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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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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트레바체 후작가를 떠나기 전날 밤.

에델마르 후작의 이름 아래 작은 연회가 열렸다. 외부의 귀족들을 끌어들인 연회는 아니고, 후작의 사람들로 채워진 조촐한 연회였다. 다만 연회의 규모까지 조촐한 것은 아니었다.

홀을 가득 채운 음식과 화려한 조명.

춤을 추기 위해 마련된 공간.

극단의 연주자들이 바이올린을 켜고 피아노를 두들기며 연주를 시작했다. 경쾌한 음악이 홀을 가득 채우고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충분히 달아올랐을 때 연회의 발코니에 후작이 걸음 했다.

머리칼을 깔끔하게 뒤로넘긴 에델마르 후작이 손에 든 잔을 흔들며 축사를 읊었다.

“트레바체를 찾아온 두 손님을 위하여, 건배.”

짧은 축사를 끝으로 연주가 다시 시작됐고, 하나둘 홀의 중심으로 나아가 함께 춤을 출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캄브리아 재단에 속한 몇몇 귀족가의 자제들, 후작의 사람들, 그리고······.

‘이거, 원래 이렇게 불편합니까?

-연회 복장이라는 게 원래 그럴걸?

나진 또한 홀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 입어본 연미복이 낯설어 괜스레 목덜미를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누군가 나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뒤를 돌아보니 에델마르 후작이 서 있었다.

“쓰읍, 무대의 주인공이 이런데 서 있어서야 쓰나. 자네의 레이디가 기다리고 있지 않나?”

“···예?”

후작이 끌끌, 혀를 차고선 나진의 등을 가볍게 떠밀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나진에게 후작은 윙크를 날렸다. 잘해보라는 듯이.

‘뭐가 뭐인지···.

낯설다. 이런 분위기도, 이런 조명도.

어색함을 느끼며 홀의 중심을 향해 나진이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다. 나진은 자신에게로 시선이 쏠림을 느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나진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나진은 알 턱이 없었지만.

지난 며칠간 나진과 디에타가 펼친 도주극은, 후작의 입김과 함께 포장되어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 참이다. 그 이야기가 널리 퍼질수록 ‘명분’에 힘을 실을 수 있었으니까.

공작가에 감금된 여인과, 그녀를 구하고자 단신으로 뛰어든 사내의 이야기. 낭만으로 포장된 이야기는 이곳에 모인 이들의 귓가를 최소 한 번씩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러니 시선이 쏠릴 수밖에.

이목이 쏠린 가운데.

나진은 홀을 가로질렀다. 아마도, 후작의 말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디에타를 향해서.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이번 곡이 연주되는 동안 파트너를 찾고, 다음 곡이 시작되면 춤을 추기 시작하겠지. 디에타는 연회의 한구석에서 두손을 모은 채, 제 손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낯설다, 역시.

연회에 참가한 적은 있지만, 디에타에게 춤을 청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디에타는 공작가의 버려진 자식이었고, 그녀에게 춤을 청한다는 것은 함께 놀림거리가 되겠단 의미였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외곽에서 연회를 지켜보기만 했다.

단 한 번도 저 홀의 중심으로 나가 춤을 춘 적은 없었다. 빛나는 무대의 주인공이 된 역시,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어렸을 적엔 홀의 중심에서 춤추는 이들을 동경했었더랬다.

‘다 옛날이야기지.

디에타가 엷은 웃음을 흘렸다.

벌써 성년의 나이가 되지 않았나. 제 나이가 벌써 스물이다. 스물이나 먹어놓고 이런 무도회에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과연 부끄럽지 않겠는가.

쿵, 쿵···.

부끄러운, 몹시 부끄러운 일인데.

쿵쿵쿵.

심장은 왜 이리 시끄럽게도 뛰는지. 마른침을 삼키며 디에타는 홀을 바라봤다. 나진은 맞은편에 서 있을 텐데 자신을 찾아올 수 있을까? 사람이 제법 많은데, 안 보이거나 하진 않을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다.

제 파트너를 찾던 연회의 참가자들이 하나둘 멈추어 섬을 디에타는 느꼈다. 그들의 시선이 한군데로 쏠리고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노라면, 홀의 중심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이가 하나 있다.

깔끔하게 뒤로 넘겨 묶은 회백색의 머리칼.

노을빛을 닮은 눈동자와.

깔끔하게 차려입은 연미복까지.

