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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지는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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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도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평생 역도의 낙인을 가진 채 살아가야 할 것이고, 노예들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대개 한평생을 노예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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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태어나면서부터 삶은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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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디에타 아르베니아가 깨닫게 된 것은 일곱 살째 되는 생일날이었다. 그녀는 하녀와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가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를 보는 시선이 고울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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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괴롭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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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견딜만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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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곱 번째 생일날 어머니가 목을 매달아 자살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머니의 시체는 보기 흉했으며 그 얼굴에는 불에 그을린 흉터가 남아 있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목을 조른 밧줄이었으나, 그녀로 하여금 밧줄을 매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저 흉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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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남은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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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녀의 가치를 갉아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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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하녀가 어찌하여 가주와 관계를 맺고, 첩실의 자리에라도 앉을 수 있었겠는가? 바로 뛰어난 외모 덕분이었다. 가주의 다른 부인들처럼 뛰어난 재력도, 가문도, 뒷배도 디에타의 어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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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가치는 오직 외모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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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녀는 너무나도 쉽게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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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위장한 화재. 화재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불에 타들어 갔다. 뒤늦게 온 사제들이 그녀에게 축복을 불어넣었지만 흉터를 모두 지울 수는 없었다. 얼굴에 길게 남은 불에 그을린 흔적. 일그러진 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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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그녀의 외모를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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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가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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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의 가주는 냉철한 인물이었고, 가치를 잃은 여인에게 더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는 더는 그녀를 침실로 부르지 않았으며 그녀에게 주었던 것들을 하나씩 거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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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유희에 불과했다는 듯 가주는 그녀와 그녀의 딸아이인 디에타를 별채로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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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어깨를 피고 다니던 어머니의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얼굴에는 면사포를 두르고 다녔으며 시녀들을 호령하던 목소리도 초라해졌다. 빛나는 가치로 하여금 나면서부터 정해졌던 운명을 박살 냈던 여인은, 가치를 잃고 땅 아래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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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끝은 대개 그렇듯 비참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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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매단 채 죽은 어머니의 시체. 그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던 디에타는 깨달아야만 했다. 그녀를 보호해 주던 울타리는 박살 났다. 디에타에게 남은 것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아름다운 외모와, 버려진 자식이라는 꼬리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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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가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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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는 현실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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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이었을까, 혹은 행운이었을까. 소녀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그 외모는 어머니의 것을 타고났지만 가치를 재단하는 눈동자는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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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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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였으나 여전히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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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받아들이기에 그 정신은 아직 여물지 않았고, 독설과 괴롭힘을 견뎌내기엔 소녀는 여렸다. 그렇기에 소녀는 가면을 썼다. 가면을 쓴 채 외모를 앞세워 자신을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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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채 소녀는 아양을 떨었고, 천치를 연기했으며 때로는 무관심 속에서 죽은 듯이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면 기회가 오리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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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째 생일이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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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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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가문을 도망쳤다.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곳을 향해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그렇게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다. 누구나 재능만 있다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곳. 이 도시에서 디에타는 5년의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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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5년이 흘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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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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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 밑바닥부터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이 이곳에 있었다. 이 도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상단. 그녀가 이루어 낸 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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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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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편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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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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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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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도망칠 때도. 상단을 차렸을 때도. 상단이 궤도에 올랐을 때도. 그 어느 때도 연락 한번 없었으며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그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렇게 갑작스레 편지를 보내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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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편지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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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길었으나 골자는 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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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받는 즉시 영지로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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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맞대고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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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이 직접 휘갈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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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호출령이었다. 디에타는 편지에 적힌 글귀를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결국에 그녀에게 이 호출령을 거부할 명분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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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한다는 건 곧 대립각을 세우겠단 이야기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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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가는 지금의 디에타 상단이 건드릴 수 있을 만한 가문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디에타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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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온. 준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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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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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마차를 준비하는 파시온을 뒤로하고, 디에타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앞에 서서 제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 전 나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었던 즐겁고 편안한 웃음은 온데간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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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게 굳은 입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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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꼬리를 매만지며 디에타는 쓰게 웃었다. 