. 경쾌한 음악이 홀을 가득 채우고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충분히 달아올랐을 때 연회의 발코니에 후작이 걸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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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을 깔끔하게 뒤로넘긴 에델마르 후작이 손에 든 잔을 흔들며 축사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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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를 찾아온 두 손님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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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축사를 끝으로 연주가 다시 시작됐고, 하나둘 홀의 중심으로 나아가 함께 춤을 출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캄브리아 재단에 속한 몇몇 귀족가의 자제들, 후작의 사람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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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원래 이렇게 불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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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 복장이라는 게 원래 그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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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 또한 홀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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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어본 연미복이 낯설어 괜스레 목덜미를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누군가 나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뒤를 돌아보니 에델마르 후작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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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읍, 무대의 주인공이 이런데 서 있어서야 쓰나. 자네의 레이디가 기다리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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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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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이 끌끌, 혀를 차고선 나진의 등을 가볍게 떠밀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나진에게 후작은 윙크를 날렸다. 잘해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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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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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이런 분위기도, 이런 조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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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을 느끼며 홀의 중심을 향해 나진이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다. 나진은 자신에게로 시선이 쏠림을 느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나진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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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알 턱이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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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나진과 디에타가 펼친 도주극은, 후작의 입김과 함께 포장되어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 참이다. 그 이야기가 널리 퍼질수록 ‘명분’에 힘을 실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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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에 감금된 여인과, 그녀를 구하고자 단신으로 뛰어든 사내의 이야기. 낭만으로 포장된 이야기는 이곳에 모인 이들의 귓가를 최소 한 번씩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러니 시선이 쏠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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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이 쏠린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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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홀을 가로질렀다. 아마도, 후작의 말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디에타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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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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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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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곡이 연주되는 동안 파트너를 찾고, 다음 곡이 시작되면 춤을 추기 시작하겠지. 디에타는 연회의 한구석에서 두손을 모은 채, 제 손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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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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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에 참가한 적은 있지만, 디에타에게 춤을 청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디에타는 공작가의 버려진 자식이었고, 그녀에게 춤을 청한다는 것은 함께 놀림거리가 되겠단 의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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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언제나 외곽에서 연회를 지켜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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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저 홀의 중심으로 나가 춤을 춘 적은 없었다. 빛나는 무대의 주인공이 된 역시,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어렸을 적엔 홀의 중심에서 춤추는 이들을 동경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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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옛날이야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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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엷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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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성년의 나이가 되지 않았나. 제 나이가 벌써 스물이다. 스물이나 먹어놓고 이런 무도회에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과연 부끄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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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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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몹시 부끄러운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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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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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왜 이리 시끄럽게도 뛰는지. 마른침을 삼키며 디에타는 홀을 바라봤다. 나진은 맞은편에 서 있을 텐데 자신을 찾아올 수 있을까? 사람이 제법 많은데, 안 보이거나 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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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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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파트너를 찾던 연회의 참가자들이 하나둘 멈추어 섬을 디에타는 느꼈다. 그들의 시선이 한군데로 쏠리고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노라면, 홀의 중심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이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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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뒤로 넘겨 묶은 회백색의 머리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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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을 닮은 눈동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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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차려입은 연미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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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저 남자가 나진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디에타가 눈을 크게 떴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본래부터가 제법 반반한 사람인데, 저리 꾸며놓고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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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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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나진은 홀을 가로질러, 똑바로 디에타를 향해 다가왔다. 나진에게 쏠렸던 이목은 자연스레 그가 향하는 곳에 서있는 디에타에게로 분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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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마지막으로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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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디에타 앞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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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하루 동안 울프힐드에게 배운 대로 격식에 맞춰 디에타에게 손을 뻗고, 허리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춤을 청하는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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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 추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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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나진을 바라보던 디에타는 이내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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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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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나진의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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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과 함께 디에타는 홀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이번 연회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두 사람이었기에, 참가자들은 자연스레 길을 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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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가장 빛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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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의 중심에 디에타는 바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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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 퍼지던 곡이 마무리되어 가고, 새로운 곡이 시작되려 한다. 그사이에 놓인 짧은 정적. 요란스레 뛰는 심장 소리만이 디에타의 귀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마저 곧이어 시작된 연주에 파묻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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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울리는 것은 경쾌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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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은 제 손을 맞잡은 나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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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열이 차올랐지만 짧게 숨을 뱉어내고 디에타는 조심스레 첫걸음을 옮겼다. 자신이나 눈앞의 이 남자나 춤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을 테니 엉망일 게 분명하다. 그러니 넘어지지 않으려면 필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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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디에타는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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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조금 버벅거리던 나진이 가장 화려하게 춤추는 남녀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갑자기 능숙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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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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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이 끝나고 휴식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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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의 한구석에 놓인 티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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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걸터앉은 디에타는 숨을 몰아쉬며 나진을 힐끗, 바라봤다. 처음에는 자신과 어색하게 합을 맞추던 나진이나··· 어느 순간부터 춤을 깨우치기라도 한 듯 리드하던 모습이 제법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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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리드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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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을 붙잡아 자세를 교정하고, 팔을 잡아당기고 동작이 이상하면 몸을 비틀어 메꾸기까지 한다. 제대로 춤을 춰본 적이 없는 디에타이지만 나진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니, 한 곡을 마쳤을 때 주변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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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춤꾼들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꽤 수준이 높았단 소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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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디에타가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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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춤 따로 배운 적이라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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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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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한두 번 춰본 솜씨가 아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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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처음이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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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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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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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는 나진을 바라보며 디에타는 웃음을 흘렸다. 