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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태양에게 아뢰옵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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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고 나진은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는 제국의 황제를 바라봤다. 나진의 노을빛의 눈동자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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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어떠한 집단에도 소속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소속되어야 할 곳이 있다면, 제 이름보다 앞서 불러야 할 것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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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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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망상했던 낱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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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외워버린 문장들은 나진은 발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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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다름 아닌 기사라는 칭호일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사란, 특정한 가문이나 주군을 따르는 기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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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하고 황제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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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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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위한 기사. 인류를 위한 기사. 응당 행해야 할 것을 행하는 기사. 천 년 전 아서왕을 필두로 대륙을 가로질렀던 명예로운 기사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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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기사, 아탕가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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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현존하는 아탕가의 기사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원전이 되는 존재들. 아서왕과 함께 세상을 질주했던 명예로운 기사들에게 역사는 아탕가란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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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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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황제의 말에 긍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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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하며, 나진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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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라는 것은 아탕가라 불릴 자격. 그리고, 그 자격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질 수 없습니다. 저 스스로 증명해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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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 어느 귀족도, 집단도, 하물며 황제마저도 누군가에게 아탕가란 이름을 붙이진 못한다. 아탕가의 기사단 또한 스스로를 아탕가의 기사라 칭할 뿐, 아탕가라는 단어만을 사용하는 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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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라 불릴 자격이란 게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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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과 역사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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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제게는 그 어떠한 집단도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무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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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게 걷겠다는 뜻이로군. 그렇다면, 그 걸음이 향할 곳은 어디인가? 본인은 아직 듣지 못했다. 그대가 어느 곳으로 향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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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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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아갈 길을 가리켜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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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그리 외쳤고,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나진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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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캄브리아에 속해있으나, 영원히 캄브리아에 머무를 생각은 없습니다. 길어봐야 몇 개월. 캄브리아를 떠나 대륙의 바깥으로 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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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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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머지않아 마경으로 향할 것입니다. 제국과 인류를 위협하는 악마들을 벨 것입니다. 끝내는 마왕이라 불리는 거악에게 검을 겨눌 것입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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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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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질문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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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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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전장으로 걸음 할 것입니다. 더럽혀진 별들을 떨어트릴 것입니다. 그리고, 저만의 별을 하늘에 하나씩 걸어갈 생각입니다. 천 년 전 위대한 대영웅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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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정의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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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져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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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불경한 말투였으나 황제는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 높여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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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말대로다. 정해져 있겠군. 나락의 땅, 캄란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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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침묵함으로써 긍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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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나진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이해했다. 이해했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아서와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숱한 영웅들이 걸었던 길을 똑같이 걸어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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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가시밭길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죽음이란 최후조차 가벼운, 한낱 인간이 견디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고난과 시련이 가득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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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하고 또 거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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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드윈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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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런 길을 걸으려 하지? 숱한 이들이 억만금을 내고서라도 그대를 품으려 할 것이다. 그대가 원한다면 금화, 미녀, 권력··· 수많은 달콤한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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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달콤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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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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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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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갈증을 채워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명예와 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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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가 가져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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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과 기사가 품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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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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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게르드를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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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점의 거짓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게르드의 눈동자 앞에서 거짓을 고한다면 결코 그의 감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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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황제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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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한 말이다. 허황된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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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진심으로 입에 담는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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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는 멸종해 버린 인간상이었다. 그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황제는 침묵했다. 말뿐인 것에 가치는 없다. 설령 저 모든 것이 진심이라 한들 증명되지 않은 낱말의 나열에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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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황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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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증명해 낸 딱 하나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것은 나진이 지난 반년간 남긴 행적에서 찾아낼 수 있다. 아탕가의 기사와 엮였던 사건. 