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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 후작가의 기사, 울프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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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처럼 성벽의 꼭대기에 걸터앉아 영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몇 안 되는 취미였다. 영지는 어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평화로웠으며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그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사색에 잠겨있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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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으로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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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되지 않은 손님이었고, 그 행색이 특이해 보이는 소녀였다. 소녀는 발걸음을 절뚝거리며 관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무언가에 쫓기는듯한 모습이다. 관문을 지키는 병사들 또한 소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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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또한 이상함을 느낀 듯 소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고, 후작가를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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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울프힐드는, 소녀가 품에서 무언갈 꺼낸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가 품에서 꺼내든 것은 편지지. 소녀와 울프힐드 사이의 거리는 제법 됐지만 울프힐드의 시력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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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편지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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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 후작가의 문양이요, 이 영지의 주인 되시는 분만이 새길 수 있는 문양이다. 거기까지 확인한 순간 울프힐드는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드높은 성벽에서 뛰어내렸음에도 그가 착지할 때 요란한 소리는 울려 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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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하는 가벼운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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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알아본 병사들의 경례에 고개를 까딱인 울프힐드는 소녀에게 다가섰다. 그리곤 자세를 낮춰 소녀에게 예를 표했다. 저 편지는 후작께서 귀중한 손님에게만 보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예를 표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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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님의 손님분 되십니까. 저택까지 모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편지는 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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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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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끊으며 소녀가 입을 열었다. 울프힐드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소녀를 바라봤다. 숨을 한번 몰아쉰 소녀는, 힘을 주어 똑바로 발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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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의 모험가,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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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은 울프힐드의 기억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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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께서 ‘아직도 이런 자가 남아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군’ 이라며 주목했던 모험가이기에. 또한, 제 동료의 마지막을 함께해준 인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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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편지의 주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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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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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힐드의 질문에 소녀는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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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소녀의 설명은 간결했고 상황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울프힐드가 눈살을 찌푸린 채 소녀의 말을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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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께서, 후작가를 방문하던 당신과 그 모험가를 습격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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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되고 생략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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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세한 설명은 뒤로한 채 그 상황만 요약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쉽사리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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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님의 손님 되는 분을, 후작가의 영지 인근에서 타 영지의 기사가 위협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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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트레바체 후작가의 이름을 무시하는 것이다. 상대가 공작가의 기사단장이라 한들, 그 사실은 변치 않는다. 울프힐드는 이 상황에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불쾌함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그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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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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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논한 뒤 신중히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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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정상적이며, 보편적인 대응이다. 눈앞의 인물이 공작가에서 큰 범죄를 저질렀다면 명분은 공작가 쪽에 자리 잡을 테니. 하지만 앞뒤 따져가며 움직이기에 상황은 급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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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를 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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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울프힐드는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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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듣도록 하죠. 경비병, 군마를 끌고 와라. 인근의 기사들을 소집하고. 그다음 후작님께 이 사실을 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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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인의 의견을 묻지 않고, 먼저 행동하는 것을 그는 선택했다. 먼저 행동할 만큼의 권한을 그는 쥐고 있었으며, 이 자리에 제 주인이 있었다 한들 지금의 자신과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 확신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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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더라도 헤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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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을 이해하고 먼저 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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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옳은 길을 주인에게 조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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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울프힐드가 말하는 충(忠)이다. 그는 후작가의 기사단장이요, 에델마르 후작에게 자율성을 인정받은 기사다. 에델마르 후작은 울프힐드의 판단력을 존중하고 신뢰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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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릭, 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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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메둔 대궁을 그가 강하게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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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허리춤에는 검 대신 어지간한 롱소드를 방불케 하는 길이의 화살 열댓 발이 담긴 화살통이 매여져 있다. 그 모습을 뒤늦게 확인한 소녀··· 디에타는, 눈앞에 서 있는 이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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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 후작가의 기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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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궁(大弓)을 다루는 기사, 울프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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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가 성벽의 관문에 걸터앉아 있던 것이, 디에타에겐 행운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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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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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에 디에타를 태우고, 기사들과 함께 움직이던 울프힐드는 그녀의 이야기에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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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 아가씨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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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이야기하던 소녀의 정체를 알아차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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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가의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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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버려진 자식이라 불리긴 하나, 엄연히 공작가에 속한 인물이다. 물론 울프힐드에겐 캄브리아의 거상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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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소녀의 정체가 그 디에타 아가씨라는것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복잡하다. 울프힐드는 눈살을 찌푸린 채 군마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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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아가씨를 공작가의 기사단장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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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복잡해요. 