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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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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길드에 들어서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여느 때처럼 의뢰를 수행하고자 중앙 길드에 들른 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따라 길드가 소란스러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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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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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근처의 모험가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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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에 참가했던 모험가이자, 일면식이 있는 모험가였다. 당시에는 그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받았던 나진이나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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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동업자로서 인정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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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트롤과 싸웠던 그날, 그리고 그 소문이 도시에 쫙 퍼진 순간부터 나진의 자질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실적으로서 실력을 증명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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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반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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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모험가는 나진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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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나진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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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길래 사람이 저리 모여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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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외부에서 큼지막한 의뢰가 들어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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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의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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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라더라? 범죄자가 도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로 중 한 곳이 캄브리아 인근을 지나친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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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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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하우저 가문의 차기 당주에게서, 그리고 슐하우저 가(家) 인근 영지의 귀족들에게서 의뢰가 단체로 쏟아졌는데··· 현상금이 장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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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의뢰길래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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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뢰 내용이 문제지. 저기 모여있는 놈들도 현상금 보고 달려갔다가 내용 보고 다 고개 가로젓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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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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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우리가 감당 못할 의뢰야. 하물며 그 ‘아탕가 기사단’에서도 의뢰를 발주했으니··· 말 다 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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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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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이름은 그냥 흘려넘길 수 없는 것이었으니. 아탕가 기사단, 지하도시를 빠져나온 이후 나진이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이 바로 아탕가에 대한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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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속해있던 기사단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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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언제나 그리워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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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와 긍지를 수호하며, 기사의 옛 계율을 지키는 이들이 모여 이룬 집단. 그들의 이름이 나온 순간 나진은 이번 의뢰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탕가의 기사단이 움직이는 이유는 대개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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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현상수배범이 기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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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죄목이 장난 아니던데? 가서 확인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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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붙어있는 의뢰서들. 숱한 귀족들의 의뢰와, 그 사이에 붙어있는 아탕가의 의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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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들 사이에 섞여 나진은 그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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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수배 - 베른하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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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현상수배서였다. 용모를 그려둔 그림 아래 그의 죄목과 특이 사항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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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슐하우저 가문의 기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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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은 검(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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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에 근접한 실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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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목 - 슐하우저 가의 가주 살해. 사용인과, 가문의 사병, 슐하우저 가문에 소속된 기사의 살해. 하룻밤 사이에 저택을 피바다로 만들고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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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해도 그 죄질이 상당했으나, 그다음에 이어진 한 줄의 문장은 앞선 죄목을 잊어버릴 만큼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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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 사항 : 악마와 계약한 것으로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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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의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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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하고, 사이하며, 인간의 주적으로 여겨지는 존재가 바로 악마였다. 악마와의 계약은 제국법상으로 중죄에 해당하며, 악마 계약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즉시 살해가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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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사라는 인물이 악마와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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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탕가의 기사단이 나섰는지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는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고, 긍지를 짓밟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동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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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악마와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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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귓가에 멀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는 옅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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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정신 나간 새끼야? 기사가 악마와 계약? 악마하고 손을 잡아? 기사가? 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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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몇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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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그리곤, 그녀가 빼엑 소리를 내질렀다. 나진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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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란! 악마를 쳐 죽이기를 맹세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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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서의 이름 아래 숱한 기사들이 악마를 쳐 죽인 지 몇백 년이 흘렀거니와, 이젠 기사가 악마랑 계약을 해? 이런 캄란의 씹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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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훅, 후욱 하고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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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이 수백 년 전과는 달라졌다곤 하나, 넘어선 안 될 선이 있는 것이다. 