그 사건을 깊게 파헤친 로얄 가드들은 아탕가의 기사에게 ‘몇 가지 증언’을 받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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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를 아는 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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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의 기사다움을 논하는 이는 드뭅니다. 그것을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자는 더욱 드물지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까지 간다면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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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마주쳤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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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 아르고는 웃음과 함께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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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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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은 긍지를 품었습니다. 명예를 갖지 못했을지언정, 명예가 무엇인지 압니다. 이는 아탕가의 기사인 저 아르고가 보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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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충분한 증언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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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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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지 황제는 알고 있다. 그들의 말만큼은 신뢰할 수 있으니. 최소한의 조건은 갖춰졌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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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황제, 엘드윈 팬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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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엷은 웃음과 함께 나진을 바라봤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황제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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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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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포부는 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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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드윈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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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대의 말에는 허점이 있다. 알고 있을 테지? 그대의 말마따나 그대에겐 아직 자격이 부재하다.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해 내지 못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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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침묵했다. 정곡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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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포부일 뿐 어느 것 하나 증명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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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되지 못한 낱말. 기세만 가득한 포부. 자격 없는 자의 허황된 말에 신뢰를 보내주기엔 내 신뢰가 너무나도 무겁군. 이 자리가 그런 자리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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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드윈이 쓰게 웃으며 옥좌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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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호불호로 선택을 내리기엔 황제라는 자리가 너무나도 무겁다. 그런 의미를 내포한 손짓이었다. 나진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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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충분히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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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이쪽에서 타협점을 제시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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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진이 입을 열려는 순간, 황제가 말을 이었다. 마치 자신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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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에게 기회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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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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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그대를 지켜볼 것이다. 본인뿐만이 아니야. 온 대륙이 그대를 지켜보고 또 평가하겠지. 세간의 평가가 곧 본인의 평가요, 본인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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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고 황제는 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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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자격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잘못된 길을 고른다면, 이 자리에서 내뱉은 말들을 지키지 않고 기사의 길을 포기한다면, 본인은 그 즉시 그대의 목에 목줄을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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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기사, 혹은 사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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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대가 자격을 증명해 낸다면, 아탕가라 불릴 자격을 끝내 손에 넣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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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드윈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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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진심으로 고대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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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그대에게 자유 기사의 작위와 브리튼의 문양을 새길 권리를 약속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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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황실이 인정한 자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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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명령도 따를 필요 없으며, 다만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할 권리를 가진 이. 과거 아서를 따르던 이들에게 주어졌던 작위이자 ‘원탁’의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이 가진 작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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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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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지도 못한 제안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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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떠한 증거도 보이지 못했음에도, 황제는 어떠한 제약도 걸지 않았다. 단지 지켜보겠다고 말하였을 뿐. 나진이 고개를 숙이고 황제에게 감사를 표했다. 겉치레를 위해 행하는 예법이 아닌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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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하였듯 검사란 검으로 증명하는 이. 그대, 그대의 검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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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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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겠다. 제국이 그대를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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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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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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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시끄러워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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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걸으며 황제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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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한 걸음 뒤에서 따라 걷던 제국의 소드 마스터, 게르드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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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풀어주셔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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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제일각. 검과 제국이라는 두 가지 가치만을 신봉하는 노인은 충언했다. 제국의 첫 번째 기둥인 노인에게는 다소의 무례함이 허락됐다. 그는 황제에게 거침없이 직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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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인물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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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네, 게르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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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 두는 편이 좋았으리라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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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말이 옳다. 부정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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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대로라면 하다못해 피의 서약이든, 영혼의 맹세든, 뭐라도 좋으니 족쇄 하나쯤은 걸어뒀어야 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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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은 분란의 씨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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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게르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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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드윈이 나지막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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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 그는 전대와 전전대 황제를 섬겼던 게르드를 존중했다. 존중하기에 황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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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고 말했네. 