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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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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 아르베니아.

그녀는 우연한 만남을 가장해 나진의 앞에 나타났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나진이 중위 사제 볼크만의 의뢰를 받았단 사실과 의뢰의 내용, 그리고 수행 날짜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길드에 심어둔 정보원이 많았으니까. 남은 건 나진의 복귀를 기다리는 일뿐.

그리고 나진이 복귀했을 때···.

“이거 우연이네요.”

‘우연히’ 길드에 볼일이 있어서 들렸으며, 아주 ‘우연히’ 그 과정에서 당신과 마주쳤다는 식으로 디에타는 나진에게 접근했다. 그만큼의 수고로움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남자였으니까.

“이번에는 거절 안 하실 거죠?”

그리곤 장갑을 벗고 내민 맨손.

저번에는 악수를 거절당했지만 이번엔 다르리라.

“보아하니, 등급보다 더 높은 의뢰를 받고 싶으신 거 아니에요? 그 부분은 제가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이 필요한 걸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디에타가 미소 지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디에타의 손길과 얼굴을 번갈아 보던 나진이 이내 손을 뻗어 디에타와 악수했다.

디에타 상단의 개인 접견실.

나진은 제 앞에 놓인 찻잔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눈살을 찌푸렸다.

‘더럽게 쓰네.

그러고 보니 종종 이반이 커피를 내려 먹곤 했었지? 지하도시에선 엄청난 사치품이었는데. 근데 이걸 뭔 맛으로 먹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도움을 주실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의 뜻이죠. 지난번에 제 소개를 해드렸었는데, 기억하시죠?”

그녀가 제 명패를 가리켰다.

“저는 디에타 상단의 상단주고, 제 상단은 이 도시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규모도 제법 크고요.”

나진도 안다. 지난 열흘간 이 도시에서 생활하며 얻은 기초적인 정보에는 디에타 상단의 정보 역시 포함돼 있었으니까.

‘디에타 상단.

이 도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규모의 상단이며, 도시 외부와의 교류를 책임지는 상단이었다. 모험가들이 팔아치운 마물의 소재를 바깥으로 수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으니까.

“저희 상단은 중앙 길드와 제휴를 맺은 상단이랍니다. 그리고, 길드와 제휴를 맺을 만큼 공신력있는 집단은······.”

그녀가 품 안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이런 걸 써드릴 수 있거든요.”

디에타 상단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종이.

그 종이를 가리키며 디에타가 말했다.

“의뢰를 수주하는 데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길드에서 매기는 등급. 하지만, 공신력 있는 집단에서 ‘이 사람은 믿을만하다’ 라고 소개장을 써줄 수도 있거든요.”

쉽게 말하자면.

“보증이라고도 하죠?”

디에타가 미소 지었다.

아직 실적은 없지만, 위로 올라갈 만한 실력을 지닌 인물. 그런 인물에게 특정한 단체가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이 경우, 당신의 실력을 저희 디에타 상단이 보증하게 됩니다. 흑색 등급보단 훨씬 높은 등급의 의뢰를 수주할 수도 있게 되는 거죠.”

그녀가 나진의 앞에 종이를 흔들었다.

“꽤 매력적인 제안 아닌가요?”

“매력적인 제안이긴 합니다만.”

나진이 디에타를 바라봤다.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지난번과 같은 질문.

그때 디에타는 나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담백하게 말했다.

“그야, 당신이 돈이 될 것 같으니까요.”

“···예?”

“상인이 잘해주는 이유가 뭐겠어요? 금화가 나올 것 같으니까 잘해주는 거지. 당신, 흑색 등급에 오래 머물만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디에타는 안다.

제 앞에 앉아있는 소년의 실력이 고작 흑색 등급에 머물러 있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나진이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해 확신하진 못하나, 청색 등급에 근접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지. 주어진 단서는 적지만 자신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에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상단의 이름을 빌려주는 건, 저로서도 굉장한 도박이에요? 당신의 실패가 곧 상단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보증을 서주는 것은.

“당신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죠. 높게 올라갈 만한 사람에게 미리 침을 발라두는 느낌?”

“···그걸 그렇게 대놓고 말해도 됩니까?”

“뭐 어때요? 어차피 당신도 알 거 아니에요.”

디에타가 어깨를 으쓱였다.

욕망을 드러내는 게 뭐가 나쁜가? 오히려 의도와 목적이 분명한 편이 더 신뢰가 간다. 순수한 욕망만큼이나 뚜렷한 건 또 없으니.

“오히려 순수한 호의로 접근하는 편이 더 의심스럽지 않나? 그게 더 수상하잖아요.”

