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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색의 검기는 용의 역린(逆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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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멀린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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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을 닮은 백금색의 검기. 인류의 역사에서 오직 단 한 명, 아서만이 다룰 수 있었던 검기. 일천 년 전 아서는 백금색의 검기를 휘둘러 수많은 악마를 베어냈으며 수많고 수많은 용을 떨어트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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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를 뽑았기에 백금색 검기를 가졌는지, 백금색 검기를 가졌기에 엑스칼리버를 뽑을 수 있었는지는 몰라. 하지만 전후 관계가 중요한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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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백금색의 검기가 지닌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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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의 검기는 신비(神秘)에 저항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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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를 거스르는 것들에 저항했단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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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세상의 규칙을 지키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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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정해진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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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 섭리 따위로 불리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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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악마, 용, 떨어진 별, 나락의 저주받은 것들. 이것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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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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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규칙을 멋대로 넘고, 부수고, 비트는 존재들이지. 존재 자체가 반칙 같은 것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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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뭘 말하려는 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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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규칙을 지키지 않은 이들을 아서의 검기는 징벌했다. 마치 규칙을 지키라는 것처럼. 아서는 그들의 신비를 가르고 비늘을 찢어발겼으며 피 흘리지 않는 이들을 피 흘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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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검기는 아서와 본질적으로는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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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특성만큼은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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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흑마법사 상대할 때 기억하지? 그때는 아직 시커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었지만··· 걸작의 신비를 견뎌내고, 흑마법을 찢어발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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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멀린은 웃음을 흘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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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시커에 이른 지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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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것을 확인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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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만들어낸 메아리에 나진은 제 검기를 실었다.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출력의 검기. 아직 나진의 내면에선 백색의 별이 강했기에, 새하얀 빛이 먼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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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금빛. 새하얀 섬광에 금빛이 뒤섞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한없이 백금색에 가까운 검기다. 본래대로라면 숨겼을 테지만, 지금의 나진에겐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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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전투다. 도망칠 곳은 없었으며 시간을 끈다는 선택지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깨부숴야 할 적의 앞에서, 나진은 자신이 숨겼던 전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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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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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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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백색과 금색의 검기를 다룬다는 소문은 퍼져있기에, 그 일종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섬광. 그러나 로젤린 아스칼로만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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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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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메아리에 실린 검기를 로젤린은 느꼈다. 제 영혼의 반쪽을 비명 지르게 만드는 검기. 살갗이 따가웠으며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그 아릿한 고통에 로젤린은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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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거면 먹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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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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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이를 악물고 쌍검을 휘둘렀다. 걸작, 메아리에서 퍼져나간 울림은 그물과도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휘두른 칼끝을 따라 검기의 그물이 용의 날개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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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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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과 로젤린의 검기가 용의 날개를 할퀴었다. 용의 비늘이 검기를 흐트러트리나, 검기가 흐트러지는 것보다 비늘이 깎여나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티디디디디딕! 소리를 내며 비늘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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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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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성을 내지르며 적룡이 날갯짓하자,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그물이 찢어졌다. 검기가 흩어졌다. 하지만 로젤린이 만들어낸 메아리는 이미 제 역할을 다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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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을 쪼개 발판을 만들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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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를 쑤셔 넣을 틈을 만들어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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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는 바람을 견뎌내며 둘은 용의 날개에 매달렸다. 거대한 용의 체구에 비하면 한없이 왜소한 인간. 그러나 그들이 손에 쥔 날붙이에 맺힌 광채는 인간이 인간인 채로 괴물을 사냥할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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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과 오른쪽 날개, 저마다 하나의 날개에 올라탄 로젤린과 나진이 비늘을 밟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늘과 비늘 사이에 검을 꽂아 넣고 닥치는 대로 검기를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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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이이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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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이빨을 닮은 검기가 메아리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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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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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를 닮은 검기가 연신 섬광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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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날개는 본디 하늘을 날기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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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들어내고 바람을 타야 하기에 그 피막이 모두 비늘에 뒤덮여있진 않았다. 바깥쪽은 비늘에 뒤덮여 있으나 안쪽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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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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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과 나진은 집요하게 그 부분을 노렸다. 용의 날개를 난도질하고 찢어발겼다. 하늘을 날지 못하게끔. 핏물이 튀어 올랐고 용의 날개가 너덜너덜해졌다. 계획은 성공적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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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 역시 가만히 두고만 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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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목을 꺾은 적룡이, 제 날개를 바라본 채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그 입에는 불길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브레스(Breath). 제 몸에 올라탄 인간을 떨어트리기 위해 적룡은 자신을 향해 불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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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해진 적룡이 뿜어내는 불길은 화염이라기보단 차라리 섬광에 가까웠다. 거센 열기에 주변의 돌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땅이 물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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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과 나진은 적룡이 아가리를 연 순간 즉시 날개를 박차고 전장을 이탈했지만, 그 열기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피부에 그을음이 남았으며 녹아내린 살갗과 옷이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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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제 몸에 불을 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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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투덜거리며 컥, 커흑하고 막힌 숨을 토해냈다. 나진은 제 옷에 달라붙은 잔불을 털어내며 앞을 보았다. 그곳엔 불길에 휩싸인 적룡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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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의 날개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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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은 비늘 덕분에 무사하지만, 나진과 로젤린이 난도질한 날개는 불길을 견뎌내지 못했다. 어차피 찢어질 거 날개쯤은 내주겠다는 양 적룡은 반격을 한 것이다. 나진은 숨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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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추는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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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찢어 기동성을 빼앗았다. 