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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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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뭔 상황인지 디에타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이다. 파시온이 디에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기사의 눈에는 보이는 게 있었으므로.

“저 세 사람, 손가락이 부러져 있습니다. 무릎하고 발목도 부러트렸군요. 한쪽 다리로 절뚝이며 걸을 수 있을 정도로만 정확하게 박살 내놨습니다.”

파시온이 놀란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디에타는 마른침을 삼켰다.

파시온과의 내기에서 분명 나흘에 걸긴 했지만, 그마저도 상당히 희망적인 관측이었다. 저 세 수배범은 현상금 사냥꾼들도 애먹는 뒷골목의 출신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고작 하룻밤 만에?

믿기질 않는 성과였다. 소년이 성공적으로 의뢰를 달성했음을 인정하고,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디에타는 곧장 입을 열지 못했다.

“아, 그리고.”

그녀가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가운데.

“이것들 한번 확인해 주실래요?”

나진이 집무실의 책상에 가죽 주머니를 올려놨다. 디에타 곁에 서 있던 파시온이 주머니 내부에 위험한 것이 없음을 확인하고선, 책상에 내용물을 엎어놨다.

쏟아진 것은 금화와 조작된 장부.

그리고 각종 값비싼 장신구와 금괴들이다.

세 수배범이 디에타 상단에 장난질을 쳐 벌어들인 돈과 물건들. 그리고 그것들을 팔아서 현물화한 것들을 나진은 모조리 찾아서 들고 온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한 순간 디에타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걸 다 어떻게?”

그 물음에 제가 이쪽으론 좀 도가 텄습니다, 하고 답하려던 나진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제 전직이 뭐였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입을 열게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손가락 좀 꺾다 보면 다 불더랍니다.

속으로 나진은 그리 덧붙였다.

-나도 물어보고 싶네. 정말로.

나진의 귓가에 멀린은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가까운 곳에서 나진의 일처리를 보았음에도, 멀린은 그 일련의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손가락을 꺾어가며 고문해 얻은 정보의 파편.

그 파편을 들고 잠시 고민하던 나진은 곧장 그들이 숨겨놨던 금고 위치를 찾아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 파편에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멀린으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곁에서 보고 있자니 나진이 마술이라도 부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멀린의 목소리와, 디에타의 어이없는 눈빛에 나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저 두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진은 본래 처형인인 동시에 조직의 수금원이었다.

‘숨겨두는 데야 뻔하지.

이런 놈들이 돈을 숨겨두는 방식이야 뻔했고, 조금의 정보만 있어도 금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아하···.”

침묵하던 디에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늘게 뜬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제 보았던 것보다 더 짙어진 샛노란 눈동자에 나진이 움찔, 제 어깨를 떨었다.

“상상 이상인걸요.”

디에타가 환히 웃었다.

그녀는 집무실 한구석에 쌓여있는 종이를 한 장 꺼내 들고, 깃펜으로 쓱쓱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그리곤 상단주로서의 인장을 찍은 뒤 나진에게 넘겼다.

“의뢰 보수입니다. 1층의 거래 창구에 보여주면 바로 환전해 줄 거예요. 저희 상단은 은행도 겸하고 있으니 금고지기들에게 맡겨서 보관해 둬도 좋구요.”

“···어제 들려주신 보수금보다 0이 하나 더 많은데요?”

“일 처리가 너무 만족스러워서요.”

그리고, 하고.

디에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 끼고 있던 새하얀 장갑을 벗은 그녀가 나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우리 자주 볼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할까요? 어제 이름을 못 물어봤던 것 같아서.”

어제 말씀 드렸듯이 제 이름은 디에타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매력적인 미소와 함께 소녀는 그리 질문했다.

그리고, 나진은······.

소년이 집무실을 나가고 잠시.

디에타는 허공에 내밀고 있는 제 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장갑을 벗어 드러난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장갑을 벗고 손가락을 드러낸다는 건 그녀 나름의 신호였다.

당신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우리 자주 좀 보자··· 같은 느낌의 신호.

나름대로 제 외모에 자신이 있는 디에타였다. 가문에서 가출하기 전에는 몇번이고 혼담이 오가며, 한철 장사로 팔려나갈 뻔했던 자신이 아니던가. 외모 만큼은 아르베니아 가문의 여식 중에서 가장 빼어났으니.

그런 자신이 최대한 예쁘게 웃으며, 장갑을 벗어 건네는 악수. 남자라면 그래도 나름 호감을 느낄만한 장면이 아니었던가?

