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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나진은 대장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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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아니고 평소 쓰던 검이 못쓰게 된 까닭이었다. 어렴풋이 눈치챈 건 얼마 전 트릭시의 주점을 정리할 때였는데, 칼날에 이가 다 나가 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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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좀 이상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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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시 주점을 정리하기 전, 오펜에게 검술 훈련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거 같은데. 검의 상태가 이상했으면 오펜이 한마디 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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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다가 망가졌다 보기도 좀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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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점에서 대기 중이던 잡놈들 몇 명 상대했다고 무뎌질 만큼 품질이 안 좋은 검은 아니었다. 대장간에 있던 검 중 가장 괜찮은 걸로 들고 왔었으니까. 적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나진이 뒷목을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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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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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면 호겔 영감이 또 한마디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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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온 지 한 달도 안 된 검이었는데,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찾아가자니 양심이 조금 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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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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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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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으니까. 이반의 영역의 끝자락. 땅거미 호르세의 영역과 맞닿은, 영역 간의 구분 선에 자리 잡은 대장간. 호겔 영감의 대장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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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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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두들기는 소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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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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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후끈한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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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짧게 숨을 내뱉곤 대장간의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곳엔 등을 보인 채 망치질을 하고 있는 초로의 노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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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애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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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주인, 호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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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개를 돌려 나진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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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슨 일이냐? 검 가져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반 그놈이 검이 필요하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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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건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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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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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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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뜸 들이지 말고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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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주신 검 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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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이 나진의 허리춤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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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묶여있는 제 작품을 확인한 노인이 망치를 내려놓곤 입꼬리를 쭉 치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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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공들여서 만든 놈이지. 요 몇 년 동안 두들긴 것 중에 가장 잘 나온 놈이었으니까. 왜, 칼이 너무 잘 들어서 문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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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불량품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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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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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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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노인에게 건넸다. 검을 받아 든 호겔의 눈이 조금 더 부릅떠졌다. 예리하고 매끄럽게 빛나던 검날은 어디 가고, 노인의 치아처럼 닳아 빠진 검날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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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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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든 호겔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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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대체 검을 뭐 어떻게 쓰면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거냐? 검으로 망치질이라도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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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설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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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등으로 대가리를 후린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망치질을 한 적은 없었다. 나진이 어깨를 으쓱이는 가운데 호겔이 검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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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 네가 받아 간 지 한 달밖에 안 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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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면 많이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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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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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욕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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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검 사간 놈들은 최소 연 단위로 쓴다. 관리만 잘하면 더 오래 쓸 수도 있고. 그런 검을 넌 한 달 단위로 까먹는데 이게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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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다말고 호겔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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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여러 각도로 돌려보던 그의 손길 역시 멈췄다. 엉망이 된 도신에서 무언갈 발견한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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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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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영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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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반이나 오펜한테 검 빌려준 적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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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없는데요. 근데 그건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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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진을 뒤로하고, 호겔은 도신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손가락을 타고 느껴진 감촉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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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풀어 오르고 미세하게 금이 간 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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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상이 무엇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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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에선 자주 경험했지만, 이 도시에 와선 경험할 일이 얼마 없어 잊고 있던 현상. 검기를 다룰 줄 아는 검사에게 평범한 방식으로 단조 된 검을 쥐여주면 생기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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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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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은 말없이 나진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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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서 검기를 뽑아낼 줄 아는 인물은 단둘뿐이다. 오펜과 이반. 그 두 사람에게 검을 빌려준 게 아니라면 저 애송이가 검기를 뽑아냈단 소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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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이에 검기를 뽑는다고? 그것도, 제대로 된 스승도 없는 이런 지하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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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을 좁힌 채 나진을 노려보던 호겔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이 애송이가 검기를 뽑아낸 불세출의 천재던 말던 자신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대장장이는 쇠만 잘 두들기면 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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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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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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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대로 된 검을 단조해볼 생각에 노인의 입가에는 웃음이 맺혔다. 호겔은 칼날을 갈기 위해 꺼냈던 도구들을 한구석으로 치워버리곤, 나진이 건넨 검 또한 대장간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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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에요. 안 갈아주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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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망가져야 날을 갈아주든 말든 하지. 새 걸로 만들어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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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있는 거 가져가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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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려 있는 검들을 나진이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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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덕스럽게 질문하는 나진의 모습에 호겔은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알고 저러는 건가? 아니면 모르고 저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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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 뽑는 놈한테 저런 거 쥐여줬다가 날려 먹을 일 있냐? 