“부정할 수는 없네요.”

“물론 이렇게 퍼줘도 나중에 당신이 나 몰라라 하면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뛰어난 인재에게 ‘미리 투자했다’는 인상 정도는 시장에 남길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남는 장사긴 하네요.”

디에타가 차를 홀짝였다.

“어찌 됐든, 전 당신에게 투자하고 있는 입장이에요. 당신이 실적을 쌓으면 쌓을수록, 더 많은 것을 투자할 생각이구요.”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샛노란 눈동자가 나진을 흘겨봤다.

“도시에 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빠르게 등급을 올리는 모험가가 디에타 상단의 지원을 받고 있다. 상단의 장비와, 상단의 포션, 상단의 금고를 사용한다··· 이것만으로도 제법 광고가 되거든요.”

모험가들은 특별한 이들을 동경한다.

동경은 곧 모방으로, 모방은 곧 대상과 같은 물건의 소비로 이어지는 법이다.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광고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디에타는 안다.

“당신은 지원받아서 좋고, 저는 당신을 모델로 광고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서로서로 좋은 거 아니에요?”

디에타는 제 속내를 모조리 드러냈다.

드러내도 상관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당신을 이용할 거고, 당신도 저를 이용하면 그만이에요. 여기에 달리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요?”

가만히 디에타의 말에 귀 기울이던 나진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 디에타는 고개를 기울였다.

“왜 웃으세요?”

“그냥, 신선해서요.”

“···예?”

“이렇게까지 시원하게 목적을 까놓는 사람은 못 만나봤거든요.”

나진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뭐, 좋습니다. 제게서 도대체 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투자하시겠다면야 저야 감사한 일이죠.”

나진이 디에타가 꺼낸 보증서를 가리켰다.

“그거, 어디 등급까지 서주실 수 있습니까?”

“청색 등급까지는 써드릴 수 있지만, 고민 중이네요. 아직 당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지 못해서.”

흐음, 하고 나진이 제 입가를 매만졌다.

‘보여줘도 되겠죠?

-위장 나이가 28세잖아? 그럼 편린 정도는 보여줘도 되겠지. 너도 슬슬 드러낼 생각이라면서?

‘그것도 그렇죠.

나진은 결정을 내렸다.

허리춤의 칼자루에 나진이 손을 얹은 순간 디에타의 곁에 서 있던 호위 기사 파시온이 반응했다. 검을 뽑는 순간 곧장 달려들 것 같은 파시온의 움직임에 나진은 미리 말했다.

“보여드리려는 겁니다.”

뽑아든 검날을 디에타가 아닌, 바닥을 향해 나진이 늘어트렸다. 그리곤 칼자루를 콱 움켜쥐었다.

파스슷···.

평소처럼 외부의 마나를 끌어들이진 않았다.

멀린이 가르쳐준 마나 연공법으로 체내에 축적해 둔 소량의 마나. 그 마나를 움직여 나진은 검기를 빚어냈다. 검신을 타고 흘러내리는 백색의 광채.

그것은 검기의 편린이다.

완전한 검기가 되어, 백금색의 광채가 흘러나오지 않게 주의하며 나진은 힘을 제한했다. 외부에서 대량의 마나를 끌어오지 않았기에 힘을 조절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진의 검에 맺힌 백색의 광채는 지켜보던 이들의 눈을 부릅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파시온과 디에타가 눈을 크게 뜬 채 나진의 검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청색 등급은 됩니까?”


청색 등급의 의뢰까지 수행 가능하다는, 상단의 보증서를 받은 나진이 자리를 뜨고 잠시. 접견실에 남아있던 디에타가 입을 열었다.

“파시온 경.”

“···말씀하십시오.”

“그거, 검기였죠? 분명히.”

“정확하겐 검기의 편린이었습니다.”

백색의 광채.

아직 온전한 검기의 형태를 이루진 않았지만, 한없이 검기에 근접한 광채였다. 그건 달리 말하자면 소년의 경지가 소드 엑스퍼트에 근접했단 뜻이었다.

“신분상의 나이는 28세이긴 한데··· 솔직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죠?”

“잘 쳐줘 봐야 이십 대 초반 같더군요. 얼핏 보면 디에타 님의 또래로 보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20대 초반에 검기의 편린.

그 경지에 디에타는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조금 전 그 남자의 이름이 정말로 ‘이반’이고 20대 후반의 청년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쳐도 빠르다.

좋은 가문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는 유망주들이 검기를 뽑아내는 건 빨라도 30대 초반이었으니까. 파시온 역시 아르베니아 가문이 발굴해 낸 천재란 소리를 들었음에도 31세에 검기를 뽑아냈다.