‘분명 그럴 텐데···.

자신이 뻗은 손을 소년은 붙잡지 않았다. 제가 아직 댈만한 이름이 없어서, 라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집무실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차인 기분.

뭔가 몹시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디에타가 허공을 몇 번 움켜쥐었다. 기분이 나쁠 만도 하지만 디에타는 오히려 미소 지었다. 하기야, 이렇게 쉽게 손에 잡히면 재미가 없겠지.

“대단했죠? 아까 그 소년.”

다시 자리에 앉아 장갑을 낀 디에타가 말했다. 그녀의 곁에 서 있던 파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상 이상이로군요.”

“제가 봐도 그래요. 정체가 뭘까요?”

이 도시에서 숱한 모험가와 용병들을 봐온 디에타다. 그렇기에 그녀는 안다. 전문 현상금 사냥꾼도 저 소년처럼 이렇게까지 깔끔하고 빠르게 일 처리를 하진 못한다는 것을.

대체 저 소년의 정체가 뭘까.

이름 모를 소년과 나눴던 대화를 곱씹으며 디에타가 턱을 괸 채 고민했다. 아무런 뒷배경이 없다기엔 소년이 보여준 솜씨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전문 현상금 사냥꾼보다 깔끔한 솜씨.

혹시 이런 쪽 일을 했던 사람인가?

그녀가 알기로 이 분야에서 이렇게까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이들은 레인저(Ranger) 말곤 없었다. 암행과 암습, 추격에 최적화된 이들.

······혹시, 정말 레인저 출신이 아닐까?

물론 레인저라기엔 소년의 나이는 어려 보였다. 만약 레인저였다면 최연소 레인저였을 텐데, 그런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레인저 훈련병 출신?

보통 훈련병이 이렇게까지 뛰어나진 않을 텐데.

“아.”

그 순간 디에타의 머릿속에 휙 스치고 지나가는 정보가 하나 있었다. 레인저들 중 당연 으뜸으로 치는 ‘테첼 산맥’의 레인저들. 최정예들만 모인다는 그곳은 후보생들부터가 차원이 다르다는 소문이 돌곤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죽이는 방법과, 함정을 파는 것, 매복과 추격과 고문을 배우는 후보생들.

그렇게 완성된 후보생들은 세상 물정 모른 채 한평생 국경선에 인접한 테첼 산맥에서 적들을 요격한다. 그들 중 극히 소수만이 그 지옥과도 같은 곳을 졸업해 ‘테첼 산맥의 레인저’라 불림을 디에타는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있을까.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용병 중 하나가, 바로 그 테첼 산맥의 레인저인데.

‘혹시 아까 그 소년도?

억측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디에타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은 소년과 나눈 대화다.

「혹시 뭐 산속 깊은 곳에서 수행하시다 오셨나요? 이건 상식에 가까운 부분인데.」

상식이 없어 보이는 소년에게 던졌던 질문. 지나가듯이 던진 질문에 소년은 ‘비슷합니다’ 라고 답했었다.

“허억!”

디에타가 숨을 헛삼켰다.

그녀가 챱, 하고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며 고개를 돌렸다. 제 옆에 서 있는 파시온을 바라보며 그녀가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말했잖아요, 이거 남는 장사라고!”

밥 한 끼에 테첼 산맥의 레인저 후보생(추정)과 연결점을 만들었다. 투자의 귀재라 불려도 될만한 상황. 이번만큼은 파시온도 부정하진 못했다. 수준 높은 기사인 그가 보기에도 소년은 비범했으니.

디에타가 환히 웃으며 머릿속으로 주판을 굴렸다.

아아, 냄새가 난다.

금화 냄새가 나.

금화를 삼키는 뱀이 금화의 향기를 맡았다.

소년에겐 나쁘지 않은 인상을 남겼으며 일단 관계를 텄다. 이제 조금씩 소년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면 될 문제였다.

머지않아 대성할 인재에게 투자하는 것만큼 효율 좋은 장사가 또 없음을 디에타는 알고 있다. 뛰어난 인재와의 연결점은 그것만으로도 상회의 입지를 드높여 주는 법이었으니.

“좋네요. 아주 좋아요.”

이 도시에 정착할 소년.

저 소년이 금화 몇닢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 앞으로 얼마나 더 그 가치가 오를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으니 차차 알아봐야겠지.

소년에게 어떤 제안을 건네고, 또 어떤 의뢰를 해야 호감을 살 수 있을지 고뇌하는 디에타의 눈동자는 평소보다도 더 샛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쿨럭. 짧은 기침 소리.