알고 있음에도 그리 행했다고 나는 이야기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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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드가 침묵한 채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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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넘은 발언이었음을 사죄한단 뜻이었다. 황제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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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지적은 옳아. 만일 황권이 흔들리고 제국이 분열의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면, 본인도 그대의 말대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국은 굳건하지. 150년 전의 대숙청과 몇 개의 사건을 거치며 황권은 그 어느 때보다 높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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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기며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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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검인 그대가 제국을 지탱하고 있지 않은가. 고작 저런 불길에 타들어 갈 만큼 지금의 제국은 나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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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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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본인은 제국의 황제이지만, 황제이기 이전에 엘드윈 팬드래곤이라네. 영웅이 되겠노라고 선언하는 소년의 말을 의심하고 족쇄를 채워서야··· 어디 팬드래곤이란 성을 외치고 다닐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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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드윈 팬드래곤이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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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걱정된다면 그대가 직접 감시하게. 무얼, 그 소년에게도 제국이 지켜보겠노라고 말한 참이다. 제국의 검인 그대가 제국이 아니라면 그 누가 제국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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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제 소매를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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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잔뜩 달아오른 것 같은데, 어서 그 소년에게 가볼 거면 가보라고. 게르드는 젊은 황제의 손짓에 쓰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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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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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됐네, 됐어. 어서 가보기나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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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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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안대를 차고 황성의 바깥으로, 그리고 접견실로 안내받은 나진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온몸의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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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잘 풀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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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이번 황제라는 놈 꽤 괜찮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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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이었다. 이렇게까지 잘 풀릴 거라곤 나진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만일 자신이 엑스칼리버를 가졌단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황제는 아군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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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이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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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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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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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를 아군으로 둔다면 무엇보다 든든하겠지만 엑스칼리버마저 공개하기엔 조금 일렀다. 그야, 엑스칼리버를 공개하는 순간 대전쟁이 벌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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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하나를 표방하나, 모든 이가 황명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소드 마스터가 황제의 깃발 아래 집결하는 것은 아니다. 암약하는 존재들, 반역을 꾀하는 이들, 악마와 내통하는 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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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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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때가 되면 궐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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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아군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제국조차 대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엑스칼리버의 소유자가 공개되는 순간 떨어진 별들은 명분을 얻는다. 캄란의 저주받은 이들이 들끓을 것이며 악마와 용들은 분노를 노래하리라. 세상을 반분하는 대전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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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드 시커라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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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개인은 전쟁 앞에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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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 성좌나 초인 같은 초월자들뿐이다. 소드 시커가 되었으니 어느 정도 공개했을 뿐 아직 엑스칼리버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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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심은 받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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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물증 없이 성좌들은 움직이지 못해. 성좌만 움직이지 못한다면 문제 될 건 없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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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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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갈 길이 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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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소드 시커가 말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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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의 비아냥에 나진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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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접견실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진을 접견실로 불러낸 인물이 문을 열고 등장했다. 예상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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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한 달 만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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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 유엘 라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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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진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는데, 그 손에는 술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술병을 탁 하고 나진의 앞에 내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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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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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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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조차 타는듯한 고통을 느끼는 독주라고, 지난번에 당신이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나진이 마셨다간 아마 식도가 화끈하게 익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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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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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안타까운 표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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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은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한 채 품에서 술잔과 안주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그 손동작이 무척이나 신속했는데, 왜인지 모르게 카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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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포에 싸구려 술을 걸치던 카론. 그러나 유엘이 꺼낸 것은 최상품 성주와 최상품 안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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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업체에서 그녀에게 진상한 안주들을 늘어놓은 채 유엘이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사람을 불러놓고 대뜸 술부터 걸치는 모습이 기이하긴 했으나, 유엘이 이런 인물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나진은 묵묵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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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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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이 술잔을 내리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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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 당신의 이름이 나진이었군요. 그때는 제게 거짓말을 했겠습니다. 그것도 두 가지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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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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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눈동자가 흉흉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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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이름, 다른 하나는 처음으로 만난 소드 마스터가 저란 사실에 긍정했던 점입니다. 검성 카론은 이미 당신을 알고 있더군요. 그리고, 황실의 정보에 의하면 그는 저보다 먼저 당신과 접촉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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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 라지안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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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십시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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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소였고, 또 위험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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