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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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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이른 아침, 나진은 대장간으로 향했다.

다름이 아니고 평소 쓰던 검이 못쓰게 된 까닭이었다. 어렴풋이 눈치챈 건 얼마 전 트릭시의 주점을 정리할 때였는데, 칼날에 이가 다 나가 있더랬다.

‘근데 좀 이상하긴 한데.

트릭시 주점을 정리하기 전, 오펜에게 검술 훈련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거 같은데. 검의 상태가 이상했으면 오펜이 한마디 했을 것이고.

‘싸우다가 망가졌다 보기도 좀 그렇고.

주점에서 대기 중이던 잡놈들 몇 명 상대했다고 무뎌질 만큼 품질이 안 좋은 검은 아니었다. 대장간에 있던 검 중 가장 괜찮은 걸로 들고 왔었으니까. 적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나진이 뒷목을 긁적였다.

“쓰읍···.”

그냥 가면 호겔 영감이 또 한마디 할 텐데.

받아온 지 한 달도 안 된 검이었는데,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찾아가자니 양심이 조금 찔렸다.

“······.”

나진이 걸음을 멈췄다.

고민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으니까. 이반의 영역의 끝자락. 땅거미 호르세의 영역과 맞닿은, 영역 간의 구분 선에 자리 잡은 대장간. 호겔 영감의 대장간이었다.

깡, 까앙!

쇠를 두들기는 소리와.

화악.

밀려드는 후끈한 열기.

나진은 짧게 숨을 내뱉곤 대장간의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곳엔 등을 보인 채 망치질을 하고 있는 초로의 노인이 있었다.

“뭐냐, 애송아.”

대장간의 주인, 호겔.

그가 고개를 돌려 나진을 흘겨봤다.

“또 무슨 일이냐? 검 가져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반 그놈이 검이 필요하댔나?”

“어··· 그건 아닌데요.”

나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영감님.”

“뭐냐. 뜸 들이지 말고 말해라.”

“저번에 주신 검 말인데요.”

호겔이 나진의 허리춤을 흘겨봤다.

그곳에 묶여있는 제 작품을 확인한 노인이 망치를 내려놓곤 입꼬리를 쭉 치켜올렸다.

“꽤나 공들여서 만든 놈이지. 요 몇 년 동안 두들긴 것 중에 가장 잘 나온 놈이었으니까. 왜, 칼이 너무 잘 들어서 문제냐?”

“그거 불량품 같은데요.”

“뭐?”

호겔이 눈을 부릅떴다.

나진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노인에게 건넸다. 검을 받아 든 호겔의 눈이 조금 더 부릅떠졌다. 예리하고 매끄럽게 빛나던 검날은 어디 가고, 노인의 치아처럼 닳아 빠진 검날이 그곳에 있었다.

“너, 너···.”

검을 든 호겔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너는 대체 검을 뭐 어떻게 쓰면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거냐? 검으로 망치질이라도 하는 거냐?”

“에이 설마요.”

칼등으로 대가리를 후린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망치질을 한 적은 없었다. 나진이 어깨를 으쓱이는 가운데 호겔이 검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이 검, 네가 받아 간 지 한 달밖에 안 된 것 같은데.”

“한 달이면 많이 썼네요.”

“미친놈.”

“왜 욕을 하고 그래요.”

“나한테 검 사간 놈들은 최소 연 단위로 쓴다. 관리만 잘하면 더 오래 쓸 수도 있고. 그런 검을 넌 한 달 단위로 까먹는데 이게 정상···.”

말을 하다말고 호겔은 입을 다물었다.

검을 여러 각도로 돌려보던 그의 손길 역시 멈췄다. 엉망이 된 도신에서 무언갈 발견한 까닭이었다.

“나진.”

“예, 영감님.”

“너 이반이나 오펜한테 검 빌려준 적 있냐?”

“아니요? 없는데요. 근데 그건 왜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진을 뒤로하고, 호겔은 도신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손가락을 타고 느껴진 감촉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부풀어 오르고 미세하게 금이 간 도신.