그래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명분은 제 쪽이 우위에 있어요. 우선 이반을 구해내기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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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귀 기울이던 울프힐드는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아가씨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미 늦었다, 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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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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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가시나무, 그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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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에 대해선 울프힐드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올랐으며 전쟁영웅의 ‘아르타 트리가디언’ 검술마저 다루는 그리핀은 울프힐드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강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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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반이란 모험가는 소드 엑스퍼트. 실력이 뛰어나다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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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급의 강자를 상대로 오래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도 시체가 되어있거나, 더는 검을 들 수 없는 모습이 되어있을 게 분명하다. 그 사실에 울프힐드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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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동료의 넋을 달래주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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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보기 드문 ‘기사다움’을 간직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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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청년이 이런 곳에서 꺾여버린 모습은 그닥 볼만한 광경이 아닐 테니까. 울프힐드는 입안에 감도는 쓴맛을 삼키며 군마를 몰았다. 숲속에 난 길을 달리던 울프힐드가 문득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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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쿠웅,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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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울리고 있다.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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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여파였다. 울프힐드가 군마에서 내렸다. 뒤따르던 기사들을 먼저 보내놓고 울프힐드는 나무를 타고 높은 곳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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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줄기에 발을 고정한 채 그가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에 넓어진 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숲의 풍경과 숲의 한가운데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터다. 그 공터의 한가운데에 붉은 가시나무가 자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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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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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미터 남짓한 크기까지 자라난 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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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그리핀이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고 있단 뜻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단 사실에 울프힐드가 놀라움을 느끼기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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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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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과 맞서고 있던 청년의 검이 만들어낸 빛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새하얗게 피어오르는 빛무리. 마치 별을 닮은 순백의 검기(劍氣). 그 검기에 울프힐드가 시선을 빼앗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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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검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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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가지를 베어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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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힐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소드 시커의 검기를 일부나마 베어냈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었으므로. 헛웃음을 터뜨리며 울프힐드는 제 등으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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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궁을 움켜쥐고 굵은 가지에 군화를 단단히 고정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그가 대궁의 활시위를 당겼다. 한계까지 팽팽해진 활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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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지켜보던 울프힐드는 최적의 순간에 활시위를 놓았다. 활시위를 놓는 그 순간까지, 그는 청년이 보여주는 기세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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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놈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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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힐드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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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사를 베었다는 명성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음을, 어쩌면··· 오히려 축소되었을지도 모른단 사실을 그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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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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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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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선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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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향한 서슬 퍼런 칼날. 그리핀은 한숨을 내쉬며 제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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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트레바체 후작가의 영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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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겐 영지 인근이지 않소. 이곳이 영지의 범위에 들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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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중요한 게 아님을 알 텐데. 영지의 인근이라 한들, 이곳은 엄연한 트레바체의 입김이 닿는 곳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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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이 늘어선 기사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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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 후작가의 기사들은 강인하다. 후작가의 주인인 에델마르 후작은 기사의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인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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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벅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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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상대해서도 안 된다. 그건 정말로 후작가와 전쟁이라도 하자는 의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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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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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리핀이 할 말을 고르고 있던 순간이다. 저 숲속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마를 몰고 뒤늦게 자리에 도착한 기사, 울프힐드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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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로 걸음 하셨소, 그리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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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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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힐드가 몰고 온 군마의 뒤에는 디에타가 타 있었으니까. 완전히 상황이 넘어갔음을 느낀 그리핀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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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공작님께서 명하셨소. 아르베니아 가문 소유의 별장에 침입해, 디에타 아가씨를 납치한 범죄자를 처벌하고 디에타 아가씨를 모셔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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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소? 내가 들은 이야기는 조금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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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힐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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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도움을 받아 디에타가 군마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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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대겠죠, 그리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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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에서 내린 디에타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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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납치한 것은 아르베니아 공작가이고, 저자는 제가 고용한 호위예요. 저를 구출하기 위해 벌인 사건이죠. 공작가의 별장을 파손한 죄질이 가볍진 않지만··· 그 전에 논해야 할 부분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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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녀의 말을 이어받은 것은 사정을 들은 울프힐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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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귀하신 에델마르 후작님의 손님이요. 후작께선, 언제든 저자가 영지를 찾아오거든 환대하라고 명하셨소. 