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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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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백금색의 검기는 용의 역린(逆麟)이다.

언젠가 멀린은 그렇게 말했다.

별빛을 닮은 백금색의 검기. 인류의 역사에서 오직 단 한 명, 아서만이 다룰 수 있었던 검기. 일천 년 전 아서는 백금색의 검기를 휘둘러 수많은 악마를 베어냈으며 수많고 수많은 용을 떨어트렸었다.

『엑스칼리버를 뽑았기에 백금색 검기를 가졌는지, 백금색 검기를 가졌기에 엑스칼리버를 뽑을 수 있었는지는 몰라. 하지만 전후 관계가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백금색의 검기가 지닌 특성.

『아서의 검기는 신비(神秘)에 저항했어.』

『순리를 거스르는 것들에 저항했단 뜻이야.』

『마치, 세상의 규칙을 지키라는 것처럼.』

세상에 정해진 규칙.

순리, 섭리 따위로 불리는 것들.

『마녀, 악마, 용, 떨어진 별, 나락의 저주받은 것들. 이것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섭리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거야.』

『정해진 규칙을 멋대로 넘고, 부수고, 비트는 존재들이지. 존재 자체가 반칙 같은 것들이고.』

『이제 내가 뭘 말하려는 지 알겠지?』

그 규칙을 지키지 않은 이들을 아서의 검기는 징벌했다. 마치 규칙을 지키라는 것처럼. 아서는 그들의 신비를 가르고 비늘을 찢어발겼으며 피 흘리지 않는 이들을 피 흘리게 만들었다.

『네 검기는 아서와 본질적으로는 다르지만.』

『그 특성만큼은 닮았어.』

『너, 흑마법사 상대할 때 기억하지? 그때는 아직 시커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었지만··· 걸작의 신비를 견뎌내고, 흑마법을 찢어발겼었지.』

그리 말하며 멀린은 웃음을 흘렸었다.

『그렇다면, 시커에 이른 지금은 어떨까?』

이제 그것을 확인할 차례였다.

로젤린이 만들어낸 메아리에 나진은 제 검기를 실었다.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출력의 검기. 아직 나진의 내면에선 백색의 별이 강했기에, 새하얀 빛이 먼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금빛. 새하얀 섬광에 금빛이 뒤섞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한없이 백금색에 가까운 검기다. 본래대로라면 숨겼을 테지만, 지금의 나진에겐 여유가 없었다.

목숨을 건 전투다. 도망칠 곳은 없었으며 시간을 끈다는 선택지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깨부숴야 할 적의 앞에서, 나진은 자신이 숨겼던 전력을 드러냈다.

번쩍!

섬광이 번뜩였다.

나진이 백색과 금색의 검기를 다룬다는 소문은 퍼져있기에, 그 일종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섬광. 그러나 로젤린 아스칼로만큼은 아니다.

“허.”

자신의 메아리에 실린 검기를 로젤린은 느꼈다. 제 영혼의 반쪽을 비명 지르게 만드는 검기. 살갗이 따가웠으며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그 아릿한 고통에 로젤린은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이거면 먹히겠군.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로젤린이 이를 악물고 쌍검을 휘둘렀다. 걸작, 메아리에서 퍼져나간 울림은 그물과도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휘두른 칼끝을 따라 검기의 그물이 용의 날개를 뒤덮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나진과 로젤린의 검기가 용의 날개를 할퀴었다. 용의 비늘이 검기를 흐트러트리나, 검기가 흐트러지는 것보다 비늘이 깎여나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티디디디디딕! 소리를 내며 비늘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

괴성을 내지르며 적룡이 날갯짓하자,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그물이 찢어졌다. 검기가 흩어졌다. 하지만 로젤린이 만들어낸 메아리는 이미 제 역할을 다한 뒤였다.

비늘을 쪼개 발판을 만들었으므로.

검기를 쑤셔 넣을 틈을 만들어냈으므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견뎌내며 둘은 용의 날개에 매달렸다. 거대한 용의 체구에 비하면 한없이 왜소한 인간. 그러나 그들이 손에 쥔 날붙이에 맺힌 광채는 인간이 인간인 채로 괴물을 사냥할 수 있게 만든다.

왼쪽과 오른쪽 날개, 저마다 하나의 날개에 올라탄 로젤린과 나진이 비늘을 밟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늘과 비늘 사이에 검을 꽂아 넣고 닥치는 대로 검기를 뽑아냈다.

키이이이이이이잉!