이런 형상이 무엇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윗동네에선 자주 경험했지만, 이 도시에 와선 경험할 일이 얼마 없어 잊고 있던 현상. 검기를 다룰 줄 아는 검사에게 평범한 방식으로 단조 된 검을 쥐여주면 생기는 현상이었다.

“······.”

호겔은 말없이 나진을 흘겨봤다.

이 도시에서 검기를 뽑아낼 줄 아는 인물은 단둘뿐이다. 오펜과 이반. 그 두 사람에게 검을 빌려준 게 아니라면 저 애송이가 검기를 뽑아냈단 소리인데.

저 나이에 검기를 뽑는다고? 그것도, 제대로 된 스승도 없는 이런 지하도시에서?

미간을 좁힌 채 나진을 노려보던 호겔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이 애송이가 검기를 뽑아낸 불세출의 천재던 말던 자신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대장장이는 쇠만 잘 두들기면 되는 일이니까.

스윽.

그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검을 단조해볼 생각에 노인의 입가에는 웃음이 맺혔다. 호겔은 칼날을 갈기 위해 꺼냈던 도구들을 한구석으로 치워버리곤, 나진이 건넨 검 또한 대장간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어, 뭐에요. 안 갈아주시게요?”

“적당히 망가져야 날을 갈아주든 말든 하지. 새 걸로 만들어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라.”

“그냥 있는 거 가져가면 안 돼요?”

벽에 걸려 있는 검들을 나진이 가리켰다.

천연덕스럽게 질문하는 나진의 모습에 호겔은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알고 저러는 건가? 아니면 모르고 저러는 건가.

“검기 뽑는 놈한테 저런 거 쥐여줬다가 날려 먹을 일 있냐? 또 한 달도 안 돼서 검 하나 망가트려 오느니 새 걸로 만들어 주겠단 소리다.”

“예? 검기요?”

나진이 눈을 깜빡였다.

“제가 검기를 어떻게 뽑아요, 영감님. 저 아직 마나 다룰 줄도 모르는데.”

“그럼 검이 왜 이 모양이냐?”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걸 니가 모르면 누가 알아.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표정을 지었다. 먼저 고개를 돌린 건 호겔이었다. 저 애송이가 자신을 놀려먹는 것 같진 않으니, 아마 자각이 없는 거겠지.

“아무튼 간.”

호겔이 화로의 화력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번 건 비싸게 받을 거다.”

이곳은 지하 도시, 아트만.

제대로 된 검을 만들어도 쓸 사람이 없는 도시였기에 그 역시 평범한 검만을 두들겨 왔다. 그러나, 검기를 뽑을 줄 아는 검사가 손님이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는 법이다.

“제대로 만들 생각이니까.”

“와, 그럼 여태까지 불량품만 준거에요?”

잘 망가지던 이유가 있었네.

그렇게 투덜거리는 나진의 모습에, 호겔은 시뻘겋게 달궈진 망치를 나진에게 겨눴다.

“이걸로 쇠가 아니라 네 머리를 두들기기 전에 입 다물고 거기 앉아 있어라.”

“넵.”

재깍 입을 닥친 나진이 다소곳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말이다.”

깡, 까앙.

철을 두들기며 호겔이 입을 열었다.

“이반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네가 왔으니 너한테 전하면 되겠구만.”

“이반한테요? 뭔데요?”

“요즘 호르세 쪽 놈들이 자꾸 선을 넘어온다. 경계선에서 어슬렁거리는 건 물론이고, 가게 안까지 밀고 들어오더군.”

···가게 안까지?

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손님으로요, 아니면?”

“손님으로 왔으면 말 꺼내지도 않았다.”

질린다는 듯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납금을 요구하더군. 자기네 영역에 절반쯤 걸쳐있으니, 당연히 자기 쪽에도 상납해야 하는 거 아니면서 으름장을 늘어놓는데···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지.”

이반이니, 호르세니, 하칸이니.

그놈들이 지하 도시에 줄을 긋고 땅따먹기 놀이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노인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가게의 위치가 잘못됐다며 시비를 걸어와 봐야 어이가 없을 뿐이다.

“협박이라도 했나요?”

“검 몇 자루를 채가긴 했지. 그리고 상납금을 안 내면 재미없을 거라고 덧붙이더군.”

“허어.”