별장을 파손한 일은 차후 논하면 되는 문제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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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를 납치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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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진에게 남은 것은 ‘호위 임무 수행 중 별장을 파손’ 시켰다는 죄질뿐. 그리핀은 자신이 명분에서 밀렸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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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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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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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힐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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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후작님의 손님을 모셔야 할 의무가 있소. 명분이 있지. 물론 그 사실을 그리핀 경께서 알고 있을 턱이 없으니, 지금까지의 소동은 눈감고 넘어가 줄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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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고 울프힐드가 화살통에 들어찬 화살들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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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의 기사들 앞에서, 후작님의 손님을 낚아채려 하는 무례를 계속해 범하겠다면 우리도 움직일 수밖에 없소. 서로 입장이라는 게 있는 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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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에델마르 후작님의 뜻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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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판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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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이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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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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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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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공작께서 직접 명하신 일이자, 반드시 수행하라 강조한 일이지. 그러니 묻겠소. 감당할 수 있겠소? 에델마르 후작께선 이 일을 어찌 생각하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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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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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의 기사들이 검을 거칠게 뽑아들었다. 그들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격변했다. 그건 울프힐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울프힐드가 눈을 부릅뜬 채 대궁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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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그분의 뜻을 헤아리려 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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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의 뜻을 헤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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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당신의 일이 아니라, 그분을 모시는 우리들의 일이다. 타 영지의 기사가 감히 끼어들어도 될 문제가 아님을 울프힐드는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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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를 범했군. 사과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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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이 한숨과 함께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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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이번 사건이 가문 간의 복잡한 일로 번질 수 있음을 조언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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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은 감사히 받겠으나, 내 생각은 변치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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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힐드가 짧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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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떠나 주시길 요청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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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얼굴을 쓸어내린 그리핀은 이내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더 대립각을 세워봐야 상황이 변할 것 같진 않았으므로.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 말고 그리핀은 잠시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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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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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고, 기어코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리를 따낸 청년. 그 청년을 바라보며 그리핀은 무심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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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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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 저 청년은 모험가가 아닌 기사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그리핀은 그런 생각을 했다. 탐나는 인재였으나 손에 넣을 수 있는 인재는 아니었다. 그리핀이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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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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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이 디에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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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호위를 두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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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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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남긴 채 그리핀은 트레바체의 기사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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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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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후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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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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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량 이상의 마나가 헤집어둔 속은 엉망이었고, 한계까지 마나를 운용한 탓에 시야가 흐릿했다. 지하도시에서 이반을 상대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탈력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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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힘을 빼면 쓰러질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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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상황이 끝날 때까지 나진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핀이 등을 돌려 떠나고 나서야 나진은 제자리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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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죽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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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아직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심상을 검에 담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으니, 몸이 남아날 리가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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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는 이미 계기는 맞이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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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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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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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를 겨우 뗐는데 냅다 달리면 안 넘어지는 게 이상하지. 뭐,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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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진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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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멋··· 아니, 괜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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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었다고 말하려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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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건 여전하다. 나진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신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마 당분간 휴식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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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트레바체의 기사들이 개입했고, 디에타의 안전도 보장됐으니 눈 좀 붙여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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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나진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이를 보았다. 절뚝거리며 달려오는 것은 디에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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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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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이는 디에타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들려오는 목소리 사이로 나진은 눈을 감았다. 더이상 탈력감에 저항할 수가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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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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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울먹이는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고, 나진은 정신을 잃기 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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