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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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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포부에 멀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서가 세운 기록마저 갈아치우겠단 소년의 말에 그녀는 불쾌함을 느끼진 않았다. 목표는 높은 편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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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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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앓는 소리를 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멀린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기본 자금을 마련했고, 머물 곳을 찾았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할 무대가 갖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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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기반이 다져졌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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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것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내일을 대비할 여유가 생긴 지금이야 적기임을 멀린은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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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마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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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게 부족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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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에 대한 지식과 연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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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가르칠 최적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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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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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체내에 축적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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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마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진에게 마나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주변에서 마나를 다루는 이들을 보며 감각적으로나마 이해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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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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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는 멀린의 질문에 나진은 솔직하게 답했다. 어쩌다 보니 마나를 다루고, 어쩌다 보니 검기를 뽑고 있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묻는다면 나진은 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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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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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아닌 오직 자신의 직감에 의지해 나진은 마나를 다루고 있었으니까. 열흘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나진을 관찰한 멀린 역시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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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넌 감각에 의지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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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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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게 나쁘진 않아. 오히려 네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반증이지. 하지만 정확한 지식 없이 감각에만 의존해선 한계가 명확한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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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이론과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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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알고 움직인다’는 것은 중요해. 검술이든, 마법이든, 마나든 마찬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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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이해한다면 마나를 더 폭넓고 다양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멀린은 이야기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나진은 귀 기울였다. 지금 멀린이 들려주는 것은 그 누구도 나진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지식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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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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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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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까먹을 뻔하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서 ‘마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무려 그 대마법사 멀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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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개의 별을 지닌 별자리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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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영웅담 속에서 대마법사라 불리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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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수식하는 수많고 수많은 칭호를 나진은 떠올려 봤다. 최초로 신비에 도달한 마법사, 진리에 닿은 대현자, 마나의 본질을 깨우친 현인 등등.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마나’와 ‘마법’에 대해 깊게 파고든 인물이 바로 멀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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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가 검(劍)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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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마학(魔學)의 기본을 집필한 인물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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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인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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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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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금을 들여도 들을 수 없는 강의를 무료로 수강하고 있는 지금, 나진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멀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나진은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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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와 검사가 마나를 다루는 데 차이가 있다곤 해도, 기본적으로 마나를 축적하는 과정은 엇비슷해.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갈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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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한 마나로 육체를 강화하고 검기를 뽑아내는 것이 검사. 마나로 서클을 만들고 영혼에 회로를 새기는 것이 마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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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네게 마나 연공법을 가르쳐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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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연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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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에 마나를 쌓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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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네 몸에 길을 뚫고, 마나를 빨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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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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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미 마나 다룰 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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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으로는, 예. 다룰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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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이없긴 하지만 이미 몸에 길을 뚫어놨더라고. 마나를 쌓는 것보다 길을 뚫는 게 더 어려운데, 너 그거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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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서가 했던 거랑 똑같은 방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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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리는 멀린의 말에 나진은 고개를 기울였다. 배웠다기보단 동화책을 읽고 써진 대로 따라 했을 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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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허무맹랑한 줄글 몇 개 보고 따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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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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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하겠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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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놀라는 것도 피곤하다는 듯 멀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야 어쨌든 나진의 몸에는 마나가 흐를 길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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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체내에 마나를 쌓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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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와 비슷한 식으로 길을 만들어 둔 소년의 몸은 멀린이 보기에 완벽하게 준비된 도화지였다. 아직은 드넓게 펼쳐진 들판일 뿐이지만··· 이제부터 이곳에 그 무엇보다도 견고하고 높은 탑을 쌓아 올리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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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호흡법부터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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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쌓아나갈 탑의 주춧돌, 드넓은 들판 위에 멀린은 초석(礎石)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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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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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숨을 들이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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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네가 하던 것처럼 흐름을 몸에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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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의 말을 따라 나진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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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이 제 몸에 깃드는 것을 나진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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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네. 