짐승의 이빨을 닮은 검기가 메아리쳤고.

번쩍!

별자리를 닮은 검기가 연신 섬광을 토해냈다.

용의 날개는 본디 하늘을 날기 위한 것.

바람을 만들어내고 바람을 타야 하기에 그 피막이 모두 비늘에 뒤덮여있진 않았다. 바깥쪽은 비늘에 뒤덮여 있으나 안쪽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었다.

촤아아아아악!

로젤린과 나진은 집요하게 그 부분을 노렸다. 용의 날개를 난도질하고 찢어발겼다. 하늘을 날지 못하게끔. 핏물이 튀어 올랐고 용의 날개가 너덜너덜해졌다. 계획은 성공적이었으나······.

적룡 역시 가만히 두고만 보진 않았다.

기다란 목을 꺾은 적룡이, 제 날개를 바라본 채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그 입에는 불길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브레스(Breath). 제 몸에 올라탄 인간을 떨어트리기 위해 적룡은 자신을 향해 불을 내뿜었다.

완전해진 적룡이 뿜어내는 불길은 화염이라기보단 차라리 섬광에 가까웠다. 거센 열기에 주변의 돌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땅이 물렁해졌다.

로젤린과 나진은 적룡이 아가리를 연 순간 즉시 날개를 박차고 전장을 이탈했지만, 그 열기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피부에 그을음이 남았으며 녹아내린 살갗과 옷이 달라붙었다.

“미치겠네. 제 몸에 불을 질러?”

로젤린이 투덜거리며 컥, 커흑하고 막힌 숨을 토해냈다. 나진은 제 옷에 달라붙은 잔불을 털어내며 앞을 보았다. 그곳엔 불길에 휩싸인 적룡이 있었다.

적룡의 날개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다른 곳은 비늘 덕분에 무사하지만, 나진과 로젤린이 난도질한 날개는 불길을 견뎌내지 못했다. 어차피 찢어질 거 날개쯤은 내주겠다는 양 적룡은 반격을 한 것이다. 나진은 숨을 가다듬었다.

첫 번째 단추는 끼웠다.

날개를 찢어 기동성을 빼앗았다. 이제 적룡은 더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이다음은 무엇을 해야하지?

-심장을 꿰뚫거나 용의 목을 쳐야 해.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의 존재인 용을 봉인시키려거든, 우선은 한번 죽여야만 했다. 심장이나 목을 쳐 생명체로서의 죽음을 안겨주어야 한다. 나진이 검을 고쳐 쥐었다.

“후우······.”

용의 공격을 받아낼 수단이 나진에겐 없다. 정면으로 받아냈다간 조금 전처럼 뼈가 으스러질 뿐이다. 그렇다고 회피하자니, 저 거대한 체구를 십분 활용한 공격을 피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회피만을 선택했다간 거리가 멀어진다. 거리가 멀어져선 용에게 유리한 싸움이 될 뿐이다. 회피와 접근을 동시에 시도해야 했다.

‘쉽진 않지만.

못할 건 또 없었다. 나진의 머릿속에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사슬 말뚝. 한손으로 검을 쥐고 다른 한손으론 사슬을 돌리며 나진이 달리기 시작했다.

로젤린 역시, 그녀 나름의 방법이 있는지 다른 방향에서 용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방향. 적룡은 한 명을 요격하기보단, 한 번에 휩쓸기를 선택했는지 제 몸을 빙글 돌리며 꼬리를 휘둘렀다.

적룡의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나진의 뼈를 박살 냈던 일격. 그러나 같은 수에 두 번 당할 만큼 나진은 멍청하지 않았다. 땅을 박차고 크게 뛰어오르며 사슬을 내던졌다. 그렇게 사슬이 용의 꼬리에 감긴 순간이다.

티잉!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나진의 몸이 무언가에 내던져지듯 거칠게 끌려갔다. 용의 꼬리에 사슬을 매단 채, 꼬리를 따라 나진의 몸이 마치 돌팔매처럼 휘둘러졌다.

사슬이 삐걱인다. 사슬을 붙잡은 팔은 찢어질 것만 같다. 그러나 나진은 견뎠다. 이 방법이 정답이라고 직감이 말했으니까.

원심력을 견뎌내며 그 힘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방향을 계산한 나진은 사슬을 놓았다. 돌팔매에서 돌이 쏘아지는 것처럼 나진은 적룡에게 쏘아졌다. 쐐에에에에엑! 공기를 가르며 최고속도로 적룡에게 도달한 나진이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곤 푸욱.