그런 디에타의 집중을 깨는 이가 있었다. 디에타는 시선을 늘어트려 제 앞에 결박된 세 수배범을 바라봤다. 그들을 바라본 순간 디에타의 눈동자는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저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으니까.

쥐어 짜내봐야 금화 한 닢은 뱉을까 말까 한 무가치한 쓰레기들. 저런 쓰레기들에게 디에타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비서에게 명령했다.

“끌고 나가서 처리해. 돈 될 부분은 팔아치우고.”

지갑이 한순간에 두둑해졌다.

당장 머무를 여관을 잡은 나진은 월세를 일시불에 결제했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었기에 월세와 식비를 한 번에 지불했는데도 아직도 돈은 한참 남아있었다.

‘이게 앞으로 머무를 곳.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과 푹신한 침대.

하물며 일 층에 내려가면 식사도 할 수 있다고 하니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이 도시에선 제법 흔한 여관이라곤 하나, 나진에겐 흔치 않은 것이었으니.

“당분간 밥 굶고 바닥에서 잘 일은 없겠네요.”

-잘됐네. 이걸로 기본은 갖춘 건가?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 자금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머무를 거처도 마련했고, 식사도 해결됐으며 명패를 만드는 것도 성공했다. 나진은 품 안에서 명패를 꺼냈다.

아직은 금속 조각에 불과한 명패.

몇 번의 의뢰 완수와, 길드에서 신뢰성을 검증받고 나면 그제야 신분증으로서 효력을 가진다고 명패를 발급해 준 직원은 설명했다. 이 명패는 당신이 도시의 일원이 됐다는 증거일 뿐, 당신의 신분을 증명하진 않는다고.

그러니 이제부터 증명해 나가야 하리라.

“확실히 제게 최적의 무대긴 한 것 같습니다.”

나진이 웃었다.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고, 실력을 키우기에도 적합한 도시네요. 실적만 있다면 얼마든지 저를 증명할 수단을 만들 수 있고요.”

나진은 명패를 제 손안에서 굴렸다. 아직은 금속 조각에 불과하지만, 실적을 쌓고 실력을 키운다면 이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신분증이 될 것이다.

-그거 말인데.

멀린이 히죽였다.

-아까 등급 설명 들었지?

흑(黑)색부터 시작해 백(白)까지.

색이 밝아질수록 등급은 높아지며, 더 상위의 의뢰와 상위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단순명료한 규칙.

-네가 걷는 길은 왕도.

멀린이 말했다.

-너는 네가 걷는 곳마다 기록을 남겨야 하며, 네가 발을 디디는 곳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야만 해. 그게 왕의 길이고, 영웅의 길이니까.

아서가 그러했듯이 너 또한 그리 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세우며 위로 올라가라. 멀린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목표로 해야 할 게 어디인진 말 안 해도 알겠지?

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백색 등급이죠.”

백색 등급. 백각(白角).

가장 높은 등급이자 이 도시의 정점.

현재 이 도시에서 백색 등급을 지닌 이는 딱 다섯 명 뿐이었다. 그 다섯 명 중 둘은 검사였고, 그들의 경지가 무엇인지 나진은 길드의 게시판에서 보았다.

소드 시커(Sword Seeker).

자신이 가장 먼저 목표로 삼아야 할 곳.

-우선 짧게 2년으로 잡아볼까?

2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진은 안다.

그것은 아서가 엑스퍼트에서 시커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기간인지 나진은 이 도시에 오고 나서 알게 됐다.

‘엑스퍼트에서 시커까지.

재능있는 엑스퍼트가 제대로 지원을 받는다면 시커에 이르기까지 통상적으로 15년 정도의 기간을 소모하며.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지원을 받는다면 10년의 세월이 소모하고.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검의 교단의 주인인 검성 카론이 엑스퍼트에서 소드 시커에 오르기까지는 7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정보를 알기에, 멀린이 내건 2년이란 기간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요구인지 나진은 알았다. 알고 있음에도 나진은 도리어 미소 지었다. 웃음과 함께 나진은 입을 열어 제 포부를 밝혔다.

“2년은 무슨.”

나진이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1년이면 충분합니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최연소란 최연소는 모조리 갱신하며 가장 높은 곳을 향한다. 그리고 나진이 갈아치워야 할 기록에는 당연히 아서 역시 포함돼 있었다.

쫓아가는 게 아니라 추월할 거다.

누가 뭐라 한들 소년의 목표는 아서왕보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