그래, 흐름을 몸에 받아들이는 데까진 좋아. 그런데 넌 그걸 잠깐만 쓰고 바로 바닥에 버려버리고 있거든?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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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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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양동이로 물을 가득 퍼서는, 그대로 바닥에 쏟아버리고 있어. 물론 그 잠깐동안 사용할 때야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서야 발전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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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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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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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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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놓은 것을 바로 바닥에 쏟지 마. 천천히 네 몸에 스며들게 하는 거야.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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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나진은 마나를 단기적으로, 순간적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멀린은 말하고 있었다. 그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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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3분··· 그렇게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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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이 지났을 때 나진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몸이 욱신거렸고 코가 시큰거렸다. 그렇게 1분의 시간이 더 흘렀을 때, 나진의 코에서 핏방울이 흘렀다. 온몸을 칼로 난도질하는 고통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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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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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경고했고, 나진은 참았던 숨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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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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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이 쓰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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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뱉은 기침에는 핏방울이 섞여 있었다. 고통에 이기지 못하고 나진이 방에 대자로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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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마나를 오래 담고 있으면 담고 있을수록, 네 몸에는 마나가 스며들어. 방금 했던 게 바로 그 과정이야. 물론 더럽게 아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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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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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호흡하기도 힘든 나진이 간신히 말을 쥐어 짜냈다. 그 목소리에 멀린은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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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아프겠지. 원래는 절대 이런 식으로 마나를 안 쌓거든. 보통은 영약을 빨아 체내에 들어온 정순한 마나를 흘리지 않고 쌓는 데 집중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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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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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이나 집단마다 숨겨둔 마나의 샘이나 성역 같은데서 제대로 정제된 마나를 삼켜서 쌓지, 이렇게는 안해. 야생에 돌아다니는 날것의 마나를 쌓으려다 간 몸이 안에서부터 완전 박살이 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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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의 말에 귀 기울이던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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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잘못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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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약을 살 돈도, 그렇다고 성지나 마나의 샘을 이용할 뒷배경도 없는 네겐 이게 최선이야. 그리고 넌 몸이 좀 박살 나도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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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 개소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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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남의 몸이라고 지금, 나진이 그렇게 묻는 것보다 멀린의 대답이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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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엑스칼리버 들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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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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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별이 없으니까 엑스칼리버 기능 태반이 잠겨있을 거긴 한데··· 그래도 회복력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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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가 가져다주는 회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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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나진은 알았다. 안 그래도 그 회복력에는 지하도시에서 도망쳐 다닐 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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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외상을 바로바로 회복할 정도는 안 돼도, 내상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걸? 아서도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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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멀린이 나진에게 가르쳐주는 방법은, 본래 아서가 사용하던 마나 연공법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아서가 몸을 조져가며 쌓아 올린, 그야말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날것의 연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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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지고 회복하고, 찢어지고 회복하고. 그 과정에서 마나를 담기에 최적화된 육체로 재구성되는 거지. 다시 생각해 봐도 무식하기 짝이 없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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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짓궂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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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효율 하나는 끝내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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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아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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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건 참아야지 뭐. 별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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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땐 다 이렇게 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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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것들이 나약해 빠져서는 성역이니, 영약이니 하는 편한 것들에 의존하는 거지. 그리 중얼거리며 멀린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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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되고 힘들어야 수련이지, 편하면 그게 수련이야? 그냥 날로 처먹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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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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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꼰대를 다 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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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라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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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끙대며 나진은 몸을 뒤집었다. 몇 분이 지나니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나진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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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계속하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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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짧게 끊어. 이런 건 단기간에 쌓기보단 시간을 두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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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고 멀린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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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만 쌓는다고 강해지는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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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뭘 말하려 하는지 나진은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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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몸 움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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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야 빨리 스며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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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만 해도 몸 이곳저곳이 쑤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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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야 단련이라니까? 안 아프면 그게 단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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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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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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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을 흘리면서 나진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지만, 그래도 나진은 멀린의 말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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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도 이런 식으로 단련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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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은 그런 아서를 넘어서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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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표를 다시금 상기하며 나진은 제 몸을 채찍질했다. 