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39 lines
17 KiB
Markdown
339 lines
17 KiB
Markdown
|
||
휴즈 영감.
|
||
|
||
그렇게 불리는 초로의 대장장이는 캄브리아에서 가장 큰 대장간의 주인이며, 장인의 거리의 수장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고집스러움조차 장인의 미덕 정도로 여겨질 만큼의 권위를 가진 대장장이.
|
||
|
||
후진이라곤 없는 걸걸한 입담과, 까칠한 태도가 모험가들 사이에서 구설수에 오르긴 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진짜였다.
|
||
|
||
쇠를 두들긴 세월만 수십 년.
|
||
|
||
제국의 수도로 가도 한자리를 꿰찰 수 있을 만한 실력자이며, 작정했다면 명장의 칭호를 받을 수도 있었던 대장장이. 허나, 휴즈 영감은 무언가에 얽매이기 싫어 이 도시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
||
|
||
‘내가 잘못 봤을 리가 없다.’
|
||
|
||
그런 휴즈 영감이기에 안다.
|
||
|
||
지금 제 손에 들린 검은 명장이라 불릴만한 실력자의 작품임을. 그는 눈앞의 청년이 가져온 검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
||
|
||
검을 마감하는 방식.
|
||
|
||
검신에 새겨넣은 마나가 흐를 통로.
|
||
|
||
완벽하게 잡힌 균형과 맞춤 제작된 듯한 칼자루.
|
||
|
||
화려함이라곤 없는 담백하기 짝이 없는 한 자루의 검. 그러나, 그렇기에 대장장이의 연륜이 느껴지는 롱소드였다. 검을 자세히 살펴보며 휴즈 영감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
||
|
||
화려함을 버린 담백함.
|
||
|
||
간결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가진 검.
|
||
|
||
요즘 것들의 작품과는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대장장이의 본분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
||
|
||
‘하지만······.’
|
||
|
||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
||
|
||
단순히 잘 만들어진 검이라면 휴즈 영감 역시 감탄사를 내뱉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발견하고 말았다. 검에 담긴 아탕가의 흔적을.
|
||
|
||
노인이 아직 젊었을 적.
|
||
|
||
그가 견습이었을 시절의 일이다.
|
||
|
||
그는 아탕가의 기사단과 계약을 맺은 대장간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이름 높은 명장의 아래에서 단조를 배우고자 하였으니까. 그 시절, 휴즈는 선배 대장장이들의 단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봐 왔었다.
|
||
|
||
명예와 긍지를 지키는 기사.
|
||
|
||
옛 계율의 수호자, 아탕가의 기사.
|
||
|
||
그런 기사들을 위해 명장이 두들기는 쇳덩어리는 살아 숨 쉬는 듯했으며, 그 격렬한 망치질 끝에 완성되는 무기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
||
|
||
‘···봐 왔기에 안다.’
|
||
|
||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풍경.
|
||
|
||
그 풍경을 떠올리며 휴즈 영감은 롱소드의 검면을 검지와 중지로 쓸어내렸다. 이 특유의 마감 방식은 아탕가 기사들의 검에 쓰이는 것이다. 다만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기에 노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
||
|
||
이건, 수십 년 전 휴즈가 보았던 것과 똑같은 마감 방식이다. 지금의 아탕가 기사단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검을 마감하는 걸로 아는데?
|
||
|
||
구세대의 기술로 마감된 롱소드다. 다만 손에 들린 검은 단조 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
||
|
||
“아, 휴즈 영감님.”
|
||
|
||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옆에 서 있던 대장장이가 휴즈 영감의 귀에 속삭였다.
|
||
|
||
“저 모험가 그겁니다. 그 왜, 최근에 있잖습니까. 세 단계를 한 번에 승급한······.”
|
||
|
||
“···핏빛 트롤을 단신으로 토벌했단 그놈?”
|
||
|
||
“예, 그 모험가 맞는 것 같습니다.”
|
||
|
||
근래 캄브리아를 떠들썩하게 만든 모험가.
|
||
|
||
제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나진을 바라보는 휴즈 영감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순 애송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자세가 잡혀 있었다.
|
||
|
||
‘굳은살.’
|
||
|
||
청년의 손가락 마디에 배겨져 있는 굳은살. 그리고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자세. 청년에게선 언제나 검을 뽑을 준비를 하는, 노련한 검사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
||
|
||
“거기 너.”
|
||
|
||
노인이 나진의 검을 돌려줬다.
|
||
|
||
“검 한번 잡아봐라.”
|
||
|
||
“갑자기요?”