뒤늦게 저 남자가 나진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디에타가 눈을 크게 떴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본래부터가 제법 반반한 사람인데, 저리 꾸며놓고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탁.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나진은 홀을 가로질러, 똑바로 디에타를 향해 다가왔다. 나진에게 쏠렸던 이목은 자연스레 그가 향하는 곳에 서있는 디에타에게로 분산됐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탁.

나진이 디에타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곤 하루 동안 울프힐드에게 배운 대로 격식에 맞춰 디에타에게 손을 뻗고, 허리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춤을 청하는 자세였다.

“한곡, 추시겠습니까?”

멍하니 나진을 바라보던 디에타는 이내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꺼이.”

디에타가 나진의 손을 맞잡았다.

나진과 함께 디에타는 홀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이번 연회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두 사람이었기에, 참가자들은 자연스레 길을 터주었다.

조명이 가장 빛나는 곳.

홀의 중심에 디에타는 바로 섰다.

울려 퍼지던 곡이 마무리되어 가고, 새로운 곡이 시작되려 한다. 그사이에 놓인 짧은 정적. 요란스레 뛰는 심장 소리만이 디에타의 귀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마저 곧이어 시작된 연주에 파묻혀 사라졌다.

귓가에 울리는 것은 경쾌한 음악.

눈에 보이는 것은 제 손을 맞잡은 나진의 모습.

얼굴에 열이 차올랐지만 짧게 숨을 뱉어내고 디에타는 조심스레 첫걸음을 옮겼다. 자신이나 눈앞의 이 남자나 춤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을 테니 엉망일 게 분명하다. 그러니 넘어지지 않으려면 필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디에타는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조금 버벅거리던 나진이 가장 화려하게 춤추는 남녀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갑자기 능숙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곡이 끝나고 휴식 시간.

연회장의 한구석에 놓인 티테이블.

의자에 걸터앉은 디에타는 숨을 몰아쉬며 나진을 힐끗, 바라봤다. 처음에는 자신과 어색하게 합을 맞추던 나진이나··· 어느 순간부터 춤을 깨우치기라도 한 듯 리드하던 모습이 제법 인상 깊었다.

‘아니 리드가 맞나···?

허리춤을 붙잡아 자세를 교정하고, 팔을 잡아당기고 동작이 이상하면 몸을 비틀어 메꾸기까지 한다. 제대로 춤을 춰본 적이 없는 디에타이지만 나진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니, 한 곡을 마쳤을 때 주변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전문 춤꾼들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꽤 수준이 높았단 소리인데······.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디에타가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춤 따로 배운 적이라도 있어요?”

“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정말요? 한두 번 춰본 솜씨가 아니던데.”

“오늘이 처음이었는데요.”

“···정말요?”

“예.”

고개를 끄덕이는 나진을 바라보며 디에타는 웃음을 흘렸다. 처음이라. 그렇단 말이지.

“영광인걸요. 훗날 소드 마스터가 될 남자의 첫 춤 상대가 되었다니. 이거 굉장한 업적 같은데.”

“···소드 마스터요?”

“별을 새긴다면서요? 가장 높은 곳에 오른다니까, 소드 마스터가 목표 아니에요?”

디에타의 물음에 나진은 웃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것도 목표긴 하니까요.”

“뭔가 더 있다는 눈치네요?”

“소드 마스터가 과정이지, 목적지는 아니니까요.”

“한평생을 바쳐도 닿지 못하는 경지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불과하다라. 하여간···.

그리 웃으면서도 디에타는 부정하진 못했다. 눈앞의 남자는 확실히 특별한 구석이 있으니까. 범인(凡人)으로선 상상도 못 할 높은 곳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인물이다.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라······.”

그 말을 곱씹던 디에타는, 턱을 괸 채 나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럼 저도 좀 더 높은 곳을 꿈꿔볼까요?”

“나쁠 건 없죠. 예를 들면?”

“원래 제 목표는 아르베니아 공작가를 삼킬 만큼 거대한 상단을 만드는 거였죠. 상인으로서의 정점에 오르는 거 말이에요.”

그런데, 하고 디에타는 중얼거렸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면··· 있기야 하죠.”

금화로 쌓아 올린 탑.

그 탑에 걸터앉아 바라보노라면, 더 오를 곳이 남아있기는 하다. 금화로 정점에 올랐다면 이젠 금화를 흩뿌려 권력을 쟁취할 시간이었으니까.