검을 쥐고 여관의 바깥으로 나간 나진은 사람이 없는 공터에서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검을 휘두르고 있자니 나진의 표정은 착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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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생각이 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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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에 있을 때도 매일 아침 공터에 나가 검을 휘둘렀던 나진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술병을 낀 채 조언을 늘어놓던 스승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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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렇게 휘두르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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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끝을 끝까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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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휘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야. 자세에 집중해라. 호흡을 신경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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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의 목소리가 나진의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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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조언해 주는 스승이 없었지만, 나진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오펜이 남겼던 조언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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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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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는 공터에 소년의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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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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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변화를 느낀 것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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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가르쳐준 대로 매일 같이 마나를 빨아들이고, 속이 뒤집힌 채로 수련하던 나진은 제 몸에 변화가 생긴 것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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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볍고,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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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두르는 검의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으며 내딛는 걸음마다 힘이 가득했다. 흐름을 끌어들여 육체를 강화하지 않았는데도, 며칠 전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제 몸에 나진은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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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확실하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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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 눈에 보인다. 나흘간 피를 토해가며 몸을 찢어댄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진은 조금 더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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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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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을 마친 나진은 길어둔 물로 땀방울을 씻어냈다. 그렇게 몸을 씻어내던 나진은 문득 거울을 흘겨봤다. 그러고 보니 위장하긴 해야 했을까? 자신의 외모를 교단의 추격자들은 알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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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진이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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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춘 나진의 상반신을 바라보며 멀린은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거울에 비춘 나진의 상반신에는 자잘한 흉터가 가득했다. 특히나 어깻죽지에는 검으로 그은 듯한 길쭉한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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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한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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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흉터들 사이로 보이는 쩍쩍 갈라진 잔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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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실전에서 길러낸 근육들이었다. 제 재능에 안주한 이들은 얻을 수 없는 것들. 그것들을 바라보며 멀린은 내심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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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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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범인(凡人)과는 궤를 달리하는 재능과, 성장 속도를 지녔다. 그리고, 그런 천재들이 으레 그렇듯 나진 역시 제대로 된 기반을 다지지 않은 채 이곳까지 뛰어 올라왔으리라 멀린은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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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까고 보니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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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은 충분할 정도로 다져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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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단련을 견뎌낼 만큼 단련된 나진의 육체에 멀린은 만족스레 웃었다. 기반이 잘 다져져 있기에 제대로 된 수련법으로 단련하니 그 효과가 바로바로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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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도, 기반도 다 갖춘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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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도약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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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게 치솟는 나진의 성장곡선을 가늠해 보며 멀린은 고민했다. 마나를 다루는 것과 기초적인 단련이야 자신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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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이 문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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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바로 그 부분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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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어디까지고 마법사였고, 아서와 원탁의 기사들의 검술을 가까이에서 보았다곤 하나 그것을 가르쳐줄 만큼의 무재(武才)가 있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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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마법사가 아니라 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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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를 휘두르게 될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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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를 쌓고, 마나를 운용하는 것만으론 당연하게도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 검이란 무구를 이해하고 검의 묘리 역시 깨우쳐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바로 소드 시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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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은 생각해 둔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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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를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으며 나진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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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길드 쪽을 자주 왔다 갔다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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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제대로 된 용병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나진이다. 최소한의 실적을 채워야 제대로 된 의뢰를 받을 수 있기에, 지난 사흘간 나진은 길드가 주는 잡심부름들을 수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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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중 고블린 무리를 쓸어 담고 온 게 큰 점수를 받은 덕분일까. 어젯밤 길드는 나진의 명패를 검게 물들여 줬다. 흑(黑) 등급의 용병이 됐다는 뜻이었고, 이젠 제대로 된 의뢰를 수행할 자격을 얻었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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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받을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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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긴 나진이 길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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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의뢰를 받을 순 있게 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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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드가 아닌 개개인이 건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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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중 나진이 점찍어 둔 의뢰가 하나 있었다. 보수가 썩 짭짤하지 않아 남들은 좀처럼 고르지 않는 의뢰. 하지만 나진에겐 매력적인 의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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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 시체를 옮길 짐꾼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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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을 따라가 시체를 옮길 뿐인 단순한 의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뢰를 수주한 인물의 신상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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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교단 소속의 소드 엑스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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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 사제 볼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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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교단. 오직 검의 길만을 추구하는 검의 구도자들의 집단이자, 검술을 갈고 닦는 데 제 삶을 바치기를 맹세한 이들이 모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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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달리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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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에 도가 튼 사람들이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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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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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 나진은 의뢰서를 움켜쥐었다. 물론 저 ‘볼크만’이란 사제가 검술을 가르쳐주겠단 말은 의뢰서에 한마디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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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뭐 알 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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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어떻게든 흉내 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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