적룡의 몸에 나진의 검이 꽂혔다.

원심력을 활용한 가속. 제 몸을 내던진 일격. 검에 휘감긴 백금색의 검기. 그 모든 게 합쳐진 일격이 용의 비늘을 꿰뚫었다.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착지의 순간 몸을 뒤흔든 통증이 남아있음에도 나진은 몸을 채찍질하며 움직였다. 박아 넣은 검을 비틀며 적룡의 몸을 타고 달렸다.

검기가 미친 듯이 타오르며 섬광을 흩뿌렸다. 최대출력. 앞뒤 재지 않고 나진은 전력을 다해 검기를 뽑아냈고, 검을 휘둘렀다. 제 몸을 혹사하며 쏟아붓는 공격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촤아아아아악!

비늘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으니까.

제 공격이 통한다는 사실에 나진은 더 거칠게 움직였다. 제 팔이 찢어져라 검을 휘둘렀고, 부러진 발목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용의 비늘을 밟고 달렸다. 비늘에 남은 열기에 피부가 그을리는 것 따위 신경 쓰지도 않았다.

나진은 검에 몰입했다.

지난번 마녀와의 전투에서 체득한 경지였다.

피가 들끓고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시야가 좁아지고 눈에 담기는 것은 자신이 베야 할 것과, 휘둘러지는 검뿐이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나진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 상태에 돌입한 나진은 평소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칼날은 깊고 치명적인 곳을 베었으며 검기는 한없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 나···진!

용의 비늘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다.

한낱 인간이, 제 체구의 수십 배가 넘어가는 용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백색과 금색의 검기가 번뜩일 때마다 피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야, 야! ······!

나진의 검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일초가 채 지나기 전에 나진의 검은 열 번 휘둘러졌다. 멀리서 보기에 그 모습은 마치 귀신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야!

무아지경. 검에 몰입한 상태.

일부 검사들만이 도달 할 수 있는 경지. 검사들은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나, 초월에 이른 소드 마스터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검에 취해선 안된다고. 그건 장점만큼이나 단점이 분명한 양날의 칼이라고.

나진은 그 사실을 몰랐다. 제 공격이 용에 통한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용을 피 흘리게 하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멀린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진은 뒤늦게 이변을 알아차렸다.

부르르르.

용의 비늘이 떨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아마도 몇초 전부터. 그 순간 몰입이 깨졌다. 나진의 눈이 부릅떠지고 시야가 확 넓어졌다. 나진의 귀에 멀린의 목소리게 메아리쳤다.

-피해, 떨어져, 당장!

아마 몇초 전부터 소리치고 있었을 목소리. 나진은 움직였지만 이미 그때는 너무 늦어 있었다. 떨리던 비늘이 나진을 향해 쏘아졌다. 팔뚝만 한 크기의 비늘 수십 개가 동시에.

파바바바바바박!

발을 디디고 있던 곳, 앞으로 디딜 곳, 도망칠 곳, 그 모든 방향에 자리 잡은 비늘들이 위로 솟구쳤다. 그 장면이 나진의 눈에는 느리게 보였다. 그러나 피할 방법은 없었다. 이미 너무 늦었으니까.

검에 몰입해 시야가 좁아지지 않았더라면.

멀린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더라면.

그리하여 전조를 눈치챘더라면, 하다못해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반응할 수 있었을 공격.

푸욱.

쏘아진 용의 비늘이 나진의 몸에 박혔다.

용의 피가 아닌 인간의 피가 튀어 올랐다. 나진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몸이 뜨겁다. 시야가 흐릿하다.

귀에는 삐이이이, 하는 이명이 울렸다. 나진은 자신이 잠깐 정신을 잃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계까지 몸을 혹사한 상태에서 치명상을 입자 정신이 뚝 하고 끊긴 것이다.

커흑, 컥, 콜록.

나진이 피를 한 움큼 게워 냈다. 눈을 몇번이고 깜빡이자 그제야 시야가 천천히 돌아왔다. 나진은 자신이 땅에 엎어져 있음을 눈치챘다. 분명 용의 비늘에 꿰뚫렸을 텐데?

“···야 ···보군.”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나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제게 등을 보인 사내가 하나 있었다. 시야가 돌아오고 뒤늦게 청각이 돌아왔다.

“이제야 정신이 드나 보군.”

리하르트 폴셴. 그가 대방패를 내려찍은 채, 나진의 앞에 서 있었다.

