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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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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럽다.

중앙 길드에 들어서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여느 때처럼 의뢰를 수행하고자 중앙 길드에 들른 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따라 길드가 소란스러웠으니까.

“무슨 일입니까?”

나진이 근처의 모험가에게 질문했다.

얼마 전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에 참가했던 모험가이자, 일면식이 있는 모험가였다. 당시에는 그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받았던 나진이나 지금은 아니다.

그들에게 동업자로서 인정 받았으니까.

핏빛 트롤과 싸웠던 그날, 그리고 그 소문이 도시에 쫙 퍼진 순간부터 나진의 자질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실적으로서 실력을 증명했으므로.

“오, 이반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모험가는 나진을 반겼다.

그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나진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길래 사람이 저리 모여있어요?”

“아, 외부에서 큼지막한 의뢰가 들어왔거든.”

“큼지막한 의뢰요?”

“어. 뭐라더라? 범죄자가 도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로 중 한 곳이 캄브리아 인근을 지나친다던가?”

모험가가 말했다.

“슐하우저 가문의 차기 당주에게서, 그리고 슐하우저 가(家) 인근 영지의 귀족들에게서 의뢰가 단체로 쏟아졌는데··· 현상금이 장난 아냐.”

“도대체 무슨 의뢰길래 그래요?”

“그 의뢰 내용이 문제지. 저기 모여있는 놈들도 현상금 보고 달려갔다가 내용 보고 다 고개 가로젓고 있잖아?”

그가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건 우리가 감당 못할 의뢰야. 하물며 그 ‘아탕가 기사단’에서도 의뢰를 발주했으니··· 말 다 했지 뭐.”

······아탕가 기사단?

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이름은 그냥 흘려넘길 수 없는 것이었으니. 아탕가 기사단, 지하도시를 빠져나온 이후 나진이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이 바로 아탕가에 대한 정보였다.

이반이 속해있던 기사단이자.

이반이 언제나 그리워했던 곳.

명예와 긍지를 수호하며, 기사의 옛 계율을 지키는 이들이 모여 이룬 집단. 그들의 이름이 나온 순간 나진은 이번 의뢰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탕가의 기사단이 움직이는 이유는 대개 하나뿐이었다.

“···혹시 현상수배범이 기사입니까?”

“엉. 죄목이 장난 아니던데? 가서 확인해 봐.”

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붙어있는 의뢰서들. 숱한 귀족들의 의뢰와, 그 사이에 붙어있는 아탕가의 의뢰서.

모험가들 사이에 섞여 나진은 그 내용을 확인했다.

[현상 수배 - 베른하이겐.]

그건 현상수배서였다. 용모를 그려둔 그림 아래 그의 죄목과 특이 사항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전(前) 슐하우저 가문의 기사단장.

무장은 검(劍).

소드 시커에 근접한 실력자.

죄목 - 슐하우저 가의 가주 살해. 사용인과, 가문의 사병, 슐하우저 가문에 소속된 기사의 살해. 하룻밤 사이에 저택을 피바다로 만들고 도주······.

여기까지만 해도 그 죄질이 상당했으나, 그다음에 이어진 한 줄의 문장은 앞선 죄목을 잊어버릴 만큼 강렬했다.

[특이 사항 : 악마와 계약한 것으로 사료됨.]

악마와의 계약.

악하고, 사이하며, 인간의 주적으로 여겨지는 존재가 바로 악마였다. 악마와의 계약은 제국법상으로 중죄에 해당하며, 악마 계약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즉시 살해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기사라는 인물이 악마와 계약?

왜 아탕가의 기사단이 나섰는지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는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고, 긍지를 짓밟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동이었으니까.

-기사가······ 악마와 계약?

나진의 귓가에 멀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는 옅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무슨 정신 나간 새끼야? 기사가 악마와 계약? 악마하고 손을 잡아? 기사가? 기사가······?

멀린은 몇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마치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그리곤, 그녀가 빼엑 소리를 내질렀다. 나진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기사란! 악마를 쳐 죽이기를 맹세한 이!

-기사왕 아서의 이름 아래 숱한 기사들이 악마를 쳐 죽인 지 몇백 년이 흘렀거니와, 이젠 기사가 악마랑 계약을 해? 이런 캄란의 씹것 같은···!

멀린이 훅, 후욱 하고 숨을 내쉬었다.

기사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이 수백 년 전과는 달라졌다곤 하나, 넘어선 안 될 선이 있는 것이다. 멀린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진정 좀 해보세요.

-후우, 후우우···.

나진의 만류에 멀린이 천천히 호흡을 했다.

멀린이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나진은 주변 모험가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조금 전 들었던 말대로, 보수에 눈이 멀어 모여들었던 이들은 의뢰 내용을 확인하곤 혀를 차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의뢰.

손 대서는 안 될 의뢰라는 듯이.

그 이유를 짐작해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상대가 소드 시커에 근접하는 실력자이며, 하물며 악마와 계약까지 의심되는 정황이다. 어지간한 실력으론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한 의뢰.