나진이 제 턱을 매만졌다.

“싸가지가 좀 없는데요? 아니, 뭔 자신감이지?”

이곳은 엄연한 이반의 영역이다.

당연히 이 대장간 역시 이반의 보호를 받는 곳이었고. 내전 이후로 그렇게 합의를 봤고, 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렇게 유지됐다.

그걸 이제 와서 이렇게 트집을 잡는다?

시비를 거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나진은 썩 이해가 가진 않았다. 십 년 전 내전 당시 호르세는 이반한테 대판 깨져서 밀려난 게 아니었던가? 이반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하물며 전력 차이도 클 텐데?

땅거미 호르세가 이반과 견줄만한 강자라곤 하나, 이반 쪽에는 오펜이라는 전력 역시 존재한다. 소드 엑스퍼트 경지에 오른 검사가 둘이다. 그게 어떻게 뒤집어 볼 만한 전력 차는 아닐 텐데.

“이상하긴 하네요. 이반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그래. 그건 그거고.”

깡, 까앙

망치질을 하던 호겔이 힐끗 시계를 흘겨봤다.

“오늘도 찾아온다 했으니 손 좀 봐주고 가라. 그러라고 너희한테 내가 상납금 내는 거니까.”

“감당 되시겠어요? 저 몸값 엄청 비싼데.”

“뭐?”

나진이 히죽였다.

“저 이반 직속 사냥개잖아요. 저 한번 쓰고 나면 상납금 엄청 오를텐데 괜찮으시겠어요?”

“허어. 양심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네가 지금까지 거저로 가져갔던 검이 몇 개인지 기억은 하냐?”

“농담입니다, 농담.”

나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애당초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고, 이번 건 보수 없이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개개인 간의 다툼이 아닌, 다른 조직 간의 다툼의 중재는 당연히 이쪽에서 나서서 처리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영감님, 당장 아무거나 휘두를 거 하나 빌려줄 수 있어요? 맨손으로 때려잡기는 좀 그런데.”

“못한단 소린 안하는구만.”

“하라면 못할 건 없죠.”

호겔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당장은 이거나 쓰고 있어라. 지금 만들고 있는 건 완성되려면 좀 걸릴 테니까.”

호겔은 검 하나를 나진에게 던져줬다. 오랫동안 창고 한구석에 방치된 듯한 낡고 녹슨 검이었다.

“좀 무겁네요?”

“옛날에 이반 그 놈이 쓰던 검이다. 광석 비율을 달리 했으니까 무겁겠지. 그래도 당분간은 쓸만 할거다.”

튼튼하긴 하니까.

거기까지 말한 뒤, 호겔은 망치질 하는 일에 집중했다. 깡, 까앙 하는 망치질 소리가 대장간을 가득 채웠다. 단조에 몰입한 노인을 뒤로하고 나진은 대장간 한구석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주섬주섬.

나진은 품속에서 구겨진 모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우편부 모자. 나진이 얼굴을 가릴 때 애용하는 위장용 모자였다.

한두시간쯤이 흘렀을 무렵이다.

대장간의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나진은 고개를 숙인 채 눈동자만을 굴려 바깥을 살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 여섯이 껄렁한 발걸음으로 대장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서 두들겨 맞고, 칼침 맞은 게 자랑이라는 양 제 흉터를 훤히 드러낸 사내들.

호르세의 영역 쪽에서 넘어온걸 보아하니, 호겔 영감이 말했던 호르세의 조직원들이 확실해 보였다. 나진은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조금 더 깊게 눌러썼다.

“호겔 영감!”

걸걸한 목소리. 선두에 서서 대장간에 들이닥친 사내가 언성을 높였다. 가게 안에 들어선 남자는 셋이었고, 바깥에 셋이 더 있었다.

“지난번에 말했던 상납금은? 두둑이 챙겨놨겠지?”

깡, 까앙! 그가 뭐라하던 말던 호겔은 쇠를 두들길 뿐이었다. 없는 사람 취급당한 남자가 표정을 콱 구긴 채 발에 닿는 것들을 닥치는대로 걷어찼다.