“아까 그 남자, 검기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계기만 있다면 완성이 될 겁니다. 늦어도 한두 달 안으로 생각합니다.”

디에타가 헛웃음을 흘렸다.

“대체 뭘까요? 테첼 산맥의 레인저들은 검기도 뽑아내나요? 그들은 검기가 아니라 다른 쪽으로 수련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파시온은 당황을 감춘 채 답했다.

그는 조금 전 나진이 선보인 검기를 가까운 곳에서 보았다. 검에 대해 잘 모르는 디에타는 알 수 없었을 테지만, 파시온만큼은 알 수 있었다.

소년의 검기가 가진 기이함을.

아직 완전히 검기가 맺히지 않았지만, 검신을 타고 흐르는 백색의 광채는 몹시도 짙었다. 그만큼의 밀도를 지닌 검기의 편린을 파시온은 본 적이 없었다.

‘확실한 건 부딪쳐 봐야 알겠지만···.

편린에 불과함에도, 제대로 뽑아낸 검기와 맞부딪쳤을 때 밀릴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디에타 상단의 보증서.

그 보증서를 창구에 보여주자 나진은 청색 등급의 의뢰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게시판에 빼곡히 붙여져 있는 종이를 바라보며 나진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청색 등급 정도 되면 복잡해지네.

흑색 등급에선 단순히 몬스터를 토벌하거나, 재료를 수집하는 의뢰가 대부분이었다면···.

[호위 임무.]

[특수 개체 ‘외눈의 오크’ 생포.]

[현상 수배범 ‘와이먼’ 생포.]

청색 등급은 호위 임무부터 시작해, 특수한 마물의 생포나 현상 수배범의 사냥 등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제법 전문적으로 변한 의뢰서를 훑어보던 나진의 시야가 어느 곳에 멈췄다.

‘이거, 괜찮지 않아요?

-나쁘지 않네. 경험을 쌓기에도,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에도 괜찮은데?

두각을 드러내고.

제대로 된 실적을 쌓기에도 적합한 의뢰.

‘그럼 이걸로 하죠.

나진과 멀린의 의견이 일치했다.

촥, 하고 나진이 의뢰서를 뜯어냈다.


“단장님.”

“무슨 일이냐, 바르거? 보고 할 거 있어?”

“이전에 수주하신 의뢰, 인원 모집이 마감됐습니다. 인원 명단을 뽑아왔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오. 수고했다.”

제 부하가 건낸 서류.

서류 더미를 대충 쓱쓱 넘기던 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오만상을 찌푸린 채 종이를 쿡 찍었다.

“뭐냐 이거? 깜댕이가 왜 있어?”

깜댕이. 널리고 깔린 흑색 등급의 모험가들을 낮춰 부르는 멸칭이었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이반이라는 사내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최소 수주 등급이 청색 아니었어? 깜댕이가 어떻게 의뢰를 수주해? 길드 놈들 일 처리 똑바로 안 한 거 아냐 이거?”

“특이 사항을 확인해 주십시오.”

“특이 사항?”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가 서류를 마저 확인했다.

“···디에타 상단이 보증을 섰다고? 내가 아는 그 디에타 상단이?”

“예.”

“금화 삼키는 미친년이 있는 거기? 그년이 무슨 일로 남한테 보증을 다 서줬대?”

“걸러낼까 하다가 그 부분이 걸려서 가지고 와 봤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하의 물음에 여인이 팔짱을 낀 채 툭툭, 손가락으로 팔뚝을 건드렸다.

“디에타 그 뱀 같은 년이 그냥 보증을 서줬을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긴 할 텐데.”

흥미가 생기는구만.

그리 중얼거리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새까만 머리칼이 출렁였다. 등허리를 타고 길게 늘어진 머리칼을 고무줄로 대충 묶으며 그녀가 말했다.

“한번 내버려 둬 봐. 어떤 놈인지 보기나 하자고.”

그녀가 벽에 걸린 검들 중 하나를 골라 허리춤에 채우며 제 부하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봐서 괜찮은 것 같으면 확 낚아채 버릴까. 어떻게 생각하냐, 바르거?”

“금화를 삼키는 뱀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뭐 어때? 이 바닥에선 좋은 조건 대는 놈이 채가는 게 당연한 거야.”

여인의 붉은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어디 그럼 얼굴이나 한번 보러 가볼까.”

붉은 눈 용병단의 단장.

도시의 다섯뿐인 백각(白角) 중 하나.

소드 시커, 로젤린 아스칼로가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