“이 정도면 백각 등급은 와야······.”

모여든 모험가들이 중얼거리는 말.

그 말은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이 정도 거물을 상대하려면 모험가 도시의 정점, 백각 등급이 나서야 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나서지 않을 테지.

모험가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의뢰는 위험도가 너무 높으며, 악마와 엮여서 좋을 것 하나 없으니까. 악마와 관련된 이들이 내뿜는 마기는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다. 영혼을 갉아먹으며, 저주의 형태로 새겨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디 그뿐이던가.

악마와 관련된 이들은 정체 모를 사술을 부리곤 한다. 악마의 권능이라 불리는 종류의 것들. 즉, 전투에 있어 알 수 없는 변수가 끼어든단 뜻이다.

위험도에 더해 변수까지.

목숨이 귀한 줄 안다면 손을 대지 않는 게 옳은 의뢰였다. 물론, 의뢰 내용이 토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악마와 결탁한 기사를 살해하는 건 아탕가 기사단의 몫. 의뢰 내용의 태반은 시간을 끌거나··· 흔적을 찾는 등의 조사에 가까웠다.

‘단지 그마저도 위험하니까, 엮이지 않으려는 건가.

나진은 모험가들의 분위기를 읽으며 제 턱을 매만졌다. 아직 나진에겐 악마를 쳐 죽여야 한다는 사명감도, 아서의 후예로서 악마와 결탁한 기사를 벌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없다.

그런 무거운 것들을 가지기엔, 나진은 이제 막 여정에 올랐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나진은 이 의뢰에 흥미를 느꼈다. 이반이 속해있던 아탕가 기사단과,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 흥미가 동했으니까.

‘멀린.

나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캄브리아의 정점에 오르면··· 그다음에 가야 할 곳이 분명 마경이라 했죠?

마경(魔境), 악마들의 땅.

별들의 전장과 인접해 있는 곳이며, 캄브리아를 떠난 아서가 향했던 곳이자··· 본격적으로 아서가 영웅이라 불리기 시작한 무대.

-맞아.

‘거기서 제가 상대해야 할 건 악마일 거고요.

-그렇게 되겠지.

잠깐의 고민.

결론이 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리 경험해 두는 것도 괜찮겠죠.

나진은 선택했다.

나진이 한 걸음 크게 앞으로 내디뎠다. 멀린 역시 나진의 선택을 긍정했다. 바로 그거지, 하고 외치는 멀린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나진은 게시판 앞에 모여있는 모험가들을 헤치며 가장 선두에 섰다.

“······.”

모두의 이목이 나진에게 쏠렸다.

모험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진은 손을 뻗었다. 모두가 구경만 하고, 손을 댈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의뢰서를 향해서.

그리곤, 촥.

아탕가 기사단의 문양이 새겨진 의뢰서를 나진이 게시판에서 뜯어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 의뢰를 자신이 맡겠다는 뜻.

그런 나진을 바라보며 누군간 헛웃음을 터뜨렸고, 누군간 목숨 아까운 줄 모른다며 중얼거렸고, 또 누군간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나진을 비웃지는 않았다.

위험천만한 의뢰를 고민 없이 낚아채는 모습.

그건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자신감과 의욕이 넘쳐흐르던 과거의 자신들의 모습과 같았으니까. 그야말로 모험을 하는 이, 모험가라 불릴만한 모습이었다.

“부끄럽지도 않나, 베른하이겐!”

누군가의 외침.

고막을 둔중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베른하이겐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악마와 계약한 탓에 그 시야는 흐릿했으며 제대로 보이는 건 한쪽 눈밖에 없었다.

아직 동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검게 물들기 시작한 눈동자는 흐릿했다. 베른하이겐이 제 눈을 몇번이고 깜빡이며 앞을 바라봤다.

“많이도 보냈군.”

그곳엔 자신을 쫓아온 추격자들이 있었다.

베른하이겐이 속해있던 슐하이저 가와 자주 교류하던 인근 영지의 기사들이었고, 용병들이었다. 베른하이겐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탕가의 문양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추격해 오지 못한 거겠지. 아탕가 기사단의 주둔지와 가장 먼 경로를 도주로로 선택했으니까. 베른하이겐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부끄러워? 내가 부끄러워 해야할 이유가 뭐지?”

“너는 기사의 긍지를 어겼다.”

그를 추격해 온 기사들이 외쳤다. 용병들은 베른하이겐에게 활과 쇠뇌를 겨누었으며, 기사들의 검에선 검기가 솟구쳤다. 시퍼렇게 빛나는 검기들의 앞에서 베른하이겐은 웃음을 흘렸다.

쾅!

기사들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용병들이 활시위를 놓았고, 쇠뇌를 당겼다. 사방에서 쏫아지는 화살과 검기를 두른 검격. 베른하이겐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푹, 화살이 몸에 박혔다.