또 한 달도 안 돼서 검 하나 망가트려 오느니 새 걸로 만들어 주겠단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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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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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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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검기를 어떻게 뽑아요, 영감님. 저 아직 마나 다룰 줄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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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검이 왜 이 모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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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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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니가 모르면 누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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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표정을 지었다. 먼저 고개를 돌린 건 호겔이었다. 저 애송이가 자신을 놀려먹는 것 같진 않으니, 아마 자각이 없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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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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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이 화로의 화력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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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건 비싸게 받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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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지하 도시,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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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검을 만들어도 쓸 사람이 없는 도시였기에 그 역시 평범한 검만을 두들겨 왔다. 그러나, 검기를 뽑을 줄 아는 검사가 손님이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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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만들 생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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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럼 여태까지 불량품만 준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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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망가지던 이유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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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투덜거리는 나진의 모습에, 호겔은 시뻘겋게 달궈진 망치를 나진에게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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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쇠가 아니라 네 머리를 두들기기 전에 입 다물고 거기 앉아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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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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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깍 입을 닥친 나진이 다소곳이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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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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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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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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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을 두들기며 호겔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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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네가 왔으니 너한테 전하면 되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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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한테요?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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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호르세 쪽 놈들이 자꾸 선을 넘어온다. 경계선에서 어슬렁거리는 건 물론이고, 가게 안까지 밀고 들어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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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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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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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으로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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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으로 왔으면 말 꺼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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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린다는 듯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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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납금을 요구하더군. 자기네 영역에 절반쯤 걸쳐있으니, 당연히 자기 쪽에도 상납해야 하는 거 아니면서 으름장을 늘어놓는데···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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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니, 호르세니, 하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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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이 지하 도시에 줄을 긋고 땅따먹기 놀이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노인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가게의 위치가 잘못됐다며 시비를 걸어와 봐야 어이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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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이라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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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몇 자루를 채가긴 했지. 그리고 상납금을 안 내면 재미없을 거라고 덧붙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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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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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제 턱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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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가 좀 없는데요? 아니, 뭔 자신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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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엄연한 이반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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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 대장간 역시 이반의 보호를 받는 곳이었고. 내전 이후로 그렇게 합의를 봤고, 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렇게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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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이제 와서 이렇게 트집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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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를 거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나진은 썩 이해가 가진 않았다. 십 년 전 내전 당시 호르세는 이반한테 대판 깨져서 밀려난 게 아니었던가? 이반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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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전력 차이도 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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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호르세가 이반과 견줄만한 강자라곤 하나, 이반 쪽에는 오펜이라는 전력 역시 존재한다. 소드 엑스퍼트 경지에 오른 검사가 둘이다. 그게 어떻게 뒤집어 볼 만한 전력 차는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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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긴 하네요. 이반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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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건 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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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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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질을 하던 호겔이 힐끗 시계를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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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찾아온다 했으니 손 좀 봐주고 가라. 그러라고 너희한테 내가 상납금 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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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되시겠어요? 저 몸값 엄청 비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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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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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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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반 직속 사냥개잖아요. 저 한번 쓰고 나면 상납금 엄청 오를텐데 괜찮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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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양심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네가 지금까지 거저로 가져갔던 검이 몇 개인지 기억은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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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입니다,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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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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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고, 이번 건 보수 없이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개개인 간의 다툼이 아닌, 다른 조직 간의 다툼의 중재는 당연히 이쪽에서 나서서 처리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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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 당장 아무거나 휘두를 거 하나 빌려줄 수 있어요? 맨손으로 때려잡기는 좀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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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한단 소린 안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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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면 못할 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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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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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이거나 쓰고 있어라. 지금 만들고 있는 건 완성되려면 좀 걸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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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은 검 하나를 나진에게 던져줬다. 오랫동안 창고 한구석에 방치된 듯한 낡고 녹슨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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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무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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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이반 그 놈이 쓰던 검이다. 광석 비율을 달리 했으니까 무겁겠지. 그래도 당분간은 쓸만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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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하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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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말한 뒤, 호겔은 망치질 하는 일에 집중했다. 깡, 까앙 하는 망치질 소리가 대장간을 가득 채웠다. 단조에 몰입한 노인을 뒤로하고 나진은 대장간 한구석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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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주섬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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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품속에서 구겨진 모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우편부 모자. 