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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영웅담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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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디에 서 있든 저 드넓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자리가 보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 별자리야말로 영웅들이 이 땅을 질주했던 흔적이자 그들의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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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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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위업을 쌓은 영웅들은 밤하늘에 자신의 별을 새겨 성좌(星座)라 불리는 초월자가 된다. 그런 점에서 ‘별자리가 곧 영웅의 삶이다’라는 대목은 맞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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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틀린 부분은 어느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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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당신이 어디에 서 있던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자리가 보인다’라는 부분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한평생을 하늘이라 여기며 살아온 도시의 천장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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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동자를 비추는 건 드넓게 펼쳐진 밤하늘이 아니었으며, 찬란히 빛나는 별자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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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연기. 천장에 위태롭게 박혀있는 수많은 광석들. 광석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불빛만이 내 눈동자를 비추었다. 이 도시에는 하늘도 별자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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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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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를 비집고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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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서 별 같은 게 보일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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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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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만물을 평등하게 비추는 태양마저 비추기를 거부한 곳. 그리하여 일 년 사계절 밤낮으로 어둠에 잠긴 곳. 태양이 뜨지 않기에 광석을 통한 인위적인 불빛에 의존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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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이렇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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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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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쓰레기들이 매립(埋立)되는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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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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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도시,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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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뉘는데, 그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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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에서 이곳으로 추방당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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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당한 연놈끼리 눈이 맞아 낳은 자식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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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나는 후자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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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평생을 이 도시에서 살아가야 할 운명을 타고났단 뜻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윗동네 분들은 생각이 좀 다른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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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들이 교접해서 친 새끼는 당연하게도 쓰레기일 것이다. 태어남으로써 이 세상을 더럽게 만들었으니 태어난 것 자체가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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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윗동네의 평균적인 사고방식이었고, 이 도시를 대하는 보편적인 태도였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었으니 한평생을 이 도시에서 썩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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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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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것이 안타깝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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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를 동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만, 그런 그들의 동정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나는 애초에 바깥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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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따스한 태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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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초록빛 들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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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다는 푸른 바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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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적도 없었고,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들에 동경을 품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바깥세상에 큰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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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딱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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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있는 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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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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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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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성좌,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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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 동화책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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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우연히 손에 넣게 된 동화책이었다. 「아서 일대기」라는 제목의 책. 몇번이고 다시 읽어 낡아 해진 동화책을 나는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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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일대기」는 영웅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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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도 더 전에 활동했던 영웅의 일생을 다룬 영웅담. 이야기 속에서 아서는 누구도 뽑지 못했던 바위에 박힌 검을 뽑아 들었고, 한 자루의 검만을 쥔 채 대륙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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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서. 그리고 영웅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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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들을 구하고, 수많은 악마를 베어 넘긴 아서는 여정의 끝에서 성좌(星座)가 됐다. 아서가 쌓아 올린 열세 개의 위업은 별이 되어 밤하늘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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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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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화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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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펼쳐본 페이지였다. 아서의 별자리가 삽화로 실린 페이지였으니까. 종이 한 면을 가득 채운 별자리를 나는 말없이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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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개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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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별이 이어져 만들어진 검의 형태의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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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별자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삽화의 옆에 적혀있는 짤막한 글귀가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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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땅의 어디에 서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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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은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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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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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별 같은 게 보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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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이잖아 씹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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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를 비집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 바깥세상의 다른 것엔 관심이 없었지만··· 딱 하나, 저 별자리라는걸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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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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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별이란 걸 봐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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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호기심이었고 망상이었다. 어차피 이룰 수 없는 꿈일 테니 망상이나 다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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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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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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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있었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을 모욕하지 말라고. 별은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별을 보고 있는 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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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안 보이는데 욕이라고 들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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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으론 아서의 별자리를 떠올리며 내가 하늘을 향해 중지를 들어 올렸다. 중지와 함께 가벼운 욕설을 입에 담아봤다. 당신은 그냥 시대를 잘 타고 난 풍운아가 아니냐는, 들린다면 아서가 무시할 수 없을법한 모욕적인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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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2초, 3초··· 그렇게 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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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천벌 같은 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뭐. 내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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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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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벌이라도 떨어졌음 했는데. 그게 이렇게 지루하게 사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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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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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자리를 뜨고 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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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도시 아트만의 위, 그곳에 지어진 거대한 도시보다 더 위, 저 드넓은 밤하늘에 수 놓인 어느 별자리가 반짝였다. 그것은 소년이 동화책에서 보았던 아서의 별자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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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개의 별로 이루어진 검의 별자리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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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곁을 지키는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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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에든 자신의 왕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별을 품은 잔잔한 호수. 언제나 잔잔했던 그 별자리가 난데없이 찬란한 빛을 흩뿌렸다. 그것은 어찌 보면 별의 분노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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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星座), 선별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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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의 여정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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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마법사, 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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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형태를 띈 멀린의 별자리가 거세게 출렁였다. 별자리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그녀의 진체(眞體)가 눈을 부릅뜬 채 지상을 내려다봤다. 멀린의 귓가에는 어느 건방진 소년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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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는 시대를 잘 타고났을 뿐인 풍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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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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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운가? 반박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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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와서 천벌이라도 내려보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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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지적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굉장히 모욕적인 언사였다. 멀린은 오랜만에 제 뒷목이 뜨끈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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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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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헛웃음과 함께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을 타고 그녀의 청백색 머리칼이 물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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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신나간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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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의 눈에 핏발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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