멀린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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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진정 좀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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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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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만류에 멀린이 천천히 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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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나진은 주변 모험가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조금 전 들었던 말대로, 보수에 눈이 멀어 모여들었던 이들은 의뢰 내용을 확인하곤 혀를 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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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는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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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대서는 안 될 의뢰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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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짐작해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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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소드 시커에 근접하는 실력자이며, 하물며 악마와 계약까지 의심되는 정황이다. 어지간한 실력으론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한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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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백각 등급은 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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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든 모험가들이 중얼거리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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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이 정도 거물을 상대하려면 모험가 도시의 정점, 백각 등급이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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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 또한 나서지 않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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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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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뢰는 위험도가 너무 높으며, 악마와 엮여서 좋을 것 하나 없으니까. 악마와 관련된 이들이 내뿜는 마기는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다. 영혼을 갉아먹으며, 저주의 형태로 새겨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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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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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관련된 이들은 정체 모를 사술을 부리곤 한다. 악마의 권능이라 불리는 종류의 것들. 즉, 전투에 있어 알 수 없는 변수가 끼어든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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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도에 더해 변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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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귀한 줄 안다면 손을 대지 않는 게 옳은 의뢰였다. 물론, 의뢰 내용이 토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악마와 결탁한 기사를 살해하는 건 아탕가 기사단의 몫. 의뢰 내용의 태반은 시간을 끌거나··· 흔적을 찾는 등의 조사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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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마저도 위험하니까, 엮이지 않으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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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모험가들의 분위기를 읽으며 제 턱을 매만졌다. 아직 나진에겐 악마를 쳐 죽여야 한다는 사명감도, 아서의 후예로서 악마와 결탁한 기사를 벌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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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무거운 것들을 가지기엔, 나진은 이제 막 여정에 올랐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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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나진은 이 의뢰에 흥미를 느꼈다. 이반이 속해있던 아탕가 기사단과,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 흥미가 동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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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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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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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캄브리아의 정점에 오르면··· 그다음에 가야 할 곳이 분명 마경이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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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魔境), 악마들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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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전장과 인접해 있는 곳이며, 캄브리아를 떠난 아서가 향했던 곳이자··· 본격적으로 아서가 영웅이라 불리기 시작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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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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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제가 상대해야 할 건 악마일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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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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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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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이 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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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경험해 두는 것도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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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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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한 걸음 크게 앞으로 내디뎠다. 멀린 역시 나진의 선택을 긍정했다. 바로 그거지, 하고 외치는 멀린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나진은 게시판 앞에 모여있는 모험가들을 헤치며 가장 선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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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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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이목이 나진에게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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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진은 손을 뻗었다. 모두가 구경만 하고, 손을 댈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의뢰서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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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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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 기사단의 문양이 새겨진 의뢰서를 나진이 게시판에서 뜯어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 의뢰를 자신이 맡겠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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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진을 바라보며 누군간 헛웃음을 터뜨렸고, 누군간 목숨 아까운 줄 모른다며 중얼거렸고, 또 누군간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나진을 비웃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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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한 의뢰를 고민 없이 낚아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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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자신감과 의욕이 넘쳐흐르던 과거의 자신들의 모습과 같았으니까. 그야말로 모험을 하는 이, 모험가라 불릴만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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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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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도 않나, 베른하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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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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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을 둔중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베른하이겐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악마와 계약한 탓에 그 시야는 흐릿했으며 제대로 보이는 건 한쪽 눈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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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동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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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물들기 시작한 눈동자는 흐릿했다. 베른하이겐이 제 눈을 몇번이고 깜빡이며 앞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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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도 보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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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자신을 쫓아온 추격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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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이 속해있던 슐하이저 가와 자주 교류하던 인근 영지의 기사들이었고, 용병들이었다. 베른하이겐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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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문양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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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추격해 오지 못한 거겠지. 아탕가 기사단의 주둔지와 가장 먼 경로를 도주로로 선택했으니까. 베른하이겐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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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 내가 부끄러워 해야할 이유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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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사의 긍지를 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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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추격해 온 기사들이 외쳤다. 용병들은 베른하이겐에게 활과 쇠뇌를 겨누었으며, 기사들의 검에선 검기가 솟구쳤다. 