스걱, 검기가 베른하이겐의 살갗을 할퀴었다.

허나 검을 휘두른 순간 기사들은 깨달았다. 검기를 둘렀음에도 베른하이겐의 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단 사실을. 검격이 얕다. 무엇 때문인가?

이미 그 육체가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마의 화신체가 되어, 악마와 동화되어 가는 베른하이겐의 육체는 저항력을 지녔다. 몸으로 검을 받아낸 베른하이겐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그가 맨손으로 제 어깨에 박힌 검을 움켜쥐었다.

“명예, 긍지, 그놈의 규율.”

악마와 결탁한 기사가 히죽였다.

콰직! 맨손으로 검을 박살 낸 그가 손을 뻗었다. 눈앞의 기사의 안면을 그가 움켜쥐었다. 검조차 박살 내는 악력을 인간의 머리가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기사가 쓴 투구가 우그러졌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기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용병들이 활을 쏘고, 모여든 기사들이 검을 휘두르지만 베른하이겐은 그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콰직!

투구가 우그러졌다. 투구의 틈새에서 핏물과 함께 누런 것들이 쏟아졌다. 더는 비명이 들려오지 않게 됐다. 눈앞에서 동료의 머리가 터져 죽는 걸 본 기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알려진 정보보다 훨씬 강하다.

베른하이겐이 어중간한 악마 계약자가 아님을 그들은 깨달았다. 그가 계약했다고 알려진 악마의 위계 역시, 잘못 알려진 게 분명했다. 패색이 짙어진 상황 속에서 기사들이 이를 악물었다.

누군간 분노했고. 누군간 공포를 느낀다.

허나 그럼에도 그들은 기사다.

언제나 명예와 긍지를 지키며 살아온 것은 아니며, 때로는 방탕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최소한 스스로가 기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다.

악마와 결탁한 기사 따위와는 다르다.

그들에게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검을 든 채 달려들었다. 죽은 동료의 검기가 남긴 상처를 몇번이고 검을 휘둘러 벌리고, 그곳에 칼을 쑤셔 넣었다.

“하여간 미련한 것들이야.”

집념에 가까운 공격.

상황이 잘못됨을 깨달은 용병들은 진작에 도망쳤지만, 기사들은 마지막까지 검을 휘둘렀다. 베른하이겐은 무표정이 그들의 머리를 터뜨리고, 팔을 잡아 뽑고 심장을 꿰뚫어 죽였다.

그 모든 과정에 검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 사실에 베른하이겐은 희열을 느꼈다.

검기를 뽑아내는 기사 일곱과 잘 훈련된 용병 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전했을 전투이며, 살아남을 확률이 희박한 전투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검을 뽑지도 않고 압도한다.

오직 맨손으로 모두를 압도하고 있지 않은가.

“긍지와 명예가 무엇을 주지? 그것을 지킨다고 얻는 게 대체 뭐란 말이냐. 허울뿐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인데······.”

희열에 젖은 채 베른하이겐은 중얼거렸다.

그는 팔 한짝이 뽑혀버린 기사를 바라봤다. 터져 나오는 핏물. 과다 출혈로 새하얗게 질린 안색. 그러나 기사는 여전히 검을 쥐고 있다.

마지막 남은 기사 하나.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달려든 그가 베른하이겐의 어깨에 칼을 박아 넣었다. 일곱의 기사가 집요하게 벌려놓은 상처에 검이 깊게 틀어박혔다. 그러나, 그것이 승리를 의미하지 않았다.

베른하이겐은 멀쩡했으니까.

이 상처조차 하룻밤만 지나면 회복될 테니까.

그가 기사의 남은 팔 하나를 뽑아냈다. 발을 뻗어 기사의 무릎을 박살 냈다. 두 팔을 잃은 채 주저앉은 기사. 그 기사의 머리칼을 잡아당겨 베른하이겐은 기사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켜서 얻는 것도 하나 없는 것을, 왜 미련하게 붙잡고 있나. 이 미련한 친구야.”

베른하이겐이 히죽였다.

그는 기사의 얼굴이 공포와 절망으로 물들기를 기대했지만, 기사는 고통에 찡그릴 뿐 절망하진 않았다. 기사는 신음과 함께 베른하이겐을 비웃었다.

“얻는 것 하나 없기에.”

피거품 사이로 기사의 비웃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악마와 결탁한 네놈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

그게 기사의 유언이었다.

콰직, 하고 기사의 머리가 터졌다. 제 손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며 베른하이겐은 심드렁한 눈동자로 기사의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재미없군.”

베른하이겐은 어깨에 박힌 검을 뽑아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가 걸음을 옮겼다. 베른하이겐이 향하는 목적지는 마경.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진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하리라.

평범한 추격자들이야 두렵지 않으나.

아탕가 기사단은 두려웠으므로.

그들은 악마 살해에 특화된 이들이다. 아직 불완전한 동화상태로 그들과 마주쳤다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테니까. 베른하이겐은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