나진이 얼굴을 가릴 때 애용하는 위장용 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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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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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시간쯤이 흘렀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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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나진은 고개를 숙인 채 눈동자만을 굴려 바깥을 살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 여섯이 껄렁한 발걸음으로 대장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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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두들겨 맞고, 칼침 맞은 게 자랑이라는 양 제 흉터를 훤히 드러낸 사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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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세의 영역 쪽에서 넘어온걸 보아하니, 호겔 영감이 말했던 호르세의 조직원들이 확실해 보였다. 나진은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조금 더 깊게 눌러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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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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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걸한 목소리. 선두에 서서 대장간에 들이닥친 사내가 언성을 높였다. 가게 안에 들어선 남자는 셋이었고, 바깥에 셋이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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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말했던 상납금은? 두둑이 챙겨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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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까앙! 그가 뭐라하던 말던 호겔은 쇠를 두들길 뿐이었다. 없는 사람 취급당한 남자가 표정을 콱 구긴 채 발에 닿는 것들을 닥치는대로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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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친네가 망치질만 하더니 귀가 처먹었나. 내 말 안 들려? 상납금 준비해 놓았냐고 묻잖아. 돈 없으면 여기 있는 검들 다 가져간다는 말 못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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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 뒤에 따라온 부하에게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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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는 들고 온 상자를 쿵, 하고 바닥에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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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영감. 상납금 안 내놓으면 여기 있는 검들 다 가져갈 테니 그리 아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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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장을 늘어놓으며 깽판을 부리는 사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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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윽고 나진이 앉아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나진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그들은 킥킥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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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부의 모자를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년. 고개를 푹 수그리고선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게, 누가 봐도 겁을 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사내 하나가 나진이 앉아있는 의자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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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꼬맹아. 형님들 이야기하시는 거 안보이냐? 빨리 안 꺼져? 씁, 눈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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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팔을 들어 올려 나진의 머리를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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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네번 째는 없었다. 사내의 팔목을 나진이 콱 움켜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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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요놈 봐라. 겁대가리를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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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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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 힘을 주어도 소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황파악을 못한 사내의 동료들이 저놈 저거 애새끼한테도 힘으로 밀린다며 시시덕거리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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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잠깐만. 이거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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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에게 손목이 붙잡힌 남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붙잡힌 손목이 아파왔다. 피가 안 통해 새하얗게 변해가는 손. 이를 악문 남자가 빈손으로 날붙이를 꺼내드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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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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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비틀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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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 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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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손목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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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그의 동료들은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몇번의 눈깜빡임, 몇번의 호흡. 그리고 뒤늦게 뽑아 드는 날붙이와 고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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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요란스러워진 상황 속에서 나진은 힐끗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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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시선은 제 앞에 서 있는 사내들이 아닌, 이 대장간의 주인인 호겔 영감에게 향해 있었다. 시선을 받은 노인은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 짧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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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싸워라. 가게 개판 만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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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호겔은 망치질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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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고개를 돌린 나진은 붙잡은 사내의 손목을 조금 더 비틀었다. 끄아아아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사내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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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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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릎까지 꿇고 비명을 질러대는 남자의 손목을 천천히 비틀며 나진이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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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가서 싸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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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미친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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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드는 사내들을 앞에 두고 나진은 등 뒤로 손을 뻗었다. 등 뒤에 감춰둔 칼자루를 움켜쥠과 동시에 나진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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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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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목을 붙잡은 사내의 안면을 무릎으로 찍어 넘어트리며 나진이 발검했다. 스릉, 그리고 서걱. 검집에서 검이 뽑혀져 나오는 소리와 절삭음은 동시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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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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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진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던 남자의 팔이 도낏자루와 함께 잘려 나갔다. 조금의 걸림도 없이 단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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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흐아아아악! 내, 내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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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비명, 쏟아지는 핏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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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에 남자와 함께 달려들던 부하가 당황해서 주춤하는 사이 나진의 손아귀가 콱, 하고 부하의 안면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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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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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의 머리가 대장간의 선반에 처박혔다. 움푹 파인 선반과 함께 부하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축 늘어진 부하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친 나진은 팔이 잘린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내를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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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흩뿌려진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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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모양으로 작살난 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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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는 남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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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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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에 가까운 그 모습을 쓱 둘러본 나진이 뒷목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조졌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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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 나가서 싸우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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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을 안 들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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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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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비명을 질러대는 남자의 정수리를 칼등으로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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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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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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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조용해진 남자의 머리칼을 붙잡아 질질 끌며 나진은 대장간의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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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남아있는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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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책임자로 보이는 사내가 하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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