시퍼렇게 빛나는 검기들의 앞에서 베른하이겐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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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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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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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들이 활시위를 놓았고, 쇠뇌를 당겼다. 사방에서 쏫아지는 화살과 검기를 두른 검격. 베른하이겐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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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화살이 몸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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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걱, 검기가 베른하이겐의 살갗을 할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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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검을 휘두른 순간 기사들은 깨달았다. 검기를 둘렀음에도 베른하이겐의 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단 사실을. 검격이 얕다.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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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 육체가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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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화신체가 되어, 악마와 동화되어 가는 베른하이겐의 육체는 저항력을 지녔다. 몸으로 검을 받아낸 베른하이겐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그가 맨손으로 제 어깨에 박힌 검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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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긍지, 그놈의 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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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결탁한 기사가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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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맨손으로 검을 박살 낸 그가 손을 뻗었다. 눈앞의 기사의 안면을 그가 움켜쥐었다. 검조차 박살 내는 악력을 인간의 머리가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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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쓴 투구가 우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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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이기지 못한 기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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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들이 활을 쏘고, 모여든 기사들이 검을 휘두르지만 베른하이겐은 그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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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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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가 우그러졌다. 투구의 틈새에서 핏물과 함께 누런 것들이 쏟아졌다. 더는 비명이 들려오지 않게 됐다. 눈앞에서 동료의 머리가 터져 죽는 걸 본 기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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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정보보다 훨씬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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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이 어중간한 악마 계약자가 아님을 그들은 깨달았다. 그가 계약했다고 알려진 악마의 위계 역시, 잘못 알려진 게 분명했다. 패색이 짙어진 상황 속에서 기사들이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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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간 분노했고. 누군간 공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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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럼에도 그들은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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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명예와 긍지를 지키며 살아온 것은 아니며, 때로는 방탕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최소한 스스로가 기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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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결탁한 기사 따위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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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검을 든 채 달려들었다. 죽은 동료의 검기가 남긴 상처를 몇번이고 검을 휘둘러 벌리고, 그곳에 칼을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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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미련한 것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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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에 가까운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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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잘못됨을 깨달은 용병들은 진작에 도망쳤지만, 기사들은 마지막까지 검을 휘둘렀다. 베른하이겐은 무표정이 그들의 머리를 터뜨리고, 팔을 잡아 뽑고 심장을 꿰뚫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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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과정에 검을 쓸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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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에 베른하이겐은 희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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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를 뽑아내는 기사 일곱과 잘 훈련된 용병 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전했을 전투이며, 살아남을 확률이 희박한 전투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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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지도 않고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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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맨손으로 모두를 압도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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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와 명예가 무엇을 주지? 그것을 지킨다고 얻는 게 대체 뭐란 말이냐. 허울뿐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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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에 젖은 채 베른하이겐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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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팔 한짝이 뽑혀버린 기사를 바라봤다. 터져 나오는 핏물. 과다 출혈로 새하얗게 질린 안색. 그러나 기사는 여전히 검을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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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기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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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달려든 그가 베른하이겐의 어깨에 칼을 박아 넣었다. 일곱의 기사가 집요하게 벌려놓은 상처에 검이 깊게 틀어박혔다. 그러나, 그것이 승리를 의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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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은 멀쩡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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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처조차 하룻밤만 지나면 회복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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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사의 남은 팔 하나를 뽑아냈다. 발을 뻗어 기사의 무릎을 박살 냈다. 두 팔을 잃은 채 주저앉은 기사. 그 기사의 머리칼을 잡아당겨 베른하이겐은 기사와 시선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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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서 얻는 것도 하나 없는 것을, 왜 미련하게 붙잡고 있나. 이 미련한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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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이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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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사의 얼굴이 공포와 절망으로 물들기를 기대했지만, 기사는 고통에 찡그릴 뿐 절망하진 않았다. 기사는 신음과 함께 베른하이겐을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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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는 것 하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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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거품 사이로 기사의 비웃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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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있는 것이다. 악마와 결탁한 네놈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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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기사의 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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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하고 기사의 머리가 터졌다. 제 손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며 베른하이겐은 심드렁한 눈동자로 기사의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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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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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은 어깨에 박힌 검을 뽑아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가 걸음을 옮겼다. 베른하이겐이 향하는 목적지는 마경.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진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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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추격자들이야 두렵지 않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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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 기사단은 두려웠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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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악마 살해에 특화된 이들이다. 아직 불완전한 동화상태로 그들과 마주쳤다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테니까. 베른하이겐은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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