|
||
|
||
나진은 말없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
||
|
||
다른 대장장이는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휴즈 영감만큼은 알아차렸다. 청년의 체격, 칼자루의 길이, 검을 쥐었을 때의 균형··· 그 모든 게 딱 들어맞았다.
|
||
|
||
청년에게 맞춤 제작된 듯한 검.
|
||
|
||
오직 저 청년만을 위한 검이었다.
|
||
|
||
“됐다. 그만 보여줘도 된다.”
|
||
|
||
“아까부터 말입니다.”
|
||
|
||
나진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허리춤에 칼자루를 채운 나진이 휴즈 영감을 똑바로 바라봤다.
|
||
|
||
“검 수리하러 왔는데 뭘 그렇게 물어보십니까?”
|
||
|
||
“중요하니까. 누가 만들었는지 알려줄 테냐?”
|
||
|
||
나진은 침묵했다.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휴즈 영감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디서 기연이라도 만난 거겠지. 눈앞의 청년에게 과분한 검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
||
|
||
‘저만한 검을 단조해 낸 대장장이가, 그리 눈이 썩었을 리는 없지.’
|
||
|
||
뭔진 몰라도 특별한 구석이 있을 거다.
|
||
|
||
왜 구세대 아탕가의 검을 만들어줬는지. 저만한 검을 만들어 주었는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으나, 휴즈 영감은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제 선배가 언제나 하던 말이 있었으니까.
|
||
|
||
「대장장이는 쇠만 잘 두들기면 된다.」
|
||
|
||
「검을 쥔 놈이 불세출의 천재든, 뭐 어디서 굴러먹다 온 몰락 귀족이든 알 바냐?」
|
||
|
||
「우리는 대장장이야. 본분에 충실해라.」
|
||
|
||
쯧, 하고 휴즈 영감이 혀를 찼다.
|
||
|
||
“그래서 수리가 됩니까 안 됩니까?”
|
||
|
||
“수리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십수 년은 더 써도 흠집 하나 안 가고 멀쩡할 테니까.”
|
||
|
||
“···예?”
|
||
|
||
“그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검이다. 만든 대장장이가 누군진 몰라도··· 내구성에 어지간히도 공을 들인 것 같더군. 어지간해선 깨질 일이 없게 두들긴 검이다.”
|
||
|
||
같은 크기의 검보다 조금 더 무거웠으니까.
|
||
|
||
한숨을 내쉬며 휴즈 영감이 나진을 흘겨봤다.
|
||
|
||
“너 이름이 이반 맞냐?”
|
||
|
||
“맞습니다.”
|
||
|
||
“상단주가 소개한다던 놈이 넌가 보군. 검이나 하나 들려서 보낼 생각이었는데···.”
|
||
|
||
영감이 나진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롱소드를 흘겨봤다.
|
||
|
||
“검은 필요 없겠군. 안으로 들어와라.”
|
||
|
||
다른 걸 보여주도록 할 테니까.
|
||
|
||
2.
|
||
|
||
“그럼 이쪽 주소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
||
대장간에서 구매한 물건들을 숙소로 배달시켜 둔 다음 나진은 마저 거리를 걸었다. 대장간에선 생각보다 다양한 것을, 반값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
||
|
||
대장간을 후원하는 디에타 상단.
|
||
|
||
그 상단주의 소개장 덕분이었다.
|
||
|
||
간단한 방어구와 유사시에 도움이 될 만한 부무장까지 알차게도 챙겼다. 처음엔 까칠했던 휴즈 영감도 중간부턴 흥미로운 눈치로 나진이 방어구를 고르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
||
|
||
「보는 눈이 있군.」
|
||
|
||
그리 만족스레 웃던 휴즈 영감을 떠올리며 나진은 걸음을 옮겼다. 연금술사들의 가판대에 들러 간단한 포션도 몇개 구매하고, 쓸만한 물건 몇 개를 집던 가운데 나진의 걸음이 멈췄다.
|
||
|
||
찰랑.
|
||
|
||
핏빛의 시험관이 늘어선 가판대. 그곳엔 도핑제라는 이름의 약물이 한가득 늘어져 있었다. 그 도핑제 특유의 악취가 나진에겐 익숙했다.
|
||
|
||
-선혈 학파네.
|
||
|
||
나진의 귀에 멀린이 중얼거렸다.
|
||
|
||
-저런 건 손대지 마. 잘못 샀다간 중독되니까. 효과는 짧은데, 복용하고 나면 반동이 장난 아니거든.
|
||
|
||
애초에 살 생각도 없었습니다.
|
||
|
||
그리 중얼거리며 나진이 선혈 학파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지하도시에서 자신이 엑스칼리버를 뽑게 만들었던 연금술사, 하칸도 선혈 학파였던 걸까.