언제나와 같은 조소였고, 언제나와 같은 체념 어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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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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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길드에서의 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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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길드에 도착한 나진을 반기는 것은, 상급 모험가들에게 마련된 전용 창구에서 딱딱한 얼굴로 나진을 기다리고 있는 감독관들이었다. 그 모습에 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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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등급의 모험가,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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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관들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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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실적을 인정해 적색 등급으로의 승급 심사를 진행하고자 하는데, 동의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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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적색 등급 승급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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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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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승급 심사를 신청한 적이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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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승급 심사를 신청한 적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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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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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발을 디딘 지 단 두 달 만에 녹색 등급의 모험가가 된, 28세의 모험가 이반. 그를 캄브리아의 중앙 길드는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 성장세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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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도 적색 등급의 핏빛 트롤을 단신으로 토벌하질 않나, 도첸베르크 삼림 토벌전에서 역대 점수를 갱신하질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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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의뢰만 봐도 그 정도인데 자잘한 의뢰의 수행 능력 역시 심상치 않았다. 의뢰자들의 만족도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고 그들 모두 ‘모험가님 일 처리가 빠르고 깔끔해요.’ 같은 평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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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현상수배범 의뢰에서 만족도가 매우 높다. 빠르고 깔끔하며 무엇보다 그들이 훔친 패물마저 전부 회수해서 들고 오는 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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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눈여겨볼 만하다고 생각하곤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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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관, 주베로아는 눈앞에 앉아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 ‘로젤린 아스칼로’가 관심을 가지는 모험가이기에 요주의 인물로 올려둔 지가 엊그제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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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를 못 참고 또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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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사, 베른하이겐 토벌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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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트롤의 단신 토벌과 이단 승급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눈앞의 청년이 모험가 도시에 터뜨린 또 다른 충격파였다. 이쯤 되면 중앙 길드 측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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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이반이란 모험가는 ‘녹색’에 국한될 만한 실력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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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녹색 등급의 다음인 ‘적색’ 등급은 그리 가벼운 위치가 아니다. 사실상 중앙 길드에서 부릴 수 있는 최고급 인력이자, 중앙 길드에서 보증하는 이 도시의 대표 격인 모험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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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승급의 과정이 몹시 어렵고 까다롭기로 소문이 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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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가 수행한 의뢰의 특수성과, 그 수행 능력을 높게 평가해 특례로 승급 시험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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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사내에겐 특례가 적용돼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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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바이즈 남작님, 트라암 자작님, 토스카넬리 자작님, 에피스터 자작님, 테르니엔 백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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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사 토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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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주역인 눈앞의 모험가는, 숱한 귀족들의 의뢰를 단번에 해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악마 기사 베른하이겐의 목에 걸려있던 귀족들의 의뢰만 해도 일곱개가 넘어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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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단은 아무 말 없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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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단과 숱한 귀족들의 명성을 봐서라도 중앙 길드는 눈앞의 사내에게 특례를 주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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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트레바체 가문의 에델마르 후작님께서 귀하를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직접 서신을 보내오셨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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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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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적색 등급의 승급 시험은 몹시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하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총 사흘에 걸쳐 진행될 것이며, 첫 번째 시험은 저 주베로아의 감독하에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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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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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음에 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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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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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선 주베로아를 따라 나진은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며 주베로아는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그가 감독할 시험에 대한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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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채점하는 것은 순간적인 판단력, 그리고 대상의 제압과 호위입니다. 지금부터 목적지까지 저를 호위하면 됩니다. 단, 제 걸음 속도에 맞춰 진행되며 제게 손을 대는 순간 감점 처리되니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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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걸음을 옮기며 나진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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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말없이 주베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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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를 노리는 ‘습격자’ 임무를 수행할 모험가분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경우 그 역시 감점 처리 됩니다. 제압임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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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설명을 마친 주베로아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와 함께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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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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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베로아가 미리 고지한 길목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 걷던 나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인기척이 느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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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얹었던 나진이, 이내 손을 내렸다. 상해를 입히는 것은 금지라 했으니까. 검을 쓰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주베로아의 뒤를 따라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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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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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지붕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 뛰어내리며 주베로아를 향해 덮쳐들었다. 아마도, 조금 전 말했던 고용된 모험가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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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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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베로아를 향해 달려드는 모험가가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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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는 주베로아가 아닌 나진을 노리고 있었다. 그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진이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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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내리며 모험가가 휘두르는 것은 목검이다. 심지어 날까지 무디게 만든 것이라, 맨손으로 잡아도 문제는 없겠지만··· 실전을 가장한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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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 움직임을 눈동자로 읽으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뻗은 손이 움켜쥔 것은 모험가의 팔목이다. 