처음이라. 그렇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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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인걸요. 훗날 소드 마스터가 될 남자의 첫 춤 상대가 되었다니. 이거 굉장한 업적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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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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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새긴다면서요? 가장 높은 곳에 오른다니까, 소드 마스터가 목표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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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의 물음에 나진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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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것도 목표긴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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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더 있다는 눈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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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가 과정이지, 목적지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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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을 바쳐도 닿지 못하는 경지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불과하다라. 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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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웃으면서도 디에타는 부정하진 못했다. 눈앞의 남자는 확실히 특별한 구석이 있으니까. 범인(凡人)으로선 상상도 못 할 높은 곳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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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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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곱씹던 디에타는, 턱을 괸 채 나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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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도 좀 더 높은 곳을 꿈꿔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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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쁠 건 없죠. 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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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 목표는 아르베니아 공작가를 삼킬 만큼 거대한 상단을 만드는 거였죠. 상인으로서의 정점에 오르는 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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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고 디에타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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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곳을 바라보면··· 있기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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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로 쌓아 올린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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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탑에 걸터앉아 바라보노라면, 더 오를 곳이 남아있기는 하다. 금화로 정점에 올랐다면 이젠 금화를 흩뿌려 권력을 쟁취할 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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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기둥이라도 돼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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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내뱉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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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목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제국의 기둥이 무엇인가. 공작보다 높은 곳에 있으며 제 위로는 황제밖에 두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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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인정받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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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황가의 인물마저 숙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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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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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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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오각(五角)이라 불리는 다섯 기둥은 권력가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어떤 의미로는 소드 마스터와 견줄만한 작위인 것이다. 실제로 제국의 첫 번째 기둥은 ‘소드 마스터 게르드’였으니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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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소드 마스터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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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나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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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국의 오각쯤은 되어야, 동등한 위치에서 당신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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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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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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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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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기분 좋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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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당신 말대로 꿈을 크게 꿔서 나쁠 건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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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건 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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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린 디에타가 나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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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즐거웠어요. 꼭 동화 주인공이 된 느낌이네요. 무대의 한가운데에서 춤을 추게 될 줄은 몰랐는데, 신기한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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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신기한 것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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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금화를 삼키는 뱀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고, 아르베니아 공작가와 각을 세워 대립해야 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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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오늘 밤은 디에타로서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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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에 디에타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 또한 느꼈다. 특별했던 시간들은 결국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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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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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나진을 힐끗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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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진 않으리라. 저 사람에 대한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저 사람 앞에서만큼은, 언제나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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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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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레 뛰어대는 심장, 두근거리는 이 박동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리라. 금화를 삼키는 뱀은 한번 눈에 들인 것은 결코 놓치는 법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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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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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사건이 일단락되고, 후작의 배웅을 받으며 나진과 디에타는 캄브리아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부드럽게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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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이어질 일이야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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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돌아가면 나진은 명패를 적색으로 물들이며, 당당히 최상급 모험가의 자리에 앉을 것이며 디에타는 상단주의 자리를 돌려받을 것이다. 탈도 많고 사고도 많았지만 어찌됐든 일은 잘 마무리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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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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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첫 번째 자식이 상상 이상으로 집요하단 것이었고, 들려온 소문을 신뢰하지 않았단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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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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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돌아가자마자 나진과 디에타를 반긴 것은, 아게시오 공자와 그 뒤에 늘어선 기사들이었다. 공작가로의 복귀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아게시오는 복귀 일자를 뒤로 미룬 채 나진과 디에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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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서는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버려진 자식이었을 디에타에게 한 방 먹었단 사실이, 모험가 하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단 사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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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땐 물러서더라도 짓밟힌 가문의 위광은 바로잡아야 했다. 그것이 아게시오의 생각이었고, 아게시오가 선택한 오답이었다. 그는 패배를 인정할 줄 몰랐으며 굴욕을 감내하는 법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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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패배한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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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을 감내한 적도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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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가 걸어온 결투를 나진이 꼭 승낙할 필요는 없었다. 명분이 없었고 이유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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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를 거절하진 않겠지? 기사를 꿈꾸는 자가 명예로운 결투를 받아들이지 않아서야, 기사가 될 자격이 없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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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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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와 긍지를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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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게시오가 그 단어를 가벼이 입에 담은 순간, 나진에겐 명분이 생겼다.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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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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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끝까지 이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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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검을 뽑아 들었다. 검집을 거칠게 긁으며 빠져나온 검은 서슬 퍼렇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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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를 승낙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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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다섯 중 하나가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려 하자 나진은 헛웃음을 흘리며, 뽑아 든 검을 까딱였다. 값싼 도발에 응해준 나진은 자신 또한 값싼 도발을 기사들을 향해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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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씩 덤비실 필요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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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 든 검집을 나진이 땅에 휙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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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오셔야 균형이 좀 맞을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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