|
||
|
||
그러고 보면 지하도시를 빠져나온 지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기도, 느리게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
||
|
||
“······.”
|
||
|
||
문득 나진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
||
|
||
푸른 하늘과 쨍한 햇살. 바깥으로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던 것들이나 이젠 익숙해진 것들이다. 휴식하겠답시고 그늘지고 음습한 곳을 찾지 않게 된 지도 오래다.
|
||
|
||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들.
|
||
|
||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
|
||
|
||
새삼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나진은 걸었다. 장인의 거리에선 나진을 알아보는 이들이 종종 있었으며, 그들은 유명인을 바라보는 눈치로 나진을 흘겨보고 스쳐 지나가곤 했다.
|
||
|
||
어느 연금술사는 나진에게 말을 걸어오며, 제 작품을 써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고.
|
||
|
||
또 어느 대장장이는 자신의 각인이 새겨진 장비를 쓸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다.
|
||
|
||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 이 도시에서 기회를 붙잡아 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나진의 명성을 탐내는 이들이 많았다. 근래 도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모험가가 쓰는 장비는, 당연하게도 숱한 모험가들의 시선을 끌게 될 테니까.
|
||
|
||
“······.”
|
||
|
||
좋은 제안이었지만, 나진은 그 제안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진은 장인의 거리를 가로질러 그곳의 중심으로 향했다.
|
||
|
||
장인과 상인들이 뒤섞인 곳.
|
||
|
||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의 상단이 밀집된 거리. 그 거리에서 가장 큰 상회를 향해 나진은 걸어갔다. 나진을 알아본 경비병은 지난번과 달리 그 앞길을 가로막지 않았다.
|
||
|
||
탁, 하고 나진이 상회의 계단을 올랐다.
|
||
|
||
숱한 대장장이들과 연금술사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 그 이유라 해봐야 별것 없다. 그들보다 훨씬 매력적인 제안을 건넨 인물이 있었으니까. 디에타 상단의 최상층으로 올라선 나진을 반기는 이가 있었다.
|
||
|
||
“어서 와요.”
|
||
|
||
디에타 상단의 상단주.
|
||
|
||
금화를 삼키는 뱀, 디에타 아르베니아가 나진을 향해 미소 지었다.
|
||
|
||
3.
|
||
|
||
상단의 최상층, 디에타의 집무실.
|
||
|
||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요. 세 등급을 그리 한 번에 뛰어넘을 줄은 몰랐는데.”
|
||
|
||
만면에 웃음꽃을 피운 채 디에타는 나진과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기분은 몹시 좋았는데, 당연하게도 눈앞에 앉아있는 청년 덕분이었다.
|
||
|
||
디에타 상단이 보증을 선 모험가, 이반.
|
||
|
||
그 모험가가 삼단 승급을 이뤘다는 소식이 신문에까지 실리며, 근래 상단의 명성이 치솟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상승세를 디에타는 놓칠 생각이 없었다.
|
||
|
||
“지난번 이야기해 드렸던 거예요.”
|
||
|
||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
||
|
||
곁에 서 있던 비서가 나진에게 목함을 건넸다.
|
||
|
||
“열어보세요.”
|
||
|
||
목함을 열어보자, 그 안에는 곱게 접힌 가죽 방어구가 있었다. 검은색 기조에 옅은 붉은빛이 감도는 가죽 방어구.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추측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
||
|
||
핏빛 트롤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방어구였다.
|
||
|
||
일주일쯤 전, 나진은 디에타에게 핏빛 트롤의 가죽을 매각했다. 돈으로 받을 수도 있었지만 나진은 이것으로 방어구를 만들어 줄 것을 디에타에게 요구했고, 그 제안을 디에타는 받아들였다.
|
||
|
||
나진에게 더 이득이 되는 제안이었지만, 디에타로서도 나쁠 것은 없다고 판단했으므로.
|
||
|
||
“6할 정도를 방어구로 만들고, 남은 4할은 다른 곳에 쓸 예정이에요. 저희 상단이 후원하는 장인 중 실력자들이 만든 거니 품질은 확실할걸요?”
|
||
|
||
입어보고 오세요. 디에타는 그리 중얼거리며 집무실의 한구석에 놓인 방을 가리켰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나진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
||
|
||
나진의 체격에 맞게 맞춤 제작된 방어구.
|
||
|
||
갑옷이라기보단 기사단의 복장에 가까운 세련된 디자인의 방어구였다. 가죽으로 만들어졌기에 움직임은 편하고, 핏빛 트롤의 가죽이기에 그 방어도는 어지간한 칼날로는 베기 어려웠다.
|
||
|
||
슥슥.
