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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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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이자 협박.

이반은 제 오랜 선배를 보았다.

한때는 자신과 같은 전장에 섰으나, 아탕가를 배반하고 신의 뜻에 귀의한 기사. 명예도 긍지도 버린 이가 감히 아탕가의 이름을 입에 담냐고 우짖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을 이반은 알았다.

자신 또한 아탕가의 기사가 아니니까.

십년 전의 그날 명예를 잃어버렸으므로.

“높으신 분께선 이 일을 최대한 빠르고, 조용하게 처리하길 원하시지. 당장은 별과 다른 교단들이 눈치채지 못했다곤 하나··· 언제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거든.”

그런 이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를로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시간이 촉박하단 뜻이다. 이반.”

그가 이반의 앞에 세 손가락을 펼쳤다.

“사흘 주겠다. 그 안에 살려서 데리고 오던, 죽이던 내 앞에 끌고 오도록.”

“···베를로 경.”

침묵하던 이반이 입을 열었다.

비록 무릎 꿇고 있을지언정, 외눈일지언정 이반의 눈동자에는 분명한 분노가 실려있었다.

“교단은 별을 모시는 곳 아닙니까?”

“질문할 기회를 준 적은 없는데.”

“위대한 별의 의지를 존중하고, 또한 지키는 것이 교단의 교리가 아닌······.”

이반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베를로가 이반의 턱을 걷어찼기에.

뻐억, 하는 소리와 함께 이반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이, 이반.”

베를로가 이반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옛정을 봐 배려해 주니 내가 우스워 보이나? 별의 뜻을 모독한 죄인이 교단의 기사에게 별의 뜻에 대해 되물어? 정신 차리게, 이 친구야.”

답답하다는 듯 베를로가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주제를 알아라. 내가 건넨 호의를 이런 식으로 짓밟으면 곤란해.”

“···실언했습니다.”

“그렇지. 이제야 눈높이가 좀 맞는군.”

이반은 고개를 숙였고.

베를로는 고개를 든 채 이반을 내려다봤다.

“그 어떤 성좌께서도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셨지. 성휘 교단의 주신이신 ‘만물을 비추는 등대’ 께서도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셨어.”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그렇게 되물으며 베를로가 말을 이었다.

“이는 명백한 오류란 뜻이야. 등대께서도 알아차리지 못하셨다면 이건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는 거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교단이 그분께 바치는 충(忠)일세.”

모든 별을 고귀하고, 또 신성하게 여기는 것이 별을 모시는 교단의 덕목이라 하나··· 그 안에서도 우선순위는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성좌, 만물을 비추는 등대.

성휘(星輝) 교단의 주신 되시는 분의 별자리를 새긴 갑옷을 베를로가 매만졌다.

“두 번 말 안 한다. 이반.”

베를로가 이반을 노려봤다.

“위대하신 등대께 바친 나의 충(忠)에 걸고 맹세하지. 이 자리에서 자네에게 건넨 제안은 반드시 지켜진다. 이는 베를로 개인이 아닌 성휘 교단의 기사 베를로로서의 제안이므로.”

명예와 긍지 대신 신을 선택한 기사.

그런 베를로가 자신의 신에 대한 충성심을 걸고 맹세했다. 베를로가 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맹세. 이를 거절한다면 당장 목이 잘릴 뿐임을 이반은 알았다.

“···분에 넘치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반이 고개를 숙였다.

숙인 이마는 땅에 닿지 않았다. 그것이 이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나, 베를로가 이반의 뒤통수를 손으로 꾸욱 눌렀다.

“감사는 이렇게 표하는걸세.”

이반의 이마가 땅에 닿았다.

그 귓가에 베를로가 속삭였다.

“당장 움직여라.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바깥으로 나온 이반은 연초를 꼬나물었다.

연초에 불을 붙이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탁한 연기를 뱉어내는 이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탕가로서의 복권을 돕지.」

「네가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게 해준단 뜻이다.」

전 아탕가의 기사 베를로가 건넨 제안.

물론 이반도 알고 있다. 기사의 명예란 이딴 식으로 되찾을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이득과 손실을 따지며 권모술수가 뒤섞인 진흙탕에 뛰어들어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곤 더러운 권력뿐이다.

그것은 자신이 바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손에 넣은 명예는 이반에겐 무가치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반이 베를로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당연한 욕구 때문이다. 삶에 대한 욕구. 이반은 오펜과 달리 아직 자신의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아직은 죽을 수 없다. 더 살고 싶다.