“이 노친네가 망치질만 하더니 귀가 처먹었나. 내 말 안 들려? 상납금 준비해 놓았냐고 묻잖아. 돈 없으면 여기 있는 검들 다 가져간다는 말 못 들었어?”

그가 제 뒤에 따라온 부하에게 손짓했다.

부하는 들고 온 상자를 쿵, 하고 바닥에 내려놨다.

“어이, 영감. 상납금 안 내놓으면 여기 있는 검들 다 가져갈 테니 그리 아쇼.”

으름장을 늘어놓으며 깽판을 부리는 사내들.

그들은 이윽고 나진이 앉아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나진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그들은 킥킥 웃어댔다.

우편부의 모자를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년. 고개를 푹 수그리고선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게, 누가 봐도 겁을 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사내 하나가 나진이 앉아있는 의자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야, 꼬맹아. 형님들 이야기하시는 거 안보이냐? 빨리 안 꺼져? 씁, 눈치 없이.”

사내가 팔을 들어 올려 나진의 머리를 두들겼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네번 째는 없었다. 사내의 팔목을 나진이 콱 움켜쥔 까닭이었다.

“허, 요놈 봐라. 겁대가리를 상실···?”

남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팔에 힘을 주어도 소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황파악을 못한 사내의 동료들이 저놈 저거 애새끼한테도 힘으로 밀린다며 시시덕거리는 가운데.

“야, 잠깐만. 이거 이상···.”

나진에게 손목이 붙잡힌 남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붙잡힌 손목이 아파왔다. 피가 안 통해 새하얗게 변해가는 손. 이를 악문 남자가 빈손으로 날붙이를 꺼내드려는 순간이다.

우드드드득!

뼈가 비틀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 끄아아아아아악!”

남자의 손목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그의 동료들은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몇번의 눈깜빡임, 몇번의 호흡. 그리고 뒤늦게 뽑아 드는 날붙이와 고함소리.

한순간에 요란스러워진 상황 속에서 나진은 힐끗 시선을 돌렸다.

나진의 시선은 제 앞에 서 있는 사내들이 아닌, 이 대장간의 주인인 호겔 영감에게 향해 있었다. 시선을 받은 노인은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 짧게 말했다.

“나가서 싸워라. 가게 개판 만들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호겔은 망치질을 계속했다.

다시 고개를 돌린 나진은 붙잡은 사내의 손목을 조금 더 비틀었다. 끄아아아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사내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그렇다는데.”

이제는 무릎까지 꿇고 비명을 질러대는 남자의 손목을 천천히 비틀며 나진이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 나가서 싸울까요?”

“이 미친 새끼가!”

달려드는 사내들을 앞에 두고 나진은 등 뒤로 손을 뻗었다. 등 뒤에 감춰둔 칼자루를 움켜쥠과 동시에 나진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쩌억.

팔목을 붙잡은 사내의 안면을 무릎으로 찍어 넘어트리며 나진이 발검했다. 스릉, 그리고 서걱. 검집에서 검이 뽑혀져 나오는 소리와 절삭음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촤악.

나진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던 남자의 팔이 도낏자루와 함께 잘려 나갔다. 조금의 걸림도 없이 단숨에.

“흐, 흐아아아악! 내, 내 팔!”

뒤늦은 비명, 쏟아지는 핏물.

그 모습에 남자와 함께 달려들던 부하가 당황해서 주춤하는 사이 나진의 손아귀가 콱, 하고 부하의 안면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콰직.

부하의 머리가 대장간의 선반에 처박혔다. 움푹 파인 선반과 함께 부하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축 늘어진 부하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친 나진은 팔이 잘린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내를 흘겨봤다.

사방에 흩뿌려진 피.

머리 모양으로 작살난 선반.

대장간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는 남자까지.

“에헤이.”

개판에 가까운 그 모습을 쓱 둘러본 나진이 뒷목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조졌네 이거.

“거 나가서 싸우자니까.”

왜 말을 안 들어선.

깡!

나진은 비명을 질러대는 남자의 정수리를 칼등으로 내려쳤다.

“커흑···.”

남자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그제야 조용해진 남자의 머리칼을 붙잡아 질질 끌며 나진은 대장간의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깥에 남아있는 셋.

그 중 책임자로 보이는 사내가 하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