“제국의 기둥이라도 돼볼까요?”

가볍게 내뱉은 말.

그러나 그 목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제국의 기둥이 무엇인가. 공작보다 높은 곳에 있으며 제 위로는 황제밖에 두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자들이다.

황제에게 인정받았으며.

때로는 황가의 인물마저 숙청하며.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

제국의 오각(五角)이라 불리는 다섯 기둥은 권력가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어떤 의미로는 소드 마스터와 견줄만한 작위인 것이다. 실제로 제국의 첫 번째 기둥은 ‘소드 마스터 게르드’였으니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리라.

“당신이 소드 마스터가 된다면.”

디에타가 나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저도 제국의 오각쯤은 되어야, 동등한 위치에서 당신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습니까?”

“그런 거죠.”

그녀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곤 기분 좋게 숨을 내뱉었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당신 말대로 꿈을 크게 꿔서 나쁠 건 없잖아요?”

뭐, 그건 그거고.

그리 중얼거린 디에타가 나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오늘 즐거웠어요. 꼭 동화 주인공이 된 느낌이네요. 무대의 한가운데에서 춤을 추게 될 줄은 몰랐는데, 신기한 기분이네요.”

하나같이 신기한 것들뿐이다.

내일이면 금화를 삼키는 뱀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고, 아르베니아 공작가와 각을 세워 대립해야 할 테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디에타로서 즐길 수 있었다.

그 사실에 디에타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 또한 느꼈다. 특별했던 시간들은 결국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일 테니까.

‘그래도······.

디에타가 나진을 힐끗 바라봤다.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진 않으리라. 저 사람에 대한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저 사람 앞에서만큼은, 언제나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쿵쿵쿵.

요란스레 뛰어대는 심장, 두근거리는 이 박동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리라. 금화를 삼키는 뱀은 한번 눈에 들인 것은 결코 놓치는 법이 없으니까.

길었던 사건이 일단락되고, 후작의 배웅을 받으며 나진과 디에타는 캄브리아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부드럽게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에 이어질 일이야 단순했다.

도시에 돌아가면 나진은 명패를 적색으로 물들이며, 당당히 최상급 모험가의 자리에 앉을 것이며 디에타는 상단주의 자리를 돌려받을 것이다. 탈도 많고 사고도 많았지만 어찌됐든 일은 잘 마무리됐으니까.

그 사실을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첫 번째 자식이 상상 이상으로 집요하단 것이었고, 들려온 소문을 신뢰하지 않았단 부분이었다.

“결투를 청한다.”

도시로 돌아가자마자 나진과 디에타를 반긴 것은, 아게시오 공자와 그 뒤에 늘어선 기사들이었다. 공작가로의 복귀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아게시오는 복귀 일자를 뒤로 미룬 채 나진과 디에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로서는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버려진 자식이었을 디에타에게 한 방 먹었단 사실이, 모험가 하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단 사실이 말이다.

물러설 땐 물러서더라도 짓밟힌 가문의 위광은 바로잡아야 했다. 그것이 아게시오의 생각이었고, 아게시오가 선택한 오답이었다. 그는 패배를 인정할 줄 몰랐으며 굴욕을 감내하는 법을 몰랐다.

그는 패배한 적도.

굴욕을 감내한 적도 없었으니.

물론 그가 걸어온 결투를 나진이 꼭 승낙할 필요는 없었다. 명분이 없었고 이유가 없었으니까.

“결투를 거절하진 않겠지? 기사를 꿈꾸는 자가 명예로운 결투를 받아들이지 않아서야, 기사가 될 자격이 없지.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명예와 긍지를 안다면.”

아게시오가 그 단어를 가벼이 입에 담은 순간, 나진에겐 명분이 생겼다. 이유가 생겼다.

“결투를 받아···.”

그 말이 끝까지 이어지기 전에.

나진이 검을 뽑아 들었다. 검집을 거칠게 긁으며 빠져나온 검은 서슬 퍼렇게 빛났다.

결투를 승낙한다는 뜻이었다.

기사 다섯 중 하나가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려 하자 나진은 헛웃음을 흘리며, 뽑아 든 검을 까딱였다. 값싼 도발에 응해준 나진은 자신 또한 값싼 도발을 기사들을 향해 날렸다.

“한 분씩 덤비실 필요가 있습니까?”

뽑아 든 검집을 나진이 땅에 휙 내던졌다.

“한 번에 오셔야 균형이 좀 맞을 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