이제 적룡은 더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이다음은 무엇을 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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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꿰뚫거나 용의 목을 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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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의 존재인 용을 봉인시키려거든, 우선은 한번 죽여야만 했다. 심장이나 목을 쳐 생명체로서의 죽음을 안겨주어야 한다. 나진이 검을 고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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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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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공격을 받아낼 수단이 나진에겐 없다. 정면으로 받아냈다간 조금 전처럼 뼈가 으스러질 뿐이다. 그렇다고 회피하자니, 저 거대한 체구를 십분 활용한 공격을 피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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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만을 선택했다간 거리가 멀어진다. 거리가 멀어져선 용에게 유리한 싸움이 될 뿐이다. 회피와 접근을 동시에 시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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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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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할 건 또 없었다. 나진의 머릿속에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사슬 말뚝. 한손으로 검을 쥐고 다른 한손으론 사슬을 돌리며 나진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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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 역시, 그녀 나름의 방법이 있는지 다른 방향에서 용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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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방향. 적룡은 한 명을 요격하기보단, 한 번에 휩쓸기를 선택했는지 제 몸을 빙글 돌리며 꼬리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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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의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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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뼈를 박살 냈던 일격. 그러나 같은 수에 두 번 당할 만큼 나진은 멍청하지 않았다. 땅을 박차고 크게 뛰어오르며 사슬을 내던졌다. 그렇게 사슬이 용의 꼬리에 감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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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잉!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나진의 몸이 무언가에 내던져지듯 거칠게 끌려갔다. 용의 꼬리에 사슬을 매단 채, 꼬리를 따라 나진의 몸이 마치 돌팔매처럼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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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이 삐걱인다. 사슬을 붙잡은 팔은 찢어질 것만 같다. 그러나 나진은 견뎠다. 이 방법이 정답이라고 직감이 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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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력을 견뎌내며 그 힘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방향을 계산한 나진은 사슬을 놓았다. 돌팔매에서 돌이 쏘아지는 것처럼 나진은 적룡에게 쏘아졌다. 쐐에에에에엑! 공기를 가르며 최고속도로 적룡에게 도달한 나진이 검을 역수로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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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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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의 몸에 나진의 검이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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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력을 활용한 가속. 제 몸을 내던진 일격. 검에 휘감긴 백금색의 검기. 그 모든 게 합쳐진 일격이 용의 비늘을 꿰뚫었다.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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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지의 순간 몸을 뒤흔든 통증이 남아있음에도 나진은 몸을 채찍질하며 움직였다. 박아 넣은 검을 비틀며 적룡의 몸을 타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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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가 미친 듯이 타오르며 섬광을 흩뿌렸다. 최대출력. 앞뒤 재지 않고 나진은 전력을 다해 검기를 뽑아냈고, 검을 휘둘렀다. 제 몸을 혹사하며 쏟아붓는 공격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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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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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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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공격이 통한다는 사실에 나진은 더 거칠게 움직였다. 제 팔이 찢어져라 검을 휘둘렀고, 부러진 발목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용의 비늘을 밟고 달렸다. 비늘에 남은 열기에 피부가 그을리는 것 따위 신경 쓰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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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검에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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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마녀와의 전투에서 체득한 경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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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들끓고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시야가 좁아지고 눈에 담기는 것은 자신이 베야 할 것과, 휘둘러지는 검뿐이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나진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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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태에 돌입한 나진은 평소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칼날은 깊고 치명적인 곳을 베었으며 검기는 한없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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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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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비늘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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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인간이, 제 체구의 수십 배가 넘어가는 용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백색과 금색의 검기가 번뜩일 때마다 피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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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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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검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일초가 채 지나기 전에 나진의 검은 열 번 휘둘러졌다. 멀리서 보기에 그 모습은 마치 귀신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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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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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지경. 검에 몰입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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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검사들만이 도달 할 수 있는 경지. 검사들은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나, 초월에 이른 소드 마스터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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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에 취해선 안된다고. 그건 장점만큼이나 단점이 분명한 양날의 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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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 사실을 몰랐다. 제 공격이 용에 통한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용을 피 흘리게 하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멀린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진은 뒤늦게 이변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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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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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비늘이 떨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아마도 몇초 전부터. 그 순간 몰입이 깨졌다. 나진의 눈이 부릅떠지고 시야가 확 넓어졌다. 나진의 귀에 멀린의 목소리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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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떨어져,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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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몇초 전부터 소리치고 있었을 목소리. 나진은 움직였지만 이미 그때는 너무 늦어 있었다. 떨리던 비늘이 나진을 향해 쏘아졌다. 팔뚝만 한 크기의 비늘 수십 개가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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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바바바바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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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디디고 있던 곳, 앞으로 디딜 곳, 도망칠 곳, 그 모든 방향에 자리 잡은 비늘들이 위로 솟구쳤다. 그 장면이 나진의 눈에는 느리게 보였다. 그러나 피할 방법은 없었다. 이미 너무 늦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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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에 몰입해 시야가 좁아지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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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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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전조를 눈치챘더라면, 하다못해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반응할 수 있었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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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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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아진 용의 비늘이 나진의 몸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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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피가 아닌 인간의 피가 튀어 올랐다. 나진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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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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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뜨겁다. 시야가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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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는 삐이이이, 하는 이명이 울렸다. 나진은 자신이 잠깐 정신을 잃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계까지 몸을 혹사한 상태에서 치명상을 입자 정신이 뚝 하고 끊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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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흑, 컥, 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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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피를 한 움큼 게워 냈다. 눈을 몇번이고 깜빡이자 그제야 시야가 천천히 돌아왔다. 나진은 자신이 땅에 엎어져 있음을 눈치챘다. 분명 용의 비늘에 꿰뚫렸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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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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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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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제게 등을 보인 사내가 하나 있었다. 