이런 별빛이 닿지 않는 지하도시에서.

눈도, 명예도 잃은 반푼이 기사로서 이반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또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이반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나진을 죽여야 한다.

죽여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 단순명료한 명제 아래 이반은 줄담배를 태웠다. 광석등의 어스름한 불빛 아래서 이반의 눈동자는 탁하게 물들었다.

“후우······.”

기사로서의 자신이 질문했다.

구질구질한 삶에 의미가 있냐고.

그 질문에 이반은 답했다.

그렇게라도 아직은 살고 싶다고.

사람은 누구나 제 목숨이 우선이다. 다가온 죽음 아래 인간은 어디까지고 이기적이고, 어디까지고 잔인해질 수 있다. 그것은 이반 역시 마찬가지다.

마찬가지이지만.

이반은 선뜻 걸음을 떼지 못했다. 골목길에서 빠져나오는 오펜과 눈을 마주쳤으며, 그가 나진을 도왔음을 짐작했음에도 이반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새로운 연초를 꺼내 이반은 꼬나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뱉었다. 갑에 가득 찬 연초를 모두 태울 때까지 이반은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교단의 사냥개, 암부.

그곳에 속한 이들은 기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근접한 자들이다. 검기를 뽑아내지 못할 뿐 마나를 다룸에 있어선 기사 못지않은 자들. 그들은 기사라기보단 차라리 레인저에 가깝다.

암습, 암행, 추격, 암살.

그런 더러운 일들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바로 암부다. 이번 일이 새 나가지 않도록 금언(禁言)의 맹세를 한 이들은 흩어져서 소년을 추적했다.

검을 뽑아냈다는 소년이 도망친 것은 하루 전.

지하 도시의 지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1일의 시간이 소요됐음은 큰 격차이나··· 암부에 속한 이들은 그런 것쯤은 제약조차 되지 않으리라 여겼다. 제대로 된 훈련 한번 받지 못한 뒷골목의 소년 아닌가.

성검을 뽑았다는 특수성이 있으나.

달리 말하자면 그것뿐이다.

오히려 조우했을 시 소년이 성검을 사용한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터져 나온 빛을 발견한 순간 흩어져 있던 암부들이 모조리 그곳으로 모여들 테니까. 그러니 조우하고 전투를 유도해라.

그런 판단하에 추격자들은 단독으로 행동했다.

“······.”

기척을 죽인 채 좁은 골목길을 따라 움직이던 추격자 하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으니까. 인기척을 따라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찍힌 것은 분명한 발자국.

소년이 찍을만한 크기의 발자국이었다.

발자국을 따라 움직이던 추격자는 탁, 하고 골목길에 울려 퍼지는 발걸음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추격을 눈치챈 건가. 그가 땅을 박차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그거 달려서 도착한 곳에 있는 것이라곤 주인 없는 신발뿐이다. 위에서 아래를 향해 던진 듯한 신발. 그제야 추격자는 조금 전 울려 퍼진 소리의 정체를 눈치챘다.

신발은 미끼.

노리는 것은 자신의 목숨.

추격자가 급히 검을 뽑아 들며 위를 향해 휘둘렀다. 곤두서있던 감각 덕에 가능했던 대응. 검을 휘두른 순간 카앙! 소리를 내며 쇠붙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에서 뛰어내리며 추격자를 급습한 나진이, 미끄러지듯 바닥에 착지했다.

골목길에 내리깔린 어둠 속에서 소년의 노을빛 눈동자가 요사스레 빛났다. 섬뜩함을 느낀 추격자는 마나를 끌어올렸으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눈동자가 흔들리기를 한순간.

탁!

땅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신형이 일순간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칼날이 곧장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카앙, 하고 간신히 검을 쳐내며 추격자는 거리를 벌렸다.

‘빠르지는 않지만 위협적이다.

사람을 한둘 베어본 솜씨가 아니었다.

마나를 다루는 이들과 같은 특출난 속도는 없었지만 성가셨다. 시야의 사각을 파고드는 솜씨가 제법이었으므로.

···쯧.

혀를 차며 추격자가 이번엔 소년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일부러 큰 폭을 그리며 검을 휘둘러 소년이 뒤로 물러서게 만든 뒤, 그는 소맷자락에서 뽑아 든 암기를 투척했다.

검은색의 암기.

어둠 속의 시야에 익숙한 암부가 아니라면 눈으로 보는 것조차 어려운 비수다. 그것이 물러선 소년의 목을 꿰뚫는 미래가 그의 눈에 그려졌지만······.