“로젤린에게 감사해라. 네가 비늘에 꿰뚫린 순간 녀석이 널 여기로 집어던졌거든.”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습니까?”

“3분 정도군.”

3분.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후우, 후욱······.”

숨을 몰아쉬며 나진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그곳엔 날뛰는 적룡과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백각 모험가들이 있었다. 로젤린을 필두로 3명의 백각이 적룡을 상대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과 로젤린뿐이었을텐데.

어느새 백각 모험가들이 합류해 있었다.

“보다 보니 가능해 보이더군. 승산이 희박한 싸움은 하기 싫지만, 너희 둘이 그리 날뛰어대는 데 도망치기도 좀 그렇지 않나.”

나진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리하르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의무에 속박되기 싫어 기사를 그만둔 그였지만, 누군가에게 ‘겁쟁이 쪼다’라는 소리를 듣고도 도망칠 만큼은 아니었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대방패를 앞으로 밀었다.

레어메탈로 만들어진 대방패였으나, 그 끝부분은 녹아내려 있었다. 마치 브레스를 막아낸 것처럼. 나진이 주변을 둘러보자 방사형으로 땅이 녹아내려 있었다. 자신이 누워있던 곳만을 제외하고.

‘···막아준 건가.

비늘에 꿰뚫린 순간 로젤린이 자신을 이곳으로 내던졌고, 정황상 적룡은 자신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브레스에서 자신을 지켜준 게 리하르트였을 것이고.

“감사합니다. 목숨을 빚졌군요.”

“무얼. 오히려 합류가 늦어서 미안하군. 고민하느라 나서는 게 늦었어.”

리하르트가 쓰게 웃었다.

그가 나진을 돌아보며 질문했다.

“움직일 수 있나?”

“어떻게든 움직일 순 있을 것 같군요.”

나진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부상자에게 맡기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지만, 아마도 저 용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는 것 같더군.”

리하르트가 적룡을 가리켰다.

백각 모험가들이 쉴 새 없이 달려들고 있지만 적룡의 몸에는 이렇다 할 치명상은 없었다. 유일한 상처는 나진이 적룡의 등에 올라타 만들어낸 것들. 적룡의 등에선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갈건가?”

“가야죠. 저거 잡아야 할 거 아닙니까.”

“그 상태로?”

“검을 휘두를 수는 있습니다.”

나진이 팔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이 부러졌지만, 피부가 녹아내려 칼자루에 달라붙었기에 검을 쥐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나진의 상태를 확인한 리하르트는 그 집념에 혀를 내둘렀다.

“미쳤군. 계획은 있나?”

계획이라. 나진이 옆을 바라봤다.

그곳엔 안절부절못하는 멀린이 있었다.

-너, 너, 진짜······.

‘미안합니다.

울상을 지은 멀린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멀린의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기야, 죽을 뻔한 거니까. 나진이 숨을 몰아쉬며 속으로 방법을 떠올렸다. 마치 멀린에게 허락을 구하듯이.

나진이 생각이 멀린에게 흘러 들어갔다.

그 생각을 읽은 멀린이 나진을 노려봤다.

미쳤냐고, 제정신이냐고, 그렇게 말하는듯한 눈빛. 그러나 멀린은 그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일 뿐.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그것 뿐이었으니까.

준비해 둔 수단은 무너졌다.

정상적인 방법은 불가능하다.

몸의 상태는 이미 한계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뒤엎을 수단이 딱 하나 나진에겐 있었다. 그리고 그 수단을 사용하려면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하나,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나진이 리하르트의 물음에 답했다.

손가락을 뻗어 무언갈 가리켰다.

그 손끝을 바라본 리하르트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곤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나진에게 되물었다.

“제정신이 아니군. 진심인가?”

“가장 확실한 전략이니까요.”

“보통 자살행위를 전략이라고 부르진 않아. 미친 짓이야. 세상 누가······.”

“세상 그 누구도 안 하는 짓을 해야 위업을 이루는 게 아니겠습니까.”

허어, 하고 리하르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최연소 소드 시커를 찍을만하군.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이야.”

그리 말하면서도 리하르트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래도, 그 방법뿐이란 건 부정할 수 없군. 이대로 가다간 모두 죽을 판이니 말이야.”

“어쩌시겠습니까?”

“어쩌긴.”

쿠웅, 하고 그가 나진보다 한 걸음 앞선 곳에 걸음을 내디뎠다. 대방패를 들어 올린 채 리하르트가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네 미친 짓에 어울려주마.”

어떻게든 저기까지 보내주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