시야가 돌아오고 뒤늦게 청각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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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정신이 드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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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폴셴. 그가 대방패를 내려찍은 채, 나진의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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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에게 감사해라. 네가 비늘에 꿰뚫린 순간 녀석이 널 여기로 집어던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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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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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정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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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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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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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몰아쉬며 나진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그곳엔 날뛰는 적룡과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백각 모험가들이 있었다. 로젤린을 필두로 3명의 백각이 적룡을 상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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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자신과 로젤린뿐이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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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백각 모험가들이 합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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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보니 가능해 보이더군. 승산이 희박한 싸움은 하기 싫지만, 너희 둘이 그리 날뛰어대는 데 도망치기도 좀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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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리하르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의무에 속박되기 싫어 기사를 그만둔 그였지만, 누군가에게 ‘겁쟁이 쪼다’라는 소리를 듣고도 도망칠 만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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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숨을 몰아쉬며 대방패를 앞으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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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메탈로 만들어진 대방패였으나, 그 끝부분은 녹아내려 있었다. 마치 브레스를 막아낸 것처럼. 나진이 주변을 둘러보자 방사형으로 땅이 녹아내려 있었다. 자신이 누워있던 곳만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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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아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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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에 꿰뚫린 순간 로젤린이 자신을 이곳으로 내던졌고, 정황상 적룡은 자신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브레스에서 자신을 지켜준 게 리하르트였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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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목숨을 빚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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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오히려 합류가 늦어서 미안하군. 고민하느라 나서는 게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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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가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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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진을 돌아보며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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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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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움직일 순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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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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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에게 맡기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지만, 아마도 저 용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는 것 같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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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가 적룡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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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각 모험가들이 쉴 새 없이 달려들고 있지만 적룡의 몸에는 이렇다 할 치명상은 없었다. 유일한 상처는 나진이 적룡의 등에 올라타 만들어낸 것들. 적룡의 등에선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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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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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죠. 저거 잡아야 할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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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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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휘두를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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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팔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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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부러졌지만, 피부가 녹아내려 칼자루에 달라붙었기에 검을 쥐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나진의 상태를 확인한 리하르트는 그 집념에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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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군. 계획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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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라. 나진이 옆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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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안절부절못하는 멀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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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너,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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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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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상을 지은 멀린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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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멀린의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기야, 죽을 뻔한 거니까. 나진이 숨을 몰아쉬며 속으로 방법을 떠올렸다. 마치 멀린에게 허락을 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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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생각이 멀린에게 흘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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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을 읽은 멀린이 나진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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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냐고, 제정신이냐고, 그렇게 말하는듯한 눈빛. 그러나 멀린은 그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일 뿐.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그것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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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 둔 수단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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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방법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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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상태는 이미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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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모든 걸 뒤엎을 수단이 딱 하나 나진에겐 있었다. 그리고 그 수단을 사용하려면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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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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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리하르트의 물음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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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뻗어 무언갈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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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끝을 바라본 리하르트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곤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나진에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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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 아니군. 진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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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확실한 전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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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살행위를 전략이라고 부르진 않아. 미친 짓이야. 세상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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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 누구도 안 하는 짓을 해야 위업을 이루는 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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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하고 리하르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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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소드 시커를 찍을만하군.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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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면서도 리하르트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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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방법뿐이란 건 부정할 수 없군. 이대로 가다간 모두 죽을 판이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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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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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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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하고 그가 나진보다 한 걸음 앞선 곳에 걸음을 내디뎠다. 대방패를 들어 올린 채 리하르트가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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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미친 짓에 어울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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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저기까지 보내주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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