콱.

나진은 날아오는 암기를 손으로 낚아챘다.

한평생을 어두운 지하도시에서 살아온 나진은, 당연하게도 어둠 속의 시야에 익숙하다. 낚아챈 암기를 추격자를 향해 투척하며 나진이 땅을 박찼다.

「전력을 숨겨라.」

「필요한 순간, 한순간만 빠르게 움직이면 돼.」

「그게 방심을 만들고 빈틈을 만들지.」

흐름이 소년의 몸에 깃들고.

한순간 소년의 몸이 가속했다.

당황한 추격자가 암기를 쳐낸 순간 나진은 이미 추격자의 코앞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속도에 추격자의 반응이 늦어졌고, 그 틈을 나진은 놓치지 않았다.

서걱.

추격자의 팔이 잘렸다. 그가 눈을 부릅뜨며 하나 남은 팔로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나진의 손아귀가 추격자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기세를 잡았으면 놓치지 마라.

이반의 가르침대로 나진은 추격자의 손목을 움켜쥔 채 잡아당겼다. 잡아당겨 자세를 무너트리며 검을 휘둘러 목을 그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축 늘어진 추격자의 시체를 나진은 자신이 갈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갔다.

용병인 오펜에게 배운 것.

핏자국은 좋은 미끼가 된다는 가르침.

배운 것들을 남김없이 써먹으며 나진은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뒤쫓는 추격자의 수가 꽤 있었으며, 곧장 목적지로 향해선 위험함을 나진은 직감했다.

‘···목적지를 들키면.

그곳으로 몰려들 테니까.

그러니, 당분간은 배회하는 척하자. 목적지가 없이 이곳저곳 숨어드는 것처럼. 그러기 위해선 추격자를 하나 더 잡아 죽일 필요가 있었다.

판단은 빨라야 했고.

움직임은 그보다 더 빨라야 했다.

외줄 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나진은 골목길을 박차고 달렸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선 안됐다. 그것이 오펜과 이반이 전해준 가르침이었으므로.

‘찾았다.

나진은 근방에 있던 추격자를 발견했다.

추격자와 추격자 사이에 놓인 거리가 일정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 점을 확인한 나진은, 거리가 충분히 멀어질 때를 기다렸다.

암부의 추격자들은 자신들이 사냥감을 쫓는 사냥꾼이라 생각했을 테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소년이 추격자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넷이 당했다고?”

소년이 도주한 지 하루하고도 절반이 지났을 무렵, 보고를 들은 베를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확인된 건 넷이지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암부의 보고는 베를로를 놀라게 할만한 것이었다.

기사가 되지 못했다곤 하나, 암부에 속한 추격자들은 절대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지하도시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은 소년이 상대할 만한 존재는 아니다. 입수한 정보에서 소년이 이반의 사냥개라 불리며 조직의 처형인의 일을 맡아왔단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이상하다.

사람을 죽이는데 능하다는 정도를 벗어났다.

지형에 익숙함과 기습 등, 요행으로 하나쯤은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넷이나 죽였단 것은 요행으로 치부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암부들의 시체가 발견된 위치를 보건대, 이는 소년이 도망치며 자신을 쫓아오는 추격자를 상대한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 죽였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미친 애새끼를 다 보겠군.”

추격당하는 상황에서, 추격자를 사냥해?

어이가 없어 베를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엑스칼리버를 뽑았다길래 재능이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는 재능이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갈무리가 돼 있다.

재능에 휘둘리는 애송이의 범주를 벗어났다.

본래 충분히 거리가 좁혀지거나, 소년이 엑스칼리버를 뽑아낸다면 그 빛을 보고 움직이려 했지만 이젠 자신도 움직여야 하리라. 자리에서 일어선 베를로가 부하에게 질문했다.

“이반은?”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그가 문밖을 가리켰다.

“베를로 경을 뵙고 싶다는 이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용병이라 소개한 자인데, 적당한 값만 치러주신다면 일을 돕겠다고 합니다.”

“···용병?”

“예, 이곳에 떨어지기 전에 용병단의 단장을 하던 인물인듯 싶습니다.”

용병, 용병이라.

돈과 권력을 따라 움직이기에 그 무엇보다 다루기 쉬운 칼날. 베를로가 턱짓했다.

“들여보내.”

이윽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술에 찌든 사내.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인상의 사내가 베를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용병, 오펜입니다.”

시키실 일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