|
||
|
||
어색하다는 듯 나진이 제 소매를 매만졌다. 이런 종류의 옷을 입어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착용감은 나쁘지 않았다.
|
||
|
||
“괜찮네요. 고맙습니다.”
|
||
|
||
나진이 그렇게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디에타를 흘겨봤다. 디에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
여태껏 헐렁헐렁하고, 가벼운 복장만 입고 다니던 나진이다. 그 외모가 제법 반반하긴 했지만 제대로 꾸미고 다닌 적은 없단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대로 입혀놓고 보니······.
|
||
|
||
제법 각이 산다.
|
||
|
||
확실히, 옷이 날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다.
|
||
|
||
잠시 넋을 놓았던 디에타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은 나진의 옷에 새겨진 문양을 향했다. 디에타 상단을 상징하는 문양. 이것이 그녀가 나진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
||
|
||
“잘 어울리네요.”
|
||
|
||
이 모험가는 디에타 상단이 후원한다.
|
||
|
||
그러니까, 손댈 생각은 하지 마라.
|
||
|
||
그것을 표현하는데 제대로 된 장비만큼이나 효과적인 건 없었으니까. 이걸로 그 빌어먹을 붉은 눈깔도 좀 몸을 사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
||
|
||
‘이만한 장비를 후원하기가 어디 쉽겠어?’
|
||
|
||
여러 장인들을 싹쓸이한 디에타 상단쯤이나 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디에타가 환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나진의 앞에 섰다. 키 차이가 조금 났기에, 자연스레 나진이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됐다.
|
||
|
||
사락.
|
||
|
||
그녀가 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
||
|
||
“그럼 산책이나 좀 같이할까요?”
|
||
|
||
이 또한 계약에 포함된 부분이었다.
|
||
|
||
방어구를 싼값에 제작해 주는 대신, 하루 정도는 자신과 어울려 줄 것. 디에타가 이를 조건에 집어넣은 이유가 있었다.
|
||
|
||
보여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
||
|
||
나진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모험가는 자신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과시하는 것. 현재 급상승 중인 모험가와 디에타 상단이 장기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
|
||
‘제법 그림도 사는 것 같고.’
|
||
|
||
나진에게 에스코트를 부탁하듯 손을 디에타가 손을 내밀었다. 관련된 교육을 받은 적이 만무한 나진은 악수하듯이 디에타의 손을 붙잡았다.
|
||
|
||
“후우···.”
|
||
|
||
그 모습에 곁에 서 있던 호위 기사인 파시온 이 한숨을 내쉬며 나진에게 에스코트 하는 법을 가르쳤다. 오늘 하루 디에타의 호위를 맡게 될 나진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쳐주던 파시온은 등골이 싸해짐을 느꼈다.
|
||
|
||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와.
|
||
|
||
흥미 본위로 행동하는 제 주인.
|
||
|
||
그 둘의 산책이 순탄치가 않을 것 같았으니까.
|
||
|
||
그리고, 그런 파시온의 직감은 나진과 디에타가 외출을 나선 지 정확하게 30분 만에 적중했다.
|
||
|
||
“이런 건방진 새끼가···!”
|
||
|
||
검을 뽑아 든 어느 귀족의 호위 기사.
|
||
|
||
“혀가 왤케 길어요?”
|
||
|
||
나진이 칼자루를 두들기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
||
|
||
“그리 자신 있으면 덤벼보시든가.”
|
||
|
||
모욕은 결투로 씻어내는 것.
|
||
|
||
그게 기사의 계율 아닌가? 그리 중얼거리는 나진의 모습에 호위 기사의 이성이 끊어졌다. 그가 가죽 장갑을 벗어 나진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
||
|
||
결투를 신청하겠단 뜻이었다.
|
||
|
||
당연하게도, 그 장갑이 나진의 얼굴을 후리는 일은 없었다. 허공에서 나진이 장갑을 낚아챈 까닭에. 붙잡은 장갑을 나진이 바닥에 내팽개쳤다.
|
||
|
||
“바닥에 던지지 왜 얼굴에 던지고 지랄이야.”
|
||
|
||
“지금 어느 면전에 대고···!”
|
||
|
||
“결투하자면서.”
|
||
|
||
나진이 챙, 하고 칼을 뽑아 들었다.
|
||
|
||
“검 안 뽑고 뭐합니까?”
|
||
|
||
말문이 막힌 기사와.
|
||
|
||
기사의 주인인 귀족의 시뻘겋게 물든 얼굴. 그리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는 디에타. 마지막으로 심드렁한 표정으로 칼끝을 늘어트린 나진까지.
|
||
|
||
도시의 모험가들의 주목을 끌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광경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