나진에게 손이 붙잡힌 순간 목검은 앞으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 악력에 놀라는 것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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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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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팔목을 잡아당겼다. 공중에서 자세가 무너진 남자가 나진에게 끌려 뒤로 내팽개쳐졌다. 바닥을 구르며 모험가가 일어섰을 땐, 나진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제 동료의 모습이 반기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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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켁! 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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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붙잡힌 채로 캑캑대고 있는 모험가. 그가 목검도 놓아버린 채 손바닥으로 나진의 팔을 두어 번 두들기자, 그제야 나진도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가볍게 기절시킬 수 있었지만 거기까진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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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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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려 나진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조금 전 자신이 내팽개쳤던 모험가가 있다. 그는 조금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가볍게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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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탁, 하는 소리가 다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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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험에 ‘습격자’ 역할로 투입된 모험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진과 주베로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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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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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자 역할로 길드에서 고용된 모험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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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중소규모 용병단 ‘파블렛’에 속한 모험가들이다. 개개인의 등급은 청색과 녹색이 혼재돼 있지만, 숱한 의뢰를 수행하며 합을 맞춰본 경험이 많기에 사실상 적색 등급의 평가를 받는 용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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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번 의뢰를 받을 당시, 파블렛 용병단의 단원들은 고개를 조금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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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요즘 이름을 날리는 모험가라 한들, 이건 조건이 너무 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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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 대상을 지킬 것. 습격자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 않고 제압할 것. 심지어 기습에 즉각적으로 반응까지 해야 한단다. 당연하게도 검기의 사용은 불가능하단 뜻이었다. 이런 제약을 덕지덕지 달고서 제대로 상대라도 해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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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걱정을 하며 그들은 임무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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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습을 시작한 지 3분이 지난 지금 파블렛 용병단의 단장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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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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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단 여덟 명. 그들이 모두 제압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분에 불과했다. 조금 전 일어난 일을 단장은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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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보기로 덤벼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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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나가 너무나도 맥없이 제압당한 순간, 그는 곧장 명령을 내렸다. 사방에서 덮치며 남은 둘은 뒤에서 보조하라고. 그렇게 사방에서 나진을 향해 달려들었던 용병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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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잡혀 메쳐진 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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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걷어차여 벽에 날아가 처박힌 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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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봉을 휘두르려는 순간, 곤봉을 휘두르는 손을 발로 걷어차 곤봉을 날려버리곤··· 붙잡아 뒤로 집어 던져진 게 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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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넷이 제압당했다. 남은 이들은 어떻게 제압당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시야의 사각에서 덤벼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시야가 뒤집혀 땅에 처박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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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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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떻게 찾아냈는지 뒤에 숨어 견제하던 두 명의 목덜미를 잡아 끌고온 나진의 모습을 보고선, 단장은 헛웃음과 함께 두 팔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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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 항복. 이거 안 되겠는데 감독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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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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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봉이나 목검 아니라, 진검 들고 달려들어도 어려울 것 같은데? 진짜 소드 엑스퍼트 맞아요? 소드 시커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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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퍼트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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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대단하네. 이 정도면 최연소 소드 시커도 노려볼 만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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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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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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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이 고개를 돌려 감독관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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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말 진짜냐는 물음. 아무리 봐도 눈앞의 청년이 이십 대 후반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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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신분으론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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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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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쉬는 척하며 단장이 팔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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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시야가 돌아간 순간 던진 비수였다. 정확하게 빈틈을 노린 비수다.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붙잡을 수 없어야 정상인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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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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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진은 가볍게 손을 휘둘러 비수를 낚아챘다. 물론 비수라 해봐야, 이런 시험용으로 제작된 날이 뭉툭한 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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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거 봐. 반응속도가 정상이 아닌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잡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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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의 사각에서 던진 걸 너무나도 쉽게 낚아채는 나진의 모습에 단장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당황스러운 건 감독관 주베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진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흠잡을 데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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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간결한 움직임. 감점 요소가 전혀 없는, 조건을 정확하게 이행한 수행 능력. 거기에 순간적인 판단력과 반응속도 역시 흠잡을 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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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와 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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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것이며, 승급 심사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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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숱한 모험가들을 떨어트린 시험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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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관 주베로아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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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된 용병단이 허술했던 건 아니다. 그저, 이반이라는 모험가가 특출났을 뿐이다. 분명 시험 시작 전만 하더라도 깐깐하고 철저하게 평가하기를 결심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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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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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차 시험은 조기 종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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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종이에 적을 평가는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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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점. 흠잡을 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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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이에 